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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상상, 인문학 판타지 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장창호 교수의 중국 이야기

역대 중국에는 ‘부시언지(賦詩言志)’의 전통이 있다. 이를테면 시문을 통해 자기의 뜻을 전하는 문화인데, 오늘날도 중국 정치 지도자들은 경전의 구절이나 한시의 유명 구절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길 즐겨 한다.

중국 인문학의 토대가 된 <논어>

2006년 4월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정상 간 오찬 석상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망악(望嶽)>에 나오는 시구 “언젠가 산꼭대기에 올라 뭇 산들이 작음을 굽어보리라(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를 읊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후진타오 주석의 방문을 국빈 방문 대신 공식 방문으로 격을 낮추고 중국의 인권상황을 면전에서 비난한 부시 대통령의 무례에 대한 분노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훗날 러시아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는 아예 <망악>의 대형 액자를 회담장 중앙에 걸어두었다. 이를테면 일종의 중국식 한풀이였다.

공자상

2013년 6월 국빈 방중(訪中)한 박근혜 대통령께 시진핑 국가 주석이 역시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등관작루(登鸛雀樓)> 서예작품을 선물했다. 이 시의 마지막 구 “한 층 더 올라간다.(更上一層樓)”를 빌려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더 격상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그리고 정상회담 석상에서 다시 통일신라시대 문인 최치원이 지은 한시 <범해(泛海)> 중 “돛을 걸어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 타고 만 리를 오가네(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 구절을 인용하여 양국의 우호관계가 순풍에 돛을 달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부시언지’의 문화는 중국 지도자가 평소 구비한 인문학적 소양의 발로로, 살벌한 정치무대에서 인간적인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1937년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항일전선을 함께 구축한 이른바 제2차 국공합작 때의 일이다. 국민당의 장제스 총통은 쉬푸꽌(徐復觀) 소장을 연락참모로 공산당의 팔로군이 주둔한 옌안(延安)에 파견하였다. 훗날 신(新)유학의 대가가 된 청년 장성 쉬푸꽌이 하루는 당시 지식청년들의 우상이었던 마오쩌둥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청년이 되어 마땅히 어떤 책을 읽어야 합니까?” 쉬푸꽌은 내심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추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마오쩌둥은 “중국의 청년이면 필히 <논어>를 읽어야지!”라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쉬푸꽌은 뇌리에 번개가 치고 귓가에 천둥이 울리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뼛속까지 중국인이자 베이징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있으면서 인문학적 기초를 단단히 쌓은 이 인물이 장차 중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훗날 술회했다. 역시 인문학의 힘이다.

중국 베이징, 자금성 남쪽에 위치한 천안문에는 마오쩌둥 초상화가 걸려 있다.

<논어>가 없는 인문학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2014년 방한 때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북핵문제를 처리하는 중국의 입장을 전하면서 시진핑 주석은 “화이부동(和而不同, 다른 사람과 어울리되 한 패거리가 되지 않는다)”와 “무신불립(無信不立, 백성이 믿어주지 않으면 나라가 성립되지 않는다)”이라는 <논어> 구절을 인용하였다.
<논어>를 포함한 유가의 경전과 한시를 포함한 중국의 고전문학은 물론이고 중국 역사와 제자백가는 중국 인문학의 근간이다. 어마어마한 범위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중어중문학과 커리큘럼은 어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렇게 방대한 범위의 중국 인문학에 치중되어 있다. 근년에 들어 산업 수요와 대학졸업 인력과의 미스매치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특히 산업계는 중문학과를 포함한 문과대학의 고전적 인문학 교과가 현실과 동떨어진 상아탑 학문이라며 실용적으로 바꾸라고 교육부를 통해 거세게 대학 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 문화의 저변을 다양하게 보려면

한 중문과 졸업생이 찾아와 이렇게 하소연했다. 무역 회사에 취업해 사장의 중국 출장을 수행했다고 한다. 낮에 있었던 상담(商談)은 그럭저럭 통역했지만 저녁에 중국 바이어가 전통 찻집으로 초대해 차와 다식을 내놓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난생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제대로 통역하지 못해 사장에게 중국어 실력을 의심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어 실력보다 학교에서 중국의 차 문화를 배우지 않은 탓이니 중문과 커리큘럼에 중국차 과목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졸업생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교환학생으로 중국대학에서 1년간 공부했으니 중국인과 일상적 혹은 업무상 대화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뿐이다. 기실 평소에 중국인의 실생활 문화 공부를 간과해서 중국인과의 고급 대화가 곤란해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졸업생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 생긴 자업자득이다.

중국의 다도는 찻잎부터 다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거의 독립된 학문에 가깝다.

필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대만 유학시절에 논문과 관련된 질문이 있어 담당 교수님 연구실을 찾았다. 마침 교수님께서 김용(金鏞)의 <소오강호(笑傲江湖)>를 읽고 계셨다. ‘교수님이 무슨 무협소설이냐’고 혼자 의아해 하던 참에, 교수님께서 “읽었냐”고 물으셨다. 아직 못 읽었다고 답했더니,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김용의 무협소설을 읽지 않을 수 있느냐!”고. 그때부터 그 교수님에게 필자는 무식한 학생으로 낙인 찍혔다. 필자의 박사논문 심사에 들어와선 “아, 김용의 소설도 읽지 않았던 그 친구이구나, 논문은 어떻게 썼지?”라며 웃으셨다.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 김용(金鏞)의 무협소설을 읽고 자랑하고 토론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현상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중국 문화의 저변을 보다 다양하게 이해하지 못한 필자의 소홀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다. 후스(胡適)는 중국 근현대의 저명한 계몽주의 학자이다. 그가 한때 아편, 팔고문(八股文), 전족과 함께 마작을 중국의 4대 악습이라고 성토했다. 그렇지만 정작 그의 아내가 마작을 목숨처럼 여겨 미국에 이주했을 때도 이웃 중국 부인과 매일 마작을 즐겼다. 마작 멤버 중 한 명이 빠지면 그 자리는 후스가 메웠다. 한국 사람 셋이 모이면 고스톱을 치듯이, 중국인도 넷만 모이면 마작 판을 벌인다. 밤만 되면 위아래 층에서 마작의 패를 섞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가 물에서 헤엄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해서 마작을 ‘탁상유영(卓上游泳)’이라 부르며 집집마다 마작 삼매경에 빠졌다. 이처럼 마작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중국인의 사교문화이다. 중국인과 사귀려면 마작은 필수적이다. 천하의 후스도 어쩔 수 없이 중국인이라서 본인이 성토한 악습을 몸소 실천하였다.

연기와 노래, 무술과 무용이 함께 어우러진 중국의 종합예술 경극. 중국예술의 정수를 대표하는 창극이라고 해서 국극(國劇) 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경극 또한 중국인의 자랑거리이다. <패왕별희>를 비롯해 웬만한 중국예술영화에 빠지지 않는 것이 경극이다. 중국의 상류층이 모이면 의례적으로 경극이 화제가 되고,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져야 대화에 낄 수 있다. 그들은 경극을 ‘국수(國粹)’ 곧 중국 예술의 정수라 자부한다. 또한 사람이면 경극을 알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인이 판소리를 부르면 우리가 감탄하듯이, 우리가 중국인과 만나 경극을 화제로 삼는다면 그 어렵다는 중국인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네 명만 모이면 판을 벌인다는 마작은 중국인의 국민두뇌 스포츠로도 불린다.

필자는 위에서 든 네 가지 중국인의 생활문화에 대한 공부를 각각 ‘다경(茶經)’, ‘무경(武經)’, ‘마경(麻經)’, ‘희경(戲經)’이라고 부르고 이를 ‘신(新)4서’라고 명명한다. 나아가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이른바 인문학 판타지이다. 중국 정치 지도자가 한시로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었듯이, 우리나라 사람도 차(茶), 무협지, 마작, 경극처럼 중국인이 선호하는 취미로 다가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대학의 중문학과에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4서와 같이 전통적인 인문학에다 ‘다경’, ‘무경’, ‘마경’, ‘희경’ 신(新) 4서와 같이 생활문화를 더하여 교과목 영역을 확대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 발칙한 시도가 날로 위축되는 인문학 교육의 유쾌한 새 활로가 되리라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상아탑의 순수한 아카데미즘 관점에 보자면 신(新) 4서는 얼토당토않다. 하지만 필자는 신(新) 4서가 인문학 영역의 확대로 받아 들여져 관련 강의가 개설되길 소망한다. 나아가 강의실에서 신(新) 4서를 신나게 강의하는 필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울러 학생들 사이에서 신(新) 4서 학습 열풍이 일어 중국 관련 취업은 물론이고 취업 후 전공능력을 인정받는데 큰 도움이 되길 꿈꾼다. 꿈은 꿔야 하고 상상은 나래를 펴야 한다. 중국어에 이런 축복의 표현이 있다. “메이멍 청전(美夢成眞)!”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필자의 인문학 판타지가 아름답게 이뤄지길 바란다. 앞으론 제자에게 학교에서 취업 현장에 유용한 지식을 배우질 못했다는 볼멘소리를 듣지 않도록 말이다.

글/사진 : 장창호(국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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