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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STYLE

다 같이 돌자! 돈의문 역사 한바퀴
경교장&돈의문박물관마을

한국역사학과 황선익 교수, 김세범·전예원(한국역사학과 19학번) 학생

서울의 사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이다. 이번 정릉 STYLE은 서울의 서쪽 돈의문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국민대학교에서 자동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경교장과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한 후 격변의 역사와 새문안동네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곳. 길 하나를 두고 각기 다른 시간여행이 펼쳐지는 돈의문에서 과거의 시간을 마주해 본다.

생생한 역사를 품고 있는 서울의 서쪽

김세범·전예원 학생이 경교장 앞에 섰다. 한국역사를 전공하는 학생답게 오늘의 시간여행에 설레는 마음을 표현한다. 김세범 학생이 전예원 학생에게 묻는다. “예원님, 오늘은 강의실 밖을 나와 역사적인 공간을 직접 둘러볼 예정인데요. 어떤 점이 가장 기대되나요?” 전예원 학생이 답한다. “책이나 영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함 아닐까요?” 김세범 학생이 전예원 학생의 대답에 공감한다. 오늘 두 학생이 느낄 생생함에 깊이를 더해줄 시간여행의 인솔자는 황선익 교수다.
“오늘 우리가 찾아볼 곳은 서울의 서쪽, 종로 서쪽에 있는 역사적인 명소입니다. 경교장과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살펴볼 예정인데요. 우리 근현대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럼 시간여행을 떠나 볼까요?”

▲ 경교장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백범 김구 흉상

근현대 격동의 역사의 장, 경교장

경교장은 1층의 출창(出窓)과 2층의 들임 아치창의 건물로 외관이 단아하다. 황선익 교수와 두 학생이 경교장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백범 김구의 흉상이 황선익 교수와 두 학생을 맞이한다.
황선익 교수가 경교장을 둘러보기 전, 근현대사에서 경교장이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들려준다. “경교장이 아주 생소하지는 않을 겁니다. 경교장하면 백범 김구가 연상되는데요.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가 거처한 곳이자 서거한 장소입니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한 이후에 활동한 공적 공간이자 마지막 청사입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면서 백범 김구가 시해당한 경교장. 근대 건축가인 김세연이 설계했다

경교장은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부를 축척한 최창학이 1938년에 지은 저택이다. 최창학은 1937년에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 비행기를 헌납하고 거금을 기부하는 친일행위를 했다. 1945년 11월에 최창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 준비를 위해 조직된 임시정부환국봉영회의 주선으로 경교장을 거처가 없는 백범 김구와 임정요인들에게 제공해 생활공간이자 집무공간으로 제공했다.
경교장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1층의 재현 공간 중 하나인 귀빈식당이다.
“전시실에는 임정요인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는데요. 이곳에 모신 임정요인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각부 부장과 의장, 의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국민대학교 초대 학장인 해공 신익희 선생도 계십니다.” 귀빈식당에서는 1945년 12월 2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만찬이 개최되었고, 백범 김구가 서거하였을 때에는 빈소로 사용됐다.

▲ 귀빈식당에는 임정요인의 모습을 재현해 모시고 있다. 국민대학교 초대 학장인
해공 신익희 선생(왼쪽에서 세 번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장 및 외교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간 지하에는 경교장의 역사와 복원과정,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관련된 각종 사료와 유물, 백범 김구와 임정요인들의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예원 학생이 황선익 교수에게 이 많은 유물 중에 꼭 봐야 할 것들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김구 서명문 태극기’ 앞에 선다.
“한국의 태극기에는 글귀가 적힌 것들이 있습니다. ‘OO 서명문 태극기’라고 부르는데요. 김구 서명문 태극기에는 1941년에 백범 김구가 독립 의지를 담은 글귀와 서명을 작성해 미국으로 가는 벨기에인 매우사 신부에게 전달했고, 매우사 신부는 안창호 선생의 부인인 이혜련 여사에게 전달하죠.”

▲ 김구 서명문 태극기(왼쪽)와 김구 유묵-신기독(오른쪽), 백범 김구의 친필이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옆에는 유묵이 있다. 정예원 학생이 한자를 바라보며 황선익 교수에게 묻는다. “교수님 이 글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건가요?” 황선익 교수가 답한다.
“ 이 유물은 ‘김구 유묵-신기독’인데요. 백범 김구가 서거할 당시에 책상에 있었던 유묵입니다. 신기독(愼其獨) 좌편에는 ‘대한민국 31년, 6월 00일, 한양성서 경교장에서 74세 백범 김구’라고 쓰여 있는데요. 신기독의 의미는 ‘혼자 있을 때도 몸을 삼간다’라는 뜻이지요.” 두 학생이 백범 김구가 처한 상황과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글귀를 가만히 바라본다.

경교장에 울린 총성

황선익 교수가 2층으로 두 학생을 안내한다. 동서로 난 긴 복도 한가운데 양 옆에 방이 있다. 김구 집무실 앞에 선 황선익 교수 손에는 <백범 일지>가 들려있다. “김구 집무실 앞에 서니 여러 생각이 듭니다. 백범 김구는 미군정 시기에 제한된 활동을 하며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겁니다. 이곳에서 집무를 보면서 생각과 사상을 정리했고, <백범 일지>를 완성했죠. 1949년 6월 26일에 집무실 책상에서 책을 보시다가 포병장교이자 방첩대원(CIC)인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셨습니다.”

▲ 총탄 흔적(오른쪽)을 재현해 놓은 김구 집무실(왼쪽)

▲ 2층의 일본식 다다미방은 수행원들이 사용했다

집무실에는 피격 당시 앉아있었던 의자와 총탄 흔적이 재현되어 있다. 두 학생이 재현 현장과 백범 김구의 서거 당시 자료를 살펴본다. 경교장에 울렸을 네 발의 총성과 순식간에 나라에 번졌을 깊은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는 표정이다.
백범 김구 서거 이후 경교장은 서서히 잊혀졌다. 최창학에게 반환되었다가 중화민국대사관저, 미군 특수부대 및 임시 의료진 주둔지,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됐고, 1968년에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인수해 본관으로 사용됐다. 이후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려는 노력의 결과로 2001년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5년에는 국가사적으로 승격되었으며, 공간과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거쳐 2013년에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황선익 교수가 이번에는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백범 김구가 쓴 수많은 글귀 중에 <새문 밖에서>라는 글이 있는데요. ‘새문’은 서대문을 의미합니다. 경교장에서 길 하나 건너면 닿을 수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로 함께 가볼까요?”

사라진 교남동 정취, 돈의문박물관마을로 단장한 새문안동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서울 100년의 이야기를 전시, 공연, 교육, 모임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이다. 파라솔이 있는 중앙 광장을 한옥, 주택, 빌딩 등이 둘러싸고 있다. 두 학생이 박물관과 마을이 합쳐진 조합이 신기하다고 말한다. 황선익 교수가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살펴보기 전에 서대문을 부르는 다양한 명칭에 관해 이야기한다.

▲ 돈의문박물관마을의 광장(왼쪽)과 돈의문박물관 마을안내소 외벽의 미디어파사드(오른쪽)

▲ 일제는 러일전쟁 이후 의주로와 연결되는 돈의문 밖의 교통량이 크게 늘자 1915년에 돈의문을 헐어버렸다.
돈의문에 사용된 목재는 단돈 205원(쌀 17가마)에 경매로 팔았다

▲ 100년 전만 해도 돈의문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전차도 지나다녔다

“이곳은 서대문이 있던 곳이에요. 돈의문은 서대문의 또 다른 이름이죠. 1396년에 돈의문이 세워졌다가 1422년에 정동사거리에 새로 세워졌는데 이때 돈의문을 ‘새문’, ‘신문’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이 앞길이 신문로로 불리기도 했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새문안로라고 부르죠.”

▲ 개발이 잦은 서울에서 도시 개발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되는 글귀

김세범 학생이 돈의문박물관마을이 근린공원이 될뻔한 이야기를 꺼낸다.
“맞아요. 이곳은 종로구 끝자락에 있어 서울 안에서도 요지인데요. 원래 계획은 새문안동네를 포함해 교남동 일대를 돈의문 뉴타운으로 지정해 개발할 예정이었어요. 지금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있는 새문안동네를 근린공원으로 만들 계획이었죠. 그런데 개발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자취를 없애고 새로운 도시를 짓는 것에 대한 논의가 오가면서 결국 주택, 골목, 계단으로 이어진 옛 마을을 보수하는 서울형 도시재생을 적용하게 됐어요. 새문안동네가 돈의문박물관마을로 재탄생한 숨은 이야기입니다.”

▲ 돈의문 지역의 역사와 변천 과정이 궁금하다면 돈의문역사관으로!

그렇다면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사료를 살펴보며 돈의문의 역사를 살펴볼 차례다. 황선익 교수와 김세범·전예원 학생이 돈의문역사관 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돈의문역사관의 전시실 이름(아지오, 한정)이 특이하다. 돈의문역사관이 개관되기 전, 두 동의 양옥은 이탤리언 레스토랑 ‘아지오’와 한식식당 ‘한정’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돈의문역사관은 건물이 가진 기억을 그대로 되살리고자 전시실 이름도 식당 이름인 아지오와 한정을 그대로 따랐다.

▲ 한정과 아지오는 돈의문역사관의 전시실 이름. 건물의 기억을 반영해 전시실 이름을 붙였다

아지오에는 돈의문 철거 전후의 모습과 인근 지역인 새문안동네와 교남동의 변천 과정이 담긴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또 집터에서 발굴된 경희궁의 궁장과 생활유적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유적전시실과 창밖에는 경희궁의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도 품고 있다.

▲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궁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뷰 포인트도 있다

한정 2층에는 과거 명문사학과 학원이 밀집된 종로의 과외방과 강남 개발로 명문사학이 이전하면서 주택과 식당이 조성되게 된 과정이 전시되어있다. 새문안그림지도 앞에서 황선익 교수와 김세범·전예원 학생이 경교장에서부터 돈의문박물관마을, 돈의문역사관까지 지나온 길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며 이날 시간여행을 마무리한다.

▲ 식당가가 즐비했던 새문안동네. 사진으로 당시의 풍경을 기록해 전시하고 있다.

▲ 1990-2000년대 새문안동네를 그림지도로 묘사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이날 먹고 싶은 점심 메뉴!

돈의문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주변에 보존되고 있는 역사적 문화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면 돈의문의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한 인물들을 소환할 수 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는 역사이지만 미세한 감각을 깨워 특정한 시공간으로 이동하고 싶은 날에는 돈의문으로 가보는 것이 어떨까. 도심 속 자유로운 시간여행이 역사와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영감이 될 것이다.

경교장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29
문의 02-735-2038
관람시간 9:00 - 18:00(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돈의문박물관마을
주소 서울 종로구 송월길 14-3
문의 02-739-6994
관람시간 10:00 - 19:00(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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