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제석산자락에 자리 잡은 현부자네 집 부근에서부터 시작해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가슴 아픈 과거를 생생하게 반추해낸 <태백산맥>. 보성 벌교에는 소설 속 인물들이 등장했던 배경과 살던 집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오래된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려 사람들은 보성으로 문학기행을 떠난다.
2008년에는 <태백산맥>과 관련한 자료를 주로 전시하는 문학관인 ‘태백산맥 문학관’이 지어져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문학관 내부에는 태백산맥을 썼을 당시 작가가 4년간 자료조사를 했던 취재수첩, 6년간의 집필 끝에 탄생한 태백산맥 16,500매의 육필원고, 조정래 작가의 문학세계, 영화로 만나는 태백산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읽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관을 지은 김원 건축가는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 어둠에 묻혀버린 우리의 현대사를 보며, 동굴과 굿판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고 절제된 건축양식을 활용해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습을 형상화 했다고 한다.
안채와 아래채, 문간채에 모두 서까래 아래쪽에 친일의 상징인 벚꽃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간채에는 지붕위로 2층 누각이 있어 여느 집과는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는 현부자가 이 누각에 앉아서 기생들과 풍류를 즐기고, 자신이 소유한 농토를 내려다보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9시~5시(동절기), 9시~6시(하절기)
휴관일: 매주 월요일, 설날, 추석
전화: 061-858-2992
관람료: 3,000원
문학관에서 빠져나와 태백산맥 문학의 거리로 몸을 옮긴다. 보성에 오면 꼭 맛을 보고 가야 한다는 벌교꼬막이 가득한 꼬막 거리와 전통방식의 지붕이 멋스러운 벌교역을 지나 걷다보면 문학의 거리 초입에 있는 대창기계(옛 솥공장)를 만난다. 요즘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참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문학의 거리. 그 멋을 충분히 느끼려 천천히 발걸음을 뗀다. 잠시 멈춰선 곳은 꼬막정식으로 유명한 ‘국일식당(옛 술도가)’. 소설에서 술도가로 묘사된 곳이다. 실제 이곳에는 삼성주조장이라는 술도가가 있었지만 소설속의 묘사와는 상관이 없다. 아픔의 시절이었던 50~60년대에는 술도가와 정미소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작가는 이런 이유로 정현동이라는 현실주의적인 인간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그의 아들 정하섭과 아버지 정참봉을 배치해 3대를 통한 이념의 차이와 갈등을 실감나게 그렸다. 지금은 벌교읍내의 유일한 술도가로 남아있다.
국일식당 맞은편으로는 검은색 판자벽에 함석지붕을 얹은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건물인 보성여관(남도여관)이 자리해있다. 현부자네 별장으로 그려진 보성여관은 한 때, 하숙집으로 활용되었으나 지금은 1층 일부를 살림살이로 쓰고 있고 2층은 비어있다.
보성여관을 구석구석을 관람하는데, 마음이 차분해진다. 탁자 위 소박한 그릇에 작은 꽃잎을 띄우고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생화를 꽂아 놓았다. 이런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공간을 만난다면 그 누구라도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터. 관리인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보인다. 좁은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 2층에 오르니 일본식 자리인 다다미가 깔려있는 너른 공간이 있다. 그곳에 덥석 드러누워 본다. 그저 ‘좋다’는 말밖에 다른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보성여관은 그 시절 최고급 숙박업소였던 만큼 현재 보수작업이 이뤄져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카페와 숙박업소, 회의실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녹차 한 잔을 마신다.
<보성여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9시~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전화: 061-858-7528
관람료: 1,000원
보성여관을 뒤로하고 다시 문학의 거리를 걷는다. 전형적인 일본식 관공서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벌교금융조합(옛 금융조합)이 보인다. 시내 한 복판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금융조합은 가장 번화한 거리의 중심에 위치해 일본인들의 편의성을 고려했다. 내부에는 영업대, 금고 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과거 조합장 사택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 코스로 보물 제304호로 조선 숙종 때 건설된 교량인 홍교로 향한다. 벌교의 상징이기도 한 홍교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로 설치되어 있다가 홍수 때마다 끊기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석교로 건립한 것이다. 철다리, 부용교(소화다리)와 함께 벌교 포고의 양안을 연결 짓는 중요한 교량이다.
가을이면 책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걷고 싶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 하나에도 가슴이 시리고, 소박한 국화꽃 한 송이에도 행복해지는 시간. 마법같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 계절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면, 지금 바로 보성으로 문학기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코너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