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굿바이 게으름>의 저자 문요한은 20대 때 지독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스스로를 탐색하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가 됐다. 타고난 적응력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위안이나 막연한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를 직면하고, 이해하고, 책임지는 ‘정신적인 체력’이라고 저자 문요한은 말한다. 그는 현재 더나은삶정신과의원과 정신경영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개인과 조직을 대상으로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심리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대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시기이며, 자신을 이해해야만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잘 도달할 수 있다는 문요한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Q.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정신경영아카데미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정신경영아카데미’라는 말이 신선한데, 병원과는 어떻게 다른 곳인가요?
병원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치유하는 곳이라면, 정신경영아카데미는 심리훈련을 통해 일반인들이나 조직원들의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교육기관입니다. 병원처럼 증상을 치유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능력을 계발하고 훈련해서 더 강화시키는 교육기관이죠.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서 만들게 됐습니다.
Q. 정신경영아카데미 프로그램 중 ‘멘탈 트레이닝’이 눈에 띄는데, 멘탈 트레이닝도 헬스나 수영을 배우듯이 ‘운동’으로 보아도 될까요?
똑같다고 보면 돼요. 예전에는 돈을 들여가면서 신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잖아요. 그냥 개울에 가서 수영하고 마당에서 체조하는 게 다였어요. 하지만 현대에는 헬스나 수영 같은 운동을 돈과 시간을 들여 누구나 다 합니다. 심리훈련도 마찬가지에요. 정신적인 능력도 용불용설(用不用說, 생물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있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의미) 에 해당된다고 보시면 돼요.
Q 정신과전문의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본래 꿈이 정신과전문의였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학력고사 세대에요. 그런데 그 당시 어떤 대학, 어느 학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그 동안 고민해본 게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망설이고 있으니까 부모님이 지방에 있는 의대를 가라고 말씀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그렇게 했어요.
그 후로 굉장히 방황을 했죠. 휴학을 두 번하고 8년 만에 졸업을 했어요. 방향이 안 잡혀서 막막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본과 3학년 때 과연 의사라는 직업이 나한테 맞는 것인지 너무 고민이 돼서 휴학을 했는데, 휴학 후에도 답은 내리지 못했어요. 그때 생각을 했죠. 다른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다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하고. 그래서 나에 대해 좀 더 탐색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신과에서 그런 공부를 하니까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정신과 공부를 시작을 했죠.
실제로 의사가 되고 비로소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졸업하고 개인 병원을 운영했던 2002~2004년까지도 삶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굉장히 답답하고 미래가 막막하고 내가 내 삶을 산다는 느낌이 안 들었거든요. 결국 병원을 정리하고 제2의 탐색에 들어갔죠. 그리고 그때 방향을 찾았어요. 사람들이 아프기 전에 정신건강을 향상시키는 일을 찾고 계발하는 것이 더 뜻 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걸 더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만든 게 정신경영아카데미에요. 이전에는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 당시 고민과 방황이 꿈을 확실하게 만들어준 셈이죠.
Q <굿바이 게으름>을 비롯해 정신건강에 관한 책도 많이 쓰셨고, 강연도 다니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강연을 하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최근에 낸 책 <스스로 살아가는 힘>과 관련된 강연이 가장 많죠. 자율성을 주제로 쓴 책인데, 거기서 나오는 자기결정력, 자기조절능력,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방법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Q 요즘 들어 ‘힐링’에 관한 강연이 유행처럼 번지는 듯합니다. 전문가로서 이런 현상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힐러나 멘토를 찾아 다니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많이 지쳐있고 불안하다는 증거겠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힐링 열풍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에요. 힐링하고 비슷한 단어로 테라피가 있는데, 둘 다 치유라는 뜻을 지니지만 개념은 달라요. 힐링은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치유를 해나간다는 의미에 가깝고, 테라피는 외부에 의해 치료가 되는 것을 뜻해요. 쉽게 말해 테라피는 환자가 치료를 받는 것처럼 어떤 증상의 개선이나 완화를 얻는 수동적인 의미이고, 힐링은 삶의 활력을 되찾는, 보다 본질적인 회복을 의미하죠.
그런데 우리 사회의 힐링은 주체가 되는 ‘내’가 굉장히 수동적이에요. 내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누군가를 자꾸 찾으려고 해요. 스스로 직면하고 해결해나가는데 힐링이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혹 일시적인 위로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Q. 선생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힐링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추천해주실 만한 스트레스 해소방법이 있다면?
보통 정신과에 오시는 분들의 공통점이 생각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요. 그런 생각은 또 잘 안 멈춰져요. 뇌가 발달하는 순서를 보면 뒤에서 앞으로 발달해요. 뒤쪽은 감각인데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은 별로 생각이 없어요. 감각만 있으니까 행복할 수 있죠. 자꾸 뛰어다니고 움직이고,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감각적인 즐거움을 찾는 거죠. 청소년기에는 중간 부분이 발달하는데 중간부분은 감정이에요. 주로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 부분이 발달하죠. 고등학교를 마치고 성인이 되면서는 앞쪽, 사고와 이성 부분이 발달해요. 이 세 부분이 잘 조화가 되면 좋은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그게 잘 안 돼죠. 이럴 때는 감각에 집중하는 일을 찾는 게 좋아요. 내 몸을 움직여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을 하거나 걷는 것이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죠.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많이 걷고 몸을 움직여요. 그런데 생각하면서 걷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돼요. 감각에 집중하면서 걸어야죠.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에는 일상적인 길보다는 등산처럼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이 좋아요. 혹 자연이 아니더라도 간판을 보거나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내 발자국 소리를 듣거나 발바닥의 느낌을 느껴가면서 생각을 내려놓고 걸으면 도움이 돼요.
Q. 출간하신 책 <스스로 살아가는 힘>은 베스트셀러가 됐던 <굿바이 게으름>의 속편이라고 들었습니다. 무려 7년만의 속편인데, 책에는 어떤 결실이 들어 있나요?
저는 정신경영아카데미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 함께 이런저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나눠요. 같이 변화하는 과정을 경험해보니까, 단순히 시간관리는 이렇게 하고 중요한 건 먼저 해야 하고 뭐 그런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주인의식이 필요하더라고요. 그게 없으면 같은 고민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자율성의 부재가 게으름이더라는 거죠. 누군가한테 의존하려는 게 바로 게으름이니까요.
근데 사실 이건 이미 머리로는 다 알고 있던 이야기에요. 그런데 무의식 속에서 계속 그런 것을 부정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죠. 외부의 힘에 의해서 내 삶이 바뀔 거라는 기대를 놓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기대가 사라졌을 때 굉장한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요.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번 책에는 그런 내용들이 들어 있어요.
Q. 책에 보면, 전문성을 갖춘 직업인이 그렇지 않은 직업인 보다 행복도 및 자기통제력이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삶은 똑같이 출발을 해도 10년, 20년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벌어져요. 거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에요. 예를 들어 식당에 취직을 하면 누구나 허드렛일부터 시작하게 돼요. 여기서 자기 삶에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전문 분야를 찾아가요.
유명한 맛집에 가면 오너가 셰프의 눈치를 봐요. 사람들이 오너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셰프의 음식을 먹으러 오는 거니까요. 그런 셰프는 주방일과 관련해 전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기만의 전문 분야가 없이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하는 ‘쿡’은 그 반대에요. 자꾸 오너 눈치를 보는 거죠. 쿡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똑같이 직장생활을 해도 내가 가진 차별적인 전문분야를 구축해나가는 ‘셰프’같은 직원이 있고, 회사에서 시키는 것만 하는 ‘쿡’같은 직원이 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쿡 같은 직원은 용도 폐기되면 쫓겨나겠죠. 그러니 어떤 직업이든 전문성을 갖춰야 하고, 그래야 만족감이 높아지는 거에요.
Q. 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하거나 꿈을 실현해나갈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만족감을 높일 수 있을지 조언 부탁 드립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가 제일 중요해요.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행복에 이르는 길도 저마다 달라요. 따라서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행복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한 게 뭔지 알아야 해요. 그게 나를 이해하는 것이죠. 이 말이 막연하게 들린다면 몇 가지 질문만 해봐도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돼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지?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지? 나한테 중요한 것은 뭐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뭐지?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는 뭐고 모르는 건 뭐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다 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죠.
더구나 20대에는 이런 질문들이 무척이나 중요해요. 그리고 20대 때는 실패할 수 있는 경험, 시행착오를 통해서 자신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필요한 시기에요. 자기 이해가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에요. 어떤 경험을 통해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죠. 그런 면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해요. 뭔가 시도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걸 실패로 보지 말고 자기를 바로 보게 되는 기회로 삼아야 돼요. 아르바이트든 인턴십이든 경험해 보고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를 이해하고 나를 알아가면서 삶의 방향을 정하는 거죠.
Q. ‘삶의 멀미’로 힘들었던 때가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 삶의 최대 위기와 고민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86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매일같이 데모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가치관에 혼란이 무척 컸죠.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86년 봄이에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중 가장 컸던 게 삶의 방식이 바뀐 거였어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별로 어렵지 않았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에 오니까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게 굉장히 많더라고요. 공부부터 인간관계까지,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먼저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그게 삶의 멀미였죠. 한번도 내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아보지 않은 거예요.
자동차를 탈 때 멀미를 제일 안할 수 있는 방법은 운전석에 앉는 거예요. 내가 회전을 할지 차선을 바꿀지 브레이크를 밟을지 몸이 같이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운전대를 잡지 않고 내 삶을 살지 못하니까 계속 멀미가 나는 거죠. 대학 때부터 2004년까지 멀미를 하다가 결국 내가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삶의 방향을 정하고 나서야 멀미가 멈췄잖아요. 드디어 내가 운전석에 앉게 된 거죠. 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능동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된 거예요.
Q 대학시절 기억에 남는 강의나 동아리 활동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저는 대학생활을 제대로 안 했어요. 방황하느라 수업도 잘 안 들어가고, 아웃사이더처럼 바깥으로 맴돌았죠. 그러다 보니 뭐 공부나 대학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는 없어요. 주로 책을 읽고 여행을 많이 다녔죠. 새로운 문화를 접촉하는 것이 내적인 만족감을 주는 요소였던 것 같아요. 실제로 힘들거나 고민거리가 많으면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있잖아요. 내 삶을 좀 정리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방향을 찾기 위해서.
그런데 사실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답을 얻고 돌아오는 분들은 드물어요. 왜냐면 막상 여행을 가면 먹고 자고 하는 그날 그날 일상에 집중하니까 아무 생각을 안 해요. 그렇다고 여행 다녀온 것이 무익한 건 아니잖아요.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애초에 목표하지 않았던 그 이상의 다른 뭔가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경험은 나를 더 이해하게 해주니까. 경험을 통해 배우려는 마음만 있고, 실패에 경직된 생각만 없다면 모든 경험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봐요.
Q 선생님 인생에 영향을 끼친 교수님이나 멘토가 계셨나요?
20대가 불행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내 삶에 스승이나 멘토가 없다는 점이었어요. 나는 참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곰곰 생각을 해보니까 그렇게 간절히 바라면서도 나 스스로 어떤 멘토를 만나보기 위해 시도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누군가 와주기만을 기다리고 바랐지 스스로 찾으려고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2004년에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 생각하면서, 구본형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책을 통해 알게 됐는데, 그 분책을 읽으니까 너무 와닿는 거예요.
그때 읽었던 책이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였는데, 선생님한테 관심이 생겨 그분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어요. 근데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죠. 때마침 선생님이 개인 대학을 만들고 싶어서 일개 연구원을 뽑는다는 공지를 올린 거에요. 읽어보니까 1년간 공부하고 그걸로 자기 책을 쓰고 자기 삶에 어떤 준비를 하는 연구였어요. 이게 기회다 싶어서 지원을 했고, 선생님 밑에서 1년간 배우게 됐죠. 제 인생에 첫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죠.
Q ‘미숙한 자율성’이 ‘성숙한 자율성’, 즉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준다고 하셨는데, 이를 대학생활에 비추어 본다면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모든 동물 중에 사람만큼 약한 존재로 태어나는 게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학습능력’ 때문이에요. 우리는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약한 존재로 태어나도 생존하는 거죠.
학습 과정은 기본적으로 ‘트라이-에러-리트라이’의 과정을 거쳐요. 에러를 다른 말로 하면 실패라고 할 수 있죠. 에러와 리트라이를 여러 번 거쳐야 ‘석세스’가 돼죠. 예를 들어 처음부터 잘 걷는 아이는 없잖아요. 에러와 리트라이를 수없이 반복해야 비로소 제대로 걷게 되고, 엄마라는 말도 하게 돼요. 학습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이 에러와 리트라이, 실수 혹은 실패와 재시도를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주변의 어떤 부정적인 평가나 비난 때문에 아이들이 리트라이 능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아이가 혼자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답답하고 화가 나서 그냥 부모가 해줘요. 물론 이런 과정도 처음에는 필요하죠. 그런데 차차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야 돼요. 근데 그 미숙함을 꺾어 버리면 그 아이는 평생 의존적인 존재로 살아가게 돼요. 반대로 전혀 도와주지 않고 방임하면 아이가 규칙이 없고 막 나가게 되는 거죠. 그 경계가 참 어렵고 애매하지만 ‘미숙한 자율성’이 꺾이면 안 돼요. 그래야만 성숙한 자율성으로 발달하게 되니까요.
대학생이라 하더라도, 혹은 어른이라고 해도 ‘미숙한 자율성’을 다 거쳤다고는 볼 수 없어요. 왜냐하면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재시도 능력을 펼쳐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대학생 정도면 스스로 결정을 해야 돼요. 선택은 당연히 어렵고 헷갈려요. 세상에 후회 없고 미련 없는 선택은 없어요. 선택은 잘했냐 못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택한 것을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게 노력해서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그렇다고 스스로 살아가라는 게 독불장군처럼 철저히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라는 건 아니에요. 사실 상호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데는 ‘자율성’이 기반이 되어야 해요. 내가 누군가에게 자꾸 의존하려 들면 오히려 관계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요. 간혹 자율성과 관계성이 대립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자율성과 관계성은 절대 대립되지 않아요.
Q 앞으로 사회에 나갈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패나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죠. 이것은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다시 시도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가 그렇게 인정이나 배려가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사회 분위기가 당장 바뀔 수 있거나 제도가 마련되기는 어렵잖아요. 이럴 때는 개개인의 의식 개선이 먼저에요. 앞에서 말한 ‘트라이-에러-리트라이’의 에러를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경험 말이죠.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해요. 실패와 성찰이 같이 있으면 그게 경험이 돼요. 실패에 성찰이 빠지면 좌절이 되지만, 내가 실패했을 때 성찰을 하게 되면 거기서 나를,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돼죠.
Q. 책에서 ‘알고 보면 우리 안에는 알람과 나침반이 내장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 내 안의 알람과 나침반을 찾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아까 말했던 시행착오가 필요해요. 시도를 해보고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경험을 통해서 점차 스스로 성찰해나가면, 내 내면의 나침반 기능이 잘 작동하게 돼요. 자기 자신을 이해해나가면 나침반도 보이고 그걸 잘 활용할 수도 있는 거죠. 시행착오를 건너뛰고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없어요.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계속 똑 같은 질문만 던지게 될 거예요.
자기 자신한테 물으세요. 쓰면 쓸수록 정신 능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물으면 물을수록 답은 명료해져요.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얘는 뭘 잘할까를 찾으려고 아이의 강점일기를 기록해요. 아직은 아이 스스로 탐색할 수 없으니까 제가 도와주는 거죠. 내가 잘하는 건 뭐지? 계속 물으세요. 너무 막연하다면 MBTI나 강점검사도 해보고, 관련 서적도 찾아보고 참고하면 돼요. 적성검사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매뉴얼들은 활용하되 참고 사항일 뿐이죠. 찾고 선택하는 것은 ‘나’한테 달려 있어요.
Q. 사람에 대해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이 일상업무시리라 생각되는데, 정신건강에도 시대별 흐름이나 패턴이 있을 듯합니다. 앞으로 신경 써서 챙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책 제목 중에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게 있는데, 방향은 20대에 명확히 정리되기 어려워요. 방향보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20대 이후에는 비포장도로에요. 그 전에는 어떤 방향 등이나 표지판이 잘 갖춰져 있고 가라는 대로 잘 가기만 하면 됐지만, 20대부터는 달라요.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죠.
자꾸 포장도로만 찾으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삶의 운전대를 잡아야 해요. 내가 핸들을 잡고 내 인생을 조종해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라는 거예요. 그게 자율성이고요. 내 삶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앞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해요. 대학생들도 하루하루가 참 불안하죠. 삶 자체가 고달픈 시대이지만 그 불안과 고달픔을 이겨내려면 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발견하고 키워가는 게 필요해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훈련이요. 그런 힘은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강화될 수 있어요.
Q ‘1인 가구’ ‘100세 시대’ 등 앞으로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반면, 오히려 더 많은 교제와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연한 거예요. 지금은 사람을 아는 게 얼마나 쉬워졌어요?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어요. 소통할 도구들이 너무 다양하니까. 예전에는 폐쇄적이었잖아요.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곳이 굉장히 제한적이었어요. 자기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태반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곳이 다 다를 수 있어요. 그만큼 우리 생활영역이 넓어졌다는 거죠. 거기다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예전에는 전혀 알 수 없던 사람하고도 쉽게 알게 됐죠. 양적으로 굉장히 확장됐어요.
이게 부정적이기만 한 건 아니에요. 다 양면성이 있죠.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관계 맺을 수 있어요. 관계를 위한 관계가 아니라, 나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연결되는 시대에요. ‘신유목민 시대’가 열린 거죠.
Q 선생님께서도 아카데미 운영과 강연, 집필을 통해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을 시도하고 계신데, 소명감 외에 다른 이유도 있나요?
내가 하고 싶으니까. 누가 시키지 않았고 어떤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하게 되는 것, 그게 내 열정을 만나는 방법이잖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힘들어 하면 좋은 글을 써서 주거나 편지 쓰는 걸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답장을 바랐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열심히 살자는 격려를 해주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글을 통해서 사람들을 격려하는 게 저한테는 굉장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때부터 3년간 수필문학상에 응모를 했었어요. 제약회사가 의사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공모였는데, 수상도 20명 가까이 하고 상금도 많아서 도전을 했죠. 근데 3년 연속 떨어졌어요. 실패한 거죠. 두 번째까지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는데, 세 번째 떨어지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정말 글쓰기에 소질이 있나?’ 근데 아까 말한 것처럼 실패에서 성찰을 하니까 답이 나오더라고요. 저는 문학적 글쓰기를 잘하는 게 아니라, 분석하고 격려하고 정보를 주는 학문적 글쓰기를 잘했던 거예요.
Q 앞으로 계획하고 계시거나, 준비하고 계신 일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세요.
병원과 아카데미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정신경영아카데미에 더 집중하려고 해요. 사회적인 정신건강, 예방적인 차원의 정신건강을 함양하는 심리훈련들을 좀더 보급하고 개발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세월호 사고를 보고 내가 뭘 더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사회적인 책임감도 더 가지려고 하고요.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요.
Q 전문가이자 멘토로서 국민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처방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무력감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많이 보게 돼요. 이런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이 해왔지만, 제 인생의 모토 중 하나는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다’에요. 저도 주변사람들과 비교를 많이 했던 편이라 나는 왜 이럴까 하고 많이 힘들어 했었죠. 그런데 봄에만 꽃이 피는 게 아니잖아요. 여름, 가을, 심지어 겨울에 피는 꽃도 있어요.
일찍 꽃이 피는 사람을 ‘얼리 블루머’라고 하는데, 얼리 블루머가 되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저는 ‘레이트 블루머’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유명한 이야기지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런 마음으로 실패나 좌절을 겪더라도 ‘결국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길 원해요. 조바심이나 욕심 때문에 뭔가를 시도했다 금방 포기하고 그러면 삶이 계속 방향을 잃어요. 지금 당장은 고달프더라도 결국 ‘셰프’가 되는 차별적인 전문성을 갖는 ‘레이트 블루머’들이 되길 바랍니다.
[문요한]
현) 더나은삶정신과 원장,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저서
스스로 살아가는 힘, 굿바이 게으름, 문요한의 마음 청진기, 천 개의
문제, 하나의 해답, 그로잉, 나를 아는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