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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치열하게 그리고 즐겁게! 디자인이라는 긴 호흡

WGNB 대표 백종환
공간디자인학과 98학번

사회초년생 때 너무 겸손할 필요는 없단다. 디자인 업계에서 20년간 많은 후배를 만나 보니 주눅 들어 보이고 별로란다. 긴장이 살짝 풀리는 순간, 치열하게 열심히 살란다.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디자인 역시 본인이 하는 것만큼의 정직한 대가를 받는단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백종환 대표. 20년 차인데도 여전히 디자인은 즐겁고 그래서 치열하다.

공모전만 열두 번, 끈기로 완성한 될성부른 나무

백종환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에 자동차 디자이너 또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미대에 진학하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2년간 입시미술을 공부했다. 가고 싶은 대학은 국민대학교. 그런데 공간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짧게 준비한 입시 미술, 수능·내신을 종합했을 때 공간디자인학과가 제 입학 조건에 딱 맞았어요.”

▲ WGNB 직원들이 백종환 대표에게 선물한 인포그램으로 알아보는 <그남자의 사생활>

▲ WGNB 모형도(위). 사무실 풍경(아래)

백종환 대표는 전공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람이 담겨 있는 공간을 생각하고, 그 공간의 쓰임을 보는 공간디자인이 본인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2학년이 되고 나서는 공간디자인 공모전에 도전했다. 첫 공모전에서 입선, 그다음 공모전에도 입선, 또 입선, 그러다 특선, 이번에는 장려. 작은 상을 여러 차례 받다가 어느 날은 그보다 좀 더 큰 상을 받았고, 열두 번째 도전인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 20년 전, 열두 개의 공모전에서 작고 큰 상을 받았던 백종환 대표.
이제 해외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고 있다

“한두 번 공모전에 도전하다 큰 상을 받지 못하면 보통 그만두는데 저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어요. 작은 결과가 모이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고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죠. 제가 꽤 끈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백종환 대표는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 최우수상을 계기로 공간디자인 회사인 어소시에이트에 입사한다. 당시 심사위원이자, 공간디자인학과 교수인 박성칠 공간디자이너가 백종환 대표를 직원으로 들인 것이다.

나만의 관점으로 공간을 장악하는 히트 메이커

첫 프로젝트는 압구정에 있는 성형외과 시공이었다. 시공은 백종환 대표가 학부 시절 방학이 되면 했던 아르바이트였다.
“공간디자인 회사마다 다루는 업무 영역이 다 달라요. 어소시에이트는 시공과 공간디자인을 모두 다루는 곳이었죠. 입사해서 5년은 시공 위주로 일했어요. 아르바이트로 했던 시공이 청소, 정리, 일머리를 익히는 것이었다면 어소시에이트에서의 시공은 쓰이는 재료, 투입되는 비용으로 경제적이고 퀄리티 있는 디자인 공간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됐어요. 적은 비용을 쓰고도 좋은 퀄리티를 내는 디자인과 때로는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퀄리티를 위해 고집해야 하는 디자인이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배웠어요.”

▲ 교보문고 핫트랙스

▲ 무신사 편집샵 EMPTY(위, 아래)

7년 차에는 공간디자인에만 집중하게 됐고, 백종환 대표가 디자인한 공간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이면서 화제를 모았다. <시크릿가든>의 현빈 집으로 유명한 레이크하우스는 훤히 트인 창을 통해 자연을 공간에 끌어들인 집. 업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찬사를 받았다.
“저에게도 드디어 히트곡이 생긴 거죠. 레이크하우스가 명성을 얻고 기업에서 의뢰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전보다 더 다양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레이크하우스가 백종환 대표가 소속된 어소시에이트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면 교보문고 핫트랙스, 카카오 프렌즈 스토어, 준지 플레그십 스토어, 무신사 솔드아웃은 백종환 대표의 이름을 디자인 업계에 널리 알리게 해준 공간이다. 각각 생김새와 쓰임이 다르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작업을 경계하면서도 목적에 충실하고 시각적으로 임팩트가 있는 공통점이 있다.

“디자이너는 사람과 사물 간 갈등을 해결시켜 주는 사람이에요.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똑같은 약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맞는 질서를 부여해야 하죠. 이 질서는 나만의 관점으로 구현해야 해요.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나만의 관점이고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예요.” 공간에만 구현했던 디자인을 문장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 15년이 걸렸다는 백종환 대표. 그 사이 에어소시에이션은 WGNB로 사명이 변경됐고, 그의 이름 뒤에는 공동대표라는 직함이 붙었다. 심사위원이자, 교수님이고 대표였던 박성칠 공간디자이너와는 공동대표로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다 2년 후 박성칠 공간디자이너는 자유로운 삶을 찾아 떠났다.

결핍을 채우는 디자인

백종환 대표는 공간에 다른 질서를 부여해온 것처럼 자신의 삶에도 남과는 다른 질서를 구현했다. 졸업, 입사, 결혼이 아닌, 결혼, 입사, 졸업으로. 4학년 11월에 결혼해 가장이 됐고, 그다음 달부터 회사로 출근해 20년간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디자인을 놓아본 적이 없다.
“만약 결혼이 빠르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해요. 회사를 몇 년 다녔다가 중간에 해외로 유학을 다녀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해외에서 사는 경험을 했거나 여행을 자주 다녔을 수도 있을 텐데… 어떤 선택을 했어도 지금의 삶이 최선인 것 같아요. 그 이유가 제가 미술, 공예, 건축, 패션, 가구 등 디자인과 관련된 것 외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꽤 오랫동안 취미가 없어 고민하던 날이 길게 이어졌죠.”

▲ 백종환 대표가 그린 그림. 가끔 SNS에 그림을 올린다

백종환 대표는 우연히 뉴스에서 누군가의 생활기록부를 보고, 어렸을 적 자신의 생활기록부에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적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다음 날 아침에 수채화를 그리면서 아주 오랜만에 일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몰입하는 자신을 마주했다. 그리고 수채화를 그린 그날부터 지금까지 2년간 아침에 일찍 사무실로 출근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림 그리기는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이었어요. 운 좋게도 그림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에는 문득 지금 그리는 그림이 건축디자인을 위한 준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디자인은 종교와 주거 공간이 아닌 상공간들은 트렌디해야 하는데 제 시간은 트렌드와는 멀어지는 시간으로 흐르고 있거든요. 반면 건축디자인은 오륙십 대가 넘어 빛을 보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도 이 나이 즈음에는 치열한 청춘의 시간을 초석 삼아 건축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공간디자인을 하고 있지 않을까 미래를 그려봐요.”

▲ 준지 플래그십 스토어(위, 아래)

▲ SVRN 시카고 스토어(위, 아래)

백종환 대표는 3년 전에 준지 플래그십 스토어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게 되면서 건축 의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작년과 재작년 WGNB의 목표 중 하나는 건축 프로젝트를 늘리는 것이었다.
“건축디자인과 공간디자인 그 경계에 있는 미묘한 선을 지우고 싶어요. 지금 함께하고 있는 건축팀, 공간디자인팀, 가구팀이 함께 같은 비전을 보고 축구팀이 경기를 뛰는 것처럼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원팀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백종환 디자이너는 건축가로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알바로 시자(Alvaro Siza),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발레리오 올지아티(Valerio Olgiati), 크리스찬 케레즈(Christian Kerez)를, 건축팀으로는 사나(SANAA) 그룹, 준야 이시가미(Junya Ishigami)를 좋아한다고 한다. 오륙십 대에 그가 내놓을 건축디자인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백종환 디자이너가 언급한 건축가의 작품을 이어 그의 관점을 더해보면 감히 청사진이 그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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