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K 지난 7월 말 평론가님이 진행자로 무대에 섰던 <한여름의 쏘 쿨 재즈> 공연이 막을 내렸습니다. 순수 국내 연주팀이 공연하는 재즈 콘서트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남무성 아주 좋았고요. <쏘 쿨 재즈> 공연 이틀 동안, 첫날 총 540석에서 500석을 채웠어요. 성과가 있었죠. 공연 명칭은 <쏘 쿨 재즈>인데 공연장 내부는 더웠다는 거? 관객들한테 그랬어요. 여기서 좀 덥고 공연 끝나고 여기를 나갔을 때 쐬는 바람이 평소보다 훨씬 ‘쏘 쿨’ 할 거라고.(웃음) 재즈 피아니스트 배장은 씨가 연주를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제약상 준비한 만큼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 공연이었어요.
uniK 곧바로 지방 공연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무슨 공연이었나요?
남무성 제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 개봉 이후 국내 재즈 연주자 1세대 선생님들의 행사가 많아졌어요. 포항 CBS에서 주최했던 공연이었는데, 모시고 다니면서 공연 때 사회도 봤어요. 공연 중간 중간 스크린을 통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나오는 콘셉트의 공연이에요. 선생님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활동이 거의 없으셨다가 이제는 고속버스를 대절해서 다니니까,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그래요!(웃음) 우리들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됐다~
uniK 사비를 털어 넉 달 만에 뚝딱 만들었다는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뮤지션들의 영화라는 점에서 빔 벤더스 감독의 1999년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곧잘 비견되곤 하던데요. 영화를 작업하실 때 시나리오부터 직접 작업하신 건가요?
남무성 그렇죠. 다큐멘터리 형식이긴 했지만 영화잖아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사실 지루해서 전 끝까지 못 보겠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네가 감히 빔 벤더스를 모욕하냐’ 그러는데, 재미없는 걸 어떻게 재미있다고 해요? 그렇게는 만들지 말자고 생각해서,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었는데, 연기를 요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촬영 방법과 편집상의 것이었어요. 선생님들은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고 연주하신 것이고, 스태프들은 거기에 맞춰 찍고 편집한 거예요. 예컨대 영화 마지막 부분 공연을 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영화를 찍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공연을 만든 거죠. 그런 것들이 일종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uniK 네이버 뮤직에 칼럼을 기고하시는 일을 비롯해 재즈 관련 음악 프로듀서, 만화 작업 등을 해오셨는데요.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남무성 사실 이 영화는 저한테 뭐가 ‘씌어서’ 만든 거예요. 만화든 음반이든 영화든 장르는 다 다르지만 ‘재즈’라는 공통된 테마가 있죠. 당시에는 1세대 재즈음악인들이 매해 한 분씩 돌아가시니까… 더 늦기 전에 이들에 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책으로 쓸까, 아니면 기념 음반을 낼까 하다가 ‘영화’가 가장 파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상 한다고 마음을 먹었더니 일사천리로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uniK 기존에 하셨던 작업들이 영화 촬영 및 편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셨나요?
남무성 영화를 찍으면서 흥미롭다고 느꼈던 점이, 이전에 제가 했던 일들이 상당히 도움이 됐어요. 잡지 편집장을 오래 했거든요? 보는 사람은 그냥 훌훌 넘기면서 보는 잡지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집이나 전체적인 기사들의 배열에서 일관된 톤을 유지해야 해요. 이 기사는 어디쯤에 나와야 하고, 여기에 비주얼이 나오면 글은 얼마큼 나오고, 이다음에는 뭐가 나와야 하고… 영화도 편집의 묘미가 있는 작업 같아요. 만화를 그린 것도 확실히 영화를 찍을 때 도움이 됐는데, 만화에서는 감정의 표현을 그림 컷의 연결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하거든요. 또 촬영 현장에 갈 때는 카메라맨들이 찍어야 할 앵글을 알기 쉽게, 콘티를 만화로 직접 그려 갔어요. 무엇보다 제가 재즈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감정선을 음악과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으니 어느 정도 수월했던 것도 같고요.
uniK 영화 촬영 중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남무성 재즈연주자 선생님들이 성격이 다 다르고 개성도 워낙 강해서 그들 사이에서도 누구랑 더 친하고 안 친하고가 있어요. 그래서 촬영 초반에는 이 분들을 통솔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영화를 찍다 말고 삐치시면, 달래려고 막걸리 먹으러 가야하고…(웃음) “나 안 찍어~ 쟤 저렇게 나오면!”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게 좀 힘들었죠.
uniK 재즈라는 테마 안에서 뮤지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부여한 기록들을 남기는 데 주력하고 계십니다. 칼럼이나 만화, 영화에서도 그러한데요. 이러한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시는 것은 평론가님의 어떤 사명의식의 일환이라 볼 수도 있을까요?
남무성 재즈잡지 편집장 일을 5~6년 하다 보니까 재즈에 대해 어렵다는 독자들의 이야기가 많았고, 재즈를 만화로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책 <Paint It Rock>에 시나위의 신대철 씨가 추천 글을 써줬는데 이런 말을 했어요. ‘마치 1950~60년대 당시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만화가 전개된다’고요. 지금 3년째 안 나오고 있기는 한데,(웃음) 사람들이 <Paint It Rock2>를 많이 기다리고 있어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면 신대철 씨가 말한 그러한 특징 때문인 것 같아요. 예컨대 ‘딥 퍼플’이란 팀이 1973년에 공연을 하는데, 그 관중 중에 아직 유년기의 ‘메탈리카’ 멤버들이 있는 거예요. 그 소년들이 딥 퍼플 음악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이후 메탈리카라는 걸출한 록 그룹이 탄생하게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이야기의 알고리즘을 계속 가지고 가는 거예요. 그러려면 방대한 자료를 봐야 해요. 그래서 인터뷰를 많이 봐요. 음악사에 있어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의 과정이 나름 매력이 있어요. <Jazz It UP!>은 일종의 사명감으로 시작한 반면 <Paint It Rock>은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어요. 왜곡된 정보들은 가려내고 재미있는 히스토리로 풀어 가면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uniK 사실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열정을 계속 이어가기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본래는 디자인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재즈 잡지를 창간하는 등 음악 계통으로 진로를 선택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남무성 저도 제가 음악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활동도 하고 음악 카페에서 소위 ‘판돌이’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입대 전에는 백그라운드 뮤직, 그러니까 영화 음악이나 TV음악을 만들고 싶었고요. 그래서 대학시절에는 미디 음악 작업을 꽤 오래 했고, 악기 녹음 스튜디오까지 만들어서 연주도 하고 그랬어요. 직접 악기를 다뤄보고 했던 경험들이 지금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되고 있죠. 그런데 제가, 글까지 잘 쓸 줄은 몰랐어요!(웃음) 제대하고 나서는 좀 암담했었는데 당시 <인매거진>, <페이퍼> 같은 무가지가 유행이었어요. “우리도 재즈잡지를 한 번 내보자” 하고 아는 동생과 의기투합했죠. 미대를 나왔으니까 매킨토시를 다룰 줄 알았거든요. 글도 쓰고 디자인도 하면서 무작정 시작했던 거예요.
uniK 재즈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하시게 된 건가요?
남무성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재즈 레코드판을 샀어요. ‘척 맨지오니’ 라든가 ‘스파이로자이라’, ‘마이클 프랭스’같은 가벼운 재즈 위주였죠. 고등학생 때 용돈을 5~6천원 받아서 회수권을 사면 한 2천원 돈인데 그걸 안사고 다 LP판을 사는 거예요. 재즈 원판은 비싸서, 중고도 당시 만원 넘어갔거든요. 학교는 걸어 다녀요. 그러다가 힘드니까 색 볼펜으로 가짜 회수권을 만들었어요. 그걸 위조를 되게 잘 해서, 친구들한테 돈 받고 싸게 팔기도 했었죠. 제가 미대를 가겠다고 생각한 계기였을지도 몰라요.(웃음) 대학생이 돼서 당시 방배동에 있던 음악 카페 ‘파블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거기는 LP판이 만 장이나 있는 거예요. 저한테는 천국 같은 곳이었죠. 20대 초반 들어 굉장히 많이 음악을 배우게 되었던 시간이었어요.
uniK 그 1만 장의 LP를 다 들으셨어요?
남무성 음악 카페의 사장님께서 LP판만 하루에 한 300만원어치를 사와요. 듣고, 좋은 걸 체크하라고 하죠. 일반인들은 재즈의 세계가 굉장히 좁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우주만큼 넓어요.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 같은 사람들의 앨범은 한 10장 사면 다 모을 수 있는 반면 ‘키스 자렛’ 같은 사람은요. 지금까지 나온 게 100여 장이 넘어요. 재즈는 변주 음악이니까… 다 들으려면 얼마나 지겹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재즈를 누구보다도 먼저 들었다는 것만은 자부할 수 있어요.
uniK 가장 혁신적인 재즈 뮤지션을 세 사람 정도 꼽으신다면 누가 있을까요?
남무성 저라고 특별한 사람이 나오진 않아요. 찰리 파커, 마일즈 데이비스, 빌 에반스. 이 세 사람은 누구한테 물어봐도 똑같은 반응이 나올 사람들이에요. 1930년대까지만 해도 재즈는 대중적인 스윙음악, 춤곡, 포퓰러 송이었는데 찰리 파커로 오면서 감상용 음악으로서의 예술성을 부여 받게 돼요. 모던재즈의 효시인 비밥(bebop, 1940년대 중반 미국에서 유행한 자유분방한 재즈 연주스타일)을 창시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마일스 데이비스는 10년 단위로 바뀌어온 재즈의 유행 스타일을 항상 앞서갔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어요. 쿨 재즈도 가장 먼저, 퓨전 재즈도 가장 먼저… 빌 에반스는 클래식의 화성을 도입해 재즈를 체계화 시킨 사람이에요. 재즈는 원래 미국 뉴올리언스의 흑인들이 못 배워 갖고, 음을 잘못 쓰던 버릇에서 파생된 ‘거리의 음악’이었거든요. 소위 말하는 현대 모달 재즈(Modal Jazz)의 선구자가 빌 에반스라 할 수 있죠.
uniK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놀아야’ 할까요?(웃음)
남무성 제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에서 ‘브라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재즈 뮤지션 분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브라보’가 아니에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정말 힘들게 살아왔지만 후회는 안 하는 거거든요. 자기 일생에 ‘브라보’가 될 수 있는 한 가지를 어떻게 놀든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빨리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도 재즈 잡지를 내게 될 줄을 26살 때까지는 몰랐어요. 그러나 그전까지 관심사가 ‘재즈’였고, 음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다 보면 거기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 가지,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책도 많이 보고 다양한 문화를 즐길 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그런 마음이라고 할까요?
uniK 참 다재다능하신데 ‘재즈평론가’라는 스스로의 직업을 앞으로도 유지하실 계획인가요?
남무성 재즈평론가란 직업이 누군가가 공식적으로 자격을 준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서 불러주는 이 ‘재즈평론가’란 타이틀이 참 어렵게 얻어진 것이라 생각되고, 저한테는 제일 매력적이에요. ‘헤비메탈 평론가’가 아닌 게 너무나 다행이구요.(웃음) 그 많은 음악 중에 남들이 많이 안 들어주는 재즈를 택했다는 것,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소외된 음악은 가끔 가다 ‘내가 돌보고 싶다’는 애정이 생겨요. 그러다 보니 영화도 만들고, 재즈 뮤지션들의 대소사에도 내가 도움 드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서게도 되는 것 같아요.
uniK 최근에 활발히 활동하는 재즈밴드나 가수들 가운데 추천하시는 국내 뮤지션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남무성 보컬은 웅산, 우선은 나랑 친해서.(웃음) 블루스를 제일 잘 알고 있는 가수예요.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있는 거예요. 왜 블루스가 중요하냐면 재즈는 모태가 블루스거든요. 재즈의 화성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를 ‘블루 노트’라 하니까. 사실 다른 음악 장르도 마찬가지에요. 얼마 전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 보니까 신대철 씨가 신인 밴드들에게 ‘블루스 곡을 소화해오라’는 과제를 내기도 하더라고요. 우리는 템포가 빠르면 댄스이고, 느리면 블루스, 이렇게만 생각하는데 블루스는 블루 화성으로 내면 블루스인 거예요. 거기에서 조금 리드미컬한 게 R&B죠. 적어도 재즈 보컬이라면 블루스를 완벽히 이해하고 시작해야 해요. 제가 볼 땐 웅산이 다양한 음악 장르를 소화해낼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서 칭찬해주고 싶어요.
uniK 국민대 학생이 트위터를 통해 보내온 질문이에요. 재즈 장르를 보다 많은 음악 팬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신데, 대중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남무성 재즈가 선입견이 참 많은 장르 같아요, 아직도 흑인들이 주로 하는 남의 나라 음악, 이렇게들 연상하죠. 그런데 록이나 헤비메탈도 우리가 먼저 한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재즈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에 버금가는 음악 장르로 인식되고 있어요. 일본이든 유럽의 어디든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기내지들을 보면 재즈페스티벌이나 공연, 클럽들의 소개가 빠지지 않아요. 그만큼 전 세계적인 음악이에요. 재즈는 연주곡이 많죠. 그리고 재즈만이 가진 예술성도 있고요.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재즈 뮤지션들이 많다는 점을 아시고,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향유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추가적으로는 라이브 공연을 많이 접하셨으면 좋겠고요. 재즈야말로 현장에서 들어야 해요. 직접 리듬을 어깨로 타 보면 ‘아, 이런 것이 재즈의 매력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재즈평론가 남무성]
2011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영화TV음악상
2006 썸머 재즈 세너테리움 음악감독
2004~2005 문화관광부 후원 재즈워크샵 강사
2003 대한민국 만화대상 특별상, 신인상
1997~2001 재즈월간지 몽크뭉크, 두밥 발행 편집인
재즈평론가 남무성 님
국민대학교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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