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보기

트렌드 인사이트 순환하는 파도: 세계를 위로한 K콘텐츠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영상디자인학과 손영모 교수

“어렸을 때, 영화를 공부할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제가 책에서 읽었지만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셨냐면,
That quote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
(이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하셨던 말씀입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2020년 2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생충>의 <기생충>에 의한 <기생충>을 위한 장이었다. 국제영화상(구(舊) 외국어 영화상, Academy Award for 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을 수상한 후, 다시 무대에 올라 기어이 감독상(Best Director) 트로피까지 손에 쥔 봉준호는 오스카 트로피를 받아들고 이 모든 영광을 수많은 영화와 지면을 통해 자신에게 영화를 가르쳐 준 할리우드의 대가(大家)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바친다며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영어로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감격을 표하던 마틴 스코세이지는 봉준호가 애칭 마티(Marty)로 불러주자 급기야 눈시울이 붉어지며 연신 뜨거운 박수를 치며 감사를 표했다.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오른 다른 후보들-마틴 스코세이지(<아이리시맨>), 토트 필립스(<조커>), 샘 멘데스(<1917>),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을 언급하며, 할 수만 있다면 텍사스 전기톱(토브 후퍼 감독의 B급 호러 클래식 <텍사스 전기톱 학살(The Texas Chain Saw Massacre, 1974)>의 제목을 빗대어 한 농담이다)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잘라 함께 나눠 갖고 싶다는 말로 위트 있는 수상 소감을 마무리한 것은 덤이었다.

▲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있어 오늘이 있었다고 수상의 영광을 돌렸다

순환하는 문화의 파도

위 상황을 통해 사람들은 드디어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 그간 예상치 못했던 재미있고 뜻깊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직감할 수 있었다. 묘하게도 이 상황은 1990년 구로사와 아키라(일본영화를 대표하는 명감독 중 한 명. 대표작으로 <라쇼몽(1950)>, <7인의 사무라이(1954)>, <요짐보(1961)> 등이 있다)가 아카데미 평생공로상(Academy Honorary Award)을 수상했을 때, 그의 작품을 보고 영화를 공부했던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존경을 표하며 축하했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미국 웨스턴 영화의 스타일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일본 작품을 보고 공부한 할리우드의 영화감독들이 자신들의 원격(remote) 영화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은, 흡사 우리가 작년에 목격했던 미국과 한국 사이를 오가는 문화의 파도와 같았다. 이 파도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더는 뤼미에르 형제, 토마스 에디슨, 그리고 D.W 그리피스에게 빚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 파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돌고 돌아 순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고유성과 역사에 대한 경외심이 그들에게 가 닿는 순간, 파도의 잔향이 만들어 낸 거대한 흐름 또한 우리에게 밀려들어 오고, 이는 우리의 문화를 담은 콘텐츠가 되어 다시 그들에게 흘러간다. 나아가 그간 짐작만 하던 이와 같은 현상의 실체를 우리는 그로부터 불과 한두 달 후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 조지 루카스(좌), 스티븐 스필버그(우) 감독은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을 영화의 교본으로 삼아 공부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입증한 것

2020년 2월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상황이, TV에 보도되는 확진자 및 사망자 수치를 보고 현실로 다가왔고, 우리는 모두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버렸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는 격리되지 않기 위해 미디어에 기대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놀라운 현상이 나타난다. 그간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신문, 라디오, TV 등 현재도 사용되지만 과거에 개발된 전통적인 미디어)를 대체할 강력한 뉴미디어로 기대되던 것들은 다소 정체되어 뒷전으로 밀려나고, 누구에게나 익숙한 포맷과 문법으로 제작된 콘텐츠들이 OTT(개방된 인터넷을 통하여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그간 극장과 영화가 담당하던 시대의 거울 역할을 자처하며 등장한, 자체 콘텐츠 제작 체계를 갖춘 OTT 플랫폼 서비스 기업들-Netflix로 대표되는-의 약진은 실로 놀랍다. 극장용 영화나 지상파, 케이블 TV 보다는 다소 완화된 검열 기준을 바탕으로 제작된 직설적인 내러티브를 사용자들은 현실적이라 여기고 그 중심으로 몸을 던지는 모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제공하는 효율적인 콘텐츠 유통방식과 오랜 역사를 통해 검증된 실제 3차원 공간을 2차원에 환영으로 재현하는데 필요한 영화문법이 결합하여 우리를 위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를 위로한 오징어 게임

최근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흥행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우연히 작년 봄, 내가 거주하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넷플릭스 제작, 이정재 주연의 <오징어 게임>의 촬영이 새벽 중 진행되오니 양해 바랍니다’라는 공지문이 게시된 것을 보고 감독이 누구인지 알아보았고, 그가 황동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독의 미국 유학 시절 졸업 단편영화 <미라클 마일(Miracle Mile, 2004)>을 인상 깊게 감상한 후로 그의 필모그래피-주로 실화 혹은 원작을 기반으로 한-를 팔로우해 오던 내 시점에서 그는 이야기의 명확한 전달을 위해서는 때때로 독창성이나 세련된 스타일을 포기하는 모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아티스트다. 누구나 손쉽게 액세스할 수 있는 OTT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독창성 있는 소재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내러티브 재현의 틀에 정직하게 채워 넣어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이 안정적이다. 감독은 다년간의 상업영화 작업-특히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남한산성(2017)>-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과정을 묵묵히 완수해 냈고, 이는 현재 한국의 상황, 나아가 전 세계적인 사회상을 글로벌한 관객들에게 거울처럼 비춰주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전 세계 넷플릭스 스코어 1위 기록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경제발전으로 심화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뛰어난 연출력과 섬뜩한 유머, 기발한 미장센으로 표현한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에디슨은 축음기(Phonograph)를 아이스크림 가게(ice cream parlor)와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놓을 목적으로 제작하였으나, 사용자들은 이것을 각자의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버렸다. 이에 충격을 받은 에디슨은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 1889년에 제작된 영사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형식이다)를 개인 감상용으로 제작하였으나, 사람들은 이 기계를 극장으로 가지고 들어가 함께 앉아 서로 어깨를 맞대고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콘텐츠의 내용과 그 틀을 결정하는 주체는 창작자도 기술자도 아닌 사용자, 즉 관객들이다.
지난 2년 남짓 우리에게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어느 때보다 더 절절하게 감상하게 했던 팬데믹은 언젠가는 그 끝을 보이겠지만, 이를 통해 변화된 미디어 환경은 원래대로 회귀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관객들이 어떤 콘텐츠에 열광하게 될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결국 어느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는 콘텐츠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좋은 환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즉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가 가장 세계적인 콘텐츠가 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 언젠가가 정확히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최근 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이 시작되고 난 후 활기를 찾은 밤거리를 보며 절대 덧없지 않은, 현실적이고 또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언젠가는 함께 앉아 어깨를 맞대고 다시 파도의 중심에 몸을 맡길 수 있기를. 그리고 순환하는 파도 안에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를. 제2, 제3의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기를.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영상디자인학과 손영모 교수 손영모 교수는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기초비디오워크숍>, <고급비디오워크숍>, <영상프로덕션Ⅰ>, <사운드디자인>, <고급포스트프로덕션>, <고급라이브액션프로젝트> 등을 강의하고 있다. 프로덕션 Selvin Rice making live action의 대표로 원-맨 프로덕션을 통한 저예산 영화, 멀티채널 영상, 상업 뮤직비디오 제작을 병행해 왔으며, 제작한 작품을 여러 미디어 및 국내 외 다수의 영화제, 전시, 공연 등에 소개하고 있다. 현재 내러티브 영화문법을 다양한 형식의 영상 미디어에 접목하는 방법론과 정통 영상기술 및 색보정, 2D 합성 등 영상 후반작업 분야에 대해서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트위터

이 코너의 다른 기사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