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함과 콤플렉스로 나의 것을 만들어라! 작곡가 김형석

마음을 움직여라! 이는 시대, 매체, 종목을 불문하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 중에도 음악은 더욱 그렇다. 김형석 작곡가의 말을 빌리자면 “음악은 우리가 매일같이 먹고 자고 일하는 일상과도 같은 예술”이기에 익숙하면서도 어렵다.

김형석은 1996년 가수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로 데뷔해 ‘이 밤의 끝을 잡고’, ‘너의 뒤에서’, ‘첫인상’, ‘편지할게요’, ‘처음처럼’ 등 아름답고 감미로운 곡들로 명가수들을 탄생시켰다. 그는 데뷔와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고, 지금은 7080세대의 아날로그 감성과 1020세대의 디지털 감각을 넘나드는 세기의 작곡가로 주목 받고 있다. 무엇에도 벽을 두지 말고 뭐든 배우고 경험하라는 김형석 작곡가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본다.

Q 현재 작곡 활동과 더불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최근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얼마 전 썸머 뮤직플레이라는 음악캠프를 마쳤어요. 어린이들과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했는데, 저는 실용음악을 맡았고, 뮤지컬 음악은 박칼린 선생님이, 댄스는 SM엔터테인먼트 배은주 선생님이 맡으셨어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키위뮤직엔터테인먼트는 이마트하고 협업을 해요. 매장음악을 통해서 좋은 아티스트들의 음악도 틀어주고, 홍보와 신인발굴도 하고 있어요. 곧 있으면 이마트 홈페이지에 뮤직페이지도 생기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금이 각 아티스트들에게 전달돼요. 그간 획일화된 아이돌시장에 좀더 다양한 음악 콘텐츠들을 보여주는 ‘세컨드 미디어 프로젝트’입니다.

Q ‘썸머 뮤직플레이 캠프’에서 강의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학생들에게 어떤 강의를 해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드라마 음악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이야기했어요. 자신이 보는 관점을 어떻게 소리로 변형시키는지, 영화에 따라 리듬이나 악기 구성은 어떻게 달리 하는지, 영상 스케일은 어떻게 구현되는지 전반적인 작곡 방법과 저만의 노하우를 들려줬죠. 어린 학생들이라 영상도 틀어주고, 지루하지 않게 진행했습니다.

Q 2008년 케이노트뮤직아카데미, 2010년 키위뮤직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셨는데,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책임감이죠. 직원이 20명이라도 그 직원들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들까지 생각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케어하는 거잖아요. 혼자서 작업할 때는 밤이고 낮이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했지만, 지금은 다르죠. 공동체의식이랄까 그런 걸 배워가는 것 같아요.

두 회사를 운영하면서 책임감과  공동체의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Q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1,000곡 이상 등록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곡이 있다면?

사실 가장 아끼는 곡은 아직 등록되어 있지 않은, 지금 만들고 있는 곡들이죠. 등록된 곡들 중에는 초창기 곡들을 좋아해요. 작업을 하다 보면 제 안에서 뽑아내는 것보다 대상을 보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초창기 곡들은 특별한 대상 없이 내 안에서 내가 겪은 것들로 곡을 썼으니까 애착이 더 가죠. 딱 한 곡만 꼽으라면 김광석 형님이 부른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제일 좋아해요.

Q 작곡은 어떤 방식으로 창작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작곡과 작사 중 무엇이 먼저 이루어지나요?

어릴 때는 느낌대로 표현을 했어요. 구조나 형식 같은 게 없어서 어찌 보면 더 자연스러웠죠. 표현의 방법이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날것의 느낌이랄까, 진정성이 담겨 있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저만의 패턴이 생기는 느낌이에요. 고착화되는 거죠. 항상 그 패턴을 깨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예민했던 20대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작가로서는 점점 더 못해지는 느낌이죠(웃음).

지금은 ‘마스터키’를 갖고 싶어서 계속 연구 중에 있어요. 어떤 장르든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요. 그래서 제가 가진 패턴이나 버릇들을 역으로 분석해요. 초창기 때 곡들을 들으면서 내가 음악적으로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었나 보는 거죠. 그런데 구조를 분석하는 그 순간부터 창작은 마이너스가 돼요. 아직까지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겪은 세대인데, 그게 특권이면서도 불행이기도 해요. 보통은 작곡을 먼저하고, 느낌을 얘기해주면 작사가들이 작사를 하는데, 지금은 반대로 하는 경우도 많아요. 송라이터들의 랩에다가 멜로디를 붙이는 식으로요. 랩을 받아서 거기에 라임을 붙여주는 거죠. 또 요즘은 리듬, 멜로디, 랩, 건반 등이 모두 공동작업으로 돌아가요. 그래서 ‘캠프 짜자’고 하면 다 모여서 만들자는 소리에요.

Q 영화 음악을 만드실 때는 주로 대본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으시나요? 대본 외에 참고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선 대본을 보고 음악 스케치를 해요. 그리고 편집된 화면이 나오면 화면 템포를 보면서 같이 피아노를 치다가 아이디어를 얻죠. 대본 외에는 감독 의견을 많이 참고하고요. 어쨌든 그 사람 작품에 내가 일조를 하는 거니까. 물론 전적으로 맡기는 감독들도 있지만, 대부분 감독들 각자가 원하는 톤이 있어요.

영화 음악은 일반 곡 작업하고는 많이 달라요. 영화는 감독의 결정권이 크다면, 일반 곡은 내가 프로듀서를 해요. 그래서 정보도 많이 필요하죠. 반대로 일반 곡은 트렌드에 민감하다면, 영화는 그런 면에서는 자유로워요. 클레식하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재즈로 바뀔 수도 있고, 장르에 한계가 없죠.

시간이 흐를수록 저만의 패턴이 생기는 느낌이에요. 고착화되는 거죠. 그 패턴을 깨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Q 선생님의 취미나 여가활동이 궁금합니다. 음악을 안 하실 때는 주로 어떤 활동을 즐기는 편이신가요?

음악 듣고, 사람도 만나고 술도 좋아해요(웃음). 딸 아이 데리고 수영장 가거나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즐기는 여가생활은 없어요. 직업상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라 뭐가 따로 하고 싶은 게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남들처럼 음악 듣고, 영화보고 그래요. 작업을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면서도, 결국엔 음악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는 거죠.

Q 그간 선생님께서 발굴한 가수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수를 발굴하실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건 음색이에요. 음색은 하늘이 주는 거라 웬만하면 바뀌지 않거든요. 그 다음은 집중력을 봐요. 열심히 하는 것보다 노래 연습을 할 때 얼마나 집중해서 하는지가 중요해요. 그리고 인간성도 봐요. 제가 직접 프로듀서를 할 때는 문제가 생기면 프로젝트가 망가지니까 됨됨이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Q 어느 때보다 ‘음악’이 성장하고 관심받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K-POP과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역할도 큰 것 같은데, 전문가로서 이런 시대적 흐름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자기 재능을 표현할 기회가 많아진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개인 미디어 시대가 오기 때문에 유튜브처럼 자기 채널이 많아질 거예요. 자기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내는 공간이 많아진다는 거죠. 때문에 예전에는 누구나 들어서 교집합이 있는 이별, 사랑 이야기나,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곡들이 히트했다면, 지금은 자기 색깔이 유니크하게 부각되는 친구들이 주목을 받아요. 유튜브 스타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요.

우리 세대만해도 인터넷은 지식의 보물창고였는데, 젊은 친구들은 정보들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조립을 해요.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고 그런 게 음악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해요. 예전에는 남아메리카의 문화권, 아프리카의 문화권이 있었다면, 지금은 너와 나의 문화에요.

그리고 점점 싱어송라이터들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해요. 미국도 옛날에는 푸시캣돌스나 엔싱크가 최고였다면, 지금은 어셔나 크리스 브라운 같은 솔로 싱어송라이터들이 관심을 받잖아요. 결국은 사람이 부각되는 거라고 봐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나만의 것으로 승부를 보는 거죠. 그게 쉬울 수도 더 어려울 수도 있어요. 예전에는 플랫폼이 없어서 기회를 얻기가 어려웠다면, 지금은 기회는 많은데 거기서 튀어야 하니까 어렵죠(웃음).

싱어송라이터들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해요. 결국은 사람이 부각되는, 나만의 것으로 승부를 보는 거죠.

Q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작곡가’라는 꿈을 갖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들려주세요.

아버지가 음악 선생님이었고, 어머니는 피아노 레슨을 하셨어요. 피아노가 안방에 하나, 거실에 하나 있었는데 저녁엔 피아노소리 듣고 잠들고, 아침에는 피아노소리 듣고 깼어요. 작곡가라는 직업을 갖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아니었나 생각돼요.

결정적인 건 재수할 때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음악을 듣고, 거기에 푹 빠져서 한양대학교 작곡과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유재하 선배를 만났는데, 형을 만난 게 대중음악으로 입문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해요. 형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대중음악에 기웃거리다가 직접 쓰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김광석 형한테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주면서 데뷔했고, 그 후에는 녹음실 피아노세션을 많이 했는데, 그때 김건모 첫인상이나 아름다운 이별을 만들게 됐어요.

Q 반대나 어려움도 있었을 듯합니다. 어떠셨나요?

잠깐 있었어요. 부모님 두 분 다 음악을 하셔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데다, 지금처럼 돈을 잘 버는 직업도 아니었고, 어지간해서는 잘되지 않으니까 반대하셨죠. 집에서 피아노를 못 치게 해서 교회에 가서 피아노 쳤어요. 또 마음대로 음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재수할 때 허락을 받았죠(웃음).

Q 대학시절에 꼭 해보길 추천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많이 듣고 많이 연습해라! 권투 선수를 예로 들면 아마추어는 매달을 걸고 싸우고, 프로는 관객을 위해 싸워요. 시험 잘 보고 스펙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생의 특권은 자유, 경험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시절 많은 경험들이 나중에 자기 일에 있어서 엄청난 자양분이 되거든요. 음악은 기술을 익힌 다음에 멘탈이 나오는 분야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더 중요해요. 여행도 많이 가고 책도 많이 보고 외국어도 한 두 개는 배워두고 했으면 좋겠어요.

Q 학창시절에 도움을 주셨던 멘토나 은사님이 계신가요?

저한테는 곡 쓰는 모든 사람이 멘토죠. 기억에 남는 멘토는 유재하 형님이에요. 그분의 음악, 그 분의 감성이 참 좋아요. 그리고 정원영 교수라고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형을 보면서 나도 나이 들면 저 형 같은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 배울 게 참 많은 분이에요. 음악을 대하는 자세나,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 후배들을 대하는 마음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배우게 되는 사람이에요. 페스탈로치 같은 분이죠.

Q 좋은 음악공부 방법을 추천해주신다면?

음악도 육체노동이에요. 건강해야 좋은 곡이 나와요. 요가가 안 되는 동작을 계속 연습하면 되는 것처럼 음악도 계속 노력하면 돼요. 노래도 악기도 몸 써서 연습하는 장르잖아요. 재능이 30%, 노력이 70%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노력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시절에 많이 듣고 많이 연습하세요. 노력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Q 음악 하는 친구들의 가장 큰 고민은 ‘막연함’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막연함은 예술가들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이죠. 내 음악이 인정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좋은 곡을 쓸 수 있을까……. 이런 막연함은 영원히 버릴 수 없어요. 막막함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게 음악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열정에 이유가 없다고 하는데, 솔직히 두세 끼니 굶으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수도 있어요. 열정이 있네, 없네를 따지기 보다는, 그래도 이걸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내 상황을 소재로 곡을 만들어봤으면 해요. 막연함은 연습생이든 프로든 누구에게나 따라오는 거예요. 오히려 많이 한 사람이 더 두렵겠죠.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 것처럼 삶이나 꿈에 대한 막연함도 마찬가지에요. 막연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걸 이용해서 더 열심히 써보세요.

Q 2002년을 마지막으로 개인 앨범은 내지 않고 계신데,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밖에 준비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올해는 신인 프로듀싱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나윤권 가수가 9월 초 제대를 해서 음반 준비도 하고 있고요. 영화음악은 ‘엽기적인 그녀2’하고, 하나 더 준비하고 있어요. 개인 앨범은 기회가 되면 내고 싶은데, 아직 계획은 없어요. 한다면 연주 앨범 쪽으로 내고 싶어요. 공연은 ‘김형석 위드 프랜드’를 계속 가져갈 생각이고요.

Q 김형석에게 음악이란?

버릇? 밥 먹고, 세수하고, 잠자고 하는 것처럼 그냥 버릇처럼 음악을 하려고 해요. 버릇이라고 같은 것만 하는 게 아니라 깊숙이 고민도 하고 연구도 하지만, 그 자체가 버릇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작업이었으면 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게 대학생의 역할이에요. 할 수 있을 때 많은 경험을 하세요.

Q 끝으로 학생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찾는 게 대학생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면 저절로 열심히 하게 돼요. 아까 말했듯이 경험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경험이 왜 중요하냐면 살면서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내가 원하는 각도로 이끌어 가는 건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에요. 위기가 닥쳤을 그걸 대처하는 노하우도 경험에서 우러나와요. 그래서 고생은 사서도 하란 말이 있는 게 아닐까 해요. 나이 들어서 경험하면 망가져요. 그러니까 지금 뭐든 하세요.

만일 저한테 타임머신이 있는데 어디로 돌아갈래? 하고 물으면, 저는 대학시절로 갈 거예요. 제가 너무 슬프거나 기쁜 곡을 못쓴다고 했잖아요. 그건 저한테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에요. 대학생이 된다면 무지막지한 고생도 해보고, 스토커 짓도 해보고, 좀더 과감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요(웃음). 그러면 좀더 다양한 곡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럴 수 있음을 많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20년 후에 지금 시절을 되돌아보면 대학시절이 얼마나 행복한 때인지 알 거예요. 정말 행복한 시절이죠.

[김형석]
1996년 <사랑이라는 이유로>로 데뷔해, 솔리드 <이 밤의 끝을 잡고>, 김건모 <첫인상>, 박진영 <너의 뒤에서>, 성시경
<내게 오는 길>, 영화 <파파>, <태풍>, <우리 형>, <엽기적인 그녀>,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 등 1,000곡이 넘는
대중음악과 영화,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였다. 현재 케이노트뮤직아카데미와 키위뮤직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며,
한국예술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인터뷰을 함께한 국민대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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