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현 학생은 여느 20대처럼 마음이 아팠다. 아픔을 툭툭 털어내고 생긴 변화가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은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 아버지가 관리하시는 신설동 한옥 창고의 마당이 눈에 들어왔고, 한 달 만에 공간을 꾸려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책방을 열었다. <마당책방>이 문을 연 지 어느덧 10개월, 겨울·봄·여름을 조용히 보내고 난 뒤 가을의 끝자락, 이예현 학생은 <마당책방>에서 또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보시다시피 마당에 책들이 놓여 있잖아요. 말 그대로 ‘마당에서 운영되는 책방’이라는 뜻이에요. 특성도 잘 드러나면서 사람들이 기억하기 좋아지라고 이름을 <마당책방>으로 지었어요. 학창 시절, 독립예술을 좋아했어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진실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인데요. 저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조금 서툰 면이 있어 독립예술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스물한 살,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찾아와서 마음이 아팠고, 세상에 내가 없어지면 제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래서 내 흔적을 남기는 일 하나쯤은 만들어보자고 생각해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시집 두 권을 독립출판물을 통해 냈고, 그 과정에서 아픈 마음을 털어냈어요. 아프고 난 뒤 변화가 생겼다면 하고 싶은 일을 더는 미루지 않게 된 건데요. 시집을 내면서 독립출판물이 있는 책방을 운영하고 싶었는데 마침 아버지가 가죽 상점을 운영하면서 창고로 쓰는 한옥 마당이 비어있어 이 공간에 독립출판물 책방을 차리게 됐죠.
독립출판물은 작가가 기획부터 집필, 인쇄, 홍보, 서점 입고까지 혼자 진행해요. 내용, 판형, 문체, 디자인 등이 다양한 게 매력인데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도 있고, 유머러스한 시도가 많아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에요.
<마당책방>에는 약 80권의 책들이 있는데요. 책방을 오픈한 초기에는 독립출판물을 일일이 다 읽어보고 입고를 요청하는 메일을 제가 직접 작가님에게 보냈어요. 책방을 오픈하면서 인스타그램으로 책방 홍보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요즘은 작가님들이 <마당책방>을 먼저 알아보시고 입고를 희망하는 메일을 주세요. 메일로 서지 정보를 확인해서 책방에 들이고 싶은 책이라고 판단되면 <마당책방>에서 판매하는데요. 기준은 제가 읽었을 때 손님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어야 해요. <마당책방>에 있는 책 대부분은 제가 읽어본 것들로 국민대학교 학생이 쓴 책도 있어요. <잠깐, 적어두고 갈게> 라는 책은 과 동기인 박원재 작가가 쓴 책이랍니다.
대학생 생활만 하던 작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바빠졌어요. <마당책방>으로 출근하면 우선 메일부터 열어서 입고 문의가 들어온 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새로 입고된 책들을 정리해요. 그다음에는 본격적으로 마당에 책들을 진열하고 손님들을 맞이하죠. 직원을 둘 정도는 아니어서 혼자 책방을 보고 있는데요. 하루에 손님 다섯 분이 오시는 날도 있고, 동묘길에 장이 서는 토요일에는 이보다 더 오시기도 해요.
지난 학기는 21학점을 듣느라 <마당책방>을 주말에만 열었어요. 학교 수업과 책방 운영 두 가지를 병행하느라 힘에 부쳤는데요. 이번 학기에는 창업현장실습을 수강해서 책방 운영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창업현장실습은 저같이 창업했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재학생들이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창업과 관련된 활동을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예요. 창업에듀 사이트에는 창업현장실습과 관련된 여러 강좌가 있는데 저는 도움이 될 만한 세금 관련 수업을 찾아 들었어요. 일정 항목을 이수하면 6학점이나 인정돼요. 이번 학기에는 수업이 없는 화·수·목·토요일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창업지원단 김성일 교수님께서 창업현장실습을 하는 학우 한 분을 연결해주셔서 현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제가 <마당책방>을 운영하며 알게 된 독립출판 작가님을 경영정보학부 김민호 학우에게 소개해 드렸는데요. 김민호 학우가 창업한 에크네가 작가님의 책을 외국어로 번역해 오디오북과 전자책으로 제작, 수출할 계획이에요. 이 외에도 재정 지원을 받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정보도 창업지원단으로부터 얻고 있어요.
가죽 상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책방이 있다고 하니 신기해서 들어와 보시기도 하고, 주말마다 이 근처 동묘길에 장이 서기 때문에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우연히 <마당책방>에 들러 책 한두 권을 사 가실 때면 좀 더 다양한 분들에게 독립출판물을 알리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껴요. 우리 책방만의 매력을 꼽자면 투명한 천장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맡으며 계절과 책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데요. 서울 시내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한옥 마당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즐기고 가는 손님들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마당책방>을 독립예술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에요. 최근 독립영화 감독님이 <마당책방>을 대여해서 이 공간 일부를 영화 관련 활동을 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는데요. 독립영화 감독님들뿐만 아니라 독립출판 작가님들도 이곳에서 글쓰기 클래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공간 기획을 하고 있어요. 입구 벽면에 전시된 사진은 사진 공부하는 친구의 작품인데요. 사진작가님들에게는 공간이 작지만, 사진전을 열 수 있도록 활용할 계획이에요. 저는 지금 3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독립출판작가로서 글을 써온 시간과 <마당책방>을 운영해본 경험을 토대로 출판 관련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큰 계획이라고 할 건 없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길 거예요.
<마당책방>이 지난 9월 책 읽는 마을, Billage와 함께 서울의 독립서점 독립출판물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했는데요. <마당책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제안에 주얼 작가의 단편소설집 <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을 권해 드렸어요. <마당책방>에 오시면 계절의 흐름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데 책방과 이 작품이 참 닮아있다고 느꼈거든요. 흘러가는 계절의 흐름을 국민인들도 함께 느꼈으면 해요.
시로, <마당책방>으로 자신만의 흔적을 하나씩 만들어 가고 있는 이예현 학생. 언젠가는 <마당책방>을 운영하며 느낀 경험을 수필로 써볼 생각이란다. 수필집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건강을 잃지 않고 무럭무럭. <마당책방>을 통한 이예현 학생의 흔적 남기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