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땐 순수미술인 회화를 하려고 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점점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순수미술은 대중과 소통하기에는 거리감도 있고, 소수의 문화여서 회의를 느끼게 됐어요. 그때 우연히 ‘만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만화를 통해 제 꿈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그러다 점점 음악도 들어가고, 인물이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겨 만화보다 종합적인 예술 성격을 가진 애니메이션 분야가 적격이라고 생각해서 98년부터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일을 해왔어요. 그렇다고 정식적으로 교육을 받은 건 아니고 독학으로 몸소 부딪히고, 다양한 장르와 경험들을 쌓으며 지금의 자리까지 왔어요.
회사의 전작이 해외 기업과 코 프로덕션(co-production)으로 진행되었는데, 해외 기업이 스토리 만들고, 우리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했어요. 근데 스토리가 너무 재미없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고생스럽고 보람이 하나도 없어 심한 좌절감과 자괴감에 빠졌죠. 그때 저예산 애니메이션으로 부담도 적고, 만드는 사람도 재밌게 작업할 수 있는 우리만의 개성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는 오기가 발동했죠. 움직이지 않는 하수구를 배경으로 2분 정도의 짧은 코미디 애니메이션이면 저예산으로 충분히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라바’의 콘셉트를 하나씩 잡아나갔죠. 또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에서 숱하게 나온 귀여운 캐릭터 대신 특이한 캐릭터를 찾다가 정체불명 애벌레로 정하는 등 기존의 애니메이션 틀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하고 싶었어요.
반대라기보다 어둠의 자식이었죠. (웃음) 라바를 기획할 당시 회사 내 큰 자금이 들어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요. 다른 프로젝트에 관심이 쏠려 있어 라바는 관심 밖이었고,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창의성의 샘을 메마르지 않게 해주었죠. 그 후 라바를 가지고, 해외 마켓이 가지고 갔더니 바이어들이 재미있다며 만들어지면 사겠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런 반응들 덕분에 라바를 제작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어요. 어둠의 자식이라고 하긴 했지만, 실제로 작업할 때는 회사 내에서 많은 협력을 해주었죠.
대부분의 사람은 애니메이션치고 독특한 구성과 캐릭터, 신선한 에피소드 등으로 모험이나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요. 정작 저와 스태프들은 너무 즐거워 정신없이 만들었어요. 아이디어 회의부터 직원들끼리 내부 PT를 하고, 에피소드가 하나씩 탄생할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어요.
시행착오는 누구에게나 있죠. 궁극적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슴 깊은 곳에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출판만화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의 플래시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었고, 나중에는 관리자나 팀장이 되어서 총 업무를 지휘하거나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했어요. 그때처럼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지 않을 때도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고 말겠다는 강력한 꿈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통속적인 말이긴 한데, 의지를 놓지 않고, 그 목표를 향해 걸어가면 이루어진다고 믿어요.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독학이 아니라 연출에 관해 전문적인 공부를 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일찍 감독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해요.
개인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력해서 되는 게 있고, 반복적인 훈련이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분명 있어요. 예를 들어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감각이 사람마다 달라요.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소재가 주어졌을 때 그 소재를 가지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질이 타고 났다고 해서 노력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자질은 천연 광물질 같은거라서 노력을 통해서 다이아몬드처럼 만들어야 해요.
저는 평범했어요.(웃음) 사실 다른 건 다 보통의 대학생 같았지만, 진짜 그림만큼은 많이 그렸어요. 미술학도니깐 당연할 수도 있었지만, 세상에서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좋았던 시기였죠. 그리고 꿈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황하고, 준비했어요.
대학생 때 적어도 자신이 졸업 후 뭘 하고 싶고,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애니메이션 분야는 각 파트마다 세분화•전문화 되어 있는데 보통의 대학생은 막연하게 이 분야에서 일 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자신이 어떤 분야에 감각이 있고, 재능과 흥미가 있는지 고민해보는 게 필요해요. 그걸 알아야만 대학교 다닐 때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있거든요. 기본적인 부분부터 명확히 하지 않고 커리큘럼만 따라가다 보면 졸업 후 다 조금씩은 할 줄 아는 어설프고 모호한 사람이 되어 있어요. 하지만 사회에서는 어설픈 사람이 아니라 완벽히는 아니라도 노력하고 준비된 사람을 원해요. 꼭 대학생 때 자신의 꿈과 목표에 관해 깊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다른 무엇보다 제가 애니메이션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이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성공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했고, 그 좋아하는 마음이 의지를 낳고, 열정을 쏟아 붓다 보니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물론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기까지 금전적으로 육체적으로 저도 힘들고, 가족도 힘들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대학생 여러분도 좋아하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직업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자세나 팁을 충고하듯이 이야기한다고 학생들에게 와 닿진 않을 것 같아요. 그저 스스로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서 익혀야 해요. 꼭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게 있다면 안도현 시인의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 구절처럼 가슴 속에 뜨거운 거 하나 품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뜨거운 꿈 하나를 가지고 가다보면, 결국 뜨겁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믿어요.
저는 면접을 잘 안 들어가요.(웃음) 저의 의견보다 팀을 이끌어가는 PM들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일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맡기는게 맞다고 봐요. 대신 포트폴리오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적어도 포트폴리오를 보면 이 사람은 자격을 갖췄고, 얼마만큼의 준비를 해왔는지가 보이거든요. 그리고 면접 때는 인성을 많이 봐요. 함께 일해야 하는 만큼 기존의 팀과 함께 잘 융합되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해요.
감독이라는 사람이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거에요. 때로는 자신의 작품을 관철시키기 위해 회사하고 싸워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이때 중요한 건 모든 걸 다 오픈 하는 과정이에요. 이런 작품을 어떤 생각과 방향으로 진행하고 싶은지에 대해 다 보여주고 대화를 하는 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설득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설득당하며 해결해나가죠. 어느 회사건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롤 모델은 없어요. 애니메이션 분야를 떠나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영상, 책을 접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이런 마음은 들어요. 저 감독이나 작가처럼 연출하고,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그리고 픽사(Pixar) 스튜디오의 존 라세터(John Lasseter) 부사장의 마인드를 배우고 싶어요. 존 라세터 부사장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직원들이 다양한 걸 경험할 수 있게 연출을 맡기고,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를 닮고 싶어요. 더불어 감독으로서 멋진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고 기술을 혁신화 시키는 점도 존경스러워요.
경제적으로나 바쁜 일정 때문에 가족들을 못 챙길 때가 가장 미안해요. 일이 힘든 건 괜찮은데 가족들이 힘들어 할 땐 정말 가슴 아프더라고요.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산고의 고통처럼 힘든 과정 끝에 작품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즐거워할 때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게 돼요.
힘들거나 슬럼프에 빠지면 무조건 나올 때까지 매달려요.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포기하고 싶고, 숨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절대 도망가지 않아요. 그저 만족하고, 해결할 때까지 오기와 끈기로 파요. 산책이나 여행 등으로 슬럼프를 극복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마음에 무언가 하나가 걸리면 주야장천 소화될 때까지 붙잡고 하죠. 그게 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극복 방법인 것 같아요.
열심히 하라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죠. 하지만 그게 정답인 걸 어쩌겠어요. 저는 젊은 날에는 꿈을 꿀 수 있는 특권과 열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꿈과 목표를 정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장기적, 단기적 관점에서 해야할 일을 정하고 느리지만 묵직하게 한 걸음씩 걸어나가면 좋겠어요. 힘들지만 젊음을 무기로 꿈과 목표를 향해 매진하다보면, 지금 자신이 꿈꾸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믿고 있어요. 저 또한 그랬고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감동을 못 주면 감흥이라도 주자는 신념을 지지고 있어요. 사실 남들에게 감동을 주기가 쉽지 않잖아요. 앞으로 작품을 만들 때도 장르와 상관없이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현재 ‘라바’가 극장용으로 작업 중인데, 관객 수를 떠나서 좋은 애니메이션으로 기억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만들 예정이에요.
[애니메이션 감독 맹주공]
애니메이션 <라바>제작
(주)투바 엔터테인먼트 감독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장관상 수상 (라바)
2009년 웹애니메이션페스티벌(WAF) 대상 수상 (라바)
2009년 SBS 창작 애니메이션 대상 단체부문 최우수상 수상 (라바)
2004년~2008년 ㈜파파빙고 감독
2002년~2003년 클럽와우 사이트 애니메이션 제작 총지휘
1999년~2001년 ㈜nworks 애니메이션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