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청춘의 권리입니다”
꿈이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오경수 동문은 ‘귀뚜라미 보일러 아저씨’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많은 이들이 그를 광고모델 혹은 조연 연기자로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대홍기획, 맥켄에릭슨, 제일기획, 그리고 덴츠코리아까지, 국내 굵직한 광고회사는 모두 거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그의 손을 거친 광고는 귀뚜라미 보일러를 비롯해 KTF, 스카이라이프, 애니콜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고들이다. 배우와 광고기획자, 두 직업을 오가며 왕성히 활동하던 그는 이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서있다. 대학 선배가 차린 회사에 합류해 광고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 회사를 경영하는 위치지만, 지금도 잠자면서도 아이디어를 짠다는 그의 일상을 이곳에 담았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면, 광고가 제격이에요
오경수 동문은 대학 시절 동안 아주 바빴다고 회상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자인학과 특성상 과제가 많아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
“어느 날 시각디자인학과 윤호섭 교수님께서 광고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마침 광고대행사에 취업한 선배들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거든요. 막연하게 저와 잘 맞을 거라 생각해 발을 내딛게 됐어요.”
그는 대홍기획에서 인턴을 시작으로 약 3년간 근무했다. 요즘 광고업계와는 다르지만, 당시에는 다른 이들의 업무에 잘 관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 동문은 그 틀을 과감히 깼다. 디자이너지만, 카피도 쓰고, 콘티도 짜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맥켄에릭슨에서 2년, 제일기획에서 8년, 덴츠코리아에서 10년을 거치며 그는 광고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 되었다. 오 동문은 자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로 ‘아이디어’와 ‘근성’을 꼽았다.
“아이디어를 잘 짜는 노하우가 따로 없는 거 같아요.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아이디어가 좋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하나의 과제가 주어졌을 때 끊임없이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죠. 저는 자면서도 아이디어를 짤 정도예요. (웃음)”
‘광고’는 넓을 광(廣), 알릴 고(告)를 쓴다. 이는 넓은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는 한 분야에 깊이 몰두하기보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광고와 잘 맞을 거라 조언했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렇지만 광고를 만들 때는 대학생 때 어떤 동아리를 들었는지, 연애는 얼마나 했는지, 여행을 많이 다녔는지가 더 중요해요. 경험이 축적되어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또 다른 직업, ‘배우’로 도약하다
오 동문의 얼굴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귀뚜라미 보일러’ 광고부터다. 당시에는 광고대행사 직원들이 광고의 엑스트라로 자주 등장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빼빼로 CF였는데요. 당시 중학생이었던 배우 김민정 씨가 메인 모델이었죠. 김민정 씨가 빼빼로를 먹을 때 그 끝에 원시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요. 그게 바로 저였어요. (웃음)”
광고 제작은 물론, 엑스트라까지 그는 전 과정에 참여했다. 그가 귀뚜라미 보일러 광고를 맡게 된 것은 제일기획에서 근무할 때다. 귀뚜라미 보일러 회장님이 오 동문에게 직접 출연을 권유한 것이다.
“귀뚜라미 보일러 회장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때 제가 직접 연기를 보여드렸어요. 그 모습이 마음에 드셨는지, ‘당신이 그냥 하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하도 광고에 많이 출연해서 저를 알아보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가 귀뚜라미 보일러로 데뷔한 줄 아는데, 사실 해찬들, 쎄콤, 하이모 등 다양하게 출연했어요.”
그는 제일기획에서 광고 제작과 광고 모델 두 가지 일을 모두 맡았다. 자연스레 드라마 출연까지 이어지게 됐다. 그가 처음 출연한 드라마는 KBS2 <달자의 봄>이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해 3개월간 휴직해 드라마에 참여했다.
“처음 연기를 해봤는데, 반응도 좋고 재미도 있는 거예요. <달자의 봄> 이후로 여러 곳에서 출연 제의도 받게 됐고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기다려주는 것에 한계가 있잖아요. 저는 광고와 연기 둘 다 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연기를 할 수 있는 회사로 가자고 마음을 먹고 이직한 곳이 외국계 광고회사인 덴츠코리아였어요.”
이후 드라마 <장난스러운 키스>, <샐러리맨 초한지>, <천일의 약속>을 거쳐 영화 <나의 p.s 파트너> 등 다양한 작품에 명품 조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연기가 본 전공이 아닌 탓에 현장에서 NG를 내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었던 거 같아요. 학생들이 학교 다니다가 회사 다니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그것과 똑같은 거 같아요. 저는 연기 계통에서는 신입 사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드라마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몇 달 전, 그는 덴츠코리아를 퇴사하고 학교 선배가 운영하던 광고대행사인 레드카펫크리에이티브에 합류했다. 그는 직접 회사 운영에 관여를 하다보니, 일반 직장인이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막중함 책임감을 내비쳤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배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성공 가도를 달려온 그에게 ‘꿈’에 관해 물었다.
“꿈이란 나도 몰랐던 나를 찾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아직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양파껍질 벗기듯이 나를 발견하며 살고 싶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국민대학교 후배 여러분들도 매일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지위와 재물은 절로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청춘일 때 가능한 경험을 많이 누리길 바라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자산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