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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영화인. 내가 영화 시작하고 버티고 꿈꾼 이곳에서 감독 데뷔 하고 싶어요. 영화 아가씨 조감독 후지모토 신스케
(일본학전공 01 교환학생) 어느 날 주변을 돌아보니 한국 유학생들과 무리지어 어울리고 있는걸 깨달았다. 당시 한국어는 전혀 몰랐지만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재미있었다. 이후 국민대학교 교환학생으로 2001년 9월부터 2002년 8월 까지 1년 동안 유학했다.

1979년 생. 일본 이시카와현(石川縣) 가나자와시(金澤市)에서 태어났다. 고향 옆 동네인 도야마대학 국제통상학과에 들어갔다. 학과 공부보다 여행이나 밴드활동을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청춘을 즐겼다. 어느 날 주변을 돌아보니 한국 유학생들과 무리지어 어울리고 있는걸 깨달았다. 당시 한국어는 전혀 몰랐지만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재미있었다. 이후 국민대학교 교환학생으로 2001년 9월부터 2002년 8월까지 1년 동안 유학했다. 영화 <아가씨>의 조감독 후지모토 신스케, 그가 ‘한국 영화인’이 된 시작점이었다.

Part.1 한국과의 본격적인 만남, 국민대학교 교환학생

후지모토 신스케 조감독이 한국의 국민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2001년, 그와 한국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되었다.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수업을 마치고 밥 먹고 술 마시며 한국인 친구들과 친해졌다. 1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뒤 6개월 만에 한국행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교환학생 시절 추억의 힘이 컸다.

Q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들었습니다.
국민대학교 교환학생 시절의 추억 때문인가요? 국민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계기는?

도야마대학에서 공부할 때 한국인 유학생들과 친해지면서 한국에 관심이 생겼어요. 제가 국민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건 학교간 자매결연이 시작되기 전이었어요. 교수님들 사이의 인연으로 시작한 ‘시범 운영’에 제가 선택 된 것이죠. 제가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만 해도 외국인 학생이 별로 없었어요. 덕분에 한국 친구들이 많이 생겼죠. 학교 수업마치고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친해졌어요. 빨리 친해지는 한국 술문화의 매력을 알게 됐죠. 2002년 월드컵도 있었고요. 한국 사람들의 열정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죠.

Q

국민대학교 교환학생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한국에서 영화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결심이 이때 생긴 건가요?

중학교 3학년때 <스피드>라는 영화를 보고 ‘언젠가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동경이 생겼어요. 그 전까지 저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대신 비디오를 대여해서 봤어요. 나중에도 막연하게 영화를 꿈꿨지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없었어요. 국민대학교 시절에도 한국어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집중했고요. 교환학생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니 졸업이 6개월 남은 상태였어요.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취업준비에 보통 1년 정도 걸리거든요. 취업준비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1년간의 한국생활은 아쉬웠어요. 그 무렵 ‘영화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요. 영화와 한국생활, 내가 원하는 두 가지 모두를 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어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쿄보다 즐거운 추억이 있는 한국이 심정적으로 가까웠거든요.

Part.2 한국 영화인으로의 출발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내가 좋아하는 한국에서 하고 싶어 이 땅에 왔지만 사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1년 반 넘게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2평짜리 고시원에서 몸을 누이고 다음날이면 다시 영화를 찾아 나섰다. 실망과 좌절이 계속됐지만 ‘영화’를 기다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꼬박 1년 반을 기다린 다음 <태풍, 태양> 제작부 막내로 일을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 영화인’으로의 출발이었다.

Q

대학을 졸업하던 2003년 봄, ‘한국에서 영화를 하겠다’는
꿈을 품고 무작정 한국에 왔을 때 두렵지는 않았나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한국에 와서 1년 반 정도 기다렸어요. 물론 그 사이 영화일을 하기도 했지만 엎어져서 다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어요. 사람들은 일본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권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는 한국에 영화를 하기 위해 온 것이지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게 아니라며 거절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르바이트하면서 기다려도 됐을텐데 싶지만 당시에는 무척 간절했어요. 영화가 나를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죠. 생활은 근근이 연명했어요. 한국에 와서 9개월 정도 아는 형 집에 머물다 충무로에 2평짜리 고시원을 얻어서 독립했어요. 17만원짜리 월세였어요. 영화사에서 휴대폰 비용과 교통비, 식비 정도는 해결해줬어요. 그렇게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불가능할 거야’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정말로 아무 결과가 없어서 좌절했죠. 자책과 패배감이 들었죠. 그래도 기다렸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 뿐이었죠. 그렇게 꼬박 1년 반을 기다려 만난 영화가 <태풍, 태양>이에요. 제작부 막내였죠. 모이는 시간, 비품 준비, 섭외, 숙소 등 스태프 관리 등 잡일을 도맡아했어요. 영화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데다 한국어도 서툴러 정말 힘들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외국인 스태프라고 참 잘해주셨어요.

Q

영화에 대한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에서 어떻게 영화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또 요즘에는 영화사에서 사람을 어떻게 구하나요?

지인 중에 스타일리스트가 있어요. 영화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은 모두 따라갔어요. 영화를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인맥부터 만들었어요. ‘영화일을 하겠다는 일본인이 있다’는 소문도 마구 내고 다녔죠. 그러면서 가슴 한 켠에는 ‘외국인인 내가 어떻게 한국에서 영화를 하겠냐, 불가능할거야’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외국인이라는 건 핸디캡이자 방패막이었죠. 실패해도 무섭지 않았어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걸 향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게 위안이 됐거든요. 그러다 제작부 막내로 일하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너무 기뻤죠. 하지만 그것도 2달 후에 엎어졌어요. 그렇게 두어번 엎어진 다음 정재은 감독님의 <태풍, 태양>(2005)을 만났죠. 신기하게 두 번째 엎어진 영화 관계자와 정재은 감독님이 아는 사이였어요. 지금도 사람 통해서 영화 인력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못구하면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뽑죠. 아직까지도 현장에서는 경험보다 열정을 많이 보는 분위기에요.

Q

정말 다행스럽게도 <태풍, 태양>(2005, 제작부)을 시작으로 <야수>(2006, 제작부) <더게임>(2008, 연출부) <보트>(2009, 연출부) <맨발의 꿈>(2010, 연출부)을 거쳐 <아이엠 어 히어로>(2014, 조감독)<아가씨>(2016, 조감독) 까지 다양한 영화를 작업해왔습니다. 제작부 막내부터 연출부 조감독까지. 관객들은 감독과 유명 배우만 보고 지나가지만 실제로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스태프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조감독님이 경험한 영화 스태프의 종류와 역할에 대해 알려주세요.

제작부는 그림 밖을 준비하고 연출부는 그림을 담당해요. 제작부의 어려운 점은 영화와 무관한 일을 한다는 점이에요. 영화를 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영화가 아닌 것 같은 일부터 시작해야 하거든요. 내가 왜?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기도 해요. 여기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영화 현장을 알아야 좋은 PD가 될 수 있어요. PD는 전체적인 예산을 알아야 하거든요. 좋은 점도 있어요. 섭외나 여러 가지 준비과정을 통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연출부는 영화의 그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단역 오디션을 담당하기도 하죠. 그때 의견을 얘기할 수도 있고요. 힘든 점은 책임질 게 많아진다랄까. 현장에서는 연출팀이 중심이 되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연출팀, 뭐하고 있어”라는 소리가 들려오죠. 저는 연출부를 원했어요. <더게임>부터 연출부에서 일했죠. 몇몇 영화의 연출부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경험이 없어 하지 못했어요. <더게임>의 윤인호 감독님에게 “연출부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일을 시작했어요.

Q

한국어를 정말 잘하세요. 한국어는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잘하게 된 것 같아요. 한일합작 영화나 통번역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모국어도 까먹지 않고 잘 하고 있고요!

Part.3 15년 영화 인생의 선물, 아가씨

정말 힘든 시간도 많이 있었지만 15년 동안 버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가씨> 조감독으로 일하는 내내 감사하고 또 감동적이었어요. 내 지난 시간이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앞으로 내가 영화를 시작한 한국에서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게 목표에요.

Q

<아가씨>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사전제작 단계에서는 미술통역, 제작 단계에서는 일본 촬영을 담당하셨죠? <아가씨> 영화 제작 당시
느꼈던 힘들었던 점, 보람을 알려주세요.

일단 대규모 영화에 연출부로 참여해서 기뻤어요. 감동적이기까지 했죠. 박찬욱 감독님 영화에 참여했다는 것도 만족스러웠죠.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에서 버틴 시간이 위로가 되는 느낌이랄까. 영화도 잘 나왔고요. 오는 3월 일본 개봉도 앞두고 있어 더 감회가 새롭습니다. <아가씨>에서 저는 일본 촬영을 담당했어요. 미술부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도 했어요. 벽지나 미닫이 문 등이 일본의 당시 시대상과 맞는지 확인하며 작업을 진행했어요. 한쪽에서는 비슷하게만 보이면 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일본 시대상과 맞아야 한다는 의견 차이가 있어 절충해갔죠. 처음에는 일본 촬영만 하기로 했는데 이후 한국 촬영도 같이 하자고 말씀해주셔서 한국 촬영분도 조감독을 하게 됐어요. 감사했어요.

Q

15년째 한국의 영화계에서 굳건하게 버티며 살아남은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분명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텐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셨나요?

아쉽게도 저는 <아가씨>를 개봉 전 스태프 시사회로만 보고 극장에서는 못 봤어요. 개봉 후에는 <태풍, 태양>의 정재은 감독님과 일본에서 한일합작 영화를 했거든요. 작년 여름 내내 일본에 있었어요. 일본 여자와 한국 남자의 어른스러운 연애이야기에요. 한국에 와서 제작부 막내로 영화에 참여했던 <태풍, 태양>의 정재은 감독님과 15년 만에 연출부로 만나서 작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어요. 제작부 막내에서 감독님 옆으로 올라온 느낌이에요. 앞에서도 얘기했듯 한국에서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저는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기다림은 고통스럽지만 좋은 영화를 만나 작업할 때면 또 행복했으니까요. 기다리면 행복한 순간이 왔죠. 저는 낙관주의자에요.

Q

외국인으로 한국 영화계에서 자리잡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듯 합니다.
문화적인 차이도 있었을테고요. 그런 차이로 곤란했던 적은 없으신가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실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제작부 막내였던 <태풍, 태양>때 정말 바빴거든요. 정신없이 일하는데 한 스태프가 “신스케, 물줘”라고 얘기하며 앉아있었어요. 나는 바쁘고 물은 멀리 있었죠. 직접 가져다 먹으면 될텐데, 생각하면서 물을 가져다 줬어요. “신스케, 왜 물을 줘?” “형이 물 달라고 했잖아요~!” “물 말고 불!” 오 마이갓! 아직도 물과 불은 헷갈려요.

Q

영화 현장은 어떤가요? 15년 넘게 한국 영화 현장에서 일했으니 그간 한국 영화
변화도 느끼고 있을 듯 합니다. 15년 전 처음 한국에서 영화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스태프들 처우는 상당히 좋아졌어요. 물가도 올랐지만 지금 스태프들은 기본 생활을 가능할 정도의 급여는 받을 거에요. 아마 제작부 막내도 150만원은 받을걸요? 예전에는 페이 없이도 하겠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또 밤샘이 당연시 되던 분위기도 바뀌었죠. 요즘에는 노조에서 하루 12시간 근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거든요. <아가씨> 촬영때도 12시간은 넘기지 말자는 분위기였어요.

Q

영화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꼽는다면요? 참여했던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나올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진짜 힘들었던 영화(현장 생각하기 싫은 영화도 있지만)라도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내 이름을 보면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영화는 내가 죽은 다음에도 평생 남을 테니까요. 작업한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맨발의 꿈>이에요. 아이들이 나오는 축구영화인데 동티모르에서 촬영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고, 당시 동티모르는 배우도 드라마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영화를 완성시켰다는 보람이 컸어요. 연기를 모르는 현지 아이들과 해냈다는 것도 감동적이었고요. 또 <야수> 촬영 당시 연기하던 유지태씨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어요. 사실 현장에서 그런 일은 배우에게 미안한 일인데, 그 순간 짜릿했어요. 나는 스크린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영화, 그의 바로 옆에서 보고 즐기고 있구나 싶었거든요. 영화 속에 들어간 느낌, 내가 영화 속에 있다는 느낌이 감동이었어요.

Q

한편의 영화제작 과정을 알려주세요. 크랭크인 전부터 크랭크 업 이후까지의 과정과
그 안에서 스태프의 역할도 알려주세요.

크게 프리 프로덕션(사전 준비), 제작, 포스트 프로덕션(후반 작업)으로 구분해요. 사전제작 단계에서 시나리오가 확정되면 스태프들이 모여서 배우 캐스팅, 장소 헌팅하면서 영화 전반적인 준비를 합니다. 제작팀, 연출팀 중심으로 움직이죠. 여기에 미술팀, 의상팀, CG팀도 사전제작에 참여해요. 흔히들 CG는 후반작업만 진행하는 줄 아는데 매끄러운 CG작업을 위해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촬영해야 해요. 현장 촬영 과정은 힘들지만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에요. 후반작업도 재미있어요. 편집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지기도 하고 분위기를 연애에서 스릴러까지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어요. 여기에 사운드가 더해지면 완전 다른 영화가 되기도 하죠.

Q

영화가 대박나면 스태프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있나요?

네, 대박 나면 보너스가 있어요. 아쉽지만 저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어요.

Q

영화인에게 요구되는 여러 가지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무엇보다 열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하고 싶다면 돈이 적더라도 일단 기회부터 잡아야 하고요. 처음부터 돈을 생각하거나 일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하고 싶은 것도 못할 것 같아요. 일단 해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직업적인 측면에서 ‘영화인’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좋아하는 영화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단점은 영화 외에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 촬영 준비할 때나 촬영 중일 때에는 취미생활도 포기해야 하거든요. 금전적인 부분도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부족하죠. 또 영화를 한편 마치면 마음대로 쉴 수 있지만 다음 영화가 언제 올까 불안하기도 하죠.

Q

영화계의 위계질서는 어떤가요? 대학교 연극영화과처럼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가요?
영화 현장 스태프로 일하는 경우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연차를 쓰기는 어렵겠죠?

현장은 편해요. 그리고 영화 작업이 시작되면 휴가나 개인 시간은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해요.

Q

한국 영화계에서 보낸 15년.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한국에서 감독으로 입봉하고 싶어요. 외국인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의 가족, 우정을 다룬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만들고 싶고요.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어떻게 보여질까 고민하는 대신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하고 싶어요.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성공이냐 실패냐는 다음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가 한국 영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시작하고 버틴 한국에서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어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일단 올해는 시나리오를 완성할 계획이에요.

Q

영화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일단 영화하고 싶다면 영화를 전공했건 아무것도 모르건 모두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그랬으니까요. 진짜 원한다면 행동하면 됩니다. 또 영화를 공부한 사람들이 현장에 나가면 더 힘들 수도 있어요. 나는 배웠는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쳐야 현장에서 노하우가 생겨요. 영화는 머리로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몸으로 만드는 부분도 있거든요. 원한다면 도전하고, 기다리고 버티세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올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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