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숨 막히게 딱딱한 직장은 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방송 일을 선택하게 됐죠. 1990년도에 EBS 교육방송 공채에 운 좋게 합격해 어린이프로를 만들었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책임감과 자부심도 있었어요. 성인들이야 TV를 보면서 자신이 필요한 부분과 아닌 부분을 걸러내지만 아이들은 80~90%이상을 받아들이는 편이라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았고요. 그러다가 SBS로 오게 됐죠. 처음에는 당연히 어린이 프로를 맡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SBS에서는 아이들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더라고요. 적잖게 걱정을 했지만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라 문제는 없었어요. 교양국에서 <최고의 밥상>이라는 아침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예능 쪽으로 빠지게 됐어요. 제 성향이 즐거움을 찾는 것을 좋아해서 예능 쪽이 맞겠더라고요. 1999년도에 처음으로 <진실게임>이라는 토크쇼를 제작했어요. 그러다 <야심만만>, <야심만만2>, <밤이면밤마다>, <힐링캠프>, <화신>까지 하고 있어요.
PD와 CP가 다른 것은 아니에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는 동급이라고 생각해요. 방송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만드는 것을 더 즐기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 보직의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CP는 말 그대로 관리자고 PD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잖아요. 정말 프로그램에 애착이 많은 사람들은 CP라고 해도 현장에서 많은 부분 함께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늘 똑같죠. 사랑받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 솔직히 방송은 자기가 만든 결과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기 때문에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잖아요. 굉장히 좋을 때도 있고 차가울 때도 있어서 바로바로 평가가 되죠. 시청률이라는 것은 성적표가 되는 것이니까. 일반 회사는 자신이 하는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잘 됐을 때 누리는 기쁨과 잘 안됐을 때 가져가야 하는 비난이 양날의 검과 같이 공존해요.
하나의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합심해서 만든 거잖아요. PD로서 비결이라면 스텝들이 일을 하면서 자기 에너지를 120% 발휘하고 싶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자신만의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 능력을 끌어올려 주는 것이 PD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PD가 먼저 최선의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겠죠? 일을 할 때 정말 열심히 몰입하는 성격이에요. 또한 히트작 같은 경우에 시대의 흐름과 같이 가야 하는 부분이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운도 따라야 해요. 아울러 프로그램을 만들 때 컨셉이 쉬워 한 줄로 표현이 되고,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 코너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100회 이상은 방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힐링캠프> 같은 경우가 100회를 향해서 가고 있고, 롱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창의력은 혼자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명이 함께 고민하는 거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보라는 부모님의 교육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못하는 게 어디 있어. 해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하고자 하는 일에 울타리를 만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창의력이라는 것이 지식의 축적에서 나오는 것이 크잖아요. 맨땅에 헤딩할 수는 없는 거니까. 여행, 책, 친구들과의 수다 등 간접경험도 무시할 수 없어요.
섭외의 노하우는 두 가지예요. 오랜 정성과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 1~2년 계속해서 접촉을 해요. 거절당해도 슬퍼하지 말고 상처받지 말아야 해요. ‘저사람 정말 바쁜가보다’라고 쿨 하게 생각하고, ‘다음에 또 한 번 연락하면 꼭 허락하겠지’라고 긍정적으로 넘겨야 해요. 한 번에 섭외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아요. 신뢰도라는 것은 프로그램의 힘이기도 한데요. 게스트들은 게스트임과 동시에 시청자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아, 저 프로그램 괜찮네. 나가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꾸준히 사람들에게 신뢰도를 쌓는 거죠.
시청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져서 프로그램이 정말 많이 세분화 됐잖아요. 그런데 요즘 같아서는 ‘예능프로라면 그냥 웃기기만해도 좋은 콘텐츠가 아닐까?’라는 생각해요. 정말 웃을 일이 없는 현대인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더 욕심을 낸다면 마지막에 잔잔한 향기가 남는다면 더 없이 좋은 프로그램이겠죠.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우 잘 들어줘요. CP라고 권위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그 사람이 왜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라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들어요. 그런 다음 문제점을 생각하죠.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내 생각이 옳다’라는 것보다는 다른 이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거든요. 후배들도 내 의견이 별로라고 생각하면 ‘선배 의견 꽝이야.’라고 자유롭게 이야기해요. 그리고 바로 인정하는 거죠. 쓸데없는 똥고집은 없어요.
좋은 리더십이라는 것은 ‘소통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방송이라는 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여러 명이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잖아요. 작가, 음악, 카메라 등등... 이 사람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거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커뮤니케이션이죠. 그런데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성격이라 늘 행복하게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 이 분야를 꿈꾸는 학생들이 PD는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냐고 질문을 많이 해요. 그런데 PD의 성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PD중에는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말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거죠. 말을 많이 안 해도 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많거든요.
여자가 방송업계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것은 편견인 것 같아요. 1990년대만 해도 남성이 훨씬 많았죠. 여성에 대한 차별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지금은 방송국에 여자들이 정말 많아요. 방송이 점점 더 세분화 되면서 오히려 여성적인 감성을 요구하는 일들이 많아진 거예요. 그래서 요즘에는 방송이 여성에게 더 유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은 체력의 문제인데, 체력관리는 필수라고 할 수 있어요. 이는 여자 뿐 아니라 남자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잖아요. 밤샘작업은 기본이니까 몸이 힘들어서 못한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이에요. 우리나라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는 축복받은 워킹맘이에요. 애가 하나인데, 친어머니가 봐주셨거든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연수를 가게 돼서 처음으로 세 식구가 같이 일반 가족처럼 생활했어요. 처음으로 주부로서의 삶을 만끽하게 됐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즐겁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참 많이 미안하기도 해요. 방송일이 나인투식스(9 to 6)가 아니기 때문에 주위 동료들을 보면 아주머니를 구해서 아이를 돌보기도 하는데, 저 같은 케이스는 정말 운이 좋은 거죠. 남편도 같은 대학 과 친구였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 저를 잘 이해해 줬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받을 일이 없었죠.
저 같은 경우는 별것 아닌 작은 일에도 기쁨이 생겨요.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큰 기쁨이 생겼을 때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는 마음이 제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쁜 일이 생겨도 빨리 잊어버리게 되요.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하는 성격 때문에 어려운 상황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PD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성격도 매우 중요해요. 일을 할 때 스텝들은 리더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받잖아요. 제가 표정이 안 좋으면 그들도 기분이 좋지 않겠죠. 그런 기운을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비결이라기보다는 집안분위기 같아요. 부모님께서 워낙 긍정적이라 그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가령 내가 왼팔을 다쳤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왼팔이라 다행이야. 오른팔이 아니라서.’ 오른팔 같으면 많이 쓰이잖아요.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런데 왼팔이라 너무 다행스러운 거죠. 이럴 땐 부모님께 참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다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작은 것에도 많이 즐거워해요.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수다를 떨 때, 옷을 살 때, 그릇을 살 때, 심지어 드라마에서 잘생긴 사람을 볼 때 얼마나 즐거운데요. 순간순간 그 기쁨을 누리는 거죠. 매우 단순한 성격이에요. 스트레스 받을 일은 많지만 소박한 것에 기뻐하다 보면 곧 풀려버려요.
내가 생각하기에 나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고, 괜찮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을 프로그램이죠. 솔직히 예능프로그램을 하면서 갈등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처음에는 좋을지 몰라도 나중 되면 꼭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PD가 되고 싶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결국 프로그램이 사람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거예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스럽게 봐야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어요. 만약 사람을 보는 눈이 냉소적이면 좋은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려워요. 결국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거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평생 할 일을 선택하는 것이니까 그만큼 자신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하고 싶어요. 금전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기왕이면 돈을 벌면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런데 만약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없다면 자신의 직업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해요. 어느 직업이든지 즐거움은 분명 있으니까요. 즐거움을 찾으려면 즐거움이 나오지만 짜증을 찾는다면 밑도 끝도 없이 짜증만 나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잖아요.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면 즐겁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후회가 없어요.
제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긍정적으로 살라’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마다 ‘정말 힘든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오히려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은 들어요. 저는 크게 굴곡진 인생을 산 것은 아니었거든요. 집이 어렵지도 않았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조심스러워요. 그래도 아직은 젊음이라는 큰 무기를 가지고 있잖아요. 못할게 무엇이 있겠어요. 긍정의 에너지를 마음속에 담고 쑥쑥 키워서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즐겁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SBS 예능국 CP 최영인]
방송 <SBS 최고의 밥상>, <SBS 야심만만 시즌1,2>, <SBS 밤이면 밤마다>,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SBS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
SBS 예능국 책임프로듀서
2004 한국방송프로듀서상 TV예능 부문 작품상
2001 제37회 백상예술대상 TV예능 부문 작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