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추구하면 아이디어가 보인다. 건축가 문훈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건축으로 유쾌한 세상을 꿈꾸는 건축가 문훈. 세상은 그의 이름 앞에 ‘천재’, ‘이단아’, ‘괴짜’와 같은 수식어를 붙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추구하는 건축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정형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황소 뿔이 달린 펜션이나, 달팽이 모양의 핑크색 주택과 같은 것들이다. 언뜻 기괴하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로 전형적인 건축물에서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을 맛볼 수 있다. 과연 그런 기발한 상상의 근원은 무엇일까? 파격을 시도하면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는 건축가 문훈을 만났다.

Q 선생님께서 최근 진행하고 있는 일들과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먹는 거요(웃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해요. 양고기를 정말 좋아 하구요. 회도 좋아하고 초콜릿도 즐겨 먹죠. 요즘은 내 인생에서 뭘 좋아하는지 간단한 몇 가지를 고르고 있어요. 지금 얘기한 건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죠.
최근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투문정션’이에요. <투문정션>이라는 잘만킹 감독의 영화 알죠? 두 개의 달이 충돌하는 모양의 건축물이에요. 그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요.

Q ‘괴짜’, ‘이단아’라는 표현으로 ‘건축가 문훈’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혹은 ‘천재 건축가’라고도 하고요. 좋은 의미도 있지만 개중에는 비꼬는 표현도 적지 않은 듯한데, 그런 수식어들을 접할 때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 말들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멋대로 만들어 쓰는 거예요. 하지만 전 그냥 가만히 있어요. 왜냐면 나를 바보라 부르든 돼지라 부르든 뭐라고 할 말은 없으니까. 그런데 사실, 괴짜란 말도 너무 식상하지 않나요? 그저 ‘자기 개성을 많이 드러내는 사람’ 이렇게 표현하면 맞을 것 같아요. 누구나 다 개성이 있는데 그 개성을 잘 감추는 사람이 있고 그걸 잘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나 같은 경우는 잘 표현하는 편이죠. 그리고 표현하고 사는 게 편해요. 예를 들어서 일본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일본 성인 영상물 이야기를 그냥 물어보거든요. 그러면 일본 사람들은 매우 당황하죠(웃음). 보통 사람들은 처음 만나서 잘 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나는 해요. 그냥 재미있으니까. 그런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그런 얘기를 해도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거든요. 사실, 그런 얘기를 안 하는 사람들은 항상 뒤에 가서 은밀하게 물어보죠. 나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표현에 거리낌이 없다는 건데, 그렇다고 내가 남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건축가라고 한정 짓기보다는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편이 맞을 거 같아요.

Q 단순히 건축가라는 범주만으로 문훈이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듯 한데요. 정작 선생님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꼭 건축가로 불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건축 외에도 다른 일, 예컨대 그림을 그리기도하고 촬영도 하고 글도 쓰거든요. 건축가라고 한정 짓기보다는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편이 맞을 거 같아요. 다양한 분야의 경계, 접점에 있다는 거예요. 그걸 즐기죠. 건축가라는 틀에 딱 갇히면 경직되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서, 영국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 보고 <007> 시리즈만 출연 하라고 하면 재미없잖아요. 나란 사람이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건 아니란 말이죠. 그 이전에 ‘문훈’이라는 사람이고 그게 더 내 본질에 가까운 거죠. 건축가는 그 중에 일부일 뿐이에요. 건축가라는 틀 안에 함몰되고 싶진 않아요.

Q 영화 속 분위기가 감도는 강원도 영월 탄광촌이라는 공간에서 어린 소년 문훈의 생각을 자극했던 것들은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계곡 속에 살았던 느낌이 아직 남아 있어요. 그곳은 해가 일찍 떠서 늦게 져요. 정말 좁은 동네죠. 또 굉장히 입체적이에요. 평지가 아니고 계곡에 사는 느낌을 입체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의 내가 거꾸로 얘기하는 걸 수 있어요. 어렸을 때 그렇게 인식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죠. 기계와 공장, 꼴뚜바위라는 돌산의 풍경, 그런 것들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해요.

Q 아버님께서 지질학자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지질학과 건축이라는 분야가 꽤 유의미해 보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도 있으신가요?

지질학이란 땅에 대한 얘기잖아요. 지구의 구조, 단면을 연구하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건축과 비슷하죠. 무언가를 잘라서 파악하는 분야니까요. 아버지는 당시 보통 아버지들과 다르게 권위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아무 영향을 안 미치셨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바로 그게 좋은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 같은 경우는 약간 개인주의적이셨어요. 아들의 삶에 크게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편이었죠. 잘되면 좋고 아니면 말아라는 식이셨어요(웃음).

건축가 문훈 사진

Q 중학교 시절 약 3년 간 아버지를 따라 호주 태즈매이나 섬, 호바트라는 곳에서 살았다고 들었는데요.

아버지가 박사과정을 늦게 시작하셨어요. 당시에 영국으로부터 콜롬보 플랜이라는 장학금을 받게 되셔서 가족 모두를 데리고 호주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수 있었어요. 장학금을 가족까지 생활이 될 정도로 받았으니까 우리가 갈 수 있게 된 거죠. 아버지 입장에서는 홀로 떠나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셨으니까요.

Q 청소년기에 다른 세상을 경험한 다는 것은 어찌 보면 꽤 운이 좋은 케이스였던 것 같네요. 선생님께서는 당시 호주를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한국에서 중2, 중3, 고1 과정을 하나도 안 겪었으니 그게 좋은 거죠(웃음). 풍경은 두말할 것 없이 너무 좋았고요. ‘도대체 여기가 어디기에 이렇게 다른가’ 싶었어요. 한국에서 중학교 1년을 경험한 터라 더 그랬을 지도 모르죠. 낮은 책상, 땀 냄새 나는 교실, 어두침침한 공간…. 그런 곳에 있다가 해변이 보이는 학교에서 금발의 여자 아이들을 보니 그럴 만 했죠. 그런 삶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건축가 문훈 사진

Q 그 시절의 경험들, 기억들이 이후의 삶과 선생님이 지금 하시는 일에 영향을 줬나요?

당연히 영향을 줬죠. 정확히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 영향을 받았어요. 이를테면 ‘아 세상은 꼭 한국 방식으로만 살지 않아도 되는 거야’ 랄까요? 대안이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걸 안 뒤로 한국에 와서도 나만의 삶을 추구할 수 있었고, 한국적인 사고방식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앞서 이야기한 ‘경계인’이라는 의미와도 다르지 않아요. 건축가로만 살면 그 안에서 함몰 되잖아요. 그런데 그 경계 밖에 나와 있으면 건축은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되거든요. 지금도 그 안만 집착하는 사람은 그게 전부인 줄 알죠. 너무 ‘over serious’ 한 거죠. 경계에서 나와 보면 세상에는 건축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리하자면, 청소년기의 색다른 경험이 세상을 좀 더 여유롭게,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시각을 준 셈이죠.

Q 그 말씀은 지금 20대 학생들이 미래를 찾아가는데도 적용될 수 있을 듯 한데요?

각자가 원하는 삶, 개성이 발견되면 그게 뭐든 간에 그쪽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게 정답이에요. 제 딸에게도 '공부가 싫다면 하지 않아도 좋은데 다만 네가 좋아하는 걸 찾도록 해봐’라고 얘기해요.

Q 성장기를 돌아 봤을 때,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 이를테면 실패나 좌절의 기억들도 있을 듯 한데요?

고1 막바지 즈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죠. 온지 한 달 남짓해서 기말고사를 보는데 시험공부를 안했으니까 아는 게 없었어요. 한 56등인가 했을 거예요.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모르는데 어떻게 잘해’ 이런 생각이었죠. 그 후로 한동안 쭉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잠을 많이 잤어요. 소극적인 회피였죠(웃음). 대학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고요. 그렇지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건물,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어요. 미대는 가기 싫고 그림을 이용할 수 있을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건축과를 가게 됐어요.

각자가 원하는 삶, 개성이 발견되면 그게 뭐든 간에 그쪽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게 정답이에요

Q 천편일률적인 고교의 수업과 평가방식보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학시절,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어떤 것들에 관심을 두셨나요?

대학가서는 삶이 확 바뀌었죠. 정말 설계를 열심히 했어요. 재밌는 일이니까 행복했죠. 그 다음은 여자 친구와 연애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고요. 나는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혼자 설계를 했어요. 우리 때는 1학년 때 설계 수업이 없었는데, 매일 연습장에 그려가며 혼자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정규 수업보다는 그렇게 혼자 하는 설계가 더 재미있었어요.

Q 대학원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또 다른 경험이었을 듯 한데요?

다르죠. 우리나라 사람은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이 좋다는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체적이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삶을 살아온 경우가 많아 훨씬 열심히 하더군요. 건축대학원에 온 학생들도 꼭 오고자 하는 마음에서 온 거지 사회적 전망이 좋다거나, 누가 권해서 온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아무런 사전 배경이 없어도 한 학기만에 우리나라 4학년보다 더 잘하죠.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90%가 떠밀려 온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이거 하면 좋다고 하니까 하는 경우죠. 그러다보니 주체성이 부족하고 어떤 면에서는 나약해요.

Q 선생님께서는 본인의 주체성을 언제 깨달으셨나요?

대학교 1학년 때죠. 설계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느꼈을 때 비로소 나를 발견한 것 같아요. 설계가 너무 좋고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뭔가를 만들어내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굉장히 즐겁더군요. 시키지 않아도 밤을 새며 작업을 하니 부모님이 놀라실 정도였죠. 물론 외국 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그곳에도 부모의 간섭을 받는 학생들이 있죠.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한 개인으로서 존중을 받고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지원 받아요. 그래서 훨씬 빨리 자신이 원하는 걸 찾을 수 있고요. 우리는 대부분 삶에 계속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평생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한 번도 고민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죠. 그나마 요즘 20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부모가 이렇게 살아라 하면 그대로 따르지 않죠. 난 만약 부모가 간섭한다고 해도 20대 학생들이 ‘내 주체가 있는데 무슨 소리에요’라고 하길 바라요.

문훈 건축가의 작품 '롤리팝의 내외부 전경' (경기 용인시)

Q 건축물을 처음 구상할 때 어떤 식으로 영감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영감은 어디서든 받아요. 오리고기를 먹다가 고기와 뼈 사이의 간격에서 발견하기도 해요. 건축에서 이런 건 하지 말라는 게 없어요. 예를 들어 건축하고 사탕하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붙여 놓아보니 어쨌든 새로운 영역이 되기도 하더군요. 그게 경기도 용인에 지은 ‘롤리팝’이라는 주택이에요. 건축주가 당황하더군요. 처음에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해서, ‘한 번 핥아 보세요’라고 해줬죠 .

Q 건축물을 설계할 때 땅에서는 주로 어떤 것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시나요?

땅의 형태도 보지만 대개 주변을 먼저 봐요. 주변을 내 에너지로 이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기존의 집들에 창이 굉장히 많이 나있다면, 그게 나한테 모티브가 되는 거예요. 그 창하고 어긋나게 창을 내는 게 주제가 될 수도 있거든요. 혹은 창을 다 연결해 관통 시키는 게 주제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Q 건축에서 색을 많이 이용하시잖아요. 색을 공간에 입힘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와 색을 입힐 때 주의해야 될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색은 느낌을 전달하잖아요. 예를 들면 무채색은 차분한 느낌을 주는 식이죠. 사람이 옷을 입을 때 머플러 하나씩 걸치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요. 머플러는 포인트죠. 아주 간단해요. 색깔을 만들어서 뭔가 강조하거나 조화롭게 포인트를 주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도시는 회색빛이 너무 많고 지루하잖아요. 거기에 색을 입히면 강한 뉘앙스가 있겠죠? 주변과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어요. 내 경우는 그냥 빨간색을 칠하면 어울리던데(웃음). 종일 ‘이 색을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과연 이 색을 쓰면 주변의 사람들한테 괜찮을까?’ 이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파란색이 좋은데 건축주가 좋다면 끝이죠.

Q 건축가가 사는 집은 어떨까 궁금한데요. 아파트라고 알고 있는데, 그래도 내부 인테리어는 좀 독특할 듯 합니다.

독특했는데, 아이가 생긴 다음부터 바뀌었어요. 왜냐하면 날카로운 게 많으니까요. 건축 모형도 있고 했는데 다 치워버렸어요. 그 후부터 집이 굉장히 단순해졌어요. 가구도 거의 없고, 평범해요. 내가 사는 집은 무채색으로 보면 되요. 대신 사무실에 오면 화려하잖아요(웃음). 집까지 그렇게 될 필요 없는 거죠.

문훈 건축가의 작품 '상상 사진관' (서울 마포)

Q 국민대학교 튜터 시절에 손 판넬(손으로 그리는 설계 스케치)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사람은 도구의 영향을 받잖아요? 파워포인트를 쓰면 파워포인트라는 메커니즘에 자기도 모르게 흡수당하는 게 있고, 캐드를 쓰면 캐드에 흡수당하고 포토샵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다 비슷해지는 거죠. 그런데 손으로 하면 훨씬 더 개성적일 수 있는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그리다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런 게 중요 한 거죠.

Q 튜터로써 어떤 프로그램을 하셨던 건가요?

건축학과 교수님께서 ‘마음대로 해보라고’ 해서 하게 됐어요. 그래서 좋았고요. ‘싸이키델릭 스페이스’를 주제로 삼아서 스튜디오를 운영 했죠. 학생들에게 꽤 생소했을 거예요. 스튜디오는 건축학과에서 제일 중요한 ‘실시 수업’, 그러니까 실기 수업 같은 거라고 보면 되요. 학생들과 교육이 아닌 실무를 함께하는 거죠.
*싸이키델릭 스페이스_ ‘싸이키델릭 록’에서 유래된 말, 록 음악의 한 장르로 ‘싸이키델릭 록 (Psychedelic rock)’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싸이키델릭 스페이스 역시 건축의 정형성을 벗어난 몽환적이고 판타지가 섞인 공간 연출을 의미한다.

Q 평소에도 즐거운 상상을 하는 편인가요? 번뜩이는 생각들을 관리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번뜩이는 생각을 얻으려면 평소에 많이 놀아야 해요. 그렇게 에너지를 아끼고 있다가 필요할 때 쓰는 거죠. 사바나 초원에 가면 대부분 동물들이 누워 있잖아요. 사냥할 때를 기다리는 거죠. 진짜로 자기 에너지가 충전돼 있어야 해요. 단, 이게 무슨 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나한테는 그게 맞는다는 정도에요. 아이디어 노트는 있는데 요즘은 좀 게을러서 잘 안 써요(웃음).

번뜩이는 생각을 얻으려면 평소에 많이 놀아야 해요 그렇게 에너지를 아끼고 있다가 필요할때 쓰는거죠

Q 선생님께서는 상상을 그림을 그리면서 구체화시킨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작품으로 만드시기도 하시나요?

오래전부터 스케치북 작업을 해왔어요. 그 책이 5월에 나와요. 또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참여할 예정이고요. 제 그림이 약 40점정도 전시될 거예요. 제 아이디어 노트도 전시될 거고요.

Q 상상을 통해서 실현된 건축물 중에 스스로 생각하셨을 때 가장 절묘했던 것은 무엇인지요?

건축물은 건축을 의뢰한 사람하고 타협을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어요. 그래도 70~ 80% 이상으로 제 생각과 가까워지는 건물들이라면 ‘락있수다’라든지 ‘에스마할’ 같은 것을 꼽을 수 있겠죠. 설계의 뛰어남을 떠나 처음 의도랑 많이 비슷한 건축물이 탄생하는 것은 건축가로서 정말 흡족해요. 최근 지어지는 것들은 제가 추구하는 건축물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산이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요.

문훈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 '락있수다' (강원도 정선)

Q 건축가에게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째, 너무 똑똑하지 않을 것. 너무 똑똑하면 건축을 못할 거 같아요. 나쁜 의미는 아니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은 건축하기 어렵다는 말이에요. 긴 안목을 갖고 끈질기게 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죠. 뚝심 같은 거라고 해도 좋고요. 학생 때는 설계를 정말 못했는데, 나이 들어서 정말 잘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걸 보면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길게 보고 가져가면 되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도 똑똑하고 설계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그만 뒀거든요. 너무 앞서가거나 미리 예상하는 사람들은 건축이 어려워요. 예민하면서도 무던한 구석이 있어야 해요.

Q 공간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건축적 요소는 무엇일까요?

일단 건축의뢰인이 생각하는 필요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해요. 건축주가 아무리 유치하더라도 그 사람의 요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건축주가 ‘저는 아치가 좋아요’라고 하면 ‘여기에 무슨 아치가 어울려’라고 하지 말고 아치가 새로운 무엇이 될 수 있는 데까지 생각해보라는 거죠. 물론 건축가가 생각하는 공간에 대한 생각들이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서 깊이라든가, 역동성, 차분함, 비례 같은 것들이죠. 그런 것들까지 고려해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 거죠.

긴 안목을 갖고 끈질기게 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죠. 뚝심 같은 거라고 해도 좋고요.

Q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다양한 이해관계를 극복해야 할 텐데,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편이신가요?

예전에는 공공기관 건축을 할 때 공무원이 재료를 가지고 문제 삼았는데, 그때 울컥했죠. ‘니가 뭔데’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는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요즘은 별로 그런 적은 없어요. 이제는 균형자로서 되도록 균형 잡힌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제를 하죠. 아니면 잊어버리거나. ‘그런 사람도 있겠지’ 뭐 이렇게(웃음).

Q 20대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은 막연한 경우가 있는데요. 선생님의 20대 시절 불안감은 없었나요?

요즘 학생들은 내가 볼 때 100세까지는 다 살아요. 그러니까 20대면 굉장히 어린 거죠. 아직 철부지인 셈이에요. 한 40대는 돼야 사춘기가 올 거고, 60세 쯤 돼야 중년일거에요. 내 경우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어요(웃음). 불안함 같은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없었던 거예요. 설계를 좋아하긴 했지만 20대에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저 즐겁게 살려고만 했죠.

Q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선생님만의 기준이 있었나요?

굉장히 즉흥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진 않았죠. 하지만 인생은 원래 합리적이지 않아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태어나지 못하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컨트롤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시작부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삶은 물 위에서 떠다니면서 근처에 있는 것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아요. 배를 탄 사람은 멀리 갈 테고 튜브를 만나면 근방에서 왔다 갔다 하겠죠. 아니면 줄을 던져 보트에 연결해 매달려 갈 수도 있고, 삶이 그런 거예요.

Q 한 방송에서 ‘오늘 할 일을 최대한 내일로 미루고 놀아라’라고 조언하신 것이 화제가 됐는데, 요즘 20대의 상황은 맘 편이 놀 수만은 없을 듯 한데요?

그 말은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모레까지 해도 되는데 오늘 미리 하지 말고 그냥 끝까지 미뤄라’. 나는 대부분 그래요. 어쩔 수 없을 때까지 미뤄요. 그러면 굉장히 빨리 할 수 있거든요. 생각해보면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내 얘기가 아니고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얘기가 달라지죠. 하고 싶은 건 미리 다 해버려요. 내 경우는 건축의뢰인하고 미팅이 있다면 약속날짜보다 보통은 이틀 전에 다 끝내놔요. 먹는 것도 좋아하는 거를 나중에 먹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거를 먼저 먹는 사람이 있잖아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시대는 경계를 한정짓지 않는 게 맞는거 같아요

Q 좀 다르게 얘기하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죠. 하지만 대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되요. 안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손해도 보기 싫다면 도둑이죠. 내가 노력을 안 해서 못 얻었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런데 노력하지 않으면서 얻으려면 거기서 문제가 생기죠.

Q 건축을 하는 학생한테 다른 건축가가 아닌 문훈 건축가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각자의 방식대로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고 살라는 거죠. 또 건축이라는 틀을 너무 크게 잡지 않으면서도 거기서 더 넓게 건축을 바라보라고 하고 싶어요. 건축 안에 너무 들어가 있지 말고 밖에서 줌인, 줌 아웃을 하라는 거예요. 앞으로의 시대는 경계를 한정짓지 않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건축이라는 것이 결국은 인간을 위한 것, 행복하게 살기 위한 거잖아요. 우리 선배들은 건축을 위해서 사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만약에 그런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건 발설할 필요가 없어요. 예컨대 부모의 사랑 같은 거죠. 내적인 사랑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건축을 가볍게 보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심각하고 중요한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태도는 굉장히 편안해야 된다는 거예요.

[문 훈]
현) 건축가, 작가, 사진가

대표작
에스마할(S-Mahal), 현대고등학교, 묵동다세대주택, 전주동물원, 서울 홍대앞 상상사진관, 락있수다, 롤리팝 등 다수

수상 2005 한국건축가협회상

인터뷰을 함께한 국민대학교 학생들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이 코너의 다른 기사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