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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기회, 최고의 스펙은 경험 종이접기 외길인생 30년 김영만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어린이미술공간 ‘아트오뜨’를 운영하는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은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MBC TV <마이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출연 이후 일명 ‘종이접기 아저씨’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매주 빡빡하게 짜인 인터뷰와 강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섭외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그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단다. 그동안 자신을 잊은 줄만 알았던 ‘종이접기 세대’들이 생생하게 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몸에 밴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와 웃음으로 어느덧 사회인이 된 ‘코딱지(김영만 원장이 아이들을 부르는 애칭)’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현실의 그늘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펼쳐보게 한 김영만 원장. 그는 지금 ‘2030’세대에게 필요한 건 칭찬과 다독임이라고 강조했다.

PART1. 아련한 추억의 표상이 된 ‘종이접기 아저씨’

Q 얼마 전 화제가 된 <마이리틀 텔레비전>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원래 방송 일을 오래 전부터 했어요. 그래서 보통 교양국에서 전화가 오죠.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예능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처음에는 종이접기 소품이 필요한 줄 알았어요. 예능국 작가에게 ‘전화 상으로는 곤란하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죠. 종이문화재단에 갈 일이 있어서 방송국에 들러 PD와 인사를 나누게 됐어요. <마리텔>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방송 포맷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죠. 그 자리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인터넷으로 그 프로그램을 검색 해봤더니 녹화 시간 내내 채팅창으로 소통하는 묘미가 있더라고요. 더군다나 시청 주연령층이 제가 출연한 종이접기 방송을 보고 자란 ‘2030’ 세대라는 것이죠. 나를 보고 자란 세대와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송 출연을 결정했어요.

Q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1인 미디어’ 형태의 신개념 예능 프로그램에 적응하시기가 힘드셨을 것 같아요. 오랜 만의 방송 출연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방송을 오래 했다고 하면 제 자랑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방송에 대한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고 있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녹화에 대한 걱정은 크게 안했지요. 다만 기존에는 대본대로 녹화를 하면 됐는데, 이 방송은 앞에 놓인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메시지들을 일일이 보면서 대답하는 방송 포맷이 단번에 적응이 되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채팅창에 올라온 글에 화답하고, 제 나름대로 친구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아우토반이 떠오를 만큼 빠른 속도로 글이 올라가면 제가 읽어야 할 메시지를 확인하기 힘들어요. 글이 올라가다 멈칫하는 순간에 집중력을 발휘했죠. 나를 보고 소통을 잘한다고 하던데, 눈치껏 글을 확인한 것뿐이에요. 저는 그 채팅 공간을 우주로 표현하고 싶어요. 그 시절 종이접기를 통해 추억을 함께 했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우주. 녹화 시간 동안 그 우주 속에서 소통하며 눈물을 흘렸던 시간이었어요.

저는 그 채팅 공간을 우주로 표현하고 싶어요. 그 시절 종이접기를 통해 추억을 함께 했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우주.

Q 실시간 채팅으로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는 분들과 소통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으셨나요?

전부 기억에 남아요. 지금도 그들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맴돌 정도예요. 그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뭉클해요. 대부분 젊은 친구들이었는데 채팅하는 글 속에 힘들어하는 게 그대로 느껴졌어요. 환갑을 넘긴 ‘종이접기 아저씨’가 나와서 예전 그대로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데 채팅창을 보니 ‘ㅠㅠ’, ‘울컥’이라는 단어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만 울어요’라고 했더니, ‘고마워요’, ‘사랑합니다’라는 말들이 올라왔죠. 그 감동은 실제로 겪어 보지 않은 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심지어 녹화 현장에 같이 있었던 스탭들도 눈시울을 붉혔으니까요.

Q 오랜 만의 방송이었기 때문에 ‘반가움’이나 ‘놀라움’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셨을 것 같은데, 원장님의 방송을 보면서 괜스레 눈물이 났다는 사람들의 반응도 많았습니다. 왜 그런 반응이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안 그래도 방송 후에 그런 반응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현재 20~30대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등학교나 유치원을 다닐 때 브라운관을 통해 저를 봤을 거예요. 텔레비전을 통해 저와 그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가 이뤄진 거죠. 그리고 부모님이 챙겨서 다 해주셨던 그 시절이 그리웠을 거예요. 2030 세대가 나를 보며 옛날 자신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눈물을 흘렸지 않았을까, 추측해보는 거죠.

Q 녹화를 마친 후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많은 2030세대들이 저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제 방송에 들어오면 나가는 사람도 없었죠. 더군다나 채팅창에 악의가 담긴 메시지 없이 전부 선한 말들이 오고갔어요. 그들과 단 하루 만에, 짧지만 깊은 교감을 나눴다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너무 착하고 예쁘게 자라준 우리 친구들에게 고마울 뿐이죠.

Q 최근에는 강연 활동도 많이 하시는데, 청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크게 두 가지 강의를 했어요.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종이접기 강의와 부모님들만 모아놓고 하는 부모 강의죠. 요즘에는 청장년을 위한 소통과 공감 강의도 해요. 특히 청장년들에게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무조건 밀고 나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해요. 저처럼 종이접기로 한 우물을 파서 사람들 앞에서 서는 사람이 되지 않았느냐. 성공 여부를 떠나 ‘힘들지만 청춘을 무기로 밀고 나가라’는 말을 자주 하죠.

Q 종이접기가 가진 장점이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종이접기는 문화예요. 문화는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하죠. 경제가 무너지면 문화는 무너집니다. 실제로 IMF 때 난리가 났었죠. 문화 강좌들이 절반 이상 폐강 됐으니까요. 종이접기는 오감을 자극하는 활동이에요. 색종이를 접으며 느끼는 촉감, 색종이를 접는 소리, 색종이의 냄새, 시각을 자극하는 색감. 이런 것들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거죠. 특히 오감 자극은 아이들의 인성 발달에 좋아요. 종이 접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집중력과 끈기 등을 배우게 됩니다.

PART2. 시골 전원마을에 어린이체험미술관을 세우다

Q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으셨습니까? 어떻게 종이접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서울예고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다가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큰 기업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5~6년 정도 근무하다 사업에 도전하려고 사표를 냈죠. 하지만 그게 잘 안되어서 친구가 머물고 있는 일본으로 가게 됐어요. 한 달 정도 친구 집에 머물면서 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게 됐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종이접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당시 우리나라 유치원에서는 종이접기와 같은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없었죠. 문득 이것을 국내 유치원에 보급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일을 하기 시작했죠. 솔직히 1년 정도만 해보다가 안 되면 전업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6개월 정도 지나자 제 소문을 듣고 KBS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출연 제의가 온 거예요. 당시 나이가 39살이었던 터라 처음에는 거절을 했는데, 제작진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결국 출연을 결정하게 됐어요. 그 방송과의 인연이 10년 간 이어졌고, 다른 방송과 케이블 등을 오가며 20년 넘게 ‘종이접기 아저씨’로 살게 된 거죠.

Q <딩동댕 유치원>에서 원장님의 활약 덕분에 색종이 접기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그 당시 종이접기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저는 종이접기 전문가일 뿐이었어요. 외부에서 협회를 구성해 종이접기 문화를 실질적으로 알려나간 건 협회 관계자들이에요. 당시 종이접기협회뿐 아니라 공예협회나 한지협회 등 종이와 관련된 협회가 만들어졌죠. 제가 방송에 나와서 종이접기를 알려 붐을 일으켰다면, 종이접기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사람들은 협회나 교육원 관계자들이죠.

꿈을 묻는 질문에 어린이미술관을 짓고 싶다고 답한 적이 있어요.

Q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 출연하지 않으셨던 점입니다. 그게 언제였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공영방송으로 따지면 10년을 쉬었어요. 그런데 교육방송은 주야장천 출연했죠. 어른들 생각에는 어느 날 갑자기 관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방송을 계속 했었어요. 더군다나 2030세대들은 지상파 방송에서 저를 못 본 기간 동안 갑자기 훅 커버린 거예요. 그 때 아마 저를 잠시 잊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Q 현재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을 맡고 계신데, 종이문화재단은 언제 설립이 됐으며 재단에서는 어떤 업무를 소화하고 계신가요?

비영리단체예요. 저희는 전문 강사들을 키우고 종이접기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을 해요. 그리고 국내 도서 지역이나 해외에 종이접기를 보급하고 있어요. 특히 해외에 나갈 때는 재능 기부 방식으로 자비를 들여요. 그 동안 몽골, 필리핀을 다녀왔고 올 11월말에는 일본 한인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러 떠날 계획이에요.

Q 많은 분들이 원장님께서 운영하고 계신 아트오뜨 미술관에 대해 궁금해하시는데, 이곳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방송 10년차 정도 됐을 때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꿈을 묻는 질문에 어린이미술관을 짓고 싶다고 답한 적이 있어요. 그 꿈을 이루려고 그동안 모은 돈을 살펴보니 시골에 땅을 사서 작은 어린이미술관을 열 정도는 되더라고요. 친구에게 건축을 부탁했고 실내 디자인은 전부 제 손으로 했어요. 현재 어린이미술관을 관리할 여력이 안되어서 단체 손님만 받고 있는데요. 이곳에는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 등을 할 수 있는 5개 체험방이 있죠. 그래서 저는 미술관이라기보다 아이들의 미술 놀이터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연고도 없는데 이 먼곳까지 온 이유요? 지방에 사는 어린이들에게도 이런 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PART3. 청춘들에겐 칭찬과 다독임이 절실

Q 원장님의 대학교 시절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셨나요?

취직이었어요. 1학년부터 군대 제대 후 졸업할 때까지 어떤 직장에 가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잘 이루고 잘 살 것인지 고민했죠. 그건 지금과 같이 모든 청춘들의 고민이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 때는 어렵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빨리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니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죠.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일단 부딪쳐보라는 거예요. 진정한 스펙은 경험이거든요. 과감히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고 나가서 맑은 해를 봐야 해요.

Q 요즘 활동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60살이 넘어서 청춘들과 소통을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딨겠어요? 요즘 보면 영화 <인턴>의 영향도 있겠지만, 청년들을 보듬어주는 어른이 별로 없다는 말이 나와요. 그런데 그런 몇 사람에 제가 포함된다는 말을 들었죠. 청춘들에게 칭찬을 해주고 잘했다 다독여주는 어른이 없는데, 단 한 사람이 나라고 해줄 때. 그것만큼 뿌듯한 순간이 어디 있겠어요.

Q 요즘 청춘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인생 설계, 인생의 목표, 꿈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기회를 잡으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기회는 모르는 사이에 지나갈 수 있어요. 기회는 사람마다 다르죠. 분명한 것은 도전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다는 것이에요. 포기한다는 건 벽을 피해간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살아있는 젊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회는 사람마다 다르죠. 분명한 것은 도전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다는 것이에요

Q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올해 어떤 계획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물론 종이접기를 계속 알려야죠. 11월말에 종이문화재단 원장 20여명과 함께 일본에 가서 종이접기를 알릴 계획이고요. 도서 지방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갈 겁니다. 올해는 나와 함께 해준 청장년들을 위해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

Q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시고, 대중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저는 이제 큰 욕심이 없어요. 미술관에 오는 아이들과 함께 장난치고 신나게 놀면서 살고 싶어요. 그건 제 힘이 닿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요즘 일부러 광고에 출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청춘들에게 자그마한 희망을 줬는데 돈을 벌기 위해 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것 같아서죠. 청춘들이 생각했던 제 이미지를 죽을 때까지 끌고 갈 수 있다면 여한이 없습니다.



김영만
소속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원장)

경력
조형아카데미 회장
2009.9 아트오뜨 설립
한국종이접기 영재교육협회 회장
수원여자대학교 아동미술학과 겸임교수
마산대학교 초빙교수

방송활동
KBS <TV유치원 하나둘셋>
EBS <딩동댕 유치원>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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