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카카오 프렌즈 만큼 똘똘한 친구들이 또 있을까? 친구,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때때로 열 마디 말보다 독특한 표정과 행동을 지닌 이들 일곱 캐릭터의 이모티콘 하나가 더욱 명쾌한 답을 주는 듯하다. 그야말로 사랑의 메신저이자 수호천사가 따로 없다. 그루브를 타며 언제나 여유 만만인 제이쥐, 소심하고 솔직한 프로도, 불 같고 새침한 네오, 스마일의 대명사인 무지와, 그의 애완 악어 콘, 다크서클이 매력적인 튜브, 앞모습 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어피치가 그 주인공들이다. 권순호 웹투니스트는 바로 이들을 만든 카카오 프랜즈의 아빠다. 그는 게임회사 넥슨을 거쳐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유행했던 시절 엽기 캐릭터 ‘시니컬 토끼’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호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재기발랄한 그림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권순호 작가를 만나봤다.
Q ‘호조(好調)’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특별한 의미가 담긴 예명인가요?
의미는 없어요(웃음). 그런 걸 안 좋아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원래 뭘 시작할 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에요. ‘호조’라는 예명은 이메일을 처음 만들 때 만든 건데, 친구들이 멋있는 것으로 짓길래 나도 뭐 없을까 생각하다가 만들었어요. 이름에 ‘호’자가 들어가니까 은연 중 넣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23살에 만들었으니 벌써 17년째 사용하고 있네요.
Q 작가님의 대표작은 ‘시니컬 토끼’가 아닐까 합니다. 데뷔작이 시니컬 토끼인가요?
데뷔작은 ‘호조툰’이에요. 한 컷 짜리 동화 패러디나 언어유희를 다룬 카툰인데, 그때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둬서 콘텐츠가 좀 퍼지는 느낌이 있어요. 예를 들면 심청전에는 심청이를 그리고, 신데렐라에는 신데렐라를 그리니까 사람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임팩트가 없더라고요. 당시 싸이월드 미니홈피 스킨을 만들고 있었는데, 나만의 캐릭터가 있어야겠다 싶어 시니컬 토끼를 만들었어요.
Q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점을 생각하다 ‘카카오 프렌즈’를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창작동기를 설명해주신다면?
제가 불편했어요(웃음). 뭐든 내가 느껴야 표현할 수 있는 거잖아요. 가령 이성친구랑 대화를 할 때 저는 말을 길게 안 하는 편인데, 상대방은 제가 화 났거나 귀찮아 한다고 생각해요. 텍스트로만 주고받다 보니 오해가 생기는 거죠. 이럴 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했어요. 예를 들어, 약속 시간에 늦었으면 ‘미안해 나 늦어’ 하고 문자를 하는 것보다 울면서 뛰는 캐릭터를 보여주면 내가 얼마만큼 미안해하는지를 단번에 알릴 수 있잖아요. 똑같이 ‘응’이라고 대답해도 재미있는 캐릭터를 넣으면 상대방이 더 좋아하고요.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뉘앙스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더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Q 카카오 프렌즈의 각 캐릭터들은 실존 인물이 투영된 것인가요? 또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특정 인물이라기 보다는 그 동안 봐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함축적인 모습과 제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어요. 애착이 간다기 보다 처음엔 ‘네오’를 메인 캐릭터로 생각하고 그렸어요. 그런데 업체 쪽에서는 네오가 재미있긴 한데, 머리도 그렇고 개성이 너무 강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수정하다가 무지를 메인으로 결정했는데, 사람들은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더라고요. 결국 쓸데 없는 고민이었던 거죠(웃음). 보통 주인공은 밝고, 착하고, 멋있고 스탠다드한 이미지를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꼭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인생의 주연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Q 프렌즈 업그레이드 버전도 계속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계속 작업 중이신 건가요? 또 다른 캐릭터 연구중인 것이 있는지.
카카오 프렌즈는 2년 전까지만 작업을 했고, 지금은 손을 뗐어요. 업그레이드 되는 캐릭터들은 회사 측에서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현재 브라운이라는 강아지랑, 베키라는 돼지 캐릭터를 만들고 있어요. 시니컬 토끼도 추가 작업을 하려고 고민 중이고요.
Q 작가님이 그리신 싸이의 ‘강남 스타일’ 앨범 자켓을 보면 그림이 단순하면서도, 개성이 명료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최소의 표현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자’는 마인드예요. 예를 들어, 실사로 얼굴을 그린다면 머릿결, 주름, 점 등을 최대한 선을 쓰지 않고 표현하려고 해요. 선을 많이 쓸수록 자존심이 상하거든요. 내가 이걸 표현하는데 이렇게 많은 선을 썼나? 캐릭터가 심플하게 확 다가서야 하는데, 표현이 복잡하다는 건 특징을 잘 못 잡아냈다는 것 같거든요. 쓸데없는 선들을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에서 에너지를 느낄 수 없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에요. 팔자주름을 선으로 그려 넣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죠.
Q 작가님만의 스타일에 영향력을 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만화를 좋아했어요. 드래곤볼 같은 걸 즐겨 봤는데, 만화를 보다 보면 액세서리나 소품, 머리 형태 등이 다 다른 것 같은데 공통적인 특징이 있더라고요. 이건 어느 작가가 그린 그림이구나 하는 느낌이요. 어느 땐가 나도 그게 좀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코는 점 두 개, 눈은 동공을 최대한 작게 그려서 사악하게, 귀는 엉덩이 모양으로 지켜가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의도한대로 다 되지는 않았지만요.
Q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미술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릴 적에는 달력 뒤에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예전에는 큰 달력을 썼잖아요? 달이 바뀌면 다음날은 큰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연습장에 만화를 그려 가서 친구들한테 보여주기도 했고요. 중고등학생 때는 일본 만화가 유행했는데, 심의 때문에 야한 장면이나 폭력적인 부분은 먹칠을 해서 가린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앞뒤 전개상황을 보면 뻔하잖아요. 왜 굳이 이렇게 했나 싶어서, 일부러 연습장에 더 야하고 과감하게 그렸어요. 고등학교는 실업계를 갔는데, 학교에 디자인과가 있어서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정식으로 그림을 배웠고요.
Q 원래 꿈이 개그맨이라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을 보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합쳐진 직업을 찾으신 것 같은데, 학생들에게 꿈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꿈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 란에 써낸 거였어요(웃음).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본인한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를 고민해야죠. 남들이 정해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삼사십대가 돼서 ‘난 뭘 해야 하지?’ 하고 혼란이 올 수 있거든요. 물론 그때 가서도 다른 길을 찾을 수는 있지만, 좀더 뜨거운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때 고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답게 살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살면 잔소리 듣는 경우가 많으니까 참 어려워요. 그렇지만 사람마다 생김새도, 좋아하는 것도 다 다른데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자기를 깊이 탐구했으면 해요.
Q 웹투니스트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생각나는 게 있으면 일단 표현해 봤으면 좋겠어요. 머릿속으로만 갖고 있으면 다음 단계로 갈 수가 없거든요. 일단 그려봐야 돼요. 실제 그려보면 그림이 생각보다 재미없는 경우도 많거든요. 생각을 표현하고, 꾸준히 작업을 확장시켜 가야 좋은 콘텐츠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두 장만으로도 파워 있는 콘텐츠가 나올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백장, 천장을 그리는 그런 꾸준함과 지구력이 쌓여야 진짜 파워있는 캐릭터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제 스타일을 버리려고 한 적이 있어요. 잠깐 엽기동화로 주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어느 순간 관심도가 떨어져서 이 그림의 힘이 여기까진가 싶더라고요. 그때 지인 한 분이 캐릭터는 여러 표현 방식도 중요하지만, 역사가 제일 중요하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같은 캐릭터를 많이 그려봐요. 디즈니도 몇 십 년 전부터 꾸준히 그려왔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고 발전도 하는 거잖아요? 누구나 꾸준히 역사를 만들면 뭔가 다른 결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현재 ‘타임캐스트’에 소속되어 계신데, 현재 하시는 일들을 설명해주신다면?
타임캐스트는 어플을 만드는 회사예요. 거기서 저는 그래픽디자인도 하고, 캐릭터도 개발해요. 기획도 하고요. 나쁜 일 빼고는 다한다고 보시면 돼요(웃음). 회사의 기술력과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콜라보하면 재미있는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뭐 이런걸 만들었대’ 할 정도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Q 타임캐스트 최영태 대표와는 10여 년 전 넥슨에서 업무 파트너로 만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넥슨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고, 두 분이 오랜 인연으로 일할 수 있는 비결은 뭔가요?
넥슨에 처음 입사할 때는 ‘내 게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들어갔어요(웃음). 그런데 막상 가보니 매일 정해진 일만 해야 하고, 내가 뭔가 하려면 컨펌도 필요하고, 중간에 장벽이 많더라고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다른 조직에 들어가도 같은 일이 반복되겠구나 싶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 하고 시작한 게 호조넷이에요.
최영태 대표와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건, 그분이 좋은 분이라 그렇죠. 그 분을 보면 역시 사람은 각자의 포지션이 있구나 싶어요. 조직을 이끌어간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라면 못할 것 같은데 말이죠.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Q 작가님이 하시는 일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또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신가요?
그냥 좋아하는 걸 하는 거다. 이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사람이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사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는 걸 어필하는 게 아닐까 해요. 저는 그림으로 제 생각을 어필하는 거고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보고 피식 웃기라도 할 수 있는 즐거운 그림이요.
Q 끝으로 20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십 대는 자기를 탐구하는 시기가 아닐까 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찾으세요!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가장 좋은 답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권순호
게임회사 넥슨 캐릭터 디자이너 근무
싸이월드 시니컬 토끼 스킨 제작
<호조넷>운영 ‘호조툰’, ‘모두의 얼굴’ 창작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 디자이너
가수 싸이 ‘강남 스타일’ 앨범 자킷 캐릭터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