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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타임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서점에 차고 넘치는 자기계발서들과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멘토특강의 대부분은 마치 콜로세움으로 들어서는 검투사들을 위한 매뉴얼 같다. 세상은 거대한 전쟁터이며, 최후까지 살아남는 자만이 행복할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 속에서 사람들은 스펙을 쌓는다는 명분하에 극단의 상태에까지 내몰린다.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남들보다 하나의 자격증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라는 선동이 넘쳐난다.

경쟁에서 지지 말라고, 싸움에서 패배해선 안 된다는 자극적인 구호들이 들려온다. 새벽부터 영어학원의 창문엔 불이 켜지고, 늦은 밤에도 도서관에는 빈자리가 없다. 그 곳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이데올로기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때때로 우린 술자리에서 낙담한 친구를 위로할 때나, 실연당한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한 마디를 건 낼 때마저도, 이상한 구호를 사용한다. “Fighting"이 그것이다. 늘 ‘싸우자’라고 말하는 이 말 속에서 조금씩 ‘나’는 지쳐간다. 그리곤 살아있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늘 전투이며 항상 무엇인가와 싸워야만 하는 것일까?

행복은 상대적일까?

한 마라토너가 결승점을 향해 달려온다. 그리곤 마침내 골인한 그가 이렇게 인터뷰한다.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나라는 존재란 무엇일까? 언제나 스스로와도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존재인 걸까? 아마도 이런 강박에는 끊임없이 나와 주변을 비교해서 자신의 행복지수를 찾아내는 이상한 습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시행한 실험의 결과는 씁쓸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수입이 늘어나는 것보다 누군가가 실직하거나 금전적 손해를 봤을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남들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을 알려주는 바로미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누군가가 불행을 당했다는 인터넷 기사에 ‘고소하다’는 듯이 저주를 퍼붓는 댓글은 이제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우린 조금씩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I LOVE ME 하트손모양 일러스트

지금의 삶에 감사하라

경쟁에서 이기는 100가지 방법을 배웠지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미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누군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삶이란 그 자체로 선물이며 행복이다. 성공이 삶의 목적이 아니다.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영국의 로큰롤 밴드 크래쉬의 멤버인 조 스트러머는 로큰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로큰롤이란 곧 ‘살아 있어서 참 좋다’라는 것입니다.”

록밴드가 연주하는 공연장에 들어서면 중력을 잊은 듯, 하늘을 향해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청춘들과 만난다. 그들에겐 오늘 이 자리가 곧 삶의 목적이며 희열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래서 온전한 나의 삶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
 

선물상자 일러스트 이미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경쟁의 개념과는 다르다. 온전히 자신을 완성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잭 니콜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평생을 강박증에 시달리며 사람들을 믿지 못했던 한 남자가 마침내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자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랑이란 그래서 위대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든다. 이 안에서 누군가와의 경쟁은 없다. 그저 어제보다 나은 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몫만큼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몫의 행복을 찾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순간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나는 특별하다

모두가 똑같은 공부와 시험을 준비하고 똑같은 아파트를 꿈꾸고 똑같은 자동차를 원하면서 우린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잊어간다. 남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우린 언제부터인가 잊어버렸다. 자존감의 위기도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내가 남들보다 더 나은 학교에 가고, 직장을 얻고,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행복감은 결코 자존감이 될 수 없다. 그러한 만족은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불완전한 것이다. 다음 경쟁에서 남들보다 못한 점수를 받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질 신기루 같은 것이다. 자존감이란 남들과 다른 나에 대한 자부심이지, 남들 위에 올라선 나에 대한 만족감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들과 달라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누군가와의 약속을 위해 가장 멋진 옷을 골아 입고 집을 나섰을 때, 누군가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마주 걸어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우린 당황스러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린 우리 안에 남과 다르고 싶은 욕망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단지 잃어버린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선 그 욕망을 복원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것이 결코 틀리거나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사자를 바라보는 고양이 사진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은 한 소녀가 있다. 그녀는 30번이 넘는 수술을 통해 다시금 삶을 얻었다. 그러나 달라진 외모의 그녀를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좌절의 순간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은 내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마치 연예인들을 쳐다보는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자존감이라는, 자기에 대한 사랑이라는 질문의 정답이 담겨 있다. 내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이다. 특별함이야말로 우리가 삶 속에서 추구해야할 가장 멋진 무엇이다. 그녀의 외모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불행을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줄 아는 그 정신이 특별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 행복하자. 마치 로큰롤 공연장의 청중들처럼. 남들과의 경쟁이 아닌, 그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나를 사랑하자. 그리고 다른 이들과 다른 나의 모습이 바로 특별한 것임을 깨닫자. 그것이야말로 나의 자존감이며 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글 :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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