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꽃’입니다”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숨은 주역을 만나다
2018년은 화려한 시작을 예고한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패럴림픽은 잘 모른다. 단순히 올림픽에 붙은 형식적인 행사 정도로만 생각한 것이다.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폐회식의 안무감독을 맡은 강경모 교수는 패럴림픽이야말로 축제의 진정한 ‘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개‧폐회식을 통해 많은 이들의 관점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단어만으로도 설레는 ‘평창’
국민대학교 교수, 한국현대무용협회 이사,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부회장 등 강경모 교수는 하나의 수식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나라 무용계의 주요 인사다. 게다가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안무감독을 맡으며 그를 수식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추가됐다.
“2016년 정식 임명을 받고 본격적으로 준비했어요. 이를 위해 브라질 리우 패럴림픽도 참관했죠.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개회식 카운트다운 2시간 전에 이미 만석인 거예요. 패럴림픽이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에 붙은 형식적인 행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하지만 해외에서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들은 다른 것을 인정하는 문화가 이미 형성되어 있어요.”
개‧폐회식 행사 참여 인원은 대략 2,500여 명이다. 그중 국민대 무용학과 학생들은 80여 명이다. 강 교수는 “성실한 학생을 중심으로 구성했다”며 선발 과정을 설명했다.
“특별한 오디션을 거치진 않았어요. 제자들의 실력은 이미 꿰뚫고 있으니까요. 참여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발했습니다. 그중 성실성을 가장 우선했고요. 국가 행사다 보니까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안 되기 때문이죠.”
개회식의 주제는 ‘Passion Moves Us(열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이다. 올림픽보다 더 뜨거운 열정과 한국의 미를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색감에 중점을 두었다. 공연은 개회식 문화공연 1, 2, 3, 피날레공연, 폐회식 문화공연 1, 2, 피날레공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대 학생들은 개회식 문화공연 1과 3에 참여한다.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전문 단체의 무용수와 장애인 무용수까지, 하나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1월 15일부터 리허설이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종 리허설은 일산 킨텍스에서 갖는데요, 그곳에 평창의 무대를 똑같이 재현해냈어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번 패럴림픽 개‧폐회식에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총출동한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최정화 감독, 연극계 1위 스타 연출가 고선웅 감독 등도 함께 한다.
“감독단이 모여 매일 어떤 장면을 어떻게 연출하고, 어떤 안무로 녹여낼 것인가 등을 논의해요. 톤, 무드, 장식, 미장센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죠. 혼자라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작은 조각들을 모아 거대한 작품을 완성해내고 있습니다.”
패럴림픽 안무감독, 그리고 제자바라기
강 교수는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 대학 강단에 섰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이유로 대학원 1학기 때 강의를 맡은 것이다.
“지금은 기술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바로 정신이에요. 예술가는 정신이 맑아야 해요. 그러려면 잘 비워내고 빨리 새로운 정신을 채워 넣어야 하죠. 저는 그걸 ‘숨을 잘 쉰다’고 표현해요. 그런 의미에서 국민대 학생들은 숨을 잘 쉬어요. 아주 훌륭한 자세예요.”
그는 3월 2일부터 18일까지 평창 현지에서 소행을 다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최대한 빠른 학교 복귀를 목표로 삼고 있다.
“10살 때 댄스플로어에서 팔을 하나 드는 순간부터 진로가 결정된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은 예술가로 살기 위해 사는 거예요. 하지만 세상은 취업이라는 잣대로 그들을 평가잖아요. 저는 제자들이 가짜 말고, ‘진짜배기 춤꾼’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교수직 복귀와 함께 신인 무용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위원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예정이다.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한 유럽 무용수들과의 협업과 2014년부터 진행해온 <강경모 댄스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폐회식 안무감독이라는 직책을 떠나도 그가 우리나라 무용계에 미칠 영향력은 지대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소원은 의외로 소박했다.
“제자들이 항상 웃었으면 해요. 왜 행복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곧바로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 패럴림픽의 개‧폐회식이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어요. ‘괜찮았다’라는 말만 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다음은 없잖아요.”
강 교수는 패럴림픽을 준비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폐회식의 주제는 ‘We Move the World(우리가 세상을 움직인다)’이다. 강 교수의 손에서 탄생한 몸짓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