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안경을 쓰고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라 반지의 제왕 저자  J.R.R 롤킨의 언어공부법 조승연의 청춘을 위한 코칭타임 첫 번째

필자는 중학교 1학년, 13세 무렵 우연한 기회로 미국유학을 가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건어 온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첫 2년간은 영어 실력이 빠르게 는다. 그러나 대체로 딱 2년을 넘기면서 더 이상의 향상 없이 제자리를 맴돈다. 이 정체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미국에서 10년을 살건 20년을 살건 평생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며 살아야 한다. 미국학교의 ESL 선생님들은 이런 것을 '아시아 천정 현상' 이라고 부른다.

만 15세 무렵 필자 역시 사전을 통째로 외울 만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았다.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기 딱했던지 한 미국인 친구는 필자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다름아닌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R 톨킨의 전기였다. 그 책 한 권은 필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공부를 할 때, '인문학의 안경'이 필요한 이유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언어공부의 실마리를 찾게 해 준 톨킨의 전기

톨킨은 19세기 말, 영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에 다녔다. 당시 영국 고등학생들은 의무적으로 라틴어를 배워야 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문 공부 싫어하듯 그들도 라틴어 공부를 몹시 싫어했다. 톨킨은 두 명의 사촌과 같은 학교 같은 학급에서 공부했는데 라틴어 수업 시간이 너무 재미없자 라틴어를 살짝 변형시켜 사촌들과 은어처럼 사용하거나, 집에서 부모님 흉을 보는데 썼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청소년들은 가까운 친구들끼리만 알아듣는 은어를 만들어 쓰지만, 톨킨은 어른이 된 후로도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며 즐기는 놀이를 멈추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놀이 수준은 높아졌다.

주목할 것은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배경 지식까지 업그레이드해야 했다는 점이다. 톨킨은 지식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으로 라틴어 이외에도 여러 외국어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톨킨은 큰 힘 들이지 않고 놀이 하듯 10개 이상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훗날 톨킨은 '만약 동화책 속 요정이나 난쟁이가 진짜로 존재한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 공책에 그들이 쓸 것으로 상상하던 언어들을 만들어서 적었고, 그 결과 명작 소설 <반지의 제왕>이 되었다고 말했다. 큰 범주에서 인간이 만들어 온 다양한 언어 역시 인문학이다. 톨킨은 언어라는 '인문학의 안경'을 통해 자신의 관심 영역을 확대해 갔던 셈이다.

톨킨의 이야기는 '인문학의 안경'을 쓰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하면 굳이 다른 노력을 더하지 않아도 그 분야에 대해 인문학적 통찰을 하게 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공부하면 보통의 방법보다 높은 성취를 이루게 된다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의 이해와 함께 하는 언어 공부

인문학의 안경은 공부의 영역을 넓히게 한다

그 이후 톨킨의 전기에 감명을 받은 필자의 공부 영역은 그가 했던 방법을 따라 라틴어로 이어졌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영화 <글라디에이터>가 개봉되며 고대 로마 도시를 조립 할 수 있는 50,000 조각짜리 퍼즐이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영화와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던 필자 역시 그 퍼즐들을 사다가 맞추며 놀았다. 그 놀이와 라틴어를 함께 '즐기며' 필자는 고대 로마의 건축물, 길거리 구석구석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몰입했던지, 심지어 당시의 로마인들이 라틴어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라틴어 공부를 하면 할수록 <글라디에이터>, <벤허>, <클레오파트라>, <쿠오바디스> 등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 역시 모조리 섭렵하게 됐다. 그러면서 머리로 상상하던 로마와 영화감독들이 영상으로 묘사한 로마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게 됐다. 그렇게 로마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라틴어는 어느새 익숙해 졌고, 그로 인해 생기는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영어가 저절로 쉬워지면서 구사하는 문장의 수준도 높아졌던 것이다. 결국 AP English(APㆍAdvanced Placement, 1955년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프로그램, 특별히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대학수준의 과목을 뜻한다.) 시험을 통과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리스ㆍ로마 역사는 사람 사는 이야기, 즉 인문학이었다. 그 인문학의 안경을 쓰고 언어 공부를 봤을 때, 필자의 영어 실력은 몰라보게 일취월장했던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것들 중 쓸모없는 것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배우고자 하는 뜨거운 의욕을 안고 태어난다. 아기들은 새로운 것만 보면 '엄마 저건 뭐야?' '엄마 저건 왜 저래?' 라고 묻는다. 그것이 바로 공부 의욕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호기심과 공부의욕은 쪼그라든다. 학교에서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공부하기 보다는 가르치는 대로 공부한다. 결국 대학생쯤 되면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어버리고 '배워야 하는 것들'을 쫓느라 공부가 괴로워진다.

고교시절, '인문학의 안경'을 통해 공부의 의욕과 흥미를 되찾고 난 후에 보낸 대학 4년은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교양 수업에서 배운 시 한수로도 남녀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밤새도록 열띤 토론을 벌이며 공부 의욕을 불사르던 곳, 저녁 한 끼 나누면서도 세상을 바꿀만한 열정과 아이디어가 수없이 튀어 나와 가슴 설렜던 기억... 필자에게 대학은 공부가 즐거운 곳이었다.

'무엇'을 공부했느냐  보다 '잘 했느냐'가 중요하다

필자는 지금 대학생들에게도 전공과 강의를 고를 때 '배워야 하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배우고 싶은 것'을 따라 가라고 권하고 싶다. 법대 다니는 것이 음대 졸업한 것보다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능력 없는 변호사와 능력 있는 작곡가를 비교하면 음악 전공자가 훨씬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공부했느냐' 보다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느냐'가 중요하다.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해야 그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지금 내가 공부한 것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절대로 미리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만약 내 고등학생 시절 누군가가 나에게 '라틴어를 어디다 쓰려고 배우니?'라고 물었다면 선뜻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라틴어가 진짜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25세가 넘은 후에야 깨달았다. 라틴어는 현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와 비슷하고 영어의 고급 어휘는 대부분 라틴어에서 왔다. 라틴어 공부를 했던 재미를 살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어로 된 모든 신문, 노래 가사, 영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30세가 넘어서였다. 그 덕분에 미디어 관련 직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그 분야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톨킨이 나에게 가르쳐 준 교훈은 인문학 또는 교양이란 다른 모든 과목을 지탱하는 기초 경쟁력이기 때문에, 어떤 각도에서 접근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XYZ 라는 직장을 얻기 위해 ABC라는 과목을 공부하겠다' 라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계획을 따라 가기엔 '나'도 '세상'도 너무나 빨리, 그리고 끊임없이 변한다. 적어도 대학생활 동안은 순간적 흥미를 쫓아 배움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간을 보내라고 권유하고 싶다. 남이 하는 대로 하면 남과 똑같아 진다. 나 자신의 호기심을 쫓아가는 사람만이 남과 나를 차별화 시키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글_조승연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집필한 작가이자 5개 언어를 구사한는 언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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