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
성재혁 교수, 이규선(19학번) 동문, 이서연(21학번) 학생
케이팝 아이돌 가수의 성장 스토리를 그려낸 뮤지컬 <KPOP>이 작년 11월에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가 <KPOP> 디자인팀으로 참여했다고 하여 작업 과정과 현지 반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성재혁 교수 디자인이 세상에 나오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클라이언트입니다(웃음).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디자인은 기업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한 결과물이 되는데요. 이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전문 디자이너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디자인 예산이 부족해 전문 디자인 인력을 고용하기 어려운 곳이 많습니다.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는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학술적 연구와 실무적 교육을 병행하는 연구조직으로 2020년 5월 1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사회문화 전반에 필요한 디자인을 제공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역할로 우리 문화유산을 아카이빙해 상품화, 세계화, 정보화하고, 사회적 기업, 소셜 벤처, 스타트업 등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을 지원하며, 사회기반 시설, 재래시장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의 성과라고 하면 ‘한글재민’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글재민은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의 공동작업물로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가 개발한 디지털 폰트입니다. 2020년에 한글날 574돌에 한글재민을 무료로 배포한 이후로 매년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자 간체자뿐만 아니라 히라가나, 가타카나까지 확대되어 동양권 문자를 대통합하는 폰트 모음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규선 동문 미국에서 학부 과정 4년을,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4년을 보냈는데요. 전 직장 동료가
이서연 학생 시장 조사와 분석 단계에서 학술적 자료를 참고해 케이팝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 주력했어요. 성재혁 교수님의 지도로 이소원 동문(테크노디지털전문대학원 시각디자인학과, 18학번)이 지난 2020년 2월에 <SNS 시대의 아이돌 아이덴티티 방향성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요. 케이팝 아이돌은 팬덤과 함께 성장하는 가변적 성향을 지닌 인격체라는 이론과 이보미 동문의 <공연예술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관한 연구 : 창작뮤지컬 ‘제시의 일기’ 사례를 중심으로>를 참고하여 마케팅 믹스의 7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Physical Evidence, Process, People)에 적용했죠. 케이팝 아이돌 가수는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콘셉트가 달라지고 멤버 이미지 또한 변화를 주며 성장하잖아요. 저희에게는 익숙하지만 케이팝을 하나의 음악장르로 이제 막 받아들이기 시작한 미국에서,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미국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관계자들은 케이팝의 이 전략을 낯설게 느끼더라고요. 그래서 케이팝을 하나하나 이해시키면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이규선 동문 당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쓰고 있는 로고 디자인의 경향을 조사해 시안에 반영했어요. 약 1년 전만 하더라도 바로크 느낌의 로고가 트렌디하게 쓰였기 때문에 고딕(Gothic)한 느낌의 로고를 시안에 반영했는데 홍보에이전시 측은 전혀 힙하지 않고 오히려 올드하다는 반응이었죠. 이것이 바로 로마 문자권 사람과 우리의 시각 차이구나! 그래서 저희가 팍팍 밀었던 고딕한 느낌의 시안은 최종 로고로 선택될 수 없었어요.
이서연 학생 로고와 프로젝션 제작 과정은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에서 진행됐고 작업 과정에서의 조율은 줌으로 진행됐어요. 프로젝션 제작을 마치고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뉴욕 브로드웨이에 갔죠. 현장에서는 프로젝션을 적용해보고 스테이지 환경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했는데요. 이때 배우, 감독, 조명, 디자인, 음향 등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팀을 만날 수 있었어요. 다들 프로페셔널해요. 자신의 창작물에 자부심을 보이는 건 물론이고 무대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영역이 돋보이게 의견을 말하는 데 정말 거침이 없어요. 그 과정에서 화내고 상처받는 분들도 계시긴 하는데 또 그런 모습은 한국과 비슷해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를 가든 비슷하다고 느꼈죠(웃음).
이규선 동문 처음에는 저희가 뉴욕 브로드웨이에 적응하느라 조금 소극적이었어요.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고부터는 저희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죠. 갈등이 해소되고 화합하는 신에서 조명팀이 케이팝 정체성을 부각하고 싶었는지 태극 문양의 붉은색 조명을 과도하게 사용했는데 분위기가 공산당에서 주최한 뮤지컬처럼 보이는 거예요. 이서연 연구원이 유머러스하고 조심스럽게 ‘이거 너무 북한 같지 않니?’라고 말했는데 다들 크게 웃었어요. 조명팀마저 말이죠.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게 분위기를 조성해 저희의 의견을 반영했고 수정도 잘돼 프로젝션도 조명도 조화롭게 표현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나이나 경력이 적으면 의견을 말하는 게 조심스러운데 뉴욕에서는 그런 것 상관없이 존중받고 싶으면 네 의견을 말하라는 분위기에요. 또 그 의견을 수용해주는 열린 자세도 인상 깊었어요.
이규선 동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한국전문가로 케이팝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시작은 분명 로고 디자인 어드바이저였는데 저희가 적극적으로 제안해 프로젝션 디자인까지 확대됐고, 올해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제작 프로덕션과 손발을 맞춰 일본에서 열리는 뮤지컬 작업에도 참여할 예정이에요. <KPOP>프로젝트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제안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 능력치가 생겼다는 거예요. 우리 문화유산에 디자인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면 이제부터 저와 이서연 연구원이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볼 계획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브로드웨이 전문매체인 <플레이 빌(PLAYBILL)>에 최초로 한글로 적힌 타이틀 표지가 실려 감동이었는데요. 한글재민에 참여한 연구원으로서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가 지속하고 있는 한글재민 개발의 중요성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서연 학생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알았어요. 자료만 제대로 아카이빙되어 있다면 작업 속도가 빠르고 스토리도 훨씬 탄탄하게 나왔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문화유산 아카이빙은 전통문화를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또 로고 디자인에서 프로젝션 디자인까지 작업이 이어지는 걸 보면서 영상 작업 능력은 디자이너가 앞으로 갖춰야 할 필수 능력이라는 것도 확인했어요. 영상 배우느라, 작업 하느라, 프로젝트 수행 강도가 ‘강’이었는데 미래 제 모습을 자세하게 그려볼 수 있었어요.
성재혁 교수 미국 현지에서 두 연구원의 디자인 제안이 수용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적 또는 논리적 설득 과정이 아닌 케이팝 산업에서 사용되고 있는 디자인의 경향을 미국 현지인에게 잘 설명하고 문화차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잘 설득한 점은 칭찬하고 싶습니다.
성재혁 교수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는 설립 이래 프로보노(Pro Bono Publico: For the Public Good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을 자발적이고 대가 없이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념으로 사회문화 전반에 필요한 디자인을 제공하고 연구했습니다. 기존의 연구 방식을 이어가는 것과 동시에 메타버스 생태계에 적합한 연구 영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타버스는 클라이언트가 없어도 디자이너가 시장에 창작물을 내놓을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대중이 디자이너의 창작물에 가치를 취하고 싶다면 지갑을 여는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죠. 이 변화는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가 연구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구자가 디자인 선행을 하고 적용할 대상을 찾거나 대상이 찾아오도록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죠.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의 활동과 연구에 크게 공감한다면 디자이너 전공생분들과 전문 디자이너분들의 관심과 지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