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유럽 여행을 꿈꿔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2학년을 마친 겨울에 3주간의 배낭여행을 떠나게 됐다. 그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파리에서는 도시적이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매 학기 바쁘게 달리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당시 ‘내가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이 되고 싶지?’라는 답을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으로 오래도록 머물면서, 찾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의 ISC Paris Business School(이하 ISC)로 교환학생을 신청하게 됐다.
나는 교환학생을 통해 성장할 수 있길 기대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익숙했던 것들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해 적응하기까지 그리 순탄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가을학기에 출국하게 됐고, 비자를 발급받기까지 2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 비용도 약 35만원으로, 적지 않았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 학생비자를 발급받았다고 해도 3개월 이상 거주할 시 체류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모든 서류를 우편으로 주고받기 때문에 체류증 발급에는 꽤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또한 싸데뻥(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라는 말이 유명할 정도로 발급까지 기간, 순서 등이 일정하지 않아 곤혹이었다. 만약 한 달 이상 회신이 없으면 발급기관 OFII(Office Français Immigration Intégration)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두 번째로 나는 집을 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4개월간 머무르고, 생활해야 하는 집을 구하는 것은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파리는 서울의 1/5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다, 이미 렌트할 수 있는 집들은 포화상태였다.
나의 상대교 ISC에서는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아 국내 유학원을 통해 기숙사에 문의해야 했다. 프랑스 보험, 보증인이 없을뿐더러 거주 기간이 짧은 나는 번번이 거절당해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두 달 반 만에 지인의 추천을 받은 한인 커뮤니티 ‘프랑스존’에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내 집 찾기’를 통해 스튜디오, 셰어하우스 등 다양한 거주 공간을 판매자와의 상담을 통해 계약할 수 있다. 기간, 지역에 따라 가격과 조건이 상이하기 때문에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서두르는 것이 좋다.
파리 시내는 총 20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구에 따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비교적 안전하고 부촌으로 구분되는 15, 16구 등에서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 또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을 생각해 주변 카페, 식당 등의 유무를 미리 확인하자. 늦게까지 영업하는지 등의 상세 정보는 구글맵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또한, 교통편이 용이한지도 잘 알아봐야 한다. 근처에 메트로, 트램 등이 있다면 이동하기에 무리 없을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수돗물이 석회수이다. 피부가 예민한 경우, 석회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데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한국에서 샤워 필터기를 가져갈 것을 추천한다.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유럽은 따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된 건물의 경우 방에 따라 라디에이터 등 온열 기구가 없는 경우가 있다. 전기담요 등 온열 제품은 필수로 챙겨야 한다. 11월 말부터는 방 안에 한랭한 기운이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파리에서 보낸 교환학생 생활에서 나는 한국인 친구가 없었다. 개강 전에 OT로 1주일간 불어를 배우는 수업이 있었다. 그 수업에서 한국인이 없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 후 ISC에서 들은 Fashion, Branding 두 수업에서 진행된 총 4번의 발표 과제를 수행하면서 여러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논의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이따금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답답하고 말이 잘 전해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의 고충을 나누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밤거리를 걸으며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ISC에서는 대부분 교환학생끼리 듣는 수업을 제공했다. 나는 프랑스 현지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해 대학원생들이 듣는 Design Thinking이라는 수업을 신청하게 됐다.
이 수업은 영어로 진행됐다. 자신들의 수업에 교환학생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하던 그들은 파리에서 지내는 삶은 어떤지, 한국은 어떤 문화를 가진 곳인지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곳에서는 Maria라는 친구와 가까워졌다. 그녀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나를 친구들과의 점심 식사에 초대하는 등 더 깊은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줬다. 아직도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교환학생 기간에 세운 목표 중 하나가 ‘학생의 특권을 누리자’는 것이었다.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는 루브르, 오르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뿐만 아니라 개선문, 노트르담 성당 등에서 볼 수 있듯 오랜 역사가 곳곳에 녹아있는 도시다.
학생비자를 소지할 경우 35군데 이상의 박물관, 관광지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덕분에 ‘파리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수업이 없는 날에는 하나둘씩 다니곤 했다. 책, 영화 속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직접 보고 감상하는 것이 신기한 동시에 이 나라가 예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고, 학기 중인 비성수기를 이용해 여유 있는 감상을 즐기는 것 또한 굉장한 특혜라고 생각했다.
가을학기를 다니는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특혜도 있다. 할로윈, 크리스마스, 새해 등 큰 기념일에는 도시 전체가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드는 광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주간이 시작된다. 파리 시내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비롯한 큰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0월 중순에 진행된 ‘Dame de Coeur’ 행사이다. 노트르담 성당 외관 전체를 캔버스로, 화려하고 은은한 빛의 향연을 예술적으로 탄생시킨 이 행사는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웅장함과 감동을 선사해줬다.
파리에서 보낸 4개월간은 내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청소, 빨래와 같은 생활적인 것부터 한 달의 생활비, 매일의 일정 관리까지 온전히 나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주도적인 삶을 통해 뭐든 ‘해봐야 안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됐다.
나는 평소 좋아하는 것만 하려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나를 변화시켰다. 밥을 좋아하던 내가 매일 빵을 사 먹었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등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당혹스러운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파리는 내 마음속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더욱 많은 경험과 세상을 바라보는 큰 시각을 얻고 싶다면 꼭 교환학생을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