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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와 비주류의 공존 그것이 음악의 참모습 음악평론가 임진모

모든 사람들이 학창 시절 품었던 장래희망을 이루지는 못한다. 어떤 이들은 장래희망을 이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해야 했을 것이고, 다른 이들은 장래희망의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다 꿈꿔 왔던 것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5년 간 한길을 걸어온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꿈을 이루고 그것을 지켜온 지난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기회와 명운이 이제 젊은 세대에게 닿을 수 있도록 기성 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오랜 시간 ‘음악평론가 하면 임진모’라는 확고한 입지를 유지하는 동안, 그와 견줄 수 있는 젊은 평론가가 없다는 것은 현 시대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은퇴를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쳐야 하는 그가 젊은 세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관보다는 낙관, 절망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학창시절 방안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음악을 공부했던 고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의 인생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Q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어려서부터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중3 겨울방학 때 고입 시험을 보고 나서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텀이 좀 길었죠. 그 당시 이소룡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방안에 틀어박혀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너무 쓸쓸해서 라디오를 들었죠. 의도적으로 음악을 들은 게 처음이었어요. 음악을 듣고 나서 그로기 상태가 됐어요. 존 레논, 카펜터스, 신중현 등 팝이나 가요들이 라디오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그러면서 평론가라는 직업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고1 때 가정환경 조사를 했는데 저는 장래희망으로 음악평론가를 썼어요. 선생님한테 혼났죠. 당시에는 담임 선생님께서 “네가 원하는 음악평론가로 현재 활동하는 사람이 누가 있니?”라고 말씀하셨어요. 당시 이백천 선생님이나 고 황문평 평론가가 있었지만 각각 PD와 작곡가라는 직업을 갖고 계셨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일찍 꿈을 갖는 건 좋은데 좀 더 구체적인 꿈을 가져라’라고 조언해 주셨죠. 지금도 그 때 선생님의 충고 두 마디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음악을 하면 가난해져"와 "음악은 가난을 예약한다"는 두 마디가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렇지만 그 때는 그 말이 와 닿지 않았어요. 오히려 반대로 평론가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죠.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Q 청소년기에는 주로 어떤 음악을 들었고, 세계 팝 시장의 흐름 등 음악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으셨나요?

그 당시 세계 팝 시장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1974년에 처음으로 월간 팝송을 틈틈이 사서 읽었죠. 물론 그 때는 입시라는 거대한 압박이 있었던 때였어요. 그것이 내면화되어 학생 신분으로 음악을 들으면 불안감이 엄습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을 들어야 불안함이 사라졌죠. 그래도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음악을 들을 때면 눈치가 보였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음악 듣는 것을 막지는 않으셨어요. 비로소 대학교 때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죠. 하지만 공부를 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해석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도깨비 골목(과거 외제 상품을 팔았던 시장 골목)에서 세 권의 원서를 구입했죠. 그 책은 저에게 전부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가 뻗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Q 음악에 관한 동아리 활동이나 커뮤니티 활동에도 관심을 가졌던 편이셨나요?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방안에 쳐 박혀서 오로지 음악 공부에만 몰두했죠. 방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어요. 물론 대학교도 열심히 다니지 않았죠. 어떻게 보면 학과 공부는 안 하고 제가 원하는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제 꿈이 ‘방안의 혁명가’인데, 방안에서만큼은 위대해지고 싶다는 의미죠. 방안의 혁명을 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당시에는 지루함과 외로움, 그리움이 가장 무서웠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끔찍하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가 제 인생의 ‘리즈’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비유하자면, 가뭄 때 마른 논에 물이 들어오던 시절과 같은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풍요로움을 준비하던 때였다고 생각해요.

제 꿈이 방안의 혁명가인데, 방안에서만큼은 위대해지고 싶다는의미죠. 방안의 혁명을 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당시에는 지루함과 외로움, 그리움이 가장 무서웠어요.

Q 음악평론가로서 자신의 기반을 다졌던 시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 시기가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제대 후에 집안 사정으로 일찍부터 가장이 됐어요. 언론고시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공채 시험을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경향신문에 합격을 했죠. 그렇게 6~7년 정도 신문사에 몸담고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내외경제 산업부 기자를 끝으로 기자생활을 그만뒀어요. 기자를 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매주 음악 칼럼을 썼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4년 5개월 간 매주 칼럼을 썼는데 1년이면 50여개, 4년이면 220여개 원고가 쌓일 수 있었죠. 그 당시에는 매주 힘들게 원고를 썼던 기억이 나요. 특히 팝송 가사를 번역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죠. 그렇게 노력한 세월이 현재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Q 제대로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기자가 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자생활을 하다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실 기자생활을 원해서 한 게 아니었어요. 저는 오로지 음악평론가를 원했죠. 기자생활 자체가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은 아니었다는 의미죠. 기사 작성법을 배우고 어떤 현안에 대한 관점을 갖는 과정을 배우긴 했지만, 저는 음악에 대해 쓰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죠. 매주 팝송에 대한 칼럼을 쓸 수 있었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1991년 5월에 사표를 던지고 황무지 같은 음악계에 나왔던 거죠.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에 제가 철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요즘 같았으면 그런 선택을 못했을 거예요. 어머님을 봉양하고 아내와 두 아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직업을 포기하고 음악평론가가 된다는 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기적인 선택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자아 실현 행위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규정을 내렸죠(웃음). 퇴직하고 나서 아카펠라 그룹 인공위성의 음악 제작자로 성공을 거둔 후에 그만두고 나서 그 때부터 음악 평론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평론한 지 벌써 25년이나 됐네요.

그 당시에는 매주 힘들게 원고를 썼던 기억이 나요. 특히 팝송 가사를 번역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죠. 그렇게 노력한 세월이 현재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Q 지금도 라디오와 방송에서 왕성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1989년에 음악평론가로 방송활동을 시작했어요. 당시 첫 방송이 CBS 라디오에서 했던 김창환의 <꿈과 음악 사이>였죠. 현재 MBC FM4U의 <배철수 음악캠프>에는 19년간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에요. 아마 단일 방송 프로그램 게스트로는 최장수가 아닐까 싶어요. 그 프로그램에 게스트만 19년 했다는 건 저 스스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하죠. 매주 다른 테마를 가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TV 방송을 하면 하나도 안 떨리는데, 라디오는 지금도 무척 떨리죠. 라디오는 음성에 의존하는 매체여서 그런지 부담이 많이 돼요. MBC라디오에서만 세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고 다른 방송사를 포함하면 6개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있죠. 사실 지금도 저를 왜 찾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방송이 게을러져서 저를 찾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만큼 젊은 세대의 감각과 감성을 지닌 음악평론가를 개발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거죠. 또 한편으로는 우스갯소리로 음악계의 전설들이 운명을 달리하면, 그 뮤지션의 일생을 설명해줄 전문가로 저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도 나와요. 그러니까 대중음악사를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고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줄 만한 음악평론가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도 되겠죠.

Q 임진모 음악평론가처럼 입담과 필력을 겸비한 음악평론가가 드문데, 이러한 점이 오랜 기간 음악평론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분들이 제가 하는 말을 재미있게 받아들여 줍니다. 예능적 요소와 비평적 요소가 동거하는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본질적으로 저널리즘(journalism)과 크리티시즘(criticism)의 공존이라고 생각해요. 적과의 동침으로 비유하고 싶을 정도로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죠. 그것을 소질이라고 해야 할지,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말을 할 때 다채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에요. 심지어 인문학적 코드도 없죠. 말을 하는 액센트에서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는 속도와 언어 톤 조절을 잘하는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죠.

Q 음악평론가에게 필요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팝이 아닌 우리 가요를 풀이하는 데도 평론가의 첫 번째 조건은 영어예요. 두 번째는 음악 자체에 대한 기본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리듬이 뭔지도 모르고, 박자에 대한 개념도 없다면 곤란하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해요. 이론을 가지고 평론을 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사회과학이나 경제학, 철학을 통해 자기만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을 미력하나마 다 독학을 한 사람이죠.

저는 사회과학이나 경제학, 철학을 통해 자기만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평론가로서 자신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한 분야에 집중한다는 것이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 그런 성향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멀티 플레이어가 필요한 다양성 시대에 융통성이나 유연함이 없다는 것은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도 현장에서 뛸 수 있었던 비결은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했던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Q 2001년에 음악 웹진 이즘(IZM)을 설립하셨잖아요. 벌써 웹진을 운영한 지 15년이 됐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사실은 이즘을 제 개인 홈페이지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 당시에 제가 쓴 칼럼을 1991년부터 10년 동안 모아보니 1만건이 넘더라고요. 비슷한 내용의 원고를 분류하고,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약 1만 2천건의 음악 관련 콘텐츠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웹진을 시작했죠. 지금은 한 3만건 가까이 될 거예요.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설립한 음악 웹진 이즘 캡처 화면(www.izm.co.kr)
이즘 사이트 바로가기

Q 웹진을 만들 때 세웠던 목표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생각하세요?

웹진 제작 초기에 참여 했던 후배들에게 경제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지 못한 게 한스러워요. 사이트를 통해 돈을 벌어서 월급도 주고 많은 일거리도 주고 싶은데 그게 어려웠으니까요. 이즘 사이트 초반에 도와준 친구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요.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웹진 제작의 시드머니를 제공해준 인생의 은인에게도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요즘에는 얼마나 음악을 들으세요?

옛날에 비해서 음악을 많이 듣지는 못해요. 그때는 미친 듯이 음악을 8~10시간 정도 들었으니까요. 지금은 그렇게 음악을 들을 수도 없지만 여전히 음악 쪽에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의 감수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죠. 저 스스로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Q 음악평론가들의 음악 감상법은 일반인들과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평론가만의 음악 감상법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평론가도 음악을 감상할 때는 일반적인 마니아들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음악을 들을 때는 지극히 감성적이죠. 일반인들은 그걸로 끝나요. 평론가는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을 낼 공간이 없다고 하면 아직 자기 영역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죠. 웹진이나 종이 매체, 사보 등 어떤 형태로든 글을 써야 해요. 항상 그렇지만 음악을 감상 했을 때의 느낌과 그것을 글로 펼쳐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죠. 하나는 지극히 감성적인 반면, 하나는 지극히 이성적인 활동이니까요. 그래서 평론가들은 감성과 이성이 교배되어 있는 야누스적인 성향이 있다고 봐요.

Q 최근에는 배철수 씨와 함께 그래미 시상식의 생중계를 하셨는데, 감회가 어떠셨어요?

2002년부터 그래미 시상식 생중계를 계속 해오고 있어요. 지금까지 10번 정도 했죠. 수익 문제 때문에 몇 년을 쉬었다가 그래미 시상식 생중계를 다시 시작하면서 저를 다시 불러준 거죠. 배철수 씨도 그렇지만, 저도 이제 나이가 꽤 든 편이어서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젊은 시선에서는 대단히 실망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양해해주시고.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Q <복면가왕>, <슈가맨>, 최근 정규 편성된 <판타스틱 듀오> 같은 음악 예능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요.

요즘 음악 예능은 기본적으로 오디션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에 미스터리와 화제성,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접근법을 더한 것이죠. 기본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확대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 있어요. 가창력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는 거죠. 제가 심사위원이면 1등 못할 사람들이 많아요. 대중들이 좋아해서 어쩔 수 없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저음 가수가 완전히 홀대를 당하고 있죠. 중저음으로도 얼마든지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노래의 음이 높아야만 감동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하나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싶은 부분은 가까운 과거의 명곡들을 들춰내는 것이죠. 1980년~1990년에 활동했던 사람들을 소환해서 재기의 가능성을 연결시키는 부분, 노래 듣기를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수 지망생들에게 길이 된다면 박수를 치겠는데, 재미로만 흐르고 있는, 또 다른 예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죠.

음악의 감수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죠. 저 스스로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Q 작년 한해 한국 음악계를 정리해 본다면, 어떤 단어들이 떠오르세요?

지난해에는 음악계가 아주 어려웠어요.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인해 굉장히 큰 타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죠. 가뜩이나 음악이 주는 설렘과 긴장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악재만 발생하는 것 같아요. 음악은 모든 예술의 기초라고 생각하는데 미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은 가장 높다고 봐요. 저는 청춘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영상의 시대이지만 새로운 하나의 집단 트렌드로 엮어 낼 수 있는 요소는 아직도 음악에 있다고 봐요.

Q 평소 우리의 인생처럼 이러저러한 다양한 음악이 공존해야 한다고 말씀해 오셨는데, 지금 우리 음반 시장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세요?

주류인 아이돌, 팝, 댄스 음악은 너무 상업적이면서 패턴화 되고 있고, 인디는 훌륭한 음악을 생산해내고 있지만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죠. 간극이 너무 커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인디 쪽에 포커스를 맞출 필요는 있지만, 인디 밴드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세대 간 다양성, 장르의 다양성, 상황의 다양성도 필요한데,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야 풍요로운 놀이터이자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그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요. 현재는 조정 국면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추억의 음악들이 소비되는 현상이나 최근 아델의 LP음반의 인기도 그런 부분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음악의 주류는 청춘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해요.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주목받지 못하는 건 비극이죠. 하지만 현 시대를 보면 지금의 청춘 감성이 미디어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어요.

Q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모든 감성과 지적인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은 말이 아니라 글이라는 것이에요. 글로 남기라는 의미죠. 예전에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종이와 펜을 꺼내야 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잖아요. 어렸을 때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지나쳐가는 간판을 일일이 메모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글 소재가 돼요. 그런 일상의 기록을 꼭 해보세요. 메모와 기록이 매우 중요해진 시대에 셀프 다큐멘터리화, 즉 자기의 일상을 늘 기록해보세요. 미디어가 제공해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취하지만 말고, 자신이 곧 미디어가 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에는 SNS때문에 자신을 객관화해서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에요. 훌륭한 글을 지속적으로 오래 보여줘야 하죠. 단 한 번의 능력으로 성공을 가늠할 수 없어요. 사회적 성공은 지속성에 있다는 말이죠. 순간적으로 화제가 될 수 있지만, 끝없이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주지 못하면 결국은 도태된다는 겁니다.

Q 지금 청춘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진심으로 20대 청춘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우리 때는 희망이 있었고, 비상과 부상의 가능성이 있었어요. 지금 20대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자아상실의 상태라고 봅니다. 그 점에서 그들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가 청춘들에게 너무 미안하죠. 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젊은이들과 자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현실적으로는 술값을 내주는 일을 하자는 것이에요. 젊은 친구들이 요청할 경우 하루 멘토가 되어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언도 해주고 술값도 내주는 것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아닐까 생각해요. 또 하나 해주고 싶은 말은 ‘돈에 눈을 떠라’는 거예요. 돈은 인생에서 가장 주체적인 면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죠. 자기가 버는 돈에 대한 개념은 확실히 해야 해요. 누락되거나 밀리고 있다면 주체적으로 자기의 점을 찍을 수 없다는 의미니까요. 그래서 돈에 대한 감각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돈이 너무 중요해진 이 세태가 안타깝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겨야 한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열심히 노력하면 살 사람은 산다’는 입장은 아니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난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전제가 된다면 반드시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고된 과정에서 각자 자기 만족이나 자기 위로의 코드를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그 중 하나가 음악이 아닐까 생각해요.

임진모
현 음악평론가, 팝칼럼니스트, 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경력
2011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영상물 등급위원회 공연심의위원
1991 내외경제신문 기자
1984 경향신문 기자
고려대학교 사회학 학사

주요 방송
1997~현재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고정 출연
2008 MBC 표준FM <임진모의 뮤직 스페셜> 진행
1989 CBS <김창환의 꿈과 음악 사이> 출연

수상
2011 제5회 다산대상 문화예술 부문 대상 수상
2006 MBC 연기대상 라디오 부문 공로상 수상

저서
<음악가의 연애>, <팝, 경제를 노래하다>, <가수를 말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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