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와 한류가 만나, 하나 되는 염원을 담은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다장르 융복합 개념의 새로운 한류 축제가 됐다. 특히 축제의 화려한 개막을 알리던 ‘원아시아페스티벌 2016’의 공연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정도다. 360도 객석을 향한 특별 무대에 조명과 영상장비, 음향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차별화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연일 큰 화제에 올랐다. 현장감과 몰입감 그리고 극대화를 위해 최근 동영상이나 게임 등에서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과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이 여기저기서 등장한다던데, 이 공연의 핵심 장치는 이 비슷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지난 10월, 현장에 있던 관객과 TV를 통해 시청하던 시청자 모두 극강의 몰입감을 경험했다는 평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이렇게 창의적인 무대를 연출한 사람은 누구일까.
인터뷰를 위해 찾은 곳은 SBS 프리즘타워(SBS Prism Tower)이다. 양재영 PD의 안내를 받아 12층으로 올라가니 바쁜 방송국의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미국의 음악 채널인 MTV를 국내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SBS MTV이다. 편성은 MTV에서 만든 외국 프로그램은 물론 SBS MTV 자체 프로그램인 <더 쇼(The Show)>와 <더 스테이지(The Stage)>등이 있다. 그중 음악 방송 최초로 중국과 공동 제작하고 동시 생방송되는 글로벌 음악 프로그램 <더 쇼>는 가장 핫한 K-POP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버라이어티 뮤직쇼이다.
현재 SBS 미디어넷, 그 중에서도 SBS MTV에서 재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화제의 2016 부산 원아시아페스티벌 개막식 연출도 맡으신 것으로 알고 있고요.
최근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맡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SBS 미디어넷의 모든 음악 콘텐츠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더쇼>가 생방송 되는 날이기 때문에,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필 오늘이 가장 바쁜신 듯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현장을 보시는 게 제 일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라 일부러 오늘로 일정을 잡은 겁니다. 저녁 8시 생방송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제작진이 어떤 준비를 하고 몇 번의 리허설을 하는지, 그리고 무대를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했는지는 현장을 와 봐야 아니까요.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 채널로서 화제를 모으는
SBS MTV 제작진, 즉 방송을 만드는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조직 구성은 어떤 식으로 돼 있나요.
프로그램의 연출이라기보다는 책임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후배 PD들을 이끄는 관리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험과 노하우를 PD들에게 잘 전달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일인 것이죠. 현장 보다는 그 위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선, 때로는 갈증을 많이 느끼는 편입니다. 그렇다보니 작년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 같은 대형 무대 연출 기획을 늘 하기 마련이죠. 아직은 현장에서 좀 더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일을 많이 찾는 편입니다.
그 여러 기획 중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것도 여러 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최근 한한령 때문에 불가피하게 차질이 있어 보이는데,
어떤 돌파구를 찾고 계신지요.
중국의 상황은 마냥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미련을 두고 있으면 그야말로 정말 미련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지요. 위기는 또 다른 기회 아니겠습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중국 시장에 밀려 시야 밖에 있었던 지역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이를테면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지역의 나라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 러브콜도 오고 있는 상황이고, 해서 현지로 날아가 여러 일들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2년 전 방영됐던 드라마 <프로듀사>가 떠오른다. PD들의 방송사 안팎의 일과 사랑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로 기억되는데, 그중 주인공 김수현이 예능 PD로 입사하는 첫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이 드라마를 통해 많은 대학생들이 예능 PD의 꿈을 갖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양재영 PD의 경우는 어땠을까?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도 방송 PD라는 직업은 1020세대에게 선망의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PD가 되셨나요?
예전 케이블 TV시대 VJ콘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최할리, 김형규, 이기상 씨가 1기인데, 전 2기로 선발됐었습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분들이 일부 있었던 것과 달리, 저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대학생 때 도전하게 됐는데, 당시 아나운서 입사 시험처럼 선발을 하더라고요. 그 경험을 토대로 케이블 TV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대학 졸업 후에는 CJ미디어에 공채 PD로 입사했습니다. 제작팀 막내 PD이다보니,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해야 했습니다. 다행인건 정말 하고픈 일이어서 그런지 즐기며 일했던 것 같습니다.
SBS 미디어넷 입사 후에는 줄곧 음악 프로그램만 맡으신 셈인데, 익히 알려진 것을 꼽자면
생방송의 긴장감, 스트레스, 여유로운 일상과는 거리가 먼 스케줄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평소 일정 역시 빡빡하실 듯 한데, 대략적인 일과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정이 꽉 찬 건 사실입니다. 일명 아이돌 스케줄이죠(웃음). 회의와 미팅, 그리고 회식도 많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것 보단 말씀대로 늘 긴장감 많은 일을 하다 보니, 함께 일한 후배 PD나 스텝들과의 뒤풀이는 정말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음의 일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주말은 철저하게 쉬는 편입니다. 그때는 일부러 음악도 안 듣습니다. 음악이 좋아 즐겨 듣는 편인데, 최근에는 직업병이 생겨 음악을 들으면 무대나 상황 등을 연출하려 해서 나름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따라서 주말엔 쉬거나 남편과 아빠 역할에 전념하는 편입니다.
20여년을 PD로 일하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네요.
힘들었던 기억을 말씀해 주신다면 뭐가 있을까요.
시청률 신경 쓰는 것은 모든 PD의 숙명이자 운명 아닐까요. 그런 빤한 대답 말고 요즘 새삼스레 드는 힘듦은 아마도 화려함 이면인 것 같아요. 음악 프로그램을 오래 맡다보니 이제는 주목받는 가수보다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는 가수들에게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예전에는 활동시기로 놓고 보면 대략 10~20개 팀이 있어 출연 선정이 보다 수월했다면, 지금은 70~80개 팀이 한 순간에 활동시기로 몰리는 편이에요. 그렇다보니 인기와 인지도 외에도 경쟁력이 있어야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지요. 한데 제가 보기엔 정말 열심히 준비하는데, 무대 기회가 없는 이들이 있거든요. 그들을 만나 위로하고 다음을 위해 상의하고 그러는 편입니다.
오늘 <더 쇼> 생방송 날인데, 그 긴장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알 수 없겠지요.
혹 아찔했던 방송사고 등의 해프닝은 없으셨는지?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은 최고의 한류 콘텐츠가 만나는 문화의 장이다 보니 준비 기간만 몇 달이었습니다. 리허설도 수차례 했는데도 생방송이라는 상황은 늘 변수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지요. 드렁큰 타이거 차례였는데 세 곡을 무대에서 부를 예정이었습니다. 첫 곡이 잘 진행된 후에 두 번째 곡에서 음악감독이 그만, 세 번째 곡의 버튼을 실수로 눌러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 곡에 맞춰 조명과 여러 무대 효과 등이 차례로 세팅된 상황인데, 세 번째 곡의 전주가 흐르는 상황~. 말 그대로 다들 멘붕 상황이었죠. 이때 메인 연출자인 제 결정과 선택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녹화라면 다시 끊어 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미 전국으로 생방송되고 있고, 5만여 관객이 이미 세 번째 곡의 전주를 확인한 이상 그냥 가야했지요. 다행이도 드렁큰 타이거의 애드립으로 위기가 모면되었고, 이미 오토매틱으로 다 세팅된 조명, 무대 효과 등이 수동으로 일순간 바뀌어야 하는 상황 이었습니다.
음악감독은 일순간 공공의 적이 되었겠네요. 생방송 후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생방송 중에는 인터컴을 통해 정말 입에 담기도 힘들 말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은 다반사지만, 방송 후엔 지난 일에는 왈가왈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생방송이 끝나자, 그 음악 감독님 펑펑 눈물을 흘리시는데, 그냥 아무 말 없이 안아 드렸던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다음이 있으니까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그러다가 방송이 있는 날이면 수많은 것들을 체크하며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나름 권위적이고 냉소적인 일이 아닐까 싶어, 만나기도 전에 그 사람마저 그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만남을 앞두고 전전긍긍하던 그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삶을 끌어가는 그의 열정을 듣다보니 이내 편안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렇게 겸손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따뜻한 감성을 내비치는 PD와의 기분 좋은 대화는 추운 날씨마저 훈훈하게 만드는 듯했다.
시청률은 PD의 숙명
과거와 달리 요즘은 방송환경도 많이 달라졌고, 방송사와 채널도
다양해지면서 PD 입문에도 여러 루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표 적인 경로를 말씀해 주신다면 뭐가 있을까요.
방송사 공채를 통해 입사하는 경우겠지요. 저처럼 여러 경험을 통해 몇 번의 방송사 이동을 한 경우는 공채 PD에 비하면 흔치 않은 케이스가 되겠고요. 신입 PD를 보면 이따금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방송사의 직원이 되고픈 건지, 프로그램 연출을 하고 싶어 방송사에 입사를 한 것인지 말입니다. 스펙을 쌓고 입사시험만 잘 통과했던 사람과 방송이 좋아 방송사 입사를 위해 준비한 사람의 차이점은 여러 분이 더 잘 알 것이라 생각됩니다.
PD가 되기 위해 타고나야 할 것이 있을까요. 관심사나 미리 키워두면 좋은 소양,
준비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제가 졸업하기 전 VJ나 케이블 TV에서의 여러 경험을 쌓은 것처럼 학창 시절 관심 분야의 여러 일들을 경험하라고 일러주고 싶네요. 공부만 잘해서 입사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해하는 것도 봤고, ‘적성에 안 맞다’며 일주일 만에 포기하는 신입도 여럿 봤으니까요. 저는 음악이 좋아 음악 프로그램이나 공연 무대를 연출하고 싶은 마음에 PD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과 꿈이 명확했기 때문에 이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송 분야는 특히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터라, 현업에 있다고 해도
자기계발을 늦출 수 없습니다.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음악이 좋아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아무리 좋아도 그게 업이 되면 힘든 일이 왜 없겠습니까. 예전에는 채널이 몇 개 안되니 시청자는 싫어도 그냥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요즘은 채널이 워낙 많아졌고 되레 시청자가 연출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렇다보니 방송사는 사장이 되어도 늘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획안을 작성해 후배 PD에게 ‘이런 프로그램은 어때’라며 역제안하는 경우도 많은 곳입니다. 늘 창의적인 안을 준비하고 개발하는 것에 게을리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 말은 후배들에게도 해 주시는 말일 듯한데, 좋은 PD의 조건이란 무엇일까요?
상당히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좋은 선배 PD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으로 받겠습니다(웃음). 시청자의 마음을 읽고 그걸 토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정말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러려면 늘 끊임없이 관찰과 검증을 해야 합니다. 게다가 좋은 PD라는 게 시청자에게만 잘 보여서는 안되는 게 요즘 방송 환경이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방송은 방송대로 잘 만들면서 비즈니스 마인도도 중요한 때입니다. 아티스트적인 연출을 하는 편인 저도 한때 심각하게 고민해봤으니까요. 좋은 선배 PD란 후배 PD들이 아티스트 감각으로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뒤에서 잘 뒷받침 해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PD를 비롯해 방송분야에서 일하길 원하고,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도서관에만 앉아서 옆 사람보다 더 높은 스펙의 점수, 더 높은 학점, 경력 한 줄 더 채워 넣기 위한 자격증에 매달려서 지금의 청춘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큰 길을 벗어나 좁은 골목을 기웃거리며 걷는 것도 청춘의 특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딪혀 보세요. 남들보다 다른 시선이 생기고 현명한 눈까지 생기게 됩니다. 방송 일을 꿈꾸는 국민대 여러분들을 꼭 후배 방송인으로 만날 수 있다면 정말 반가운 일이 될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