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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세계화, 세계화 시대의 한국전통음악 김희선 교수의 국악 이야기

국악의 세계화, 그 최초의 역사

1851년 런던 수정궁(Crystal Palace)의 만국산업물산 대 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로 시작된 서구의 세계 박람회는 서구 제국주의의 성과물을 전시하는 장이자 식민권력의 재현이었다. 이는 근대 세계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와 서양문명의 공식적인 첫 접촉점이기도 했다.
조선이 쇄국의 빗장을 연 것은 1882년 미국과 수교를 맺으면서부터다. 이후 조선은 주체적으로 외교 다변화와 적극적 개화정책을 추진했고 그 일환으로 참가한 것이 1893년 시카고 세계 콜롬비안 박람회(World's Columbian Exposition)였다. 이 때 박람회에는 제조와 교양관(Manufacturers and Liberal Arts Building)의 테마 전시관 안에 조선관이 설치됐다. 68종에 달하는 조선의 물품과 함께 전시된 것은 바로 조선의 악기들이었다. 이 때 전시된 조선의 악기는 거문고, 양금, 해금, 당비파, 대금, 향피리, 세피리, 장고, 용고, 생황 등 10종이었다.

조선악사들의 연주는 “조선의 고악은 동양 고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 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당시 주한미국공사관의 부 총영사이자 선교사였던 홀레이스 알렌(Horace Allen)의 주선으로 파견된 이창업을 비롯한 10인의 조선악사는 전시기간 내내 홍주의를 입고 이 악기들로 조선악을 연주했다. 이 조선악사들의 연주는 “조선의 고악은 동양 고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미국 대통령인 글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가 조선관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연주를 선보였다. 이것이 최초로 서구에서 공연된 한국전통음악 공연의 현장기록이다. 조선이 세계만국박람회에 참가한 것은 개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 속에 국력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다시금 그 존재를 국제적으로 홍보하고자 했던 여러 가지 노력 중 하나였다. 조선이 국제사회에 자국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전통음악을 선택했던 방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나라가 신생독립국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하고 탈 식민의 틀 속에 국제관계를 구축해 나가던 시기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한국전통음악의 국제교류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부터인데, 그 목적이 근대초기 조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목적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은 국악이 국가정신의 표상으로 인식되는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물놀이 세계화의 상징, ‘사물노리언’

1960년대는 본격적으로 국제교류 목적의 국악 해외공연이 시작된 시기였다. 1960년대 초반 민속악인 박귀희는 민간단체인 <한국가무예술단>을 창립했다. 이후 신쾌동, 성금연, 지영희 등 민속악인들로 팀을 구성해 프랑스 파리의 국제민속예술축제에 참가했다. 국립국악원도 1964년 첫 해외공연으로 일본순회공연에 나섰다. 어린이들로 구성된 <리틀앤젤스>는 1960년대부터 한국전통음악과 춤을 공연종목으로 해 세계 주요 국제행사(멕시코 올림픽, 일본 Expo, 미국 만국박람회 74 등)에 참가하며 ‘전쟁과 고아의 나라’로 인식되던 한국을 ‘문화의 나라’로 소개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음반은 1960년 초부터 한국을 넘어 국제적 작곡계, 공연계에 널리 소개되면서 한국전통음악의 지적(知的)작업으로 소개됐다. 1970년대 말부터는 현재까지 한국음악 증 세계화에 가장 성공했다고 알려진 사물놀이가 무대화 된 새로운 양식으로 등장했다. 특히 김덕수가 이끄는 사물놀이패는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세계적 명성을 얻고 각국에 초청을 받는 공연단체가 됐다. 이들의 사물놀이패를 통해 고유명사였던 ‘samulnori’는 보통명사인 ‘SamulNori’로 불리면서 보급됐고, 전 세계 사물놀이인을 지칭하는 사물노리언이란 단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후 사물노리언이 참가하는 세계사물놀이 겨루기 대회가 펼쳐지고 세계 여러 지역에 사물놀이 학교가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사물놀이는 중요한 ‘한국전통음악의 세계화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사물놀이의 인기는 그 후예라 할 수 있는 난타의 세계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민·관이 주최한 다양한 국악 해외공연에도 불구하고, 사물놀이를 제외한 한국전통음악은 세계무대에서 여전히 낯선 음악이었다.

사물놀이는 중요한 ‘한국전통음악의 세계화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워맥스’에 등장한 한국음악, 세계인을 매료시키다

지난 2010년 전 세계의 음악인과 월드뮤직을 소개하는 공연예술 견본시(見本市) 마켓인 워맥스(WOMEX, World Music Expo)의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공연예술계가 주목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유럽 월드뮤직이 아닌 아시아 음악, 그것도 한국전통음악이 큰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것이다. 바로 천지인 사상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토리 앙상블>, <바람곶>, <비빙>의 합동공연 ‘The Chaosmos of Korean Music’이었다. 오랫동안 월드뮤직계와 세계공연예술계에 변방이었던 한국음악의 화려한 데뷔전이었다. 과거 일본전통공연예술이 일본의 미학으로 무장한 노, 가부키, 부토 등을 세계에 소개할 때 한국전통음악은 일본과 중국음악의 아류 정도로 여겨졌다. 인도의 라가(raga)와 파키스탄의 카왈리(Qwwali)가 세계적 아티스트의 명성에 힘입어 월드뮤직계의 중요한 장르로 부상했을 때도 한국의 판소리와 산조는 여전히 낯선 장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워맥스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워맥스 사상 오프닝에서 아시아의 음악이 오른 것도, 개최지의 음악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음악이 선정된 것도 한국전통음악이 처음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워맥스의 창립이사인 벤 맨더슨(Ben Mandelson)은 “한국음악의 예술성이 워맥스 무대를 더욱 빛내줬다”고 극찬했으며 많은 월드뮤직 관계자들 역시 워맥스 사상 가장 예술적인 무대였다고 평가했다.

워맥스 사상 오프닝에서 아시아의 음악이 오른 것도, 개최지의 음악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음악이 선정된 것도 한국전통음악이 처음이었다.

워맥스에 한국음악이 등장한 이후 월드뮤직의 장에서 한국전통음악과 한국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상승했다. 개별 아티스트로 가야금 연주자 이지영,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정가 가객 강권순, 판소리 이자람을 비롯해 앙상블인 <토리 앙상블>, <비빙>, <들소리>, <공명>, <김주홍과 노름마치>, <소나기 프로젝트>> <숨>, <거문고 팩토리>, <정가악회>, <청배연희단>, <고래야>, <잠비나이>, <바라지>등 젊은 한국전통음악 아티스트들은 현재 전 세계의 극장, 페스티벌, 공연장을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영역은 이제 월드뮤직계를 벗어나 고전음악을 소개하는 Classical Next를 비롯해 영성음악, 재즈, 컨템포러리 등 다양한 음악장르로 분야를 넓혀나가고 있다. 전통음악이 나아갈 여러 길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통음악의 미학과 감동으로

한국전통음악의 해외진출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국악의 세계화’라는 수사와 만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세계화가 국가의 프로젝트로 기획되고 K-pop과 한류 등 한국발 대중문화생산물의 글로벌 성공 경험은 한국형 문화콘텐츠물의 개발요구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대중화를 외치던 국악계에게서는 이를 대치할 새로운 담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복합적 요구가 반영된 ‘국악의 세계화’는 국악이 국가적 표상으로, 한국적 문화상품으로 기획되며 ‘21세기형 한국적 문화 콘텐츠’라는 라벨을 획득한 것이다.

한편 21세기 세계화 시대는 세계 각 지역의 문화예술을 세계무대로 이끌었다. 중심과 주변의 헤게모니가 그대로 재현되는 정치, 경제 세계화와 달리 문화세계화는 때로 주변과 주변이 서로 조우하거나 주변이 중심의 문화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문화세계화의 전개를 통해 로컬의 의미와 전통의 가치가 부상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전 세계의 로컬 음악들이 부상하는 월드뮤직의 등장이다. 월드뮤직은 때로 서구의 비서구 전유로 비판되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전 세계의 전통음악이 재발견되기도 한다. 작은 숲속, 외딴 섬에서 펼쳐지는 월드뮤직 페스티벌들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 인간성의 회복, 전통의 가치, 진정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전통음악의 세계화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우리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주변적 콤플렉스 극복차원의 민족주의적 입장, 세계화를 통해 국악을 글로벌 문화상품으로 이해하려는 입장, 혹은 세계화의 종속적 편입으로 이를 거부하는 방어적 문화민족주의의 입장은 세계화를 지향하는 한국전통음악이 취할 건강한 방식은 아니다. 세계화의 빈 구호 대신 필요한 것은 서구 중심의 통합 논리에서 벗어나 지역의 자생적 토양위에서 자라난 한국의 로컬 음악이다. 세계화 시대에 전 세계의 예술 감상자들에게 한국 전통음악 고유의 미학과 예술적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한국전통음악은 인류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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