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탁월함으로 승부하라!KBS 전 아나운서, 현 연극배우겸 작가 유정아

'말의 품격’ 다소 생소한 말이지만 취업, 관계, 소통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귀가 솔깃해진다. 해를 거듭하고 나이 한 살을 더하면서, 갈수록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소통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에 ‘말’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공부해온 KBS 전 아나운서 유정아에게 물었다. 유정아는 1989년 KBS 16기 아나운서로 데뷔해 9시 뉴스와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 진행하였고, 1997년 프리랜서 선언 후 토론 및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 2004년 서울대학교 말하기 강의를 맡아 10여 년간 ‘말’에 대해 공부해 왔다. 또 신문과 잡지에 다양한 글을 기고하며 음악과 말에 대한 책들을 집필했고, 최근에는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소통을 잘하려면 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말에 대한 성찰은 곧 자신과 남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탁월함이 있으며, 각자가 가진 탁월함에는 순위나 높고 낮음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세상과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지 않으면 결코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하는 유정아 작가를 만나본다.

Q 그 동안 아나운서, 연극배우, 말하기 강사, 칼럼니스트 등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셨는데, 도전을 즐기는 편이신가요?

그간 제가 해왔던 일들을 나열해보면 뭔가 일을 도모하고 도전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제안이 왔을 때 그 일을 했던 것뿐이죠. 프리랜서 방송 활동도 그렇고 연극 활동도 알고 보면 제안이 왔을 때 마다 않고 했던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저한테 끊임없이 좋은 기회들이 왔던 거고, 그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주 개인적으로 하고 싶어서 도전한 건 글 쓰는 일이에요. 칼럼이든 책이든 글 쓰는 일을 워낙 좋아해요. 예를 들어, 책을 계약하면 그 동안 썼던 음악방송 원고나 칼럼들을 재구성하고 정리하는데, 그런 작업들을 굉장히 즐기는 편입니다. 그게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저의 모습이고요.

방송일을 그만하게 되면서는 대학 강의 외에 일이 없었는데, 조재현 씨가 연극을 해보자고 연락이 와서 하게 됐죠. 제가 아주 감명 깊게 봐왔던 연극이라 반가웠고요. 제가 배우였다면 <그와 그녀의 목요일>의 여주인공 역이 얼마나 어려운 역할인지 알았을 텐데, 잘 모르니까 서슴없이 하겠다고 한 거죠. 이 작품의 여주인공 역은 여배우들이 많이 꺼리는 역할이라고 해요. 종군 여기자 역인데 주로 방백을 하면서 여배우가 전반적으로 연극을 이끌어가거든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연출 등 많은 부분에서 힘써 주셔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파도가 오면 몸을 싣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는데, 제가 파도를 만들어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파도가 왔을 때 그걸 두려워하지는 않아요.

파도를 만들어낸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파도가 왔을 때 그걸 두려워하지는 않아요

Q 여전히 아나운서로 알아보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실 듯 합니다. 아나운서로서의 경험은 아마도 평생 영향을 미칠 듯한데요?

아나운서로서 기억해주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제 세대에요. 요즘 학생들은 잘 모를 겁니다. 제 제자들이 지금 제 아이랑 나이가 비슷하거든요. 학생들이 “저희 엄마 아빠가 좋아하셨대요.” 하는 얘기는 가끔 들어요(웃음). 또, 얼굴 보다는 목소리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고요.

사실은 저도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말 보다는 글이 훨씬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죠. 글은 어떤 내용에 대해 심도 있고 깊이 있게 쓸 수 있는데, 말은 다르잖아요. 그런데 말하는 직업을 갖다 보니 말 나름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말은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그때그때 상대에게 맞춰서 이야기 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아주 어린 친구들하고도 눈 높이만 맞추면 소통이 가능하고, 때론 아주 짧거나, 길게 말할 수도 있고요. 그게 말의 미덕이 아닐까 합니다. 아나운서의 경험은 그런 말의 매무새를 갖출 수 있게 해준 직업이에요. 대학교 강의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 서거나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도 도움을 주고요. 인터뷰 방송을 할 때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부하게 되는 부분도 많았고요.

Q. 아나운서가 되기 전부터 언변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니요(웃음). 방송을 하는 분들 중 말하는 걸 좋아하거나 그런 면에서 타고나신 분들이 참 많은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언변까지는 아니지만, 아나운서 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훈련이 돼 조금 닦인 것이 아닐까요? 혹은 대학 강의를 하면서 늘었을 수도 있고요.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전달한다는 걸 늘 생각하게 되니까요.

Q 어릴 적에는 말수가 없는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말’이나 ‘소통’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셨나요?

말에 대한 책을 쓰면서도 그랬고, 아무래도 서울대학교 말하기 강좌를 하면서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아나운서 하면서도 특별히 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학생들한테 말하기를 가르치려니 말과 말의 미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죠. 뭐든 가르치려면 항상 공부를 해야 하고, 어떤 이론이 있더라도 그걸 이해시키려면 조금씩 보충해가는 작업도 필요하고요.

강의하기 전에는 글이 더 우선이고 좋은 매체라고 생각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말은 글과는 다른 미덕이 있어요. 우선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강약 조절이 가능하죠. 그리고 뭐든 말로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앎이기도 하고요. 내가 뭔가에 대해 잘 알고 있더라도 그게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그것을 진정한 앎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말하기를 익히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는 방법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나한테 어울리는 말하기, 나다운 말하기는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어떤 사명감으로 말하기를 연구했던 것 같습니다.

연극배우겸 작가 유정아 사진

Q 최근에 쓰신 <당신의 말이 당신을 말한다>를 보면, ‘말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자신과 말의 품격을 함께 높인다.’ 라고 했는데, 책에서 말하는 ‘말에 대한 성찰’은 무엇인가요?

‘말’은 즉시적인 매체예요. 글은 쓰면서 퇴고를 거듭할 수 있지만, 말은 순간 내뱉으면 다시 담을 수가 없죠. 그래서 실수를 하면 그것이 그대로 나로 보일까 봐 두렵고 어려운 거죠. 사람들이 말을 어려워하는 이유가 그거에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말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죠. 입사 면접을 볼 때는 ‘이 회사가 나를 뽑아줄까? 그럼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하지?’로 시작해서, 어렵게 입사가 되고 나서도 그 안에서 윗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이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할까?’ 하고 고민하는 돼요. 그런걸 ‘눈치 보는 말하기’라고 하는 데, 이렇게 되면 굉장히 소심하고 주관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어요.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말하기를 해야 돼요. 같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이순간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걸 알고 있다면 말 한 마디도 다르게 할 수 있겠죠. 내가 평상시 상대에 대해서 배려하고 공감한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또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말하기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상대만 생각하는 건 눈치 보는 말하기고, 나만 생각하는 말하기는 그야말로 유아독존 말하기죠. 따라서 이 두 가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게 가장 좋아요. 그걸 ‘말의 품격’이라고 생각하고요.

Q 말에 대해 배우는 것은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작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것을 잘 꺼내는 것, 또 남의 것을 잘 들어주는 것, 이 두 가지를 잘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잘 끄집어 낸다는 것은, 한 사람이 이 사회 속에 살면서 자기 역량을 발휘한다는 거잖아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내가 생각하는 걸 사회에 드러냈을 때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그게 소통이 되는 거고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잘 융합하면 결국 좋은 사회가 되는 거죠. 앞서 말한 품격 있는 말하기와 비슷할 거 같아요. 그런데 말이라는 게 참 끊임없이 어려워요. 사실 10년 동안 강의를 했지만 저 역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공부를 하면서 가르쳤지만, 그게 아주 깊이 있는 연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 스스로에게 어떤 회의감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말하기 강의를 내려놓게 됐고요.

이 회사가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를 보겠다는 당당함이 있었으면 해요

Q 요즘 취업준비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마 말하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면접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도 하고요.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알려줄 만한 ‘말 잘하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깨달으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마음을 한번 가다듬고 자신감을 갖고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자리는 누구에게나 떨리고 긴장되는 자리에요. 긴장이 안 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 거죠. 아주 뻔뻔하거나. 물론 지나친 긴장은 안 좋지만, 면접이든 시험이든 약간의 긴장은 오히려 도움이 돼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불안은 누구나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불안을 통제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 준비해 왔다는 걸 보여주려고 간 거잖아요. 내가 이 사람들한테 선택을 당하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생각하지 말고, 나도 이 순간 이 회사가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를 보겠다는 당당함이 있었으면 해요. 물론 요즘 취업이 어려우니 소심해지고 때로는 비굴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회사와 나의 비전이 어느 정도 맞는다고 판단했으면 자신이 그 회사에서 어떤 긍정적인 것들을 보태 갈 수 있을지 좀더 진취적이고 당당하게 늠름한 자세를 취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빛이 날 거라 믿어요.

Q. 오래 전 면접을 준비하던 시절이 있으셨을 텐데요. 혹 실수의 에피소드는 없으신가요?

물론 있죠.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기자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아나운서를 하면서 기자로 전직시험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당시 KBS에 숙직할 기자가 필요하다고 공고가 붙었길래 지원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자들은 숙직을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뉴스를 진행하고 있어서였는지 최종면접까지는 올려주셨는데, 그 최종면접에서 면접관이 저한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질문을 하더라고요.

요즘 같았으면 고소감이라 무서워서 못할 말인데, 20년 전이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순간 엄청 당황했죠. 또 다른 질문은 ‘유정아씨가 기사를 써왔는데 데스크에서 이건 못 내보낸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만일 제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쓴 기사를 내보내겠다’라고 했으면 조직원으로서의 태도를 문제 삼았을 거고, 반대로 그냥 데스크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으면 기자정신이 없다고 했을 거예요. 결국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나왔는데, 그건 제 실수이기도 하고, 면접관의 횡포이기도 했죠.

지금은 성적 수치심을 준다던가 그런 질문을 하는 곳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이고, 실전에서 일반적인 실수를 막고 싶다면 여러 가지 예상 질문이 있을 때 본인이 꼭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을 준비해 가는 게 좋아요. 만일 원하는 질문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생각지 못한 질문을 받았을 그 질문과 연계해서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곤란한 질문이라고 단순히 피해가지 말고, 오히려 그걸 이용하라는 겁니다. 어쨌든 나한테 말할 기회가 온 거니까, 적절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내가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을 지혜롭고 겸손하게 이야기하고 나오는 거죠.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입사면접에서 부당한 질문을 받았을 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루트가 많지 않아요. 게다가 소문이 나면 다른 회사에서도 문제를 삼을 수 있으니 루트가 있더라도 못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미국은 그런 제도가 아주 잘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면접관이 ‘당신의 모국어가 뭐냐?’는 질문을 했다면 그건 아주 민족차별적인 질문일 수 있어요. 그럴 때는 ‘나는 이 회사 직무를 수행할 만큼 충분한 언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많은 생각과 준비를 하세요

Q 최근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연옥 역을 맡으셨는데요, 결혼만 빼고 다 해본 두 남녀가 매주 목요일마다 주제를 정해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새로운 남녀관계에 대한 전망? 이 작품에는 출연자가 여섯인데, 지금 현재의 연옥과 정민, 과거 젊은 시절의 연옥과 정민, 그리고 그들이 결혼은 안 했지만 아이가 있는데 그 딸 이경과 이경의 남자친구 덕수가 있어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지는 못했어요. 부모에 대한 불만도 있고요.

엄마 연옥은 종군기자의 길을 가는 여자고, 아빠 정민은 역사학자에요. 연옥은 나중에 위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다시 일을 하러 떠나고, 정민 역시 그런 연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죠. 드라마 같았으면 남자가 후회하고 미안해 하면서 연옥에게 돌아오던가 할 텐데, 이 작품은 다르죠. 각자 새로운 삶 또 다른 삶을 시작해요. 그런 면에서 남녀 관계를 새롭게 보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 또 작품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일단 제가 작품을 고를 만큼 대배우가 아니에요(웃음).
그 전에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연극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이틀 해본 적이 있는데, 그건 낭독극이자 전위극이었어요. 정통극은 이게 처음인 거죠. 제안 받았을 때 고민 없이 한다고 했고요. 하면서 느끼는 점은 감정이입이 참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되어 본다는 거요. 방송을 하거나 진행을 하면 방청객이나 시청자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되는데, 연극은 그 반대에요. 왜 자의식을 지운다고 하죠? 그게 어려웠어요. 연출자로부터 지적도 많이 받고 훈련도 많이 했죠. 자의식을 지우기 위해서 대사를 할 때 대사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위에 있는 조명 수를 세면서 대사를 해요. 대사를 그냥 말하는 것처럼 하려는 거죠. 일반적인 대화를 보면 100% 집중하지 않잖아요. 그것과 비슷해요.

Q 그 동안 많은 분들을 인터뷰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또 질문을 준비하실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 사람의 내심이 잘 드러날 수 있어야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사람의 진심이 드러날 수 있게, 그 사람다움이 잘 나올 수 있게 유도하는 게 중요하죠. 다른 표현으로 ‘눈과 눈을 마주하는 인터뷰’여야 한다는 뜻이에요. 물론 가끔은 그런 마음가짐이 없는 인터뷰이들도 있어요. 판에 박힌 좋은 말, 아름다운 말만 하면서 본인 홍보용 인터뷰를 하는 거죠. 제가 인터뷰했던 분 중에는 그런 인터뷰에 너무 익숙해져서 아예 거울만 보면서 인터뷰하던 분도 있었어요.

질문을 짤 때는 그 사람의 책이나 평상시 인터뷰 내용을 보고 질문거리를 잡기도 하고, 뭔가 더 깊이 있고 진정성 있는 말들을 들으려면 연구를 좀 해야 돼요. 그 사람의 진심이 묻어날 만한 질문, 그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거죠. 혹은 이 인터뷰를 듣는 사람들이 그 사람으로부터 얻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고요.

Q. 그 동안 ‘전달’ ‘소통’ ‘표현’과 관련된 일들을 해오셨습니다. 이런 직업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해왔던 말하고, 듣고, 쓰고, 전달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소통하는 일들은 말씀처럼 항상 ‘소통’을 시도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일들이에요. 좋은 점이라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에게 단련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좋아요. 결국 저도 더 잘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열심히 공부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익혔으면 합니다.

Q. 해오신 활동 중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고 평생 하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현재는 연극에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요. 11월부터 연극을 시작했는데, 기회만 있다면 연극은 계속 하고 싶어요.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제가 말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면서 너무 많은 말을 해왔던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 때문에 강의를 그만두게 됐어요. 그런데 연극은 아주 잘 닦여진 완결된 희곡이 있잖아요. 희곡을 읽다 보면 그 안에는 시대상이 담겨 있고 문학적인 풍자가 있어요. 그걸 말로 발설하고 해석하는 것이 리딩작업인데, 예를 들어, “야, 가지마!”라는 대사가 있다면 그 뒤의 진심은 무엇인지 그걸 해석하는 것을 사일런트 딕션(Silent Diction)이라고 해요. 그 과정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완결된 대사들을 계속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말에 대한 책을 쓰는 건 저한테 뭔가 더 쌓여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쓰고 있는 책은 지난 마지막 방송 KBS 라디오 <밤의 실내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제가 음악 원고를 썼던 것을 정리하는 책이에요. A4로 300 페이지 정도 되는데, 그걸 책 한 권 분량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친숙하게 쓰려고 하고요.

Q. 본래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가장 많이 했던 게 뉴스랑 음악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어려서부터 많이 듣기는 했는데, 그래서 조금 친숙한 것 같아요.

Q 사회학 학사와 신문방송학 석사,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셨는데, 기자라는 꿈을 갖고 가장 먼저 아나운서로 활동하셨습니다.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은 어려서부터 있으셨나요?

일단 저는 박사가 아니라 박사과정을 수료했어요. 이런 건 정확히 해야 돼요(웃음). 사회학을 전공하게 된 건, 동양학과에 가서 아랍사를 전공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아랍의 음악이나 풍물을 접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막연히 좋았거든요. 언론인에 대한 꿈은 저희 외할아버지가 오래된 언론인이셨던 영향도 있고요. 동양학의 주요 학문이 아랍이 아니라 중국사이기 때문에, 가장 넓은 학문이라 생각한 사회학과를 선택했어요.

제가 4학년 때는 88올림픽이 열렸어요.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기자들을 미리 뽑아놔서 채용 공고가 많지 않았는데, 때마침 아나운서 입사 공고가 났길래 시험을 봐서 들어갔죠. 고등학교 때는 멋진 여기자, 저널리스트가 꿈이었다가, 대학 때는 잠시 언론인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래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 미국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나운서가 되었죠.

Q 오래 전 어떤 대학시절을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이야기해주고 싶으신 추억이 있다면 부탁 드립니다.

저희 때는 사회적으로 암울하던 시기였어요. 한참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는데, 저는 학생운동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고, 그렇다고 공부에 집중할 만큼 뚝심이 있지도 못했어요. 여러 가지 회의와 고민 때문에 한곳에 투신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한번 평화로운 시절에 대학을 다녀서 공부라는 걸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해보고 싶기도 하고, 또 만약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나도 그 학생운동에 들어가서 사회를 바꾸는데 어떤 역할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여러분들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익혔으면 합니다. 안타까운 게 제자들한테 너희는 어떻게 이 대학에 왔니? 하고 물으면 대부분 ‘인내심’이라고 대답해요. 어떤 경쟁에 의해 상대평가를 받아서 위쪽 사람이 보다 나은 입시를 치르게 된 건 교육제도의 탓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더 깊은 공부를 위한 선별이 아니라, 아주 성실하게 내신 관리 잘하고 그런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다 보니 학생들이 다들 주눅이 들어 있는 느낌이에요. 저희 때는 뭔가 패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많이 사라진 느낌이랄까요? 그러나 어쨌든 그런 교육제도의 영향이 있더라도, 본인 스스로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활발하게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심도 갖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Q 취업난으로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참 많습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그리고 그 해결책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마 기계나 인터넷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줄은 것도 있겠고, 회사에서는 점점 더 효율성을 중요시 하니까 인력을 감소하고 일 잘하는 소수를 뽑아 그 사람의 마지막까지 뽑아내려는 면도 있을 테고, 또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지만 모두가 더 고급한 일을 찾으니 그런 에러 사항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이 너무 많아진 것도 문제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획기적인 생각의 전환을 해서 마이스터고 같은 학교가 많이 생기는 것도 좋다고 봐요. 공부를 많이 해서 깊이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대학을 가고, 그런 게 아닌 다른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굳이 대학을 가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봐요. 그래야 내가 대학까지 나와서 이런 일을 해야 돼? 하는 생각이 없어질 테고요. 물론 그 전에 12~18년 공교육만 받아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도록 제도를 바꾸고 편견을 버리는 것도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학업을 어디에서 마쳤든 삶의 질이 비슷해지는 게 좋은 사회가 아닐까 싶어요.

'화광동진 내 빛을 엷게 해서 먼지와 같이 할 수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Q.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의지가 되는 좌우명, 격언이 있다면?

뭐 평상시 좌우명 같은 걸 가지고 살진 않는데, 학생들하고 토론 이야기를 할 때 ‘화광동진(和光同塵)’라는 고사성어 이야기를 해요. 노자에 나오는 말인데, 화합할 화, 빛 광, 한가지 동, 먼지 진 자를 써서, ‘내 빛을 엷게 해서 먼지와 같이 할 수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에요. 사람들이 다 자기가 옳고 똑똑하다고 주장하면 굉장히 가르치려는 것 같고, 무조건 이기려 드는 것 같잖아요. 특히 어떤 토론이 벌어졌을 때 이 사람이 맞고 옳아도 상대를 너무 몰아붙이면 그 사람 편을 안 들고 싶어지는 경험 있지 않아요? 오히려 저 사람은 조금 부족한 것 같아도 저 사람 편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요. 저희 학생들이 토론 대회에 나가서 떨어진 적이 많아요. 그런데, 아무리 똑똑하고 토론을 잘할 수 있어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나를 낮출 수 있는 마음이 없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그 상대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말을 좋아하는데, 늘 좌우명처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꿈,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국민대학교 학생들에게 멘토로서 해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먼저 말해두지만, 저는 ‘멘토’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멘토라는 단어에는 내가 누군가의 멘토가 될만한 자격이 있다는 어떤 오만함이 있다고 봐요. 흑은 내가 멘토가 되고 싶다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마음이랄까요?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 자신만의 어떤 탁월함이 따로 있어요. 기존의 사회의 틀 안에서 자기가 이 정도 위치다라고 규정지을 수도 있지만 그게 자기 안에 있는 진정한 탁월함을 알고 있는 거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단지 사회가 보고 있는 거고 제도의 틀일 뿐이지. 자기만의 탁월함은 언제 어떤 순간에 나올지 몰라요. 또 자기는 알고 있어도 부모나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을 수도 있고요. 사회의 규정대로 자신을 규정하는 경우도 참 많죠.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탁월함을 끄집어 낼 수 있기를 바래요. 그 탁월함이 직업으로 연결돼 일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이고요.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한번 잘 찾아보고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Q. 끝으로 앞으로 준비하고 계신 작품이나, 쓰고 계신 책, 혹은 새로 계획하고 일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아까 말씀 드린 음악관련 책하고, 다른 책도 하나 준비 중에 있어요. 책에 대한 책인데, 요즘 그런 책이 참 많잖아요? 많은 분들이 잘 쓰셨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조금 다른 느낌으로 쓸 수 있을지 구상 중이에요. 그리고 아직 작품을 하고 있지만, 작품이 들어오는 대로 연극도 계속 하고 싶고요.

[유정아]
현) 작가, 연극배우, 중앙대학교 객원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연구위원
전) KBS 아나운서 , 서울대학교 ‘말하기’ 강사

저서
당신의 말이 당신을 말한다, 클래식의 사생활,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마주침

방송
KBS 9시 뉴스, 열린 음악회, 클래식 사전, 보도본부 24시, 멜로를 따라서
KBS FM 라디오 한낮의 음악실, 저녁의 클래식, 한밤의 실내악
EBS 도전탐구 길을 만든 사람들
예술의 전당 청소년 음악회, 가족음악축제

공연
그와 그녀의 목요일, 죽음에 이르는 병

인터뷰를 함께한 국민대학교 학생들 윤수현  (건축학과 0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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