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K : 일반적으로 정신과라고 하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반적 편견에 어떻게 대처하고 계세요?
송형석 : 사실 편견이라는 것이 그런 일반의 인식에 대한 문제라기 보다는, 일례로 애가 안 좋아서 병원에 왔는데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란 것을 이해하시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이해한다고 그래요. 하지만 “엄마가 이러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라고 말하면 “아니오, 그렇지 않은데요? 그게 아닌데요?” 사람이 자기 문제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자기 문제는 절대 아니라는 식으로 거부를 해요. 책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일단은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이 그쪽과 관련된 거예요. 병원에서는 환자들을 설득하려고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저렇게 생각하셔야 한다…” 그런데 거의 10명 중 6명이 안 믿어요.
uniK :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문제보다는 병원에 오는 사람들조차 마음을 열지 않아서 느끼는 고충이 더 크다는 말씀이군요.
송형석 : 사람들이 준비가 안 돼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혹시나 나를 공격할까 두려워하고 방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그래서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풀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내가 여기 않아서 상담만 하고 있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방송 출연도 좋고,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도 쓰는 거지요.
uniK : 전작 <위험한 심리학>에 이어 최근 <위험한 관계학>이라는 책도 내시면서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송형석 :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위험한 심리학>의 내용이 너무 쉬우니까, 욕도 많이 먹었어요.(웃음) 하지만 그건 상담을 하면서 괴롭지 않았던 사람들 얘기에요. 쉽게 풀어서라도 일반 대중들이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uniK : 그런 의도에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도 출연하셨던 건가요?
송형석 :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때 저는 멤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분석하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이 사람은 이런 스타일이고 이런 스타일의 사람은 이런 식의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의사가 딱 한번 보더니 알아 맞췄다, 검사 한번 하니까 다 나오더라” 이런 식으로 본단 말이에요. 그건 제가 TV를 통해 그 친구들을 오랜 기간 동안 봐 오면서 느낀 점을 섞어서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그럴싸한 것이지, 실제 검사 한번으로 그렇게까지 파악할 수는 없어요.
uniK : <위험한 관계학>을 쓰시면서 목표했던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송형석 : 사실 좀 불만인 게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 자신의 마음을 볼 생각을 안 하고 통계 자료나 이런 걸 통해서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이것만 보려고 들어요. 연예인 한 명 죽을 때마다 정신병 환자가 확 늘어요. 일종의 ‘붐(Boom)’이죠. 자성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와서도 “저 문제 있나요? 없어요? 그럼 갈게요” 하는 식이란 말이에요. 살짝 간만 보고 간다는, 정말로 자기를 확인해 보겠다는 생각이 부족한 상태죠. 제가 책을 쓰면서 목표하는 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성하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고, 거기에 점차 익숙해지면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역시 차츰 사라지게 될 거라 생각해요.
uniK : 20대는 부모와의 관계 외에도 친구, 연인과의 관계 형성이나 유지 및 취업과 진로를 앞두고 고민도 많은 시기인데요.
송형석 : 지금 대학생 세대는 기성 세대에 의한 일종의 ‘피해’를 입은 세대라고 봐요. 자율적 사고를 못하게 하고 맨날 학원 보내고, 공부하고 스펙 쌓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놓았거든요. 스펙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만 달리면요? 정말 스펙도 잘 나오고, 인생 성공도 해요.(웃음) 하지만 나이 4~50대가 되면 공허해지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싶어진다는 거죠. 그 나이가 되어서 사소하게 병 든다거나, 자녀에게 문제가 생긴다든가, 직장에서 잘리기라도 하면 정신적 충격으로 버티질 못하는 거예요. 인간적으로 성숙할만한 사고를 하지 않고 살아와서인데, 20대 때에는 잘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uniK : 그렇다면 흔히 상담하시는 20대들의 고민 중 하나는 무엇인가요?
송형석 : 제일 흔한 경우가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 잘했어요~”예요.(웃음) “고등학교 때 성적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런 대학은 못 가겠어요 아니면 편입할래요, 이 대학을 나오면 내 인생이 망가져요…”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는데 현실은 바닥이라는 거죠. 실제로 보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네가 그렇게 자존심이 하늘을 찔러야 마땅한 사람도 아니고 네 현실이 그렇게 바닥도 아냐. 남과 비교해서 그렇게 큰 차이도 안 나는데 너만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문제는 그 말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질 않는다는 거지요. 어릴 때부터 다양한 걸 흡수하면서 자기 인성을 성숙시켰어야 했는데, 대개는 공부 잘 하는 거 하나 가지고 살아온 인생이거든요. 이게 제가 보는 20대 친구들의 3분의 2를 차지해요.
uniK : <위험한 관계학>에서 부모와 나의 관계에 대해 분석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대가 되어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 생기는 저마다의 ‘피해 의식’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요?
송형석 : 누구나 어렴풋이라도 본인의 문제가 일정 부분 부모와 관련이 돼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만 정작 그 실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알게 됐다고 해서 즉 내가 아버지가 밉고 아버지가 잘못을 했다고 해서 비난만 할 것이냐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먼저 들여다 보라는 거예요. 융통성을 가지고 나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용서의 여지가 생기게 되죠.
하나의 방법으로, 그렇다면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왜 그렇게 됐는지 살펴볼 수 있겠죠. ‘엄마는 어떤 식으로 살아서 저런 사람이 됐는지, 아빠는 어땠는지…’ 잘 살펴보면 ‘아, 아버지는 저렇게 커서, 저런 성격이 된 다음에 나를 낳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죠.(웃음) 할아버지, 아버지, 나… 이렇게 내려오는 어떤 행동, 습관, 사고방식이 서로 그물처럼 얽히는 것을 보면서 어느덧 아버지를 용서하는 마음까지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대간의 화합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죠.
uniK : 보통 ‘아빠가 술을 지긋지긋하게 마셨으니까, 난 절대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하잖아요?
송형석 : 그러다 보면 ‘술만 안 마시는 아빠’가 되어 있어요. “아빠가 술을 마시는 게 정말 싫은데, 나도 열 받으니까 술 마셔야지!’ 하는 아무 생각 없는 사람도 있지만.(웃음) 진정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부모를 입체적으로 보지 않으면 안 돼요. 할아버지 세대에서 받은 영향으로 아버지가 저렇게 되었다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내가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가 보이죠. 굳이 술을 절대 마시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져요. 아버지가 있던 자리의 반대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올바른 자리를 찾아가라는 거죠.
uniK : 사실 그런 경우에는 미움이나 피해 의식 외에 막연한 두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송형석 : 아버지,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바로 그런 것인데, 실체를 바로 봐야죠. 그리고 다른 사람도 봐야죠.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 우리 아빠 같지는 않잖아요? 술 잘 먹으면서도 자기 할일 다 잘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럼 ‘아 저래야 하는구나’ 하고 롤 모델 삼아 그쪽으로 가는 거죠.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고 자기 속마음을 주고 받으려고 해야 그런 과정도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uniK : 이럴 때 가장 쉽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대화의 시간을 가져라, 대화를 통해 소통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잖아요?
송형석 : 저 그런 거 진짜 싫어해요!(웃음) 누가 그걸 모르나? 해도 안 되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사람 사이의 소통이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해요. 사람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이고,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무조건 “소통은 어차피 안 되는 거야” 이건 아니에요. 아버지, 어머니는 소통을 못한 채로 계속 5~60년을 살아온 세대예요. “아빤 이래서 문제야!”라고 하면 본인들이 알아도 그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죠. 소통의 벽을 허물고 싶다면 우선은 이 분들이 원하는 얘길 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 “아빠, 할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 고생 많이 했죠?”라고 물으면 자기 아들이 하는 얘기더라도 솔깃하게 들어요. 대개 아들들은 아버지한테 동등한 입장에서가 아니라, 아빠로서 나를 인정해주고 내 말을 다 들어달라고 요구하거든요. 하지만 윗사람으로서 모든 걸 포용해준다는 건 정말 성숙한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고, 대부분의 인간은 그런 정도로 성숙돼 있지 않아요. 자식들이 “엄마, 아빠! 완벽한 존재가 돼주세요” 해도 “미안하다, 나도 힘들단다” 말하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심리거든요. 여기에서 자꾸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uniK : 힘들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송형석 : 미안하다 한 마디만 해도 될 거 같은데, 이 얘기도 자존심 상해서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사실 20대의 아들딸들이 스스로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버리란 건데 이것도 역시 허무한 얘기이긴 해요. “부모 말고 다른 사람을 봐” 이때 다들 쉽게 선택하는 게 이성 친구죠. 부모에게 바랄 걸 이성 친구한테 바라니까 이게 문제가 안 되겠어요? 잘 해나가는 사람은 부모에게서 받아야 할 것들을 이성 친구나 동성 친구, 선후배 관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양분을 쌓아나가죠. 책이나 다른 위대한 사람들의 경우를 보기도 하면서요. 그러다 보면 차츰 아버지, 어머니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어요.
uniK :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가능 하려면 어떤 조건이 선결돼야 할까요?
송형석 : 소통은 안 된다(어렵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긴 해요. 이렇게 내가 이야기를 해도 2~30% 정도밖에는 전달이 안되고 그나마도 저쪽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만 가능하죠. 하지만 거기에서 절망할 것이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의사나 상담하는 사람들이 제일 힘든 게 뭐냐 하면, 힘들게 병을 고쳐놓고 살려줘 봐야 욕하고 덤빈다거나, 혹은 죽어 버리고… 계속 그런 절망감을 느낀다는 게 문제에요. 하지만 의학이나 이런 쪽은 결국 그 10%의 가능성에 매달리며 가치와 희망을 찾아야 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소통이 안 되는 것 같고, 막혀 있는 것만 같아도 스스로를 믿으며 끊임없이 시도해봐야 하는 거죠.
uniK : 굳이 병원을 찾지 않더라도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같이 20대의 고민은 사실 비슷한 것 같습니다.(웃음)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송형석 : 뭐라고 할까요? 영어 공부 열심히 하시고…(웃음) 제가 해주고 싶은 얘기는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라는 건데, 결국은 직, 간접 경험을 늘리라는 거죠. 다양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사고와 삶의 방식이 형성돼요. 상대방이 이렇게 해라, 한다고 해서 “네 알겠습니다” 이거 자체가 주입식이에요. “네가 좀 알아서 해봐” 자꾸 경험하다 보면 쓰레기장에 굴러도 얻는 게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단순히 5년 앞만 내다보고 준비할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후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