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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을 에너지와 몰입으로 채워라 역사저널 그날 진행자 최원정 KBS 아나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방송국 아나운서들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몇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바른 말’, ‘곧음’, ‘단아함’, ‘깔끔함’ 등 뉴스와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의 이미지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형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아나운서들의 사명감과 ‘프로의식’에 의한 것이지, 아나운서 개개인의 개성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넘나들며 편안하고 깔끔한 진행으로 주목 받는 최원정 KBS 아나운서가 대표적인 경우다. 진행자로서 카메라 앞에 선 최 아나운서의 방송을 피상적으로 보면, 편견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만난 최 아나운서는 텔레비전에서 보는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인터뷰 촬영 도중 ‘사진을 함께 찍자’는 팬들의 요구에 흔쾌히 포즈를 취하는 따뜻한 배려에서부터, “어쩌다 보니 아나운서가 됐다”며 시종일관 유쾌함과 겸손함도 잃지 않았다. TV 밖 세상에서는 타인을 기분 좋게 하는 인간미로 스스로를 빛나게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방송 경험을 쌓았지만,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면 떨린다는 솔직함까지. 최 아나운서의 진면목은 사람 냄새 나는 인간미에 있다. 사사로운 감정은 숨기면서도, 다수가 느끼는 감정에는 함께 울고, 때로는 다독여주는 진행 방식은 최 아나운서의 일상과도 닮아 있다. 한국 교양 프로그램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최원정 아나운서를 만났다.

PART1.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다

Q 원래 꿈은 과학자, 외교관, 화가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셨던 편이셨나요?

어렸을 때는 다른 친구들처럼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꿈꾸는 평범한 아이였어요. 그러다가 더 성장해서 외교관을 장래희망으로 정하고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했죠. 그런데 외교관이 되려면 외무고시를 봐야 하잖아요. 현실적으로 접근을 해보니 오로지 시험 하나에 청춘을 다 바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외교관의 꿈은 접고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기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나운서 시험을 같이 준비하게 된 거죠. 사실은 기자 공채 시험을 보러 다니면서 남들 몰래 아나운서 시험도 본 거죠. 집에서조차 제가 아나운서가 된다고 하면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거든요. 저희 때도 언론사 공채 경쟁률이 굉장히 치열했었어요. 다른 언론사는 다 떨어지고 어렵게 KBS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하게 된 거죠.

Q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제 기억으로는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함께 여행을 다니시는 걸 좋아하셔서 저도 많은 곳을 다녔죠.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걸 좋아하고 얼핏 보면 산만해 보일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걸 좋아하고 얼핏 보면 산만해 보일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Q 지상파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되려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데, 당시에 어떻게 준비를 하셨나요?

지금은 아나운서 공채를 준비하기 위한 스피치 학원이 많은데, 당시에도 스피치 학원이 있기는 했는데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어요. 저는 KBS 홈페이지에 보면 당시 정세진 아나운서 등 유명 앵커들이 하는 뉴스를 ‘다시 보기’로 보고 따라 했었어요. 그리고 신문 기사를 보면서 ‘내가 기자라면 어떻게 썼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실기시험을 준비했었죠. 필기시험은 학교 언론고시 준비 모임에 가입해서 친구들과 함께 대비를 했어요.

Q 면접이나 카메라 테스트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있었다면.

면접이나 카메라 테스트는 본인이 아무리 기질이 있다고 생각해도 참 떨리는 순간이에요. 다른 전형에서 잘하다가도 한순간에 망칠 수도 있으니까요. 처음에 S방송국에서 면접을 보는데 솔직히 잘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원고를 읽어보라고 하는데 한 줄 이상 제대로 읽지를 못했죠. 당시 뉴스 앵커였던 심사관이 ‘지금 많이 떨고 있네요. 심호흡하고 다시 하자’며 기회를 또 주셨어요. 그런데 또 못 해서 시험에서 떨어졌던 기억이 나요. 그때 제가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제 약점을 부지런히 이겨 보려고 ‘사람들이 많아도 이겨낼 수 있다’며 스스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었어요. 여러 차례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맷집’ 같은 게 길러진 거 같아요. 사실 지금도 카메라 앞에 서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Q 외부에서는 보는 아나운서의 이미지와 실제 경험하는 아나운서의 일상은 조금 달랐을 것 같아요. 입사 초기 아나운서 생활은 어떠셨나요?

여자 아나운서들을 TV에서 보면 냉철하면서도 단아하고 바른 말만 하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잖아요.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많은 여학생들이 꿈꾸는 아나운서의 모습이기도 할 거예요. 그런데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아나운서실을 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다들 너무 평범하고 인간적이었죠. 입사 초기에는 거기서 오는 문화적 충격이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평소의 인간적인 모습이 방송에 묻어나는 선배들이 더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실망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내 일을 즐기는 순간이 찾아왔었죠.

Q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위기라는 단어가 떠오를 만큼 힘들었던 순간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그런 위기가 여러 차례 왔었어요. 사실 아나운서도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캐스팅을 당해야 되는 입장이에요. 내가 프로그램을 맡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방송국에 입사할 때만 해도 큰 포부를 가지고 아나운서만 되면 9시 뉴스 앵커가 될 줄 알고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그런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입사 초반에는 제가 ‘이런 업무를 하려고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배우로 치면 단역의 역할만 주어졌어요. 예를 들어, 중계차를 타거나 짧은 뉴스를 전하는 정도였죠. 사실 그런 기회가 실력을 다지는 기회가 되거든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저는 어느 순간 그 과정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던 것 같아요. 실망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내 일을 즐기는 순간이 찾아왔었죠.
또 하나는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였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육아에 신경을 쓸 시간이부족했죠. 게다가 아나운서의 일정이 매우 불규칙해요. 아침 방송을 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저녁 방송을 하면 아이가 잘 시간에도 일을 해야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가정을 내팽개치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는 회의감도 들었죠.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나가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PART2. ‘지식의 대중화’ 시대, 역사에 대한 갈망을 보다

Q 아나운서 입사 이후에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잖아요.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프로그램을 꼽아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나운서 생활하면서 저를 처음으로 알린 프로그램은 지금도 방송 중인 <도전 골든벨>이죠.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보니 <도전 골든벨> 세대가 많은데, 사실 그 프로그램이 제가 맡은 첫 프로그램이었거든요. 전국 곳곳의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돌발 상황을 통해 진행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명작 스캔들>이 아닐까 생각해요. 단독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진행자로서 소양을 갖추는데 큰 도움이 되었죠.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계기가 된 건 지금 맡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이에요. 많은 분들이 그 프로그램을 잘 보고 있다며 좋아해 주셔서 기쁘죠.

Q <역사저널 그날>을 처음 맡게 되었을 때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당연히 부담감이 굉장히 컸죠. <명작 스캔들>을 맡을 때도 그랬어요.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었으니까요. 처음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제작진에게 하나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부족한 것을 아니까 정말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죠. 매주 방송을 위해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지식이 쌓이더라고요. 또 전문적인 역사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질문을 하게 돼요. 누구나 자신의 부족한 점이 상황에 따라서는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역사 지식이 풍부했다면, 프로그램 분위기가 많이 딱딱하고 재미도 없었을 것 같아요.

누구나 자신의 부족한 점이 상황에 따라서는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역사저널 그날> 녹화 전에 준비나 확인해야 될 내용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로서 어떤 것들을 준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장보고’ 편을 준비한다면, 장보고와 관련된 자료들을 많이 찾아봐요. 관련 서적을 중심으로 한 사람의 일대기 정도는 완독을 하고 가는 편이죠. 녹화 2~3일 전부터 벼락치기 시험을 준비하듯이 진행자로서 역사 공부를 하고 있어요.

Q 2015년 11월에 <역사저널 그날>이 100회를 맞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 100회가 넘을 것으로 예상하셨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전에 방송했던 대다수의 역사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 형식밖에 없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진중하고 엄숙한 성격이 강했죠. 과연 ‘역사를 가지고 토크가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몇 번 하고 말겠지’라는 반응이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이 시작되니까 시청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의 대중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방송인들조차 몰랐던 거죠. 그래서 저희는 방송 모토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술자리에서 역사를 이야기하듯이 해보자’라고 정했어요. 처음에는 역사를 진지하게 좋아하시는 분들은 경박하고 천박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죠. 하지만 결국 대중적인 힘이 이 프로그램을 100회, 그 너머로 이끈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Q <역사저널 그날>을 진행하면서 역사관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부분이 있으신가요?

매회 방송을 녹화할 때마다 느끼는 점들이 많아요. 원래 방송에서 눈물을 잘 안 흘리는 편인데 안타까운 역사 이야기에 뜨겁게 눈물을 흘린 적도 있죠. 3~4시간 정도 녹화가 진행되는데 녹화가 끝나도 많은 여운이 많이 남아서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아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왜 그때 이런 선택을 했어야만 했지?’, ‘이런 아픔을 왜 겪어야 했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방송에 담을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을 많이 보게 되니까요. 녹화가 끝나도 자리를 옮겨서 그날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하죠. 그래서 당연히 역사관이 바뀔 수밖에 없어요, 교과서로 배우는 역사가 아니라, 백성들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된 거죠. 실록을 통해 조선왕조의 역사만 배웠는데 그 이면에 백성들 입장이 있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기 시작하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 참 많죠. 거창하게 말하면 ‘민중사관’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폭 넓은 시선이 생긴 것 같습니다.

Q 역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우리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는 혹은 다르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굉장히 민감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역사를 공부할 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시험에 구애받지 않고 역사가 궁금하다면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를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봐요. 역사에서 한 사람의 결정이라는 건 단편적인 게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이 봤을 때는 좋은 결정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그 사람의 결정 때문에 자기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요.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를 기술한 책들을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PART3.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불꽃같이

Q 좌우명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불꽃같이'라고 되어 있던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좌우명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스스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죠. 저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많이 피곤할 정도로요. ‘오늘은 피곤하니까 일과를 빨리 접자’고 생각하면 시간은 허비되기 쉬워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할 때까지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어떻게 하루가 가는 줄 모르게 돼요. 저는 일을 할 때도, 지식을 추구하는 것도, 노는 것도 뭔가 끝까지 해보는 성격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불꽃처럼 내일 죽어도 후회 없을 만큼 매 순간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만의 해소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사는 스타일 때문에 스스로도 힘든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방법인 것 같아요. 무엇인가를 열심히 몰입해서 하다 보면 스트레스마저 잊고 살 수 있거든요.

Q 나에게 20대 시절이 다시 돌아온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연애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웃음). 요즘은 3포 세대에 5포 세대, N포 세대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해보니 연애도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산교육인 거죠.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연인 때문에 아파도 보고 ‘밀당’도 해보고, 격렬하게 싸워도 봐야 사람과의 교감과 소통을 배울 수 있거든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연애를 너무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좀 아파요. 그래서 제가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더 열렬히 사랑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지내고 싶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어떤 경우든 단념하거나 세상을 달관하지 마시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어요.

Q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청춘들 너무 힘들 거예요. 섣불리 조언해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나쁘고 무서운 게 단념, 달관인 것 같아요. 어차피 ‘나는 구조적인 벽에 막혀서 아무것도 못해’라고 단념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든 시기가 인생의 자양분이 될 수 있거든요.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스스로 이겨내려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틈새라는 게 보여요.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남들과 달리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끊임없이 기웃기웃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가 필요하죠. 하루하루를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면서, 어떤 경우든 단념하거나 세상을 달관하지 마시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어요.

Q 앞으로 어떤 계획 가지고 계시고, 대중들에게 어떤 아나운서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저는 편안함과 공감을 추구하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제가 학자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을 진행하게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공감력’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이 방송을 통해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자 아나운서들은 40대 정도 되면 하향길에 접어든다고 생각해요. 점점하는 일이 줄어들고, 스스로도 후배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50대와 60대가 되어도 분명히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그것을 개척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교양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현실을 담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볍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현대인들을 위한 묵직한 메시지는 잃지 않는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경우든 단념하거나 세상을 달관하지 마시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어요.


최원정
소속
현 KBS 아나운서

2013~현재 KBS1 TV <역사저널 그날> 진행
2015~현재 KBS1 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DJ
2011~2012 KBS1 <명작 스캔들> 진행
2009~2011 KBS2 <여유만만> 진행
2003~2012 KBS2 <낭독의 발견> 진행
2000 KBS 26기 공채 아나운서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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