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K 장석원 일러스트레이터님을 수식하는 말들이 참 다양하던데요. ‘비정규직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북 칼럼니스트, 작가’ 등등, 스스로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 것은 무엇이며, 재능기부로 벽화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장석원 저는 그냥 쉽게 그거죠. ‘그림 그리는 사람’! ‘재능기부’란 말 자체가 저한테는 어색해요. 그런데 자꾸 주는 일만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그림 그리는 ‘업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돈을 받지 않는 대신 그리고 싶은 걸 그리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일러스트라는 게 누가 나한테 의뢰를 해야지 그릴 수 있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좋지만 반복되면 어느 순간, ‘내가 무슨 프린터인가? 주문하는 그림만 그리고…’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한편으로는 ‘나도 벽 같은 곳에다 그림 그려봤으면…’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그리고 싶다고 그 의뢰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일을 찾아서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시작했어요.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돈이 아니라 정말 그림에 대한 가치, 혹은 그림 그리는 사람에 대한 어떤 존중을 통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자! 그렇게 한 것이 바로, 돈을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것. 그래서 처음에 시작한 것이 MBC 프로그램 <고맙습니다 작은도서관>의 벽화 작업이었죠.
uniK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에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신청 글을 남겨서 벽화작업을 시작하신 거라고 들었어요. 본인이 직접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케이스가 흔치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각 기업에서 일을 수주해 일러스트를 그리는 프로이신데, 이런 기회를 선뜻 제공하는 경우가 잘 없지 않나요?
장석원 자꾸 제 경험을 특이하다고 묻는 걸 보면, 지속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자기 생계에 몰입하다 보면 ‘내 코가 석자인데…’ 사실 남 돕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작가와 그림은 사실 분리되기 어려운 면이 있거든요. 작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릴 것이냐’의 문제가 남죠. 그렇게 생각할 때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장기적으로 나를 위한 일종의 ‘영업’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훨씬 더 세련된 형태의 영업이 아닌가 생각도 들고요. 그렇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하다 보니까 한 2~3년 안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일이 되어서 돌아오더라고요. 일례로 벽화의 경우도 처음에는 작은 도서관에 그리면서 블로그에 과정 컷을 올리고 그것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우리 백화점에도 벽화를 그리고 싶다!’ 하는 식으로 일이 오는 거에요. 제가 이런 일을 안 했더라면 보여줄 게 없잖아요?
uniK 특이하면서도 재미있게 또 전략적으로 홍보 활동을 하고 계신 셈이네요. 최근에 내신 책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를 보면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자기 홍보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세태를 답답하게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장석원 그림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나쁜 생각은 아니잖아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뭐가 나빠요? 그걸 인정하고, ‘그럼 그 일을 잘 하기 위해서 뭘 준비해야 할까’하는 생각은 당연히 따라오는 거잖아요?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자기 그림에 대한 견적도 내지 못하고 일정도 못 잡으면, 그림 맡기는 사람 입장에서 ‘일을 맡겨도 되겠는가’ 싶고 불안하겠죠. 그림 잘 그리는 건 어떻게 보면 ‘기본’이라 봐야죠. 저는 출신이 회사원이었고 마케팅과 기획을 담당했던 사람이니까, 어떤 전략을 세운다거나 관리를 하는 측면에 대한 이해가 있었어요. 책을 통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보여줬는데 사람들에게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uniK 벽화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 뿌듯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장석원 모든 작업이 다 뿌듯하고 즐거워요. 사실 벽화작업 이전에도 나름의 활동을 했었어요. 어려운 이웃들과 북한 주민들에게 연탄을 지원해주는 ‘사랑의 연탄 나눔운동 본부’(연탄)라는 단체가 있어요. 제 그림 저작권 기부로 티셔츠를 만들고, 그 수익금을 연탄 쪽에다가 기부를 하는 형식으로 기부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거든요. 그 이후로 제가 ‘소식지라든가 다른 안내책자 혹은 웹사이트라든가, 그림이 필요한 곳이라면 다 그려드리겠다’고 해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하고 있어요. ‘아 이거 참 재미있는 일이구나!’ 싶어서 벽화 일도 시작하게 된 거였죠. 하다 보니까 어린이재단, 러빙핸즈(한 명의 아동 또는 청소년을 자립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돕는 멘토링전문 사회복지 NGO) 등등 계속하게 되었죠.
uniK 작가님의 거주 지역인 은평구 구산동에도 벽화작업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장석원 작은 도서관이 주로 시골에 많다 보니 지방으로 많이 돌아다녔어요. 어느 날 어머니가 “너 사는 동네는 안 하냐?” 하시는 거에요. 외부에서는 나를 알아도 정작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나를 알까? 맨날 낮에 ‘깔깔이’ 입고 돌아다니고 부시시 한데 “저 사람 뭐야?” 이러지, 그림 그리는 사람인지는 모르잖아요? 차라리 동네 스타가 되는 것이 더 낫겠다, 대접도 받고 그게 더 편하고. 우리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는 외벽은 아무 이름도 없고 그저 뻥 뚫린 통로였어요. 애들은 다 거기서 노는, 그런 공간 있잖아요? 거기다 처음에는 용이나 돼지 같은 동물 캐릭터를 그리려 했는데, 애들이 놀다가 구경하는 거에요. 한 녀석이 자기 얼굴을 그려 달라고 그래서 그려줬더니, 또 옆의 놈이 그려달라 해서 그렸어요. 이제는 애들이 줄을 서는 거에요. 결국 45명 그렸죠.(웃음) 참 신기한 것이 자기 얼굴이 그려져 있으니까, 예전에는 애들이 공을 차고 해서 늘 더러웠는데 지금은 아주 깨끗해요. 엄마들도 구경 나오죠. “얘랑 얘가 친구야~” 하는 걸 알게 되니까 엄마들이 그 밑에서 서로 얘기도 나누게 되고. 그 벽화 하나로 동네에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긴 거에요.
uniK 해성여고 담장 벽화작업으로 TV 출연도 하셨는데 학생들이 함께 참여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장석원 벽화작업에 자기들이 참여하면 절대 안 더러워져요. 올 초에 해성여고 공사장 담벼락에다 벽화를 했을 때, 한 30여 명이 봄방학 때 참여했어요. 3학년 올라가는 학생들과 일주일 걸려 그림을 완성했어요. 여름 방학 끝나고 이번에는 통학로 작업을 하게 되어 다시 가봤는데 진짜 담벼락에 발자국 하나, 껌 하나 안 붙어있고 깨끗한 거에요. 그냥 공사장 담벼락이었으면 낙서를 하거나, 더럽게 쓰거나 그랬을 텐데요.
uniK 학생들이 다 함께 공동작업을 한 것이다 보니 학창시절의 추억거리로 선사하신 셈이네요?
장석원 그럼요. 고등학교 때의 예술 경험은 거의 평생 가잖아요? 우리가 이런 감성에 대한 부분에 대해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을 모르고 창조성을 이야기한다는 건 말이 안되거든요. 자기를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일에서 창조성을 발휘하겠어요? 창조성이란 건 많은 부분 감성적인 영역에서 출발한다고 보거든요. 감성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 혹은 그런 데 예민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신기하다, 멋있다, 매력 있다’는 느낌을 주겠느냐는 거죠. 미술, 음악 시간도 거의 없고…. ‘학교 프로젝트’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죠.
uniK 기획력이 정말 좋으신 듯 해요. 남들은 막연히 생각만 하고 정작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프로젝트들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장석원 그건 인생에 대한 문제죠.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배운 것 하나가, 그림은 굉장히 구체적인 거잖아요? 손에 물감을 묻혀서 뭔가를 표현하지 않으면, 제 머릿속에 있는 건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아무리 100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있어도 보여주지 않으면 전달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 거죠. 하지 않고 말로만 떠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죠. 저도 그림 그리기 전까지는 굉장히 소심하고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거죠. 일단 ‘말로 했으면 하자!’, 하면 어쨌든 결과는 금방 나오니까. 결론이 나면 그 다음 것을 하면 되니까요. 그만 하든가, 개선하든가, 잘 되면 또 하든가… 보니까 모든 문제가 다 셋 중 하나로 결론이 나요. 일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요. 하지 않고, ‘할까? 말까?’는 그야말로 낭비거든요. 고민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가 없다고 전 생각해요.
uniK 라디오 방송에서 북 칼럼니스트 패널로도 활동하셨던데요. 주로 읽으시는 책의 분야는 무엇인가요?
장석원 다 읽습니다. 일단 관심이 많아요. 여러 가지에 대한 소양과 지식이 있으면 그림 그리는 데도 상당히 도움이 되죠. 다양한 걸 알면 접목을 시킬 수 있어요. 뭐 IT 그림을 그리는 데 농업 관계된 그림을 그릴 때 했던 아이디어를 접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종교배’가 가능할 때 꽤 창의적인 것이 나오거든요. 일러스트레이터나 그림 그리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그림 그린다고 그림책만 보는 건 스스로의 영역을 좁히는 일이고, 그러다 보면 스타일에만 치우치게 되고 남의 스타일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는 점이에요. 그렇게 되면, 원래 그 스타일을 갖고 있는 사람만 좋은 일 하는 거지, 나한테 좋은 일은 결코 아니란 얘기예요. 결국 일러스트라는 것이 텍스트나 다른 사람이 말로 전해준 정보를, 내가 그림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데 핵심이 있거든요. 그러려면 말이나 글로 된 정보의 해석 능력, 이해 능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대다수가 그림만 본다는 거죠. 그림도 어차피 ‘이야기’거든요. 이야기가 머릿속에 많으면 많을수록 표현할 것도 자연스레 많아지는 거죠. 모든 걸 직접 경험할 수는 없으니까 책을 통해 생생한 간접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uniK 10년간 대기업에서 일해오시면서 ‘비정규직 일러스트에이터’로 업종 변환을 하게 된 계기는요?
장석원 요즘엔 30대가 ‘질풍노도의 시기’예요. 제가 보기에 20대에 방황하는 청춘은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20대까진 어떻게 하든 부모가 케어해 주고 부모가 짜준 플랜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20대 때 직장을 갖고 몇 년 일하면서 30대가 되면 경제력도 생기고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자립해서 해나가게 되잖아요? 그때 생각이 ‘깨는’ 거죠. 나한테 맞는 일이 뭘까, 과연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계속 살아야 하는가, 앞으로 내 인생은 또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어떻게 보면 그때가 거의 처음이란 거에요. 그래서 그때 방황하며 직장을 옮기거나 하죠. 오히려 그때가 저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봐요.
uniK 그렇다면 스스로는 업종을 잘 전환한 선례라고 평가하시나요?
장석원 저도 틀에 따라 주욱 왔다가, 대기업에서 일을 했는데요. 대기업이 좋긴 하지만, 영원히 누릴 수가 없어요. 제가 원하는 일만 할 수도 없고요. 그러면서 ‘아 내가 평생 이 일을 해서 살고 은퇴 후 연금 받는 삶이 다인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고민을 직장생활 하면서 한 거죠. 그러다가 2003년에 회사를 관두고 혼자 일을 시작했어요.
uniK 정규 미술교육 과정도 밟지 않은 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셨는데, 숨겨진 그림 재능을 발견하신 것은 일견 ‘대박’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장석원 물론 저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편으론 “너한테 원래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 너처럼 재능이 있었다면 나도 했다!” 그런 얘기는 아니라고 봐요. “그럼 그때 나한테 얘기해주지 그랬냐? 나 회사 다닐 때 넌 그림에 재능 있으니 그림 하라고…”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얘기 하는 사람 제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그림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야~ 네 나이에 무슨 그림을 해?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런 사람이 더 많았죠. “잘 되겠냐, 그게? 안돼~” 하는 이런 식. 왜 지금 와서 재능 얘길 하느냐는 거죠. 재능이란 건 ‘도대체 저 사람이 왜 그림을 잘 그리게 됐을까?’에 대한 질문에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일 뿐이에요. ‘저 사람은 재능이 있고 난 없기 때문에, 재능의 유무는 그냥 ‘복불복’이니까’ 이러면 내가 편해지잖아요? ‘난 그저 운이 좀 나쁜 거고 저 사람은 운이 좋은 것뿐이지, 저 사람과 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쉬워지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는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거죠.
uniK 국민대 학생이 트위터를 통해 보내온 질문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님은 평소에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장석원 얘기 했잖아요, 해보기 전엔 몰랐다고요. 어느 날 갑자기 뭘 하려고 하면, ‘굉장히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강박 같은 게 있는 거 같은데, 그럴 필요 없거든요? 좋으면 일단 해보면 답은 금방 나오니까, 스스로를 너무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고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인생에 굉장히 큰, 이번 결정 잘못 하면 큰일나는 식으로 생각할 건 하나도 없어요! 자잘 자잘한 게 모여서 큰 것이 되는 거지, 큰 결정을 해서 크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uniK 20대들이 보통 그런 강박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시기인 것도 같아요.
장석원 복잡할 건 사실 없어요. 결국 제가 느낀 거는 큰 일을 위해서 큰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은 일을 계속 하다 보면 큰 일이 자연스레 되는 거지요. 큰 건물을 지어도 결국은 모래하고 시멘트, 철근 같은 기본 재료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모래 우습다고 모래 빼봐요. 건물이 안 지어지는 거에요. 그런 것을 망각하고 100층짜리 건물을 짓기 위해선 100층짜리를 위한 특별한 어떤 재료가 필요하다고들 생각하죠. 물론 20대들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선택의 폭이 좁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이 이렇다면, 기존의 룰대로 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을 했으면 좋겠고 다른 룰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는 거죠. 남들이 쫓아가는 스펙, 이런 논리에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경쟁에서 1명만 성공하고 나머지 9명은 떨어지니까 그 9명은 ‘루저’가 되는 거잖아요, 사실은 그게 아닌데… 그럴 바에는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게 지름길이 될 수도 있죠.
uniK 마지막으로 미래를 준비해 가는 20대가 꼭 가졌으면 하는 가치관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장석원 대기업이 아니라도 일은 20대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작은 회사라도, 일을 배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 그냥 백수보다는 훨씬 느끼는 게 많거든요. 3~40대에 활력 있게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그런 변화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의 역할 모델이 되고 싶은 거에요. 좋아하는 분야에 꾸준히 임하는 그 자체를 몸소 보여주는 거죠. 이렇게 살아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스펙? 이런 거 안 하고도 즐겁게 살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쫓아서 살아라… 자기 재능을 따라 살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는 그런 얘기예요.
[일러스트레이터 장석원]
2009 상상마당 오프라인 매거진 <brut> 그래픽 노블 연재(3월)
Coach, Bazaar와 함께 아티스트 기부 전시 프로젝트 참여
부산 해운대 신세계 센텀시티 백화점 및 아이스링크 벽화 제작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제작
T-money 아티스트 교통카드 시리즈, 밥장카드 출시
국립현대미술관 2009년도 캘린더 제작
'서울 디자인 올림픽 2009' 전시
2008 의류브랜드 엠볼리에서, 2008년 F/W 밥장라인 출시
조선일보, '밥장의 상상디자인' 매주 연재 '호란의 다카포' 일러스트
안양시 프로젝트, '만안구 공공디자인' 일러스트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일러스트 및 저작권 기부
KB카드 CF '가슴에서 꺼내라' 이효리편 일러스트
LG 사이언 뷰티폰 출시 기념 일러스트
디자인 전문지 <디자인 정글> 창간 1주년 기념 표지 일러스트
광화문 스폰지하우스 개관 기념 개인전
청담동 'tell me about it'
무빙매거진 <마담피가로> 'LOVE'전
'서울 디자인 올림픽 2008' 전시, '아트피버' 단체전
제1회 '아트피버' 올해의 아트피버 대상 수상자 선정
2007 KTF Show, LG전자의 2008년 캘린더 일러스트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 <검은 땅의 소녀와> 포스터 일러스트
코오롱 스포츠 패션쇼 초대장 일러스트
코오롱 옴므 밥장라인 출시
코오롱 JOY KOLON 오픈 기념 일러스트
갤럽코리아, 신년 연하장 일러스트
길벗 출판사, <시나공> TOEIC, TOEFL 영어 시리즈 일러스트
<비정규아티스트의 두 번째 이야기 - 핫> 출간
'서울 디자인 위크 2007' 신진 디자이너 초청전
'개화의 꿈' 개인 초대전
2006 '서울 디자인 페스티발 2006' BMW MINI 부스에서 BMW MINI Cooper 전체 랩핑 및 전시
코오롱,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과 공동으로 캠페인 티셔츠 제작
IT전문지 <경영과 컴퓨터> 30주년 기념호 표지 일러스트
광고대행사 JW United 웹사이트 및 브로셔 일러스트
<비정규아티스트의 홀로그림> 개인전 및 출간
아트디렉팅 및 특별전 '한글, 꽃을 피우다' 초청 작가 활동
1993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저서 : <비정규아티스트의 홀로그림>, <HOT>, <그림, 그려보아요>,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10~20대가 아닌, 30대 중반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단언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장석원 님의 제2의 인생은
대기업에 다니던 20~30대 시절보다 훨씬 다채롭고 화려합니다.
또한 프로페셔널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신의 몸값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산간벽지의 도서관, 도심 속 소외된 공간 외벽에다
아름다운 벽화로 재능기부를 함으로써
보다 인간미 넘치고 애착이 가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계시네요.
동네 어린이들에게 '그림 잘 그리는 밥장 아저씨'라 불린다는
이 소탈한 일러스트레이터가 국민대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11월 7일 라이브됩니다. 여기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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