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만화가 박광수가 아니라 ‘행복한 광수’에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가 중요하죠.” 만화 <광수생각>으로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가 박광수는 어딘지 괴짜스러우면서도 친근하다. 그것이 만화가 박광수의 색깔이자 대중과의 소통코드이다. 때문에 그의 글과 그림에는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감동이 서려있다. 어딘가에 터놓고 말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 쓰고 그렸을 뿐,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을 순서대로 보다 보면 박광수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만화에 미쳐 있던 어린 시절 박광수, 열정과 광기로 가득했던 대학시절 박광수, 어느덧 불혹을 훌쩍 넘긴 중년의 만화가 박광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얼마 전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이라는 책이 1년 만에 출간됐습니다. 최근 근황이 어떻게 되시나요?
또 책을 만들고 있어요. 편집 시집인데, 그림은 많이 안 들어가고, 제가 좋아하는 시들을 묶어서 만든 책이에요.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도 그렇지만 최근에는 주로 에세이집을 내고 있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만두군’이라는 캐릭터를 하나 만들었는데, 만두군이 비를 맞아서 물만두가 되는 약간 시니컬한 만화에요. 그것을 만들고서는 혼자서 되게 좋아했어요(웃음). 만화를 연재할 곳이 없어서 고민이긴 한데, 곧 재미있는 캐릭터로 인사드릴 생각입니다. 말씀드렸던 편집시집의 제목은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인데, 아마도 크리스마스 전에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작가님 작품을 보면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본다는 느낌이 듭니다. 작업 방식은 어떤 편인가요?
그냥 살면서 제가 느끼는 것들을 담아요. 생각나는 게 있으면 메모하고, 나중에 괜찮은 것들은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요. 당장은 기억해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거든요. 전업작가가 되기 전에는 노트에 메모를 했고,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에는 주로 녹음기를 사용했어요. 지금은 휴대폰에 텍스트로 간략하게 저장해두거나, 진짜 재미있겠다 싶은 것은 앉아서 그림을 그려봐요. 앞서 말씀드린 만두군이 바로 그랬어요. 만화 연재는 에피소드가 많아야 할 수 있는데, 만두군은 2~3시간 만에 스토리가 10개 이상 나오더라고요.
Q 작품을 쓰고 그리면서 힐링도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어떠신가요?
책은 사실 정해진 제작 기간이 있기 때문에 작업 기간 중에는 힐링이 안돼요(웃음). 차곡차곡 쌓아두는 순간은 모르겠는데, 출간 준비를 하는 동안은 굉장히 힘들죠. 총 준비기간을 따져볼 때 조금씩 메모해서 책으로 발전되는 경우는 3~4년이 걸리는 것 같고, 기획부터 잡고 갈 때는 6~7년이 걸리기도 해요. 물론 편집자의 역량이 많이 요구되는 에세이집은 훨씬 짧게 걸리기도 하고요.
Q 작품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고 계신 활동이 있으신가요?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시집을 많이 읽어요. 여행도 많이 다니려고 하고요. 어렸을 때는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많지 않아 긴 호흡을 가지고 읽는 책보다는 시나 에세이처럼, 짧더라도 울림이 깊은 글을 보려고 해요. 황지우, 김현승, 함민복 시인을 좋아하는데, 책을 고를 때는 작가보다는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사는 편이에요. 또 요즘은 중고책도 많이 나오니까, 당장 안 읽더라도 일단 사서 쌓아두고요. 그러면 언젠가 읽게 되더라고요.
Q 이번 작품도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작품인가요?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에 담긴 테마는 무엇인가요?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책을 써본 적은 없어요. 항상 저 자신을 위로하려고 썼죠(웃음). 고해성사를 하듯이 누군가에게 얘기를 안 하면 힘들 거 같은 일을 작품으로 담기도 해요. 친구를 생각하면서 쓴 작품도 있고요. 그 친구가 내 책을 보든 말든 그냥 쓰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의 테마는 사는 이야기인 거죠.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인맥이 넓어지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 반대에요. 아는 사람들도 점점 더 안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좋아요.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시간은 많아지니까.
Q <광수생각>을 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표기해둔 페이지가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내용이 있다면?
수저하고 젓가락 그림이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 좋기도 하지만, 진짜 수저하고 젓가락 같이 그렸거든요. 그런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 편집자가 그러더라고요. 이번에는 ‘예쁜 그림’이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예쁜 그림이 뭐냐고 물었더니,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은 잘 그리려고 노력한 책이고, 그런 그림 말고 엉성하더라도 편안하고 정감 있는 그림, 텍스트와 잘 부합되는 그림이었으면 한다고요. 얘길 듣고 보니까, 내가 누군가한테 보여주려는 마음으로 그리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예쁜 그림’을 그려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Q 만화 작가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많이 그리긴 했는데, 딱히 꿈은 없었어요. 물론 그림은 잘 그리던 편이라 사생대회 나가서 상도 타고 그랬어요. 그런데 4학년 때 한 형이 발바닥이 정면으로 보이는 달리기 그림을 그린 걸 보고 자극을 받았어요. 어렸을 때는 말썽도 제법 부리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였는데, 어머니께서 제가 걱정됐는지 미술학원에 보내셨어요. 그때 그림을 시작했고, 대학에 들어가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교 1학년 때는 졸업했다고 거짓말하고, 에스콰이어, 보브 같은 데에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림을 게재했어요. 제 얼굴이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편이거든요(웃음). 그런데 프리랜서는 직업이 불안정하잖아요. 학교 때는 풍족했는데, 졸업을 하고 나니까 확 달라지더라고요. 친구들은 취업해서 연차가 쌓이고 연봉도 올라가는데, 저는 계속 일한 만큼만 벌 수 있는 것이었죠. 또 일이 없으면 불안해하면서 쉬고. 그래서 가끔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편집디자인 일도 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그림보다 편집디자인을 더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편집디자이너로 전향해 임재범, 일기예보, 양희은, 이문세 같은 가수들의 음반 재킷을 디자인했었어요. 그러다 페이퍼라는 잡지에 창간 위원으로 참여하게 돼서 만화를 그렸는데, 때마침 조선일보에서 연재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때 저희 아버지는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셨는데, 아버지가 보는 신문에 내 만화가 게재되면 좋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전업 작가가 된 거고요.
Q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라고 들었습니다. 때문에 배우활동도 잠시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영화감독에 대한 꿈은 이제 80%는 접었어요(웃음).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매체의 전달력 때문이에요. 가끔 제 책에 설명서를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왜 책은 그렇잖아요. 내가 쓸 때 감정은 ‘이거’인데, 그걸 읽는 사람이 방금 이별을 했는지, 혹은 회사에서 된통 깨졌는지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다가오거든요. 그런 차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장르가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를 배워보려고 5년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영화 공부만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한 제작자가 감독 옆에 자리를 만들어줬는데, 제가 거기 앉아 있으니까 다들 되게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런데 영화를 배우려면 현장을 잘 알아야 하니까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 연기였던 거예요. 지금은 뭐 별다른 계획은 없는데, 만일 영화를 만든다면 기존 작품보다는 새로 쓰고 싶어요.
Q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연재 당시는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힘들었어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파라는 비난을 받았거든요. 정치적인 성향을 잘 안 드러내는 편인데도 여전히 우파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요.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살아가는 빛깔은 다 다르잖아요. 어느 게 맞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서로 조금씩 인정하면 훨씬 부드러운 세상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밖에 다른 어려움은 통상적인 것들이죠. 매일 연재를 하던 때는 소재를 찾는 게 힘들었는데 그건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니까요.
Q 작가님의 대학시절이 궁금합니다. 동아리 활동 등 가장 기억에 남는 대학생활은 무엇인가요?
대학 동기들한테 물어보면 좀 이상한 아이였다고 말해요(웃음). 매일같이 멜빵바지에 박스 하나 들고 다니면서 말도 안 하고 그림만 그렸거든요. 그린 그림을 하루에 하나씩 전시했고요. 동아리는 일러스트 동아리를 만들어서 직접 운영했어요. 일주일에 사흘은 학교에서 밤을 새웠고요. 그때가 제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가 아닌가 싶어요. 공모전 준비도 많이 했었고요. 나중에는 장충동 족발집 지하에 친구 4명하고 작업실을 만들어 그림을 그렸어요. 열정이 넘쳤던 시절이죠.
Q 학생들에게 지금 꼭 해보길 추천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여행! 연애는 좀 천천히 해도 돼요. 그리고 취업에 대해서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요즘 학생들은 걱정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재능이 없어도 한 길을 열심히 파면 결국은 성공해요.
취업이 안 되면 창업을 하면 되죠! 창업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아무도 안 받아주면 내가 하면 되지’라는 배짱을 가졌으면 해요. 취업이 안 되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내 스스로 뭐든 해볼 수 있는 기회예요.
그리고 스스로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왜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사람 있잖아요? 딱히 나서지 않는데도 리더십이 느껴지고, 겸손하지만 늘 좋은 기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 말이죠. 옆에서 누가 계속 짜증을 내면 나도 잘 안 돼요. 주변에 긍정적인 사람이 없으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되고요.
Q 작가님의 멘토가 있다면?
우리 부모님이요. 요즘은 멘토가 넘쳐나는 세상이죠. 저도 강연을 하는데, 자세히 보면 강연을 너무 열심히 쫓아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요. 대부분 멘토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뿐이에요.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은 부풀려지기 마련이죠. 진짜 가까운 사람한테 물어보면 그게 다는 아닐 거예요. 멘토라도 뭐 그리 좋고 완벽한 사람이 있나요? 한편으로는 오히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실패담을 듣고 같이 깨닫는 거예요. 학생들은 본인한테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Q 한 TV 프로그램에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또 부모님에 관한 작품도 여럿 쓰셨는데, 어떤 분들이셨나요?
아버지는 자수성가해서 돈이 많은 분이셨어요. 그런데 저한테 돈은 안 주세요(웃음). 초등학교 때 제 소원이 자동연필깎이를 갖는 거였는데, 아버지는 연필깎이가 있으면 게을러진다고 안 사주셨어요. 연필깎이로 곱게 깎인 연필이 너무 부러워서, 그렇게 똑같이 깎는 연습을 했어요. 덕분에 누가 봐도 연필깎이로 깎은 것처럼 연필을 깎게 됐고요. 그러다 중학교 올라가니까 아버지께서 연필깎이를 사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중학생들은 샤프를 쓰죠? 그래서 그때 연필을 깎아서 부러뜨리고 다시 깎고 그러면서 놀았어요.
아버지께서 누누이 말씀하셨던 게 하나 있어요. ‘음식점 종업원한테 반말하는 사람은 친구 삼지도 말고, 동업도 하지 말라’고요. 그런 사람은 네가 조금만 낮아지면 종업원 대하듯이 너를 무시할 거라고요. 엄마는 음식을 정말 잘하시는 분인데, 지금은 병원에 계시죠. 형수가 어머니 음식 솜씨를 닮아서 가끔 음식을 해달라고 해요.
Q 작가님께 만화란?
만화는 저한테 ‘휴식공간’이에요. 저는 지금도 만화가게에서 주인아저씨가 끓여준 라면 먹으면서 만화책 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한 달 반 간격으로 와이프하고 꼭 만화방에 가요. 신간이 한 달 반 간격으로 나오거든요. 어려서부터 만화가게에 대한 추억은 참 많았죠. 지금은 ‘대본소 만화방(돈을 지불하고 만화책을 빌리거나, 직접 볼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만화가게)’이 많이 사라져서 멀리 경희대학교 앞까지 가요. 어떻게 보면 한국 만화의 위기에요. 대본소 만화방이 없어지면 만화가들이 설자리가 없거든요. 허영만 선생님이 공짜 만화가 유료화되지 않으면 은퇴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분 정도면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없으신데도 열심히 싸우고 계신 거예요.
Q 앞으로 어떤 광수가 되고 싶으신가요?
어떤 광수? 제 꿈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직업은 논외의 대상이라고 봐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운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지가 중요하죠. 아들, 딸한테도 늘 그런 이야기를 해요. 아빠는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거고, 너희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너희들의 행복과 내 행복은 무관하다고 말해요. 엄마들 중에 그런 분들 많죠. 나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요. 그러다 자식들이 출가하고 남편과 대화가 줄면 불행해져요. 왜냐하면 ‘우리’의 행복이었거든요. 사람마다 자기만의 행복이 있는데, 엄마들은 희생만 해요. 그래서 결혼한다는 친구가 있으면 한 번 말려요. 그래도 하겠다고 하면 꼭 말해줘요. 서로 희생하는 순간 불행이 두 개 생긴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날개를 달아주면 되지, 희생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기뻐하는 걸 보면서 나도 즐거우면 돼요. 그게 진짜 행복이고요.
Q 대학시절은 자신의 꿈을 찾기 좋은 시기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 말씀해주신다면?
뭐든 몸 사리지 말고 많이 해보세요. 그리고 너무 조바심 갖지 마세요. 20대에, 아니 30대에도 무엇을 이루기는 쉽지 않아요. 야구하는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는데, ‘내 플레이를 해라’라고 해요. 성공한 케이스만 보지 말고, 내 플레이를 하면서 실수를 최대한 줄여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물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요. 그러려면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좋은 방법은 ‘행복노트’를 쓰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나는 엄마 무릎을 베고 잘 때 행복해’. ‘만화방에서 라면 먹을 때 행복해’, ‘비 올 때 소주 먹으면 행복해’ 이렇게 소소한 것들부터 써나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내 행복의 기준이 뭔지 알게 되고, 점차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돼요. 그저 막연하게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느끼고 실천해보라는 의미에요.
대기업 직장이, 좋은 차와 예쁜 여자친구가 있는, 이런 건 그냥 기성복에 가까운 행복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돈이 저한테 주는 의미는 단지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을 안 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에요. 내가 가진 돈으로 어떻게 쓸지를 생각해야지 계속 더 큰 집, 더 좋은 차만 바라보면 행복할 수 없다는 거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본인도 타인도 잘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재능이 있어요. 그걸 찾느냐 못 찾느냐, 또는 노력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박광수]
조선일보 연재 만화 <광수생각>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감동적으로 그려내 화제를 모았다.
그밖에 <광수 광수씨 광수놈> 등의 만화책과 <그때 나를 통과하는 바람이 내게 물었다. 아직도 그립니?>,
<무지개를 좇다, 세상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치다>, <참 서툰 사람들>, <해피엔딩>, <나쁜 광수생각>,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등의 에세이집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