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설가 가네시로 가츠키의 작품 [Go]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는 아들에게 복싱을 가르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아들에게 주먹을 쥐고 한 팔을 앞으로 쭉 뻗으라고 말한다. 그리곤 이렇게 질문한다. “그 팔을 뻗은 채,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 원을 만들어라. 그 원이 네가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세계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그 선을 넘어 앞으로 걸어 나가면, 무수히 많은 강적들과 싸워야만 하는 위험한 세계다. 너는 어떤 세계를 선택하겠는가?”
도전은 안락한 둥지를 벗어나 험난한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한 채 모험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삶의 아름다운 목적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 말, 대한민국 국가대표 숙소에서 TV를 통해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는 한 선수가 있었다. 동료들이 물었다.
“도대체 독일 프로경기는 왜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그 선수가 답했다.
“언젠간 꼭 저 리그로 갈거야!”
그의 말을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프로리그였던 분데스리가로의 진출은 커녕, 독일로의 여행조차 자유롭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동대문 운동장에서 그 선수는 분데스리가로 떠나기 전 마지막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분데스리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차범근. 그라운드의 갈색 폭격기. 분데스리가 308경기 출전 98골. 당시 해외선수 최고 기록. 국제 축구 역사 연맹 발표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선수. 독일 분데스리가 당시 두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기록은 건조하다. 우린 이 단순한 나열만으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유럽 선수권 출전 당시, 독일 대표팀의 주장까지 지냈던 마테우스가 그의 전담 마크맨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차범근의 플레이에 농락(!) 당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그는 세계로의 꿈을 꿨고, 도전했다. 차범근은 매일 자신의 손목시계에 알람을 맞추고,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순간에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주머니에서 줄넘기를 꺼내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꿈을 위해선 노력이 있어야 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차범근에게 독일의 분데스리거는 삶의 목적이었다. 축구가 신앙이 된 이 불세출의 선수는 자신이 선택한 축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길 원했으며, 자신의 삶을 완성하길 원했다.
도전은 피곤하며, 고통스럽다. 자기자신과 성공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으로 싸워야 하며, 홀로 남겨진 고독감에 지쳐가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걷고 있는 길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도 될 것이며, 삶의 목표는 안락함이라는 유혹적인 속삭임에도 순간순간 흔들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유혹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많은 이들은 그 무모한 도전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걸었던 것일까?
등반의 개척시기에 에베레스트와 K2로 향했던 수많은 원정대들은 도전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산에 올랐다. 누구보다 더 빨리 차를 몰기 원했던 카레이서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자동차 경주장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지구위에서 가장 강해지길 원했던 파이터들은 링위에서 수도 없이 쓰러졌다. 그들은 알았다.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명예이며, 그것은 곧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늘 현실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미지의 개척지와도 같은 곳으로 자신의 삶을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것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변화시킨 이들은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던 자들이다. ‘지금’에 만족한 이들은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가스등의 불편함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전구를 만들었으며, 편지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전화의 발명에 매달렸을 것이다. 어쩌면 개인의 삶에 펼쳐질 도전이란 그 모든 세상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가장 작은 발걸음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도전이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삶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세상은 개인의 그러한 도전을 통해 발전해 온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역경을 이기며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얻어야 할 많은 깨달음이 도전의 여정에 놓여 있을 것이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완벽해지기 위해 수도를 하는 고승들처럼, 도전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가고, 때로는 쓰러지며, 좌절할 때, 그 고통과 경험이 주는 깨달음들이 우리를 더욱 성숙시켜 ‘훌륭한 인간’이라는 궁극의 목적으로 인도 할 것이다. 결국 도전이란, 단지 꿈을 이루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만이 아닌,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완성시켜가는 방식인 셈이다.
우린 모두 우리의 삶이 특별하길 원한다.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이 펼쳐지길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청춘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자신의 꿈과 바꾸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해 모험이 가득한 저 먼 바다를 포기한 채, 항구에 배를 정박시킨다.
프로스트는 자신의 시에 이렇게 적었다.
“...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이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의 시에서 우린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모두가 간 길을 간 이들은 모두와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들의 삶이 특별해지기 위해선 다른 이들과 다른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아무 것도 겁내지 마라. 쓰러지고 상처 입어도 기뻐하라. 비로소 당신들은 이제야 옆의 누군가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도전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이번 생에서 추구해야할, 아니 포기하지 말아야할, 유일한 가치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생의 마지막 순간, 후회를 남긴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회의 대부분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닌, 자신이 하지 못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후회를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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