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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키워드, 문화보고, 듣고, 직접 부딪혀라 예술대학 이혜경 학장 & 영화감독 방은진(의상학과 85) 동문

문화의 힘은 한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국력의 바탕이자, 경쟁력이다. 역사적으로도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은 끝내 다른 민족에게 복속되거나 자멸하고 말았다. 21세기, 글로벌 경쟁이 한층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자국의 문화적 역량을 끌어올리고 전파하려 노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인터넷의 보편화와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질적인 면을 살펴볼 때 우려되는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젊은 세대는 문화적 소양을 키우고 향유해야할 시기에 경쟁중심의 사회구조에 편입되어 버리고 만다. 스펙 쌓기가 지상 과제가 되는 상황에서 역사와 인문학, 예술에 시선을 돌릴 겨를은 없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인들이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일 이어지는 야근과 자기계발이라는 구실 하에 이어지는 학습 열풍 속에 문화는 외면 받고 있다. 문화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시대에 문화를 외면하는 젊은 세대의 상황은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이에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이혜경 학장과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동문 방은진 영화감독이 함께 자리해 ‘문화적 소양의 중요성과 이를 갖춘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인생설계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예술가가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조언에 대해 들어보자.

최근 이혜경 학장님께서는 ‘지역사회와의 창조적 파트너십’에 대한 칼럼에서 21세기 키워드를 창조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방은진 감독님께서도 작품을 제작할 때 창조성이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젊은 세대들이 꿈꾸는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두 분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혜경 학장(이하 경)> 젊은 세대들은 장점이 많아요. 굉장히 독립적이고, 다양한 정보에 접촉할 수 있는 정보력도 가지고 있죠. 무엇보다 당당하고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우리 때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영리하게 설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에요. 실무적인 것에는 상당히 능한데, 실제 창의성을 위한 자기 투자의 시간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쉬워요.

방은진 영화감독(이하 진)> 그건 결국 너무 일찍 시작된 입시위주 교육 탓인 듯해요. 우리사회는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요. 사실은 남과 다른 생각을 해야 예술도 나오고 창의성도 나오고 그야말로 이 시대의 기치인 창조경제가 창출되거든요. 학장님의 말씀에 저도 동감하는 것이, 청소년기는 물론 20대 대학생들의 경우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손쉬워진 반면 관심 있는 것을 직접 찾아가 보고,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고 있어요. 꿈은 많아 졌지만, 직접 부딪혀 봐야하는 단계에 직면하는 두려움은 커진 셈이죠. 저 역시 10년 가까이 교수직을 하며 많은 제자를 만났는데, 개중에는 배우로 이름을 날리는 제자도 있지만, 요가강사가 됐다든지, 퍼스널트레이너를 한다든지, 여행사를 하는 친구도 있어요. 모두가 배우가 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대학이나 학원을 막론하고 젊은 세대들의 ‘대중예술에 대한 꿈’을 여과해주지 않아요. 대신 어떤 학교, 학과에 가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헛된 조장을 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죠. 문화적인 소양을 쌓기 위해서라면 그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과감하게 여행을 다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림 한 장을 보더라도 실물을 보고, 국토순례라도 직접 해 보면서 뭐든 느껴보라는 거죠. 제가 부모님께 고마웠던 것은 아이였을 때부터 미술관을 데리고 다니셨다는 거예요. 그때는 뭔지 몰랐지만, 지금은 삶 속에 다양한 예술을 접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죠. 특히 영화라는 종합예술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 어느 하나에 천착할 수 없는 저로서는 그런 문화적 고민을 평생 이어왔어요.

경>미국에서 출간된 '훔쳐라, 아티스트처럼(Steal like an artist, 오스틴 클레온 저)'을 보면 창조성이라는 건 기존에 했던 것들을 참고하는 것이라고 해요. 피카소가 대표적인 예죠. 그저 똑같이 따라하는 것은 모방이지만 정말 잘 모방하면 예술이거든요. 그 책에서는 사실 우리가 꿈꾸는 것들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면 이미 다른 이들도 꿈꾸었던 것이라는 거예요. 대부분은 그냥 꿈으로 사라져버리지만, 개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 꿈을 시대를 바꾸는 예술로 자기화해 발표한다는 거죠. 이를 빌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머릿속에 참고문헌을 많이 가지고 있으라’는 거예요.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독서죠. 또 다른 하나는 방 감독님이 이야기하신 보고 느끼는 것, 탁월한 명작 예술에 대한 경험과 공부라고 봐요. 그런 공부는 단순히 요즘 인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역사와 철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 속에 골고루 인문학적인 요소가 녹아 있거든요. 자연과학은 우리 자연의 신비를 찾아가는 학문이잖아요. 공학도 다르지 않아요. 이런 것에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봤으면 좋겠어요. 다시 말하자면, 창조성이라는 것은 과거의 것을 탐색할 때 들어오는 영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시간적으로는 과거, 공간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글로벌한 이슈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과연 우리가 진정 편하고 행복한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할 때죠.

두 분께서는 20대 젊은 시절 문화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는지 궁금한데요.

경>우리 때는 정치적인 억압이 심했죠. 경제적인 불평등도 컸고요. 사학도였던 제 20대는 그런 사회적인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진짜 문제는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해석하지 못할 때거든요.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는 좌절하게 될 뿐이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과연 해결불가능한 일인가’ 이런 고민이 많았어요. 방법은 끊임없이 토론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 뿐 이었죠. 학교에 오면 최루탄이 일상인 상황에서 당시 우리에게 그런 고민은 굉장히 도전적인 이슈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치기어리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어요. 지금은 민주화되어 없어진 상황이죠. 하지만 그런 고민은 이 시대 젊은 세대에게도 다르지 않다고 봐요. 모든 것이 편하다고 하는 지금이지만, 과연 우리가 진정 편하고 행복한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할 때죠. 제가 젊은 시절에는 너무나 눈에 보이는 현실의 문제였기에 고민했고 우리나라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도 컸죠. 고민 끝에 유학을 결심했을 때 사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너무 버거웠어요. 역사를 보는 눈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이니까요. 결국은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연극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죠. 연극사를 공부하기로 하고 미국에 갔을 때 느낀 충격은 정말 신선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금서로 낙인찍힌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착한여자’를 읽던 순간 ‘아, 희곡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연극에 인생을 걸어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 후 연극과 이야기를 통해서 사회를 보고 역사를 바라보게 된 경험은 너무나 좋았어요.

그때부터 제 삶은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었어요.

진> 20대의 저는 약간 날라리였던 것 같아요(웃음). 정말 많이 놀았죠. 제 경우 책보다는 중학교 때부터 연극을 보러 다녔어요. 지금 중학생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 제 또래에 연극을 보러가는 친구는 없었어요. 거의 대중가수, 외국가수를 좋아했죠. 그런 것은 제게는 부질없었어요. 오히려 영화잡지를 통해서 올드 스타에 관심을 가졌고,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고요. 연극을 봐도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어렵고 깊이 있는 연극만 보곤 했죠. 부조리극의 정수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략 다섯 번 정도 본 것 같아요. 그걸 보며 ‘과연 부조리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죠(웃음). 재미있는 것은 이제 와서야 그 ‘고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지난 삶이 우리에게는 누구나 고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던 거죠.

경> 그때가 굉장히 격렬하긴 했어요. 내가 대학 다닐 시절인 70년대는 너무나 억압이 심해서 무서워서 시위할 엄두도 못 냈거든, 하지만 방 감독님 때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시작될 때니까.

진> 그러다가 70년대의 표상인 김민기 선생님을 만나 연극을 하게 됐죠. 당시 그분은 40대였어요.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시대였죠. 무엇을 통해서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었던 시대였어요. 지금의 세대가 겪는 20대의 모습과는 굉장히 틀렸죠. 당시 제 눈에 보이는 대학의 풍경은 같은 또래인 학생과 전경이 대치하는 모습이 일상이었어요. 그걸 보며 저는 엄청난 회의와 함께 도망가기 바빴죠. 대학을 졸업하고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은 게 스물다섯 살 때였어요. 그때 대학로로 뛰어들어 그야말로 극단에서 화장실 청소, 포스터 붙이는 일부터 시작했죠. 하지만 또 1년 정도 있으니 ‘내가 이걸 하려고 왔나’ 싶더군요(웃음). 동인제 시스템이 붕괴되는 즈음에 극단을 나왔죠. ‘누가 나를 알고 캐스팅을 해줄까?’란 걱정이 있었지만, 한 작품이 연결되니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더군요. 그때부터 제 삶은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었어요. 이 일을 시작해서 3년을 버티면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아닌지 알겠지, 5년을 버티면 내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고 다음 10년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계속 왔던 것 같아요.

경> 제가 대학을 다닐 때도 연극의 힘은 강했어요. 김민기 선생의 ‘금관의 예수’라던가 실험극장에서 했던 ‘에쿠우스’, 공간사랑에서 했던 ‘약장수’ 등 지금 보면 한국 연극사에 의미 있는 작품들을 대학교 때 많이 보러 다녔어요. 뭔지 모르지만 연극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느끼면서 거기에 시간을 투자했던 것 같아요. 방 감독님이 정말 존경스러운 건 현실에 딱히 동의하진 않았음에도 뛰어들어서 견뎌내고 본인의 입지를 다지신 거예요. 저는 그게 우리 뱃속 안에 본질적으로 이끌리는 충동, 혹은 ‘예언자적 상상력’이라고 봐요. 저는 ‘예언자적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는데, 이것이 꼭 미래를 이야기하는 예언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이거 말고 다른 것, 현실 사람들이 쫓아가는 것 보다 본질적인 것이 있다는 믿음을 의미하죠. 그걸 위해서 자기 삶을 던질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고요. 그런 믿음과 용기를 방 감독님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거죠. 전 지금 20대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안에 내장된 칩이 있다는 거죠. 그것을 잘 찾아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선생들의 역할, 어른들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라는 것은 각자의 입장에서 가장 걸 맞는 방법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에요.

요즘은 조금 풍자적인 문장이 됐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유행했었는데요. 특히 방 감독님은 배우와 감독을 거치며 우여곡절도 많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장 소중했던 도전과 실패의 경험은 무엇인가요?

진> 제가 감독이 되기까지는 현장만 익숙했을 분이지 연출 지망생들과 똑같은 5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오히려 연출자가 되기 위해 더 많은 담금질을 해야 했고, 민망한 순간도 많았죠. 그건 경쟁하고는 좀 틀렸던 것 같아요. 내 스스로의 당위성 내지는 나의 행복을 위한 올곧은 발자국이었다고 할까요? 이런 제 발걸음이 결국 여자로서 감독을 하려는 사람이라든지, 멀티태스킹을 하는 시대에 배우로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멘토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여성에 대한 편견 또한 감독이 되는 과정에서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1995년에 감독으로 출사표를 던질 때만해도 ‘연기나 잘하지’와 같은 편견을 느꼈죠. 그후로 저는 “배우출신 감독님이니 연기도 같이 하시죠”란 말을 들으면 “언제할지는 모르지만 하긴 하겠죠”라고 말하며 감독으로써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특별출연도, 제 영화에 그냥 지나가는 역할도 하지 않아요. 감독으로서 관객들에게 특별한 대상이 되기 전까지 그런 행보는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저 역시 여러 우물을 파는 노력을 해봤어요. 그렇지만 물이 안 나온다고 해서 허튼 짓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물이 안 나오는 우물도 있다고 생각 할 뿐이죠. 어떻게 보면 물보다는 우물을 판다는 행위 그 자체, 과정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물이 안 나오면 낙담을 하겠죠. 그렇지만 내가 이걸 판다고 해서 기름이 나온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저 판단을 잘못내린 거였고, 다음 우물을 팔 때는 더욱 심사숙고했을 뿐이죠. 어찌 보면 영리하지 못했고 무모한 부분도 있었죠.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문화적인 소양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실 것도 많으실 듯한데요?

진> 저는 젊은 세대들이 인문학 총서 같은 것은 제발 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것은 유행일 뿐이고, 소양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역사, 상고사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가지려면 인문학강좌에 역사를 중시했으면 좋겠어요. 전 우리 역사가 너무 왜곡 돼 있다고 생각해요. 학장님께서 역사를 하시면서 고심을 하셨던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겠어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변질시키고 은폐시키기 쉬운 게 역사였으니까요. 저는 그래서 역사가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 오히려 저는 그것을 미술사조를 통해서 배웠던 것 같아요. 거기에는 종교가 얽혀있고 인상파가 나온 이유가 있었거든요. 즉,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라는 것은 각자의 입장에서 가장 걸 맞는 방법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에요.

경> 매체가 될 수 있는 것이 예술이죠. 특히 연극이나 영화를 보면서 역사부터 시작해 아주 근본적인 인문학 혹은 사회과학적 질문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독서도 필요한 것 같아요.

두 분께서 20대 시절 계획했던 삶과 지금의 삶이 완전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맞아 떨어진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두 분 각자 20대부터 현재까지 선택의 순간에 어떤 방법을 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진> 선택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죠. 저는 그런 순간에 더 주체적이고 이기적으로 결정을 해요. 제가 한 결정은 책임을 지려했고요. 그러나 사실은 그 길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이 됐을 때는 절대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제 판단이 어떻게 다 맞을 수 있겠어요. 그보다 더 나은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생각을 하되 후회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우리 세대에 대학은 상아탑이었고, 지성인의 상징이었어요. 정말로 그들은 선택하고 행동했죠. 그런데 지금 세대들은 어떤 면에서는 유약하고, 어려 보이는 게 사실이에요. 물론 취업난이 두렵고 청년실업이 두렵고 그래서 실용학문을 다루는 과들이 생겼죠. 그게 세상이 변하는 것이겠지만, 그럴수록 대학에 와서는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해요. 열심히 노력하면 생기는 그 시간을 조금 더 보람되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누구나 불확실성에 시대에 살았어요. 저도 기성세대가 됐지만, 과잉 경쟁을 하지 않으면 주류에서 밀려난다는 두려움은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의 공통된 상황이에요. 자신을 어디에 놓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고민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어긋날 때일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데 능력이 모자라다면 오래 걸리겠죠. 장기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라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 조급해졌지만, 한걸음 한걸음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때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매진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될 수밖에 없어요. 온리원(only one)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좋은 친구를 찾으라는 것이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이에요.

현재의 젊은 세대 역시 그들만의 힘겨움이 존재합니다. 냉정한 조언도 필요하지만 따뜻한 격려도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마지막으로 꿈을 키우며 미래의 인재가 되고자 노력하는 젊은 세대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 지금까지 ‘젊은 세대’와 ‘나’를 너무 분리해서 이야기한 듯하지만, 놀랍게도 저 역시 그들 못지않게 가고 싶은 길이 많고,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직 시작도 안했어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면 젊은 세대의 불안함이 더욱 공감되요. 방 감독님도 말씀하셨지만, 특히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그런 불확실한 영역으로 가야하잖아요. 불확실하고 어디보다도 경쟁이 세고, 스타와 아닌 사람 간에 어디보다도 불공평함이 존재하는 세계죠. 그들을 그런 현실로 내보내면서 저는 편안하게 후방에 앉아서 그 경쟁이 가치 있고, 인생은 견딜만하다고 이야기할 순 없어요. 대신 그들과 같이 위험을 느끼고, 하고 싶은 작품도 해보고 실패하기도 하곤 하죠. 젊은 세대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살아왔는데 살고 보니 이거다’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나도 너희들과 똑같이 헤매고 불확실성 속으로 나가고 있다, 같이 가자’라고 말하고 싶네요. 위기는 우리를 최악의 인간으로 만들기도 하고 최선의 인간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말이 있어요. 지금 젊은 세대가 있는 그 자리에서 잘 견뎌내야, 사회에 나갔을 때 역시 그곳에서 견뎌내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자기를 지원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갖게 될 거예요. 학생들이 대학생활에 집중하고 이곳에 있는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인터뷰를 마치며 방은진 감독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극작가 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사무엘 베케느의 말을 인용했다.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시도했는가? 실패했는가? 괜찮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이혜경 학장 역시 “불확실성은 젊은 세대만이 아닌 어른들 역시 다르지 않다”는 말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저도 실패 많이 했거든요(웃음).

경> 학생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어요. 어른들은 더 암담하다는 것이죠. 실패해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으니까요. 학생들만이 불확실성을 겪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그리고 관계의 폭을 좀 넓히길 바라요.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시도했는가? 실패했는가? 괜찮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인터뷰를 마치며 방은진 감독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극작가 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사무엘 베케트의 말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이혜경 학장 역시 “불확실성은 젊은 세대만이 아닌 어른들 역시 다르지 않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기나긴 삶의 여정에서 젊은 시절의 실패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실패보다 더 경계해야할 것은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현실안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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