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번역은 일종의 공기와 같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하다못해 유튜브에 올라온 해외 동영상을 감상할 때가 그렇다. 우리의 의식은 무심코 번역된 자막과 글에 의존해 흘러가게 된다.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외로 빈번히, 우리는 번역물의 수혜자로 살아가는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 번역가는 또 다른 창작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을 모르는 이라도 번역가의 글을 통해 감동하고 눈물짓게 된다. 영어와 한글은 어순부터 시작해 표현의 방식까지도 전혀 다르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기에 번역가는 번역 전 언어의 문화 뿐 아니라 번역 된 언어의 문화까지도 모두 통찰하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끊임없는 공부는 필수다. 그럼에도 한 작품의 번역을 마치기까지 인고의 시간은 창작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국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동문인 최세희 씨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한 끝에 번역의 세계와 조우했고, 그 일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깨달은 삶의 지혜와 노하우를 들어봤다.
번역가로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개요와 느낌은 당연히 알아야했죠. 주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확인 했어요. 하지만 정작 번역에 들어가면 결국 작가의 고유한 문체, 작품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가 구사하고 있는 문체를 원문에 가깝게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에요. 특히 문학 작품의 번역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죠. 그래서 출간 된 지금도 혹 실수가 있을까 싶어 다시 보고 있는 중이에요(웃음). 번역 의뢰를 받으면 작품을 끝까지 읽는 건 기본이죠. 한국어판이 나오기까지 원전은 번역 작업을 하는 것까지 합쳐 적어도 4~5번은 읽어요.
현재도 다른 작품의 번역을 시작한 상태에요. 줄리언 반스라는 영국 작가의 에세이 작품인데, 이 작가의 작품만 세 번째로 번역하는 거예요. 해왔던 작가이기 때문에 문체는 익숙하지만 번역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 있어요.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저 마다의 고유함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매번 다른 사명이 생기더라고요(웃음). 그만큼 또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고요.
전 그렇진 못해요(웃음). 거의 종일 번역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스케줄 관리를 잘하는 번역가들 중에는 직장을 다니듯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일을 하고 자유 시간 보낸 다고도 하는데, 저는 그게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한번 작업이 밀리면 하루 종일 붙잡고 있어야하고 휴일이 따로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번역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쉬기도 해요. 제 경우가 꼭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라는 말이에요.
제가 중학교 때 적성검사에 번역가를 하겠다고 써놨더라고요. 그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래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정작 졸업할 때 즈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지금은 전업으로 삼게 됐어요. 처음 시작은 아르바이트로 잡지 번역을 했어요. 그러다가 대중음악에 대한 칼럼을 쓰기도 했죠. 작품 번역은 잡지 번역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편집자 덕분에 처음으로 대중음악에 관한 소설 작품을 번역하며 시작 했어요. 아무래도 대중음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번역을 하는 게 좋겠다는 편집자의 판단 때문이었죠. 벌써 10여 년 전 이야기에요. <커밍홈>이라는 에세이 작품, <예술가를 학대하라>라는 작품 등이 초기 번역작이에요. 물론 번역은 했지만 출간이 안 된 것들도 있고요.
하나의 문학 작품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라고 생각해요. 번역은 그런 것을 읽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한 문장 한 문장을 옮겨야하는 거죠. 그런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있어요. 외국어라는 것은 단순히 문법적 구조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세계도 달라요. 그것을 우리 세계에 맞게, 그러면서도 그 특성은 가급적 유지를 하면서 옮기는 것이 재미있죠. 한 권의 책을 끝내면 그만큼 배웠다는 생각도 들고요. 고충은 항상 일상적으로 느끼는 건데, 전반적인 개요를 파악했다고 해도 결국은 문장과의 싸움이에요. 때때로 벽에 부딪힐 때마다 고민이 생기죠. 아직 프로라는 생각보다는 계속 정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의 분량이나 난이도에 따라서 달라요. 어떻다고 산술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어요. 지금 하고 있는 책이 사실 그런 책이죠. 분량은 200페이지 밖에 안 되지만, 평이하게 쓰인 500페이지 작품보다 더 시간이 걸리거든요. 굳이 잘 번역되는 장르를 꼽자면, 만화책을 2권정도 했었는데, 이미지가 같이 가는 거라서 좀 빨랐어요. 오히려 에세이 같은 것이 더 시간이 걸리고요. 특히 묘사에 치중하는 작품이 그런데,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경우 묘사와 암시적인 문장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결론은 어떤 것도 쉽지 않다는 거예요. 하면 할수록 느끼죠.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어도 잘해야 한다는 말과 같아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번역하는 대상에 대한 책임이에요. 그 책임을 제대로 지려면 한국어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한 거죠. 최근 한 번역가 분이 “한국문학을 읽지 않는 번역가는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도 그 부분에 아주 공감해요.
번역이 잘 안 풀리거나 막히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때는 산책을 하는 편이에요. 아니면 잠시 다른 책, 작업하는 것과 전혀 무관한 책을 읽는 것이 방법이 되기도 하죠. 다른 주제의 책을 읽다가 다시 번역을 하면 거짓말처럼 풀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도 안 될 때는 표시해 놨다가 재교를 볼 때 다시 고치기도 하고요. 때론 멀리 사는 친구에게 물어 볼 때도 있어요(웃음). 스트레스가 심하면 친구를 만나 풀기도해요.
제가 경력 중 하나가 방속작가에요(웃음). 교육방송에서 <영미문학관>이라는 라디오프로그램 작가로 일했던 적이 있죠. 영미문학 고전 원문과 번역문을 같이 읽어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것을 하면서 원문도 읽고 검증된 번역가들이 번역한 고전을 같이 읽으니 굉장히 도움이 되더군요. 물론 지금은 종영됐어요. 하지만 최근 저와 방송 진행자 등이 합심해서 독립방송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죠. 최근에 앞서 말씀드린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출판사 지원을 받아 첫 녹음을 끝냈어요(웃음). 이걸 하게 된 계기가 아까 질문하신 ‘개인적인 노력’에 답이 될 거에요. 전 스스로 어떤 강제성이 있는 일종의 프로젝트를 만들어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여유 있을 때 책을 읽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계속 해서 책을 가까이 두고 일하되 번역가로서 열심히 공부하려는 결심인 셈이죠. 팟캐스트 방송도 <영미문학관>이라는 제목이에요. 영어 성우 한분과 뮤지션 한분도 동참해 주셨죠. 일종의 취미생활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 공부도 되니 즐겁게 하고 있어요.
음악은 원래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언젠가부터 동호회 활동을 했죠. 함께 웹진을 만들고 편집위원들과 어울리게 됐어요. 제가 평소에 대중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우연한 기회에 글도 쓰게 됐고요. 제가 창의적인 일은 잘 못하지만, 문학작품이나 음악이라는 축이 있으면 거기에 대한 주변적인 글을 쓰는 것은 곧잘 했거든요. 그러다 대중음악평론 집단에 들어가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다시 그게 인연이 돼 잡지 쪽 대중음악 칼럼을 쓰게 됐죠. 지금은 <루엘>이라는 잡지의 정기 칼럼을 쓰고 있고, 그 외에는 비정기적 칼럼을 기고하고 있어요.
번역하고 비슷해요. 제가 글을 쓰고자하는 대상이 있는 거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죠. 그 다음 그 대상의 어떤 점을 가지고 쓸 것인가를 정하고 그 안에서 자기 완결성이 있는, 설득력 있는 글을 쓰는 거예요.
남성지 <GQ>에 신중현 선생님의 엔솔로지 앨범에 대한 칼럼을 쓴 기억나네요. 제가 어린 시절 처음 접한 대중음악은 팝과 록이었어요. 그러면서 우리나라 음악 수준이 외국보다 떨어진다는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런데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을 들으면서 제가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굉장히 가슴 벅찼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분의 음악에 대해 제가 글을 쓴다는 것은 사회적인 책임을 느낄 정도였죠.
지금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문화가 시작하는 초창기에 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막 나오던 시기였으니까요. 지금은 사실 SNS 등이 있기 때문에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당시에 많았던 문화웹진 등이 유명무실해지고 잡지도 하락세니까요. 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요. 미국의 <롤링스톤>같은 역사적인 잡지도 무가지로 돌린다고 하더군요. 개성 있는 문체도 중요하지만 더 경쟁력 있는 글을 쓰려면 그 사람의 세계관이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할 거 같아요. 또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자기만의 매력, 상상력이 있어야 하죠.
일단 기획하는 것에 재미가 있어요. 번역을 하는 것 역시 즐거움이 있죠. 처음부터 제가 열심히, 다방면으로 활동을 해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일을 하면서 유의미한 인연이 생기면 재미있는 일을 도모했던 게 결과로 이어진 것뿐이죠. 팟캐스트 방송도 독립방송으로 우리끼리 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돼 처음에는 사비를 모아 레코딩을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출판사 편집자가 그 사실을 알고 출판사의 시설을 지원해줘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죠.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제가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가진 장점이기도 해요.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런 인연이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운이 좋게 이어지는 게 즐겁죠.
너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텐데요. 전 말씀드렸다시피 창의성은 없는 사람이이에요. 그러나 저 뿐 아니라 사람은 주변 세계 외에도 스스로를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힘으로 말이죠. 저는 대중음악이나 문학작품 등과의 교감, 그것들을 글로 쓰고,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제 가장 큰 목표였던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인가, 어떻게 될 수 있는가를 알아가는 것. 난잡하게 일을 벌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더 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사람은 자기가 누군지를 알아야 사는 방식도 정해진다고 생각해요.
수업은 제가 워낙 영문학을 하고 싶었기에 정말 재미있게 들었지만, 교우관계는 그리 원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학교 3학년 때 학과에서 선후배끼리 독서토론회를 조직했는데 그때 많이 바뀌었죠. 제 기억으로 시작은 교양영어 수업에서 영문으로 배웠던 까뮈의 에세이 <시지프스 신화>의 마지막 장이었어요. 그때 교수님이 까뮈의 세계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제게는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결국 그 책을 구해서 읽게 됐죠. 너무 어려웠지만, 와 닿는 부분이 적지 않았어요. 굉장히 좋았던 경험이었고 그 소감을 학회지에 쓰게 됐죠. 그런데 그 글을 보고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던 선배와 후배가 찾아와 같이 독서토론회를 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해보니 저는 완전 초짜였고 그 두 분은 굉장히 아는 것이 많아서 많이 배울 수 있었죠. 그게 다소 폐쇄적이었던 제 대학생활을 바꾸는 계기가 됐어요.
영문학을 공부하는 학과에 입학했다는 것이 좋았고, 열심히 공부했죠. EBS에서 <영미문학관> 방송작가로 일할 때 대학 시절 배웠던 작품을 다시 접하면서도 좋았고요. 그게 번역가로 일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됐어요. 이게 어쩌면 모두 하고 싶었던 일들, 그리고 이뤄진 일들이에요. 아쉬웠던 것은 사회과학 공부를 할 기회를 외면했다는 점이죠. 제 세대가 자발적으로 사회과학을 공부하던 마지막 세대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당시 운동권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사회과학 공부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너무 무지했던 거죠. 지금에 와서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 또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할 때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학부 수업 외에 사회과학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많이 아쉬워요.
저는 사실 20대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기회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멀리서 지켜볼 때 우리세대보다 운이 없다는 생각을 해요. 대학생활은 인생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일들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인데, 지금 대학생들은 뭔가 다른 논리가 끼어들며 쫓기듯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때 보다 빨리 진로를 결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면에서는 명쾌하죠. 하지만 한편으로 대학이 예비 사회생활처럼 돼버린 경향이 탓인 것도 같아요.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해 우리 세대는 시대적 수혜를 누렸죠. 그래서 제가 조언 할 입장이라기보다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저는 철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제 성향과 맞는지 여부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경제적인 여유를 얼마나 누릴 수 있는가는 제가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 일이 내 개인적 성향과 맞는지,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됐을 때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죠. 번역가의 일도 지금 아는 만큼 알았다면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지한 것도 어떤 것을 시작하는데 원동력이 되는 것 같네요(웃음).
하고자 하는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필수겠죠. 또 번역에도 여러 분야가 있으니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해요. 문학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한국문학, 한국어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돼요. 부단히 노력하면 틀림없이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번역가로서 중요한 또 다른 것은 성실함이에요.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요. 소설가들이 엉덩이로 글을 쓴다는 말을 하잖아요. 번역가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성실함과 책임감, 이 두 가지가 정말 중요하죠.
저는 대학 졸업 후 5년 정도를 ‘사회생활을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어요. 지금은 그 때 좀 더 빨리 다른 일들을 시작했으면 더 많은 경험을 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여러분들은 저와 달리 어떤 인연, 기회가 다가오든 위축되지 않았으면 해요. 시행착오의 쓴 맛을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피하지 말고 다가오는 대로 다 받아들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무언가를 도모한 인연을 통해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제 경험을 통해 말씀드릴 수 있는 교훈이에요. 시행착오가 꼭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에요. 삶은 어떤 인연이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는 모르는 것이에요. 시련이 와도 포기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인연을 맞이하세요.
최세희
-국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영화웹진 ’위클리인 조이씨네‘ 편집장
-문화웹진 ‘컬티즌’, 음악웹진 ‘웨이브’ 기자
-‘GQ’ 잡지 번역가
-'GO‘ 칼럼니스트
-‘루엘’ 칼럼니스트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깡패단의 방문>,
최근작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등 다수 영미문학작품을 우리말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