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과 10월에 치러지는 HSK(중국어 수준 평가 시험)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그리고 기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필수 조건 중에 하나다. HSK는 초급(3,4,5급), 중급(6,7,8급), 고급(9,10,11급)으로 나뉘는데, 중국 대학의 입학 조건은 6급 이상이어야 하지만, 대학 진학 후에도 우수한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고급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 사실 나는 중국 친구들과 4년여 간 공부하고 경쟁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고급을 취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HSK는 중국인들도 처음부터 11급을 따기 어려울 정도로 각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 시험이다.
시험은 듣기, 작문, 말하기, 독해, 종합(문법, 성어 등으로 이루어짐)으로 나뉜다. 나는 시험 한 달 전부터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듣기 문제라 여기며 집중해서 듣고 키워드를 받아 적었다. 평소에 외우는 고문(古文)과 고시(古诗) 그리고 수업 시간의 발표를 말하기 시험이라 생각하고 또렷하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훈련했다. HSK의 독해 부분은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숙제로 내주는 독해 문제들을 최대한 틀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노트에 적는 사소한 필기까지 작문 시험이라 여기며 다양한 표현법과 정확한 문법으로 작성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
시험은 듣기, 작문, 말하기, 독해, 종합(문법, 성어 등으로 이루어짐)으로 나뉜다. 나는 시험 한 달 전부터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듣기 문제라 여기며 집중해서 듣고 키워드를 받아 적었다. 평소에 외우는 고문(古文)과 고시(古诗) 그리고 수업 시간의 발표를 말하기 시험이라 생각하고 또렷하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훈련했다. HSK의 독해 부분은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숙제로 내주는 독해 문제들을 최대한 틀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노트에 적는 사소한 필기까지 작문 시험이라 여기며 다양한 표현법과 정확한 문법으로 작성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
시험 일주일 전이 되자, 수업만으로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부족하다고 느껴져 HSK 모의 문제집을 풀어보며 유형들을 익혔다. 듣기와 말하기 부분은 HSK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들을 참고했고 작문과 독해 그리고 종합 부분은 문제집으로 훈련했다. 첫 시험이었던 듣기는 예상보다 어려워 처음부터 긴장을 많이 했다. 글자수 400자를 요구했던 작문은 800자 기준으로 준비한 덕에 여유롭게 마칠 수 있었고 독해는 속독 능력과 이해력이 동시에 필요했다. 정확한 발음과 뚜렷한 자기 생각을 요하는 말하기 시험과 어감이 중요한 종합 시험에서는 평소에 쌓은 기초와 일상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
HSK시험을 포함한 모든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출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이다. 문제를 많이 풀다 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출제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 관련 시험일 경우에는 유용하고 관용되는 표현들을 알아두고 현지 사람들과 자주 대화하는 습관(정 대화할 상대가 없으면 혼잣말을 많이 하는 것도 언어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의 공통점이다)이 큰 도움이 된다.
중국어 공부에서 또 다른 이정표가 되어준 경험은 동시통역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는 ‘동북아우의연맹’이라는 비정부 단체의 학생회에 가입해 중국 관련 활동이 있을 때면 동시통역 자원 봉사를 했다. 이 단체는 매년 여름마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한국 학생과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대한민국 바로알기 프로젝트’와 ‘3H(History, Harmony, Hope)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학생회 임원진들은 활동 진행의 스탭역을 맡았는데, 나는 한·중 동시통역을 했다.
'대한민국 바로알기 체험 프로젝트'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선비 문화를 간직한 안동에서 개최됐다. 2박 3일 동안 한국의 선비 문화, 탈 문화, 한복과 의생활 예절, 관혼상제와 예법, 다도와 서당 교육 등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해 통역했다. 전문 용어도 많았지만, 한국과 중국 모두 유교라는 공통적인 문화적 뿌리가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1년 뒤 여름 방학에는 '3H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통해 좀 더 학술적인 동시통역에도 도전했다. '3H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바로알기 체험 프로젝트'의 심화 과정으로 3H-History(역사), Harmony(조화), Hope(희망)의 리더십을 갖춘 동아시아 미래 글로벌 리더들의 네트워크를 공고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활동은 한국의 문화를 보고, 듣고, 맛보는 등 몸으로 직접 체험한 데 비해, 이번 활동은 동아시아의 역사, 미래 공동체가 요구하는 리더십 등에 대해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위주였다. 따분하고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동시 통역자의 능력과 더불어 분위기 조율을 하는 센스도 필요했다. 지난 활동에서 얻은 동시통역 경험을 살려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가장 소중했던 경험은 단체의 방중(訪中) 민간외교단 동시통역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공식 외교협상 자리에 참석했던 것이다. 단체는 4박5일 동안 중국 호남성 가장 서쪽에 위치한 신황동족자치현(新晃侗族自治县)을 방문했다. 연맹의 '민간외교단'은 신황현 지방정부와 함께 현에 위치한 병원들을 둘러보고, 산간 지역을 방문하여 의료 봉사를 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노인 분들을 보면서 중국 빈곤 지역의 실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강의실에서 강조하던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피부로 와 닿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한국 비정부 단체와 중국 지방 정부가 MOU를 체결하는 자리에서 나는 동시통역에 대해 한층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원활한 의사 소통을 돕기 위해서는 정확한 표현 능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문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동시통역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이다.
중국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중국을 찾는 유학생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전문가가 되어 모국으로 돌아가 외교관이나 중국 관련 교수가 되려는 개발도상국의 학생도 있고, 정부 간의 외교 관계 개선을 위해 파견되는 개발 국가 고위 간부들의 자녀들도 있다. 중국의 비상을 주목하고 있는 미국 역시 각종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양국의 미래 설계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문화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유학 온 유럽, 미국 학생들도 많다. 그들은 중국 최고의 학부에서 공부한 경험으로 저명한 한학자(漢學者)가 되거나, 정치·행정·언론·경제·금융·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중국 전문가가 된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과 문화권의 친구들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베이징대생이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하나다. 프랑스인이었던 전 룸메이트를 통해 많은 유럽 친구들을 만나면서 현대 유럽인들의 의식, 문화 등을 알 수 있었던 동시에 동서양의 차이를 철학적으로 비교하는 시야도 생기게 되었다. 또 인도 친구들에게서는 학문에 대한 진지함을 배울 수 있었다. 세계적인 인재들 속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경쟁력 있게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단체에 대한 결속력과 개개인의 성실함과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맥락으로 중국이 부상하면서 베이징대생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혜택은 해외 유명 인사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티머시 가이트너 현 미국 재무부장관,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각국 고위 정치인들을 비롯해 유명 학자, 유명 인사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다. 가장 최근에는 중국에서 어학 연수 중이신 한비야 ‘누나’의 반가운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잔다. 그래서 아침 8시면 수업이 시작되고 학교 도서관은 밤 10시면 문을 닫는다. 비교적 자유로운 유학생 기숙사와는 달리 중국 학생 기숙사는 고등학교 때처럼 여전히 소등 시간이 있다. 이런 생활 습관의 영향 때문에 중국은 놀이 문화나 밤 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다. 대학 주변이나 술집이 모여 있는 지역이 아니면 모든 상가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중국 친구들은 소풍을 가는 형식으로 친목 모임을 갖지만, 한국 대학생들의 OT와 MT같은 문화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한국 대학과 커리큘럼 상의 차이가 있다면, 중국 대학은 아직도 ‘정치사상’ 공부를 필수 과목으로 한다. 모택동 사상, 등소평 이론, 마르크스주의 등 유학생들에게는 다소 낯선 과목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상자유, 겸융병보(思想自由, 兼容并包)’의 베이징대 교훈(校訓)처럼 중국 학생들에게 이는 학문의 대상이고, 유학생들에게는 현대 중국을 더 깊게 이해하게 하는 과목들이다. 단일화된 철학 교육에도 베이징대생들은 비판적 사고와 개성을 잃지 않는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국제정치학과는 한국 외무고시와 상관되는 내용이 많다. 국제정치학, 국제법, 세계외교사, 경제학, 영어, 중국어(제2외국어)등 외무고시가 다루는 주요 과목들 모두 학과에서 필수 과목으로 공부한다. 거기에 외국 정치 인사,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만나고, 해외 명문대에서 교환 학생으로 공부하고 MUN(모의유엔)과 같은 국제 기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 학생이라면 외교관이라는 직업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볼만하다.
나는 학과 공부에 매진하는 동시에 부족한 영어 공부와 한국사 공부를 하며 외무고시 1차 서류 전형을 준비하고 있다. 책 읽고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영화 동아리에 참가해 영화 만드는 꿈도 꾸고 있다. 내가 영화를 그 무엇보다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출판을 하면서 내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사랑은 나로 하여금 문화가 국가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끊임없이 사고하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베이징대에서 외교관의 기본 소양을 갖추고 문화 외교관이기 되기를 꿈꾼다. 다른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10여 년의 중국 생활을 토대로 중국 관련 전문가(외교분야)가 되는 것 역시 나의 목표이자 사명이다.
중국 중•고등학교 교육의 특징은 공교육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매우 긴 편이고, 학생들의 공부 일과가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완성하는 만큼 숙제 양이 많다. 아침 7시부터 자습을 시작하고 저녁 6시에 수업이 끝난다. 그리고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자습 시간을 갖는다. 기숙사에서는 10시 30분이면 전기 스위치를 내리기 때문에 충전 스탠드를 켜고 공부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 12시 이전에는 취침한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자기주도학습력이 뛰어나다. 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수업에 전념하고 각 과목 담당 선생님께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받아가며 자기만의 공부 진척도를 관리한다. 수업을 최대한 이해해 숙제를 완성하고 그 밖의 남은 시간을 조리 있게 활용할 줄 안다. 일찍 일어나고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틈틈이 운동도 한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의 생활패턴이 너무 비슷해서 얼핏 보기에는 그들이 열정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친구들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여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결국 자기주도학습법의 핵심은 공부에 대한 평상심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하나의 구체적인 공부 방법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나는 공부하면서 이미 습관으로 정착한 두 가지 학습법이 있다. 이 두 가지 학습법이 있었기에 과외와 학원의 도움 없이 베이징대와 칭화대에 동시 합격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가 ‘플래너 학습법’이다. 자신의 장기목표를 중요도 순으로 3가지를 적고 똑같은 방법으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중기목표(1~3년) 3가지와 중기목표 달성을 위한 단기목표(6개월)3가지를 적는다. 그리고 단기목표를 월 단위, 주 단위, 일 단위로 나누어서 관리한다. 이렇게 플래너로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자신의 목표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목표하는 것과 너무 멀리 있지 않은지 점검하게 되고 성찰하게 된다. 플래너는 한 순간의 설렘으로 끝날 수 있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방법은 선생님과 자주 대화하는 것이었다. 중, 고등학교 유학 시절 선생님은 나에게 스승님이시기 전에 부모님 같은 존재였다. 타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모든 걸 털어놓고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담임 선생님이었다. |
모든 학생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보다 객관적으로 내 실력과 목표를 평가하실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큰 그림을 그렸고, 내 모든 걸 털어놓고 상담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도 세심한 배려를 해주시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셨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각 과목 담당 선생님들을 자주 찾아가며 문제를 여쭤보고,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에 오류가 없는지, 다음 시험에는 얼마만큼 향상할 수 있을지 점검하곤 했다.
어린 시절 중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다시 중국에 왔을 때 내가 할 줄 아는 중국어라곤 “감사합니다(谢谢,씨에씨에)”와 “잘 모르겠습니다(听不懂,팅뿌동)”뿐이었다(분위기가 좋다 싶으면 “감사합니다”, 안 좋다 싶으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으로 공부계획을 세웠던 것이 중국어 실력향상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중국에 갔다. 중국도 미국처럼 가을에 새 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내 또래 중국친구들은 그 당시 1학년 2학기를 준비했다. ‘중국친구들과 1학년 2학기를 다시 다니며 중국어 공부에 몰입할까?’ 아니면 ‘대학교에 개설된 랭귀지코스를 한 학기 다녀볼까?’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지린대학(吉林大学) 랭귀지 코스를 밟기로 결정했다. 랭귀지 코스에서 기초부터 다시 다지고 대학생활도 미리 경험해보고 싶었다.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으로 공부계획 세우기’를 중국어 공부에 적용하면 언어공부는 끝이 없는 하나의 과정이 된다. 기초부터 쌓아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10여 년간 생활하고, HSK 11급을 따고, 베이징대에 들어와 더 전문화된 용어들을 배우고, 동시통역으로 공식 외교석상에도 참가해 보았지만 나에게 중국어는 여전히 어렵다. 한자는 중국인들조차 평생 배워도 못 배울 정도로 많고, 알고 있는 한자 속에도 경우에 따라서 해석되는 의미, 심볼, 우주들이 각각 다르다. 오천 년 역사의 용광로 속에서 담금질한 한자와 중국어의 깊이를 하루 아침에 습득하겠다는 만용을 부리기 보다 나는 중국친구들과 공부할 수 있는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