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니면서 전공이었던 무용보다는 방송 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동경만 있을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지금이라면 워낙 다양한 종류의 오디션이 있으니까 그런 프로그램에 도전해 보기도 했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잖아요. 그때는 유일한 오디션이 미스코리아 대회였죠. 그걸 통해서 방송계에 진출한 사람도 많았고요. 처음부터 아나운서를 꿈꾼 것은 아니었어요. 겉멋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을 한 거죠. 그런데 미스코리아 당선 후 몇 번 방송에 출연을 해 봤더니, 너무 쉽게 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나 노래를 하는 것은 정말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죠. 그래서 방송을 업으로 하는 안정된 직업이 뭐가 있을까?라는 조금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공채 시험을 준비하게 된 거죠.
지금도 그런 생각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걱정스러워요. 사실 저는 미인대회 출신이 아나운서 보증수표라기 보다는 오히려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을 했었거든요. 그저 좋은 배우자감을 만나기 위해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한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특히 저는 무용을 하다가 미스코리아가 된 케이스인데, 아나운서 면접을 보면서 과연 나를 성실한 직장인이 되고 싶어하는 지원자들 중에 하나로 봐 줄까?라는 고민부터 했던 것 같아요. 다른 지원자들과 나를 객관적인 선상에서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 미스코리아 출신이기 때문에 가산점을 부여 할거야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딜 가든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것이 꼬리표처럼 따라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되거든요. 저 이후에도 다른 방송사에서 미스코리아 출신이 더 생겨나면서 아나운서 지원자들 사이에 그런 생각들이 자리한 것 같아요. 그런데 미인대회 출신이라 사람들에게 화제성으로 입에 오르내릴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거든요. 특별한 가산점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그때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뉴스데스크를 진행하기에 나이도 어렸고… 나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냥 그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모든 일이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넓었어야 했는데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겨우 대학교를 졸업한 제가 세상에 대한 넓은 시각을 가지기엔 부족함이 많았죠. 앵커멘트를 하나 써도 경험이 녹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다들 직장 생활을 별 탈없이 몇 년 정도 하다 보면, 서른 즈음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정말 이 길이 내 길 인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나. 등 고민이 많죠. 지금 생각하면 30대 쯤에 회사를 다니는 여자들은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할거예요. 그러다 여건이 안돼서 현실에 타협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에 발목 잡혀 본인이 하고 싶은 길을 가지 못 한 거죠. 그런데 저는 운이 좋게도 직업 자체가 유학을 다녀오는 동안 휴직을 쓸 수 있는 부분이 허용이 됐기 때문에 결국에는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특별히 대단한 고민을 하지는 않았어요.
두려움은 별로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현실 감각이 제로였던 것 같아요. 그냥 이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스펙을 갖고 싶다는 욕망만 한 가득 이었던 것 같아요. 유학을 가서 내가 어떻게 살고,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2년 후 돌아와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겠다.라는 인생 설계조차도 없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무작정 떠났던 거라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2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아요. 그때 떠나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아쉬움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한국 학생들과 달리 미국은 정말 공부를 해야 할 아이들만 대학교에 오니까, 처음부터 공부에 취미가 없으면 다른 길을 찾아요. 대학원도 마찬가지예요.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죠. 그리고 학비에 너무 연연하지 않도록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 같아요. 학생의 대부분이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저널리즘 스쿨에 행사나 특강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준비하는 스텝을 구하기 위한 공고를 올려요. 하루 일당도 충분하게 줘서 공부를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까 부담을 덜 수 있죠. 또, 학교에서 조교 인력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니까 본인이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학비와 생활비까지 문제없이 벌 수 있어요. 한국 학생들은 정말 등록금에 매여 있잖아요. 게다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월세, 생활비 등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잖아요.
제가 요즘 정말 재미 있게 보는 잉여인간이라는 웹툰이 있어요. 거기에서 하루에 8시간 뼈빠지게 일하는 비정규직의 모습이 그려 지는데요. 한달 월급이 100만원이 안 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월세 빼고, 생활비, 대출이자 등을 제하고 나면 빚만 더 늘어나는 거예요. 결국은 빚만 주렁주렁 달고서 계속 일을 하는 거죠. 그래도 늘 힘겨울 수밖에 없는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미국에서는 저처럼 언어적 장벽이 있는 사람들도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더라고요.
제가 돌아왔을 때는 MBC가 파업을 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돌아와서 일정 기간은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저 자신도 모르게 책임감이라는 것이 생긴 것 같아요. 따르는 후배들도 늘었고, 이제 내가 원한다고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아나운서로서, 선배로서 책임감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참 재미없는 말인 것 같지만, 예전의 서현진이었다면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속단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했는데, 이제 그래서는 안되겠더라고요. 어떤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저 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도 출근하기 전에 50분 정도 운동을 하고 왔어요. 하루에 몇 분이라도 운동 꼭 하려고 하고, 몸에 좋다고 하는 과일, 채소, 견과류 등을 잘 챙겨 먹는 편이예요. 커피는 하루에 한잔 이상은 안 먹어요. 외모 관리는 방송인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죠. 특별한 다이어트를 한다기 보다는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요. 건강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많이 움직이더라고요. 집이 11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걷는다거나 과식을 했다면 다음 번 식사는 거르는 정도의 간단한 것들이죠.
거창하게 이상형이라기 보다는 제 인연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키가 크면 좋겠다, 어떤 회사에 다니면 좋겠다, 돈은 얼마나 벌었으면 좋겠다.라는 기준 보다는 많은 단점들이 있겠지만 이 정도면 서로 참고 살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지만 항상 자기 일에는 열정이 넘쳐서 저를 긴장하게 해 주는 사람이 좋아요. 함께 자기 발전을 해 나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삶의 가치관이 비슷하면 좋을 것 같아요.
존경하는 선배들 많죠. 그런데 저는 항상 그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커리어우먼을 존경해요. 꼭 아나운서가 아니라 회사 중역이 될 수도 있고, 자기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님일 수도 있고, 집에서 블로그를 열심히 하는 사림일 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어떤 나이에 있건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그것을 인정받는 사회의 선배들인 거죠. 많은 젊은 여성들이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냥 조건 좋은 남자 만나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다 보면 자신의 삶은 없어지게 되거든요. 저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여성 아군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어디서나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제 또래, 아니면 선배들이 더 많아져서 서로 끌고 밀어 주면 좋겠어요.
고민할 나이가 아니다. 고민할 게 없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 시절에는 몰라요. 지나고 나서 보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나이더라고요. 20대 때는 서른이 되면 정말 인생 끝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때도 너무 어리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던 나이였던 것 같아요. 나는 여전히 젊고 예뻤는데, 나는 왜 매일 감사하며 살지 못했는가, 주어진 것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벗어나려고만 했을까. 물론 현실에 타협하고 살라는 뜻은 아니에요. 인간은 늘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즐기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원더풀 라이프는 순간, 순간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즐기는 것이에요. 지금 상황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고 느낄 때가 일생에 얼마나 있겠어요. 저는 늘 제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이것저것 채우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면서 살아왔어요. 아주 먼 미래만을 본거죠. 그러다 보니, 그땐 그 나름대로 좋았는데, 왜 나는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 버린 걸까라는 후회가 남더라고요. 지금 자신의 처지가 썩 자신이 만족하지 못할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삶에서 기쁨을 찾고, 즐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만 자꾸 흐른다고 전전긍긍 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조건을 누릴 수 있을 때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너무 내 멋대로 지지부진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괴로웠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미 지나간 시간은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뭔가 삶에 변화를 주고 싶어요. 그것이 결혼이 될 수도 있고, 배움 일 수도 있고, 직업에 있어서 다른 것에 도전해 볼 수도 있겠죠? 좀 더 역동적으로 살고 싶어요. 30대 초반에 방황하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니까 좀 더 나아진 30대 중반을 기대하고 싶어요.
워낙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재능이 많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재능이 어느 것에 더 맞는 것인지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아나운서를 꿈꾼다면 정말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냥 좋아 보이니까, 남들에게 주목 받는게 좋으니까 이 직업을 택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 직업에 평생을 걸어 보고 싶은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시간, 돈, 에너지를 쓰는데, 그냥 잠깐 이 일을 할 것 같으면 너무 아깝잖아요. 20대가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거든요. 그리고 내가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는 사람인가?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직업이든 되기 전보다 되고 나서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아나운서가 된 후에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방송인의 자질이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철이 없어서 방황을 많이 했어요. 벌써,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지금 대학생들에게 지금 제 말이 통할까 모르겠네요. 저는 방황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죠. 뭐든 할 만큼 많이 해봤으니까,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서 좀 더 빨리 제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대학생들은 시행착오를 할만한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대학시절에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과의 인맥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발판의 다져야 해요. 그러려면 학교 생활이나 동아리 생활 등 모든 활동에 열심히 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좋은 인맥들을 하나하나 쌓아 둬야 하거든요. 내 노력이나 재능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겠지만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인맥으로 일의 성패가 좌우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30대가 되어서는 순수한 인간관계를 갖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친구나 선후배들을 많이 사귀고, 가능하면 내가 하고 싶은 분야의 멘토를 정해 그 사람과의 관계도 꾸준히 관리를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인생에 가장 반짝이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자신이 얼마나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취업이나 학점 등 여러 가지 고민 때문에 잠 못 자는 날 들이 많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나는 그 시절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을까?라는 후회를 많이 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겠지만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시 오지 않거든요.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인맥들과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을 소중하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서현진]
2007 제8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포토제닉상
2007 MBC 방송연예대상 아나운서상
2004년~현재 문화방송 아나운서
2003 부산MBC 아나운서
2001 미스월드선발대회 베스트 드레서상
2001 제45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선
방송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 여행, 불만제로, 일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생방송 화제집중
뉴스데스크, mbc 파워 매거진, 원더풀금요일, 라디오 매거진, 톡 서현진입니다
저서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아나운서 서현진의 치열하고 행복한 서른 성장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