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함께 살다시피 했어요. 8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니까 그게 제 길이라고 생각했었죠. 음악 말고 다른 삶은 생각 해 본 적이 없어요. 부모님에게 ‘너는 음악 쪽으로 재능이 있으니 다른 생각은 말아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 같아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운명인 것처럼 계속 음악공부를 했어요. 그러다보니 순수음악보다는 드라마나 이야기에 삽입되는 음악에 더 흥미를 갖게 되었죠. 스토리, 영상, 배우 등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음악들을 즐기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뮤지컬 음악에 관심을 갖고 방향을 잡아갔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할 때 TV 드라마나 영화음악은 편집된 영상에 맞게 음악을 끼워 맞춰야 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뮤지컬 음악은 표현에 있어 자유로워서 좀 더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만든 음악이 공연장 안에 가득히 들어차면서 배우와 관객의 감성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을 때, 그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더라고요. ‘뮤지컬 음악감독이 되기 이전에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한 것이 결국은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각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뮤지컬 음악은 아무래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기 때문에 그만큼 힘도 있고 더 빛이 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후회는 많이 했죠. 일이 잘 안 풀리고 힘들 때는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이 과연 맞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 후회라는 것은 내 음악이 무대에 올라갔을 때의 기쁨에 견줄 수 없을 만큼의 작은 크기더라고요. 음악작업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 기쁨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그런데서 느끼는 성취감 때문에 지금까지 즐겁게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 했던 작품을 다 잊어버릴 만큼 시작하는 작품에 최선을 다해서 몰두하는 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제 대답은 항상 최근에 작업했던 작품이에요. 하나, 가슴속에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있다면 피맛골 연가를 이야기하고 싶네요. 정말 고생해서 무대에 올렸던 작품인데, 재공연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누르고 예매순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들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창작뮤지컬 그날들이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밀어내고 선전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창작뮤지컬도 희망이 있다는 것 아닐까요? 창작뮤지컬 그날들의 인기 비결은 아무래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고 김광석 씨의 음악을 배경으로 편곡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중들의 귀에 익숙한 노래로 감성을 건드리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관객들이 큰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많아요. 대형 라이선스의 화려함에 비해 제작비가 많지 않으니까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 보다는 콘텐츠 자체로 승부를 봐야겠죠.
김광석 씨 노래는 다 좋아해요. 그날들, 먼지가 되어, 사랑했지만 어느 하나 손으로 꼽기가 어렵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서른 즈음에예요. 서른 살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성숙한 곡인 것 같아요. 제목을 ‘오십 즈음에’라고 하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특히 요즘에는 나이가 들면서 그 노래의 가사들이 더 와 닿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성공을 한 사람인지 모르겠어요(웃음). 음악감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는 ‘버티기를 잘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힘들 때가 많잖아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면서도 살림을 병행해야 했지만 이런 상황에도 멈추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했던 것이 나를 이 자리로 끌어 올려준 것 같아요. TV를 보는데 만두가게를 30년 정도 하신 어르신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무슨 일이든 10년 이상 하면 달인이 안 되겠어?’라고 하시는데,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간혹 후배들 중에 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멈추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대부분이 꼭대기만 바라보면서 꿈을 향해 오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는 것 같아요. 힘들면 잠시 땀 닦고 쉬어가면서 다시 올라야하는데, 그냥 포기해 버리는 거죠.
다양한 국가들이 참가했던 국제적 규모의 박람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특수성을 살릴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동양음악도 아니고 서양음악도 아닌, 너무 낯설지도 너무 익숙하지도 않은 음악을 만들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었죠. 마침 K-POP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을 때라 ‘K-POP스러운 음악을 만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이용해서 곡을 만들었고, 거기에 국악적인 느낌을 더해 마무리 했어요.
TV에 나오기 전에는 공연을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그 누구도 저를 알지 못하다가 TV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더라고요. 창작뮤지컬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일이죠. 그렇다고 저에게 그렇게 많은 파급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즐거운 경험이었죠. 특히 방송을 접하는 대중들의 반응이 뮤지컬을 전문으로 보는 사람들하고 다르다는 것을 느꼈죠. 어디에서 열광을 하고 어디에서 냉담해 지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뮤지컬 음악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도 많이 작곡 했었어요. 그런데 오랜 시간 그 분야를 떠나있었던 사람으로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가요는 정말 높은 수준에 올라가 있었고, 잘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아졌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고인물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적잖게 활력소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음악감독이긴 하지만 동시에 작곡가기 때문에 창작뮤지컬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계속해서 나는 만들어 내는 사람이니까. 그만큼 부담이 크지만 우리의 콘텐츠고,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편하게 가고자 한다면 라이선스 작품을 하는 게 좋죠. 어쨌든 검증받은 것이고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잘 재현을 했을 뿐이다.’하고 뒤에 숨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창작뮤지컬은 처음부터 다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에요. 어떻게 평가될지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죠. 아무리 창작이라고 하더라도 대형 라이선스 작품에 뒤지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야 해요. 그런 이유로 창작뮤지컬은 더 열정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음악과 창작은 같은 의미에요. 둘 다 일상이거든요. ‘일상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일’ 음악은 또 다른 나를 표현하는 일이기도 해요. 내면에 감춰져 있던 나를 밖으로 끌어올리는 데 음악이 큰 역할을 해주거든요. 그래서 더 놀라운 힘을 가졌죠.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하자면 음악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해요. 뮤지컬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감성 뿐 아니라 동네 아낙의 마음까지 읽어야 하거든요.
사실, 그 재미 때문에 음악감독을 하는 것 같아요. 배우들은 하나의 작품을 맡으면 한 사람 역할을 하지만 작곡가는 모든 배역의 역할을 이해해야 하거든요. 음악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큰 매력이에요. 수 없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 하다보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커지더라고요. 아마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었겠죠.
아무래도 뮤지컬이라는 것이 대중들 앞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보니 이 일에 집중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향, 이런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특징이 어느 정도는 체득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대중을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겠죠. ‘이쯤에서 박수를 치며 감정을 울릴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음악을 극대화 시켜요. 예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대중과 감성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뮤지컬 음악감독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포인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창작뮤지컬은 ‘아장아장 걷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이런 창작뮤지컬과 굳이 비교를 하자면 라이선스 뮤지컬은 많은 성과를 얻으면서 실질적으로 검증을 거쳤잖아요. 그런 대형 작품과 같이 경쟁을 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죠. 어떻게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은 이래서 안 돼.’라는 말보다 어느 정도는 인정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창작 뮤지컬에 경쟁력은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예요. 그래도 긍정적인 면은 ‘우리의 감성, 우리의 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창작뮤지컬이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톰과 메리의 이야기가 아닌 철수와 영희의 이야기로 말이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해요. 뮤지컬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감성 뿐 아니라 동네 아낙의 마음까지 읽어야 하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성이겠죠. 그냥 막연하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다양한 공부들을 해야 해요. 그 기초에 성실함이 있으면 더욱 좋고요. 하나 더 추가하자면 많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자기주장 100%로 만들어 지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것에 대한 설득과 타인의 의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겠죠. 고지식한 생각이 아닌 유연성 있는 사고를 가지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네요.
꿈만 크다고 해서 오래 버티기 힘들어요. 꿈을 위한 길을 ‘등산’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쉽게 이해가 될까요? 등산을 할 때 높은 고지만 보고 가게 되면 금방 지치게 되잖아요. 그런데 발끝을 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어느새 높이 올라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요. 그러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쉬어가도 좋아요. 주저앉고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정상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그 고지가 꼭 성공과 맞물리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자신의 꿈을 성공이라는 것에 옭아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주변을 살피면서 즐겁게 등산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자신의 전공분야만 생각하려 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겠어요. 한 곳에만 집중하게 되면 생각이 고지식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가장 많은 것을 접하는 나이가 20대잖아요. 저는 학창시절 때 성가대 지휘, 교회 봉사활동을 비롯해서 사람들과 많이 어울렸거든요. 또 연극을 좋아해서 뮤지컬도 정말 많이 봤어요. 나중에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려면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없더라고요. 언젠가는 자신이 겪은 작은 일들이 다 조각조각이 돼서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게 되요. 눈과 귀를 열어 넓게 보는 시야가 필요한 것 같아요.
[창작뮤지컬 음악감독 장소영]
방송 MBC-나는 가수다 자문위원 출연
영화 김종욱 찾기, 태극기 휘날리며, 가족
뮤지컬 피맛골 연가, 형제는 용감했다, 리컬리블론드, 미남이시네요, 남한산성
늑대의 유혹 등
2012 여수세계박람회 음악감독
싱글즈로 한국뮤지컬대상 작곡상
형제는 용감했다, 피맛골 연가 더뮤지컬어워즈 작곡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