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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교수의 사진이야기

199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저녁 런던 템스 강가의 한 작은 집에서 몇 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앉아 며칠 뒤에 다가올 밀레니엄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영국 친구는 밀레니엄 버그(Millennium Bug)와 함께 모든 전산이 마비되고 어쩌면 며칠 뒤 지구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 이스라엘 친구는 가까운 미래에 집에 앉아서 전세계 물건들을 사고 파는 세상이 올 거라 했다.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지구 구석구석을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오면 과연 우리는 행복할까? 하는 질문을 던졌고, 한 네덜란드 친구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만 길어지겠지, 뭐… 하는 식의 부정적인 말을 던졌다. 그땐 인간의 미래를 과학이 행복하게 해 줄 것이란 믿음을 갖기 힘든 시기였다. 단순히 컴퓨터의 날짜가 2000으로 세팅 되는 문제 하나가 잘못 될까 모두가 호들갑을 떨던 그런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통한 기억은 아주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공유되는 사적인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그때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사람들이 아주 조그만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거란 생각이나, 그 컴퓨터가 카메라가 되어 사진을 찍고, 또 그 내용들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공유 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24장 또는 36장 들이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찍은 것을 현상소에 가져가 하루 이틀을 기다려 인화물을 받아 그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앨범에 넣어 간직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 장의 이미지에는 여러 추억이 담겨 있었고, 아버지가 아들 딸들의 기억에 심어줄 수 있는 상징적 사진이 한두 장씩은 꼭 있었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 직장에서 찍은 단발 머리 스타일의 사진이라든지, 아버지가 전역했을 때 찍은, 검게 그을린 얼굴과 짧은 머리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또한 당시는 손으로 사진 표면에 지문이 묻지 않도록 조심스레 만지던 종이의 물성이 존재했다. 아날로그 사진은 그렇게 몇 개의 이미지로서 우리 머리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아날로그 사진은 그렇게 몇 개의 이미지로서 우리 머리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미지가 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고, 우리는 그 가능성이 주는 무한한 선택권을 즐긴다’

2015년 4월 26일 요즘 사람들은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 수많은 파일들은 핸드폰에, 하드드라이브에, 다시 클라우드에 옮겨진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이 몇 년에 걸쳐 수천 장이 되고, 그 용량이 수백 기가바이트를 넘어간다. 한 장 한 장 정교하게 찍던 태도는 사라지고 마음 내키는 대로 셔터를 누른다. 잘못 찍으면 지우고 다시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많은 사진들을 찍는 것일까?

세상에는 여러 가능성과 가치가 있는 상황과 풍경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치를 영원한 이미지로 간직하고 싶어한다. 거기엔 이런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봄기운 설레는 마음에 어떤 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포기하고 벚꽃놀이를 떠난 한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그 사진을 SNS에 공유한다. 많은 사람들이 벚꽃 놀이를 하고 있는 그 학생의 사진을 보게 되고, 그 중에는 그 수업을 하던 선생님도 있다. 선생은 1999년 겨울의 질문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질문한다.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어떤 면에서는 ‘예’라는 답이 옳다.

잘 찍은 사진과 기억들은 짧은 순간 마음 속에 각인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진을 너무나 쉽게 찍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MT 여행지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그 여행지를 떠나기 전 이미 SNS를 통해 MT에 오지 못했던 학생들과 공유된다.

잘 찍은 사진과 기억들은 짧은 순간 마음 속에 각인된다. 이를 위해 기다릴 필요도, 다시 만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 그 동안 수 많이 찍어왔던 이미지들의 현실은 어떨까? 핸드폰이 망가져서 2년 동안의 사진을 다 날린 기억, 언제고 정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컴퓨터 외장하드 어딘가 일련번호로만 남아있는 사진들, 예전에 유행했던 미니홈피에 한동안 부지런히 올렸던 저해상도의 흐릿한 사진들, 만일 이대로 15년이 지난다면 과연 2030년 당신의 기억 속에, 또는 당신의 아들, 딸들에게 각인될 만한 당신의 젊은 시절의 이미지가 남아 있을까?

‘디지털 사진의 즉효성은 우리 머리에 이미지를 각인 시킬 틈도 주지 않고 공유되어 대중 속으로 사라진다’

금방 찍고, 감상하고, 버려지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은 쉽게 포착된 그만큼 쉽게 잊혀져 간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이미지의 영속성을 믿지 않는 곳으로 바뀌어간다. 오랫동안 당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매일매일 새로운 영상을 전하는 소셜미디어 속 이미지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다. 밀려드는 해일 속에 센다이 현과 후쿠시마 현의 마을들이 통째로 쓸려 내려갔다. 일본의 프로젝트 그룹 로스트 앤 파운드 (Lost & Found)는 해일 직후 폐허가 된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에 젖은 사진 앨범들을 모았다. 이들은 한 장, 한 장 얼룩진 사진들 모아 세척하고 말리고 분류해 이것들을 비닐철에 넣어 전시했다. 사진들은 손상이 심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흐려져 간다. 그로부터 3년 여가 지난 2014년 9월12일 이 사진들은 대구 사진 비엔날레의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 한쪽 벽을 가득 채웠다. 3년 동안 표면이 많이 손상되어 흐릿해진 이 사진들은 대재앙 속에 사라져간 사람들을 흐릿하게 기억해낸다. 이것은 희생된 사람들의 기억이자 기록이고, 또한 그들을 잊지 말자는 상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사람들은 폐허 속의 사진을 찾은 것일까? 다시 말해 왜 종이 위에 인화된 이미지만을 찾았던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핸드폰 속에는 엄청난 양의 사진 데이터가 들어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망가진 핸드폰들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진들을 모아 복원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재난 속에서 각인된 기억만을 찾고 있는 것이다.

1990년 여름 나는 터무니 없이 큰 짐을 지고 친구들과 태백산맥을 일주일 동안 걷고 있었다. 밤마다 텐트를 치고 선후배들과 자연 속에서 나누는 대화는 내게 성장의 기억으로 각인되었다. 21살의 나는 그때 이미 성인이었지만 정신적으론 사춘기였던 시절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그 시기를 나는 친구들과 산에서 맞이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때 밤의 야영 생활의 기억들을 사진으로 꼭 남기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컴컴한 산속에서 찍은 내 사진들은 한결 같이 흔들리거나, 어둡거나, 터진 플래시로 범죄 현장 같은 것들뿐이었다. 사진이 빛으로 그린 이미지이다 보니 어두운 밤 촛불과 헤드랜턴, 캠프 파이어 조명 아래 어른거리는 친구들의 모습이 잘 나올 리 만무했다.

2010년 여름 나는 대학산악연맹과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도움을 받아 여러 대학 등산부 학생들과 함께 다니며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야영하고 떠들며 술 마시고 노래하는 모습 그대로 사진에 담으려 노력했다. 이번엔 고해상 디지털 카메라와 대형 스튜디오 플래시 세트, 배터리까지 들고 그들을 따라갔다. 내 촬영 스텝만 4명이었고, 짐의 무게만 몇 십 킬로그램이었다. 굳이 내 스물한 살 때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기억을 10년이 지나 한 장의 이미지로 남기기 위해서라기엔, 너무 거창한 원정대를 꾸리고 만 것이다. 가급적 야영과 학생들의 분위기를 흩트리지 않기 위해 10미터 가량의 부드러운 천을 이용해 플래시 조명을 여과 시켰다. 일년 여 등산하는 여러 대학생들의 캠핑을 찍은 이 사진 시리즈가 바로 ‘사춘기 (Adolescence) 연작’이다.

글/사진 : 정연두(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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