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첫 기자생활을 시작한 성선화 기자는 사회부, 건설부동산부를 거치면서 경제를 보는 남다른 감각을 키웠다. 이후 기획심의실에서 한국경제신문사와 국방부가 공동으로 주관한 ‘1사 1병영’ 운동 캠페인을 취재하며 전국 각지의 군부대를 둘러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기자로서 활동하며 <빌딩부자들>, <월세의 여왕> 등의 서적을 집필하는 등 재테크 전문 작가로서 활동도 병행했다.
최근에는 방송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고소한 19>, <쿨까당> 등에 재테크 전문 기자로 출연하며 남다른 입담을 과시한 것이다. 그 사이 한국경제신문사를 떠나 현재는 이데일리 재테크 TFT 팀장 직을 맡으며 후배들을 트레이닝 시키고 있다. 물론 ‘기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며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경제 이슈를 찾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호기심으로 자신의 자리를 공고이하고, 그 영역마저 넓혀가고 있는 그녀의 성공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자신의 꿈을 위해 달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인터뷰어가 아닌 인터뷰이로 나선 그녀와의 유쾌한 데이트, 지금부터 공개한다.
TFT의 팀장을 맡으면서 일주일에 2페이지씩 재테크 면을 담당하고 있어요. 지면 계획도 짜고 섭외도 하고 재테크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제가 맡아서 하게 된 거죠. 한국경제신문사에 있을 때에 비해 이데일리는 여러 가지가 달라요. 물론 페이퍼 신문도 나오지만 인터넷 매체에서 시작된 곳이니까요. 한국경제신문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온라인 매체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특징을 꼽자면 일단 속보성이 훨씬 강해요. 기자들끼리는 ‘자출(취재기자가 간단한 기사 등을 데스크 검토 없이 기사를 오픈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간단하고 민감하지 않은 기사들은 데스킹 없이 보도되기도 해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죠. 그래도 좋은 점을 꼽자면 예를 들어 제가 저녁 7시에 중요한 사실을 알았을 때, 페이퍼 신문은 그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돼요. 하지만 온라인 매체는 그런 한계가 없죠. 이 기사가 단독이나 특종이라면, 바로 써서 보도될 수 있거든요. 그런 것이 온라인 매체의 특징이고, 경쟁력인 듯해요.
기자들의 하루 일과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날그날 취재거리가 발생하기 때문에 매일 바뀌죠.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을 체크하고 가장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나눠 동선을 짜는 편이에요. 보통은 출입처의 기자실로 출근을 하죠. 제가 출입하고 있는 곳이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라서 평소에는 주로 을지로로 가죠. 그런데 어느 날은 취재 약속이 강남으로 잡히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면 강남에 있는 출입처의 기자실로 가요. 이렇게 그날 약속 장소에 따라서 내가 어디로 출근할 건지를 결정을 하고, 오늘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에 다라 효율적인 동선을 짜요. 회사에 보고는 주로 메신저를 통해서 하는 편이고요.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저 혼자 일을 다 했어요. 최근 들어와서 조금 일을 가르치며 시키기 시작했어요. 뭔가 지시하는 것도 꽤 기술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제가 취재 할 때만큼 기사의 퀼리티가 안 나올 것 같은 걱정 때문에 함부로 지시하기가 어렵거든요. 후배들이 잘 해내게 하기 위해서는 잘 설명을 해서 시켜야 하는데, 이제까지는 그러기보다 ‘됐어, 그냥 내가 할께’가 돼 버렸거든요(웃음).
초심을 잃는 것을 제일 경계하고 있어요. 일이 익숙해지면서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는 부분들이 생기고, 그러면서 저 또한 닮기 싫었던 선배들의 모습을 닮아갈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열심히 현장을 뛰지 않다든지, 편하게 취재를 하려고 하는 것들이죠. ‘이정도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 것을 느낄 때면 항상 스스로에게 파이팅 정신을 불어넣고 ‘초심을 잃지 말자’를 되뇌죠.
‘좋은 기자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죠. 처음 일을 시작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가장 큰 고민이고 저의 화두에요. 기자 초기에는 특종, 단독에 목을 맸는데, 지금은 ‘과연 내가 쓰는 기사의 의의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 저는 금융권 M&A와 관련된 취재를 하고 있지만, 사실 제가 M&A 기사를 열심히 쓸수록 그 M&A는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 있거든요. 다른 기자보다 먼저 기사를 쓰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과연 이 기사가 공익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가 고민인거죠. 사실 제가 재테크 기사를 쓰는 것도 제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잖아요. 요즘 제 관심은 기사를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기획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바꾸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인생에서 가치관의 정립이 필요하듯이 기사에 대한 가치관도 저는 기자 개개인 별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거기엔 정답이 없기에 더 고민하는 거죠.
가장 최근의 책은 <월세의 여왕>인데 제가 실제 부동산 투자를 하는 과정의 우여곡절을 담은 책이에요. 이제까지 부동산과 관련된 책들을 써 왔다면 이번에는 여성의 결혼 문제에 대해 써볼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젊은 세대에게 결혼이라는 문제는 중요한 이슈인데도 불구하고 실패 사례가 정말 많이 나오잖아요. 똑똑한 사람들도 결혼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서툴거든요. 그 이유가 뭔지, 문제를 짚어보고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의 중요성도 다룰 생각이에요.
고향은 울산이에요. 초등학교까지 거기서 다니다가 그 이후에는 쭉 과천에서 살고 있어요. 어린 시절 저는 욕심이 되게 많았어요. 공부를 꽤 열심히 했는데, 공부가 좋았다기보다는 다른 친구들에게 지는 게 너무 싫었던 거죠(웃음). 중‧고교 시절에는 선택과 집중에 굉장히 뛰어났던 것 같아요. 국‧영‧수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벼락치기를 하는 편이었죠. 학창 시절 최초의 실패경험을 꼽자면 외국어고등학교에 떨어졌던 순간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때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그 외 특징이라면,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인정도 받았다는 정도에요. 반대로 수학은 고교 입학 첫 시험에 30점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 특성 상 국‧영‧수를 모두 잘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3년 내내 수학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결국 수능에서 수학은 만점을 받았어요. 제게 있어 그건 꽤 중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한계를 극복한 경험은 이후에도 제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어요. 그게 제가 경제나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기자로서도 전문 분야로 삼은 이유죠.
대개 사람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 부자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잘 해야 중산층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책을 쓰면서 깨달은 노하우를 가지고 실제로 적용해보며 부자의 꿈을 키우고 있고요. 예를 들자면 얼마 전 제가 분양받은 오피스텔의 세입자와 계약을 했는데, 저와 나이 차가 많지 않았어요. 언뜻 생각하면 큰 차이가 나 보이지만, 사실 그 세입자가 제게 내는 보증금과 제가 그 오피스텔을 분양받을 때 지불한 돈의 차이는 크지 않거든요. 생각의 차이가 그런 결과를 만든 거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한계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꽤 호불호가 뚜렷한 편이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도 뚜렷하게 구분하는 편이었죠. 기자 일은 제 스스로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는 일이었어요. 굳이 계기를 말하자면 고교시절 도서관에서 ‘여기자’라는 책을 보게 되면서 부터에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어요. 돈보다는 명예를 얻는 쪽에 관심이 있었고, 글을 쓰는 걸 좋아했고, 호기심도 많은 편이었죠. 그래서 더욱 기자라는 직업에 확신을 갖게 된 거에요.
후회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 나태해지는 것은 굉장히 경계해 왔어요. 기자로서 취재력이나 필력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체력, 건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강관리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운동을 거의 매일 하고, 몸에 좋다는 건 꽤 챙겨먹는 편이죠(웃음).
저는 여대를 나왔는데, 역시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단점은 대학시절 내내 MT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거죠. 여대는 원래 MT를 안가더군요(웃음). 그리고 밤 10시만 되면 학교가 컴컴해져요. 전 그런 점이 조금 안 맞았던 것 같아요. 대신 해외 자원봉사 활동을 꽤 많이 했어요. 2학년 때만 해외 자원봉사를 3번이나 나갈 정도였죠. 터키, 러시아, 중국을 다니며 자원봉사를 했고 특히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진 TSR(Trans Siberian Railway : 시베리아철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대지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 최장 철도) 열차를 타기도 했어요. 해외 자원봉사 지원하는 게 있으면 다 지원했고 다른 학교 학생 대표, 언론인, 국회의원 등을 두루 만났죠. 해외 각 도시의 대학생들과도 교류했고요. 그때 만난 사람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3~4학년 때는 주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상식을 쌓는 겸해서 한 것이 독서였죠. 그 때는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흡수가 잘 되던 시절이기도 했고요(웃음). 전 지금도 무슨 이야기를 할 때면 종종 그 때 읽었던 책들을 인용하곤 해요. 그 때 사회‧인문학적인 바탕이 많이 형성됐던 것 같아요.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나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 같은 책들이었죠. 그리고 고전 위주로 책을 굉장히 많이 읽으면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러면서 역사 공부도 굉장히 많이 했고요.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글쓰기에요. 이건 실제로 기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스터디 활동을 하면서 논술과 작문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논리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캐릭터도 정확히 알게 되더군요(웃음). 제 경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그런 성향이 결국 기자를 지망하면서도 언론사 선택에 영향을 미치더군요.
기자가 되기 전 20대를 떠올리면 뭔가를 해도 항상 마음에 돌덩이 하나가 있는 것처럼 묵직했어요. 항상 뭘 하고 싶고 그 걸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가득해 다른 것에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솔직히 나이가 들면서 대학 시절보다는 지금이 더 행복해요. 저도 그렇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 세대는 늦게 성인이 되는 것 같아요. 인격체로 성숙하기 보다는 눈앞에 성공에만 몰두하는 편이죠. 20대 시절은 어떨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대학생들도 열심히 노력하며 꿈을 키우다보면 불안감을 떨칠 날이 올 거예요.
지금은 10kg 정도 살이 찐 거지만 그때는 정말 말랐어요. 체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때 부터였어요. 사실 전 면접에서 많이 떨어졌어요. 남자 기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자 기자 선발 숫자가 적었으니 훨씬 힘들었죠. 떨어질 때마다 힘들었어요. 그 과정을 거치고 한국경제신문에 합격하게 된 거고요. 그렇게 기자가 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첫 번째 특종상을 받았을 때에요. 입사 7개월 즈음이었는데 로스쿨 정원 구분과 관련된 내용이었어요. 그 때는 머릿속에 온통 기사 생각밖에 없었죠. 난 기사를 써야하는데, 추석 연휴나 설 연휴가 있는 게 싫을 정도였어요(웃음).
물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여자도 군대를 가야된다고 생각을 해요. 얼마 전 군부대 취재를 할 일이 있어 한 6개월 정도 전국 육‧해‧공 부대를 취재 다녔어요. OP(Obsever Point : 관측소를 의미,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도 가보고 GOP(General Out Post : 일반전초기지, 최전방인 남방한계선 부근에 부대가 주둔하며 경계 임무를 맡고 있다)도 가보고 실탄도 쏴봤죠. 그런 경험을 하면서 느낀 것이 ‘아 내가 이래서 힘들었구나’였어요. 여성들은 항상 모든 것을 합리성에 중심을 두고 생각해요. 합리성과 효율성이 가장 큰 가치죠. 하지만 군대를 가보니 군대에는 합리성과 효율성 위에 또 하나의 가치가 있어요. 서열이라는 거죠.
그동안 저는 합리성과 효율성의 잣대로만 조직에서 생활하면서 늘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분을 거부하며 제 방식을 고집했어요. 하지만 조직이 돌아가는 논리는 그게 아니라는 거죠. 그걸 깨닫고는 좀 달라졌어요. 조직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못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빛이 나는 일도 있고 빛이 나지 않는 일도 있어요. 조직 구성원들 중 누군가는 빛나지 않는 일도 해야 하는데, 제 경우는 ‘내가 빛나지 않는 일을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가졌던 거죠. 나중에 깨달은 것은, 그 일을 제가 함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편하고 또 그로 인해 제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헌신이 결국에는 조직을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라는 걸 알게 되면서 꽤 많이 바뀌었죠. 합리성이 100% 통하지 않는 것이 조직 문화고 그 조직에 일원이라면 그 논리에 순응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니 남자들과 대화가 쉬워지더군요(웃음).
제 생각에 특종과 오보는 종이 한 장 차이에요. 사람들은 흔히 특종을 ‘누군가 찔러준다, 꽂아준다, 말해준다’ 식으로 생각하는데 꼭 그렇진 않거든요. 특종을 찾는 건 흐름을 읽고 그 길목을 지키고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해요. 대 여섯 명을 만나면 답이 나오는 식이죠. 최근에도 저는 모 저축은행과 관련된 기사를 썼는데,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해 준적은 없어요. 하지만 관계자들을 만나보며 제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춰가는 거죠. 물론 제가 맞춘 그 퍼즐이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리스크는 전적으로 기자의 감각과 판단에서 감수해야 하죠. 위험하기도 하지만 남들이 다 알고 편한 기사만 쓰려면 뭐 하러 기자 생활을 하겠어요.
저는 책을 쓰는 것이 일종의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제가 3번째 책을 준비하는 목적이 공감과 소통이죠. 독자들이 나를 통해서 뭔가 얻은 게 있다는 것이 즐거워요. 어쩌면 기사로써 다 하지 못하는 말을 책으로 소통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결혼에 대한 책을 쓰다 보니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요. 굳이 결혼만이 아니라 남자나 여자 모두 인간관계적인 측면에서 소홀했던 것 같아요. 제 자신의 주관이나 목표, 길을 위해서는 확실하게 걸어왔다고 할 수 있지만 살아가면서 필요한 파트너십이나 인간관계 측면에서 중요성을 놓치다가 최근 와서 그 중요성을 깨닫고 있죠.
여자 후배들을 보면 과거 제가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있어요. 사실 저도 회식을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핑계를 대며 회식에 빠지는 행동 같은 것들이죠. 너무 약은 행동도 보기 좋지 않아요. 그리고 회사를 그만 둘 때도 잘 마무리를 하고 그만둬야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메신저에 ‘그만둔다’ 한마디 하고 가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더군요. 하지만 제가 겪어보니 그런 행동은 아닌 듯해요. 사람은 돌고 돌아서 다 만나게 되어있어요. 특히 한국 사회는 그래요. 요즘 느끼는 거지만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사회생활을 하며 인맥이 늘어나다 보니까 이제는 시쳇말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게 되거든요. 평판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못했던 게 그거에요. ‘안보면 그만이지’, ‘지금 당장 내가 싫다고 안하면 그만이지’ 그러는데, 그 평판은 결국엔 돌고 돌아서 자신에게 돌아와요.
저는 주관이 굉장히 뚜렷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남의 말에 귀 닫지는 않았어요. 일단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을 하고 내 경쟁력이 뭔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을 해야 해요. 그 경쟁력을 가지고 승부를 걸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사회에서 정해진 기준으로 좋아 보이는 것들, 학벌은 중요하지 않아요. 서울대면 다 똑똑한 게 아니거든요. 나에게 좋은 것은 나와 가장 잘 맞는 것이에요.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죠.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어디에 있을 때 행복한지를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해요. 스스로에게 맞는 것을 찾고 거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정답은 없어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안에서 확신을 찾는 거죠.
[성선화]
2012 이데일리 금융부
2009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2007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교육팀
2006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