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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K VOL.11 2012 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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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한 만남



uniK 유니크 웹진 독자의 대부분이 젊은 대학생인데 젊은 학생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요?
임권택 저 만큼 나이가 들어봐야 알아 들을 수 있는 소리이지만, 젊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젊은이들과 만나면서 교류하면 내가 배울 것도 많아요. 사실 나이 드니까 누가 쳐다보지도 않아요(웃음).

uniK 이제 교수님으로서 학과 강의에서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고 계신데, 그들을 보면 감독님의 젊은 시절이 생각나실 것 같습니다.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요?
임권택 20대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은 저도 여러 번 해봤어요. 그런데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저에게 정말 무섭고 싫은 일이에요. 그 때 저질영화 찍느라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럼 다시 돌아가서 더 좋게 찍어볼 생각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그 많은 영화를 날치기로 찍었다고 제가 표현은 하지만, 사실 그 당시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찍었던 거예요. 결과적으로 그런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그 때는 명운을 걸고 찍었던 지라 거기 따르는 고통에 깊이 파묻혀서 놀 줄을 몰랐어요. 그래도 그 10년이란 시간이 있어서 제 기량이 성장했겠죠.



uniK
기존 영화들을 안 좋게 말씀하시지만,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이후 10년간 50편의 영화가 줄줄이 히트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질영화라고 표현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임권택 감독으로서 초기 50편의 영화는 없어져버렸음 좋겠어요. 찍을 때, 제가 좋아하는 것을 영화에 표현해서 명작을 남겨보겠다는 특별한 욕심이 없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제 영화를 보고, 임권택 감독이 그런 희망 없는 젊은 시절을 살았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보면 어쩔 수가 없어요. 심지어 어떤 평론가는 제 영화를 보다가 “이 감독은 동심이 없는 사람이네요.” 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실제 국민학교, 중학교 다닐 때도 우리 집에 아버지를 잡으러 경찰들이 밤이면 구둣발로 헤집고 다녔어요. 저에게 동심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미국영화 따라 해보자는 식이었죠.

uniK 영화를 많이 찍으셔서 시나리오를 구하는 것마저 힘드실 것 같습니다. 늘 영화의 소재에 대한 구상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임권택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한 구상을 많이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라기 보다, 제가 찍는 영화의 소재가 느닷없이 생각난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다작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가령, 제가 <씨받이>를 촬영하고자 한 것은 제 성장배경에서 영향을 받았죠. 우리 어머니는 제가 영화만 찍고 돌아다니니까 부모 제사도 안 모실 놈이라며, 막내 동생에게만 몇 안 되는 가족 사진을 물려주셨어요. 그 상황들 속에 장남이란 무엇이며 남아선호사상은 무엇인지 여러 해 전부터 고민을 해왔던 것이죠. 제가 장남으로 살면서 어머니와 부딪치는 관계 속에 늘 생각 해오던 것들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죠.



uniK <서편제><태백산맥> 등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책을 많이 보셨나요?
임권택 영화를 해야 하니까 당연히 이야기책을 봐야죠. 배운 것이 없어서 세상에 알아야 할 것이 남들 보다 더 많아요. 예를 들어, 역사극 하나를 찍더라도 역사적 사건의 연유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고 찍어야 더 잘 찍겠죠. 그래서 봐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연출팀이 힘들죠. 감독인 저는 요약된 자료를 보지만, 자료를 찾는 연출 팀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경험이 고생스러워도 도움이 되요. 도리 없이 책은 봐야 해요. 어렸을 때부터 대중소설을 많이 봤죠. 10년 동안 50편을 찍을 때 대중 소설을 읽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하지만 양심껏 이야기 하는데, 그대로 표절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uniK 최근에 후배들이 <서편제>를 뮤지컬로 각색해 반응이 좋던데, 후배들에 의해 재 탄생한 뮤지컬 <서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임권택 후배들이 초대해줘서 갔는데, 사실 걱정이 앞섰어요. <서편제>는 원작, 영화 둘 다 너무 많이 알려졌으니 그 젊은이들은 그 유명세를 등에 업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그 유명세가 후배들의 뒷덜미를 잡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주인공 ‘동호’가 현대음악을 하는 내용의 시나리오로 각색을 잘 했더군요. 무대 장치도 기발하게 만들었는데, 원작이나 영화에서 본 것 안에서 헤엄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나름의 시선을 가지고 무대를 꾸며서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uniK
김대승 감독님께서 함께 일하실 때, 감독님 보다 일찍 나가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하셨는데 모두 실패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한결 같이 촬영장에 일찍 나오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임권택 촬영하는 사람이니까 방안에만 앉아 있기 보다 현장에 와서 보고 있으면, 그 날 찍어야 될 내용과 장면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요. 그리고 다 같이 영화를 촬영하는데 감독으로서 제가 게을러지면 촬영 팀이 모두 해이해질 수 있어요. 사실 저와 일하는 친구들은 불만이 굉장히 많아요. 김대승 감독도 그랬죠. 9시면 9시에 나와야지 왜 한 시간 전에 나와서 불편하게 하냐며 말이죠(웃음).

uniK 감독님께서도 사사를 받으시던 시절이 있으셨지요. 아시아 액션 영화의 스승으로 불리시는 정창화 감독님 아래서 영화관에 가서 몰래 촬영해온 영화로 공부하셨다던데 정말인가요?
임권택 정창화 감독님도 엄청 철저한 분이죠. 절대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당시 흥행 중인 서부 영화가 있었는데, 어떻게 촬영했는지 궁금한 격투 장면들이 몇 있었죠. 그러다가 감독님이 “가서 그 영화 좀 찍어와라.” 라고 하시길래, 가장 사람들이 안 들어오는 시간에 가서 16mm 카메라로 찍어서 편집기기에 틀어가면서 어떻게 촬영한 것인지 연구를 했죠. 지금은 영상을 얼마든지 분석을 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그 때는 한 번 영화관에서 보고 지나가버리면 분석을 할 수가 없잖아요. 우리가 촬영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철저하게 준비했던 과정이었어요.

uniK 말씀을 들어보니 당시 영화 연출의 환경이 매우 열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님만의 색이 담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계기가 있으신지요?
임권택 초기에는 열악한 환경 임에도 불구하고 3류 미국영화든 2류이든 제 영화의 수준을 비슷하게라도 끌어 올려야겠다는 야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고민해보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이더라고요. 당시 제작비만 해도 수 백분의 일 혹은 수 천분의 일이었고, 인적자원이나 기자재도 미국의 기술환경과 비할 바가 못됐거든요. 그 시절 영상 기기는 추울 때는 멈추기도 하는 낡은 기계들이었어요. 이런 환경에서 가망 없는 야심을 가져서는 희망이 없으니, 한국인이니까 찍을 수 있는 영화를 찍겠다고 생각을 바꿨죠.



uniK
감독님께서는 벽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으신 것이네요. 외려 영화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드셨나요?
임권택 그런 것은 없었어요. 영화가 아니면 굶어 죽는데 어떻게 다른 길을 생각해요. 문득 잘못 지나온 것 같아도 포기 할 수도 없었어요. 제 영화의 시작은 큰 꿈이 아니라 생업이었잖아요. 오죽하면 감독 제의가 들어 왔을 때 작품 실패하면 영화계에서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는데, 꼭 감독을 해야 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먹고 살기에 충분한 직업도 아니었는데 조감독으로 머물까 상당히 고심도 했다니까요(웃음).

uniK 어찌 보면, 영화 <취화선>에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던 장승업의 캐릭터가 감독님을 많이 연상하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권택 사실 한국화가 중에 신윤복ㆍ김홍도ㆍ정선이 아니라 장승업씨를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제가 접근하기 친숙하고 명료했어요. 불과 저하고 50-60년 시차 일 뿐이고, 행적이 없이 사셨는데 어린 나이에 객지에 나와서 고아처럼 자란 저와 비슷하지요. 하나하나 비교해보면 그림 그리는 일과 영화를 연출하는 것, 20살 때 천재소리를 듣고 화명을 날린 것과 비록 천재라는 소리는 못 들었지만 제가 일찍 입봉 한 것, 40살에 장가를 간 것까지 여러 가지가 비슷하죠. 물론 저는 이혼 안하고 잘 살고 있지만(웃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승업이 52세에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 주변인들이 하나 같이 금강산 어디에서 신선처럼 살 것이라고 말했다더군요. 자기과시 없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으면 그 나이에 신선이라는 소리를 들었겠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uniK 어떤 평론가 분이 감독님을 시행착오의 대가라고 표현 하셨더군요. 이런 표현이 감독님의 치열함을 드러내 주는 부분일까요?
임권택 시행착오라는 것은 무엇인가 새롭게 계속 시작하고 있다는 것의 증거라고 생각해요. 일전에 한 것을 똑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과정 중에서 어떤 것은 큰 성과를 얻어낸 실적이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무릅쓰고 하는 계속 나아가는 배짱이 생기는 거겠죠. 저에게는 ‘매번 새롭게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요.

uniK 그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화를 찍으시어 101편의 영화를 남기셨습니다. 가장 자랑스러운 영화를 몇 편만 고르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임권택 저는 자랑스러운 영화가 없어요. 지금도 제 영화이지만 만들고 나면 잘 보지 않아요. 보고 있으면 속이 끓는 일이 많아서요. 내가 왜 저 상황에서 저렇게 연출했을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등등 열이 받아서 못 보겠어요. 대신 객관적으로 드러난 영화적 성과로 기억에 남는 영화는 있죠. 흥행이 잘 되어 차기 작품을 찍는 경우처럼요. 그런 영화들을 봤을 때 자랑스러운 영화라고 그나마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하나도 없어요. 결국은 평생 완성을 지향하다가 끝날 인생일까 그런 생각을 해요.



uniK
이렇게 고된 영화 일을 아드님께서도 이어나가겠다고 하실 때 말리지는 않으셨나요?
임권택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영화관련 학과에 가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원인제공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가족에게 말했죠. 그 이후로 1년 동안 아들한테 학교생활에 대한 질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다가 <하류인생> 찍을 때, 아들과 하룻밤을 같이 새우고 집에 들어갈 때 처음 물어봤어요. “너 정말 배우 될 거냐? 무슨 역할을 하고 싶니?” 라고 물어보는데 두렵더라고요. 왜냐하면 주변에서 잘생겼다고 말해주면 미남으로 착각하고 건방진 생각을 할까 봐요. 그런데 무조건 주연급보다는 카리스마가 있는 악역을 하고 싶데요. 그 때, 아버지가 영화감독이지만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죠. 왜냐하면 저는 이미 영화계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해보았는데 제 자식이라고 특별히 좋은 대우를 해주고 감싸줄 수가 없더라고요. 아들은 알고 있다면서 성도 ‘권’씨로 바꿨는데 기특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식이. 너무 심한데.” 그렇게 생각했죠(웃음).

uniK 학교에서 강연을 하시면서 젊은 영화지망생들을 만나실 텐데, 주로 어떤 말씀을 해주시는지 궁금합니다.
임권택 얼마 전에 부산에서 1학년 학생들한테 제가 연출한 <달빛 길어올리기>를 보고 감상 소감을 내라고 말하고 보니까 90%이상이 재미없고 지루하고 무엇을 얻기 위해 이런 영화를 찍었냐고 묻더라고요. 반대로 고학년 학생들에게 같은 숙제를 내주니 정 반대의 답이 돌아오더군요. 1년이라도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영화의 의미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나지요. 물론 학생들 눈에 재미없는 영화로 보이도록 찍은 이유가, 왜 생겨난 것인지 조목조목 제 약점까지 드러내면서 연출 이전의 뒷이야기를 해줘요. 영화는 일반적 흥행 기록만으로는 따지지 못하는 오래 된 생명력과 이야기가 있어야 하죠.

uniK 마지막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언 부탁 드립니다.
임권택 어떤 분야이든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조심 해야 될 것은 허영심이에요. 특히 영화계에 허영심을 갖고 일을 시작하면 쉽게 10년이 지나가 버려요. 그렇게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내 버리면 방향도 바꾸지 못하고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 없으면 못 산다고 말 할 만큼 내가 일하는 분야에 깊이 빠져 있는지, 자신한테 물어보세요. 갑자기 흥행 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부터 하는 사람 보다 자기가 좋아서 임하는 사람들이 성공 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감독 임권택]

영화 <천년학><하류인생><취화선><춘향뎐><장군의 아들>등 연출
2009 제9회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골드스타상
2007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2007 제5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수상
2005 제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황금곰상
2002 제3회 올해를 빛낸 한국인상
2002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
2000 제20회 하와이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1998 제41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구로자와상
1996 한국영화연구소 자문위원
1995 제6회 춘사영화예술상 예술인상
1994 동아일보 선정 '93올해의 인물'
1989 문화훈장 보관장
1988 제25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1987 제32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1974 아시아영화제 감독상
1973 제10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