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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박의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세 가지 방법 위메프 해외사업부 TF 디렉터 박유진 실장 (경영학과 94학번) 위메프는 우리가 가격을 결정한다 (WE MAKE PRICE)는 카피를 내세우며 업계 최초로 가치 있는 상품을 경제적인 가격으로 소개하는 슈퍼딜 개념을 소셜커머스 업계에 확립했다. 이러한 카피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이가 바로 국민대학교 32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유진 실장이다.

스마트 기기의 등장으로 인류의 생활 방식은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변화는 여행을 가는 방식부터 길을 찾고, 소통 하고, 뉴스를 보는 방식, 음식을 주문하는 방식 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부분에서 동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소셜 커머스’이다. 우리나라 소셜 커머스의 부흥은 2010년 전후로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위메프와 티켓몬스터, 쿠팡이 불과 몇 개월 차를 두고 그 해에 모두 설립됐기 때문이다. 그중 위메프는 ‘우리가 가격을 결정한다’(WE MAKE PRICE)는 카피를 내세우며 업계 최초로 가치 있는 상품을 경제적인 가격으로 소개하는 ‘슈퍼딜’ 개념을 소셜커머스 업계에 확립했다. 이러한 카피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이가 바로 국민대학교 32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유진 실장이다.

대학 시절, 박유진 실장은 학생운동을 존경하고 동경하는 숱한 그 시절의 대열에서 ‘모자란 능력이지만 마음만은 절실한‘ 그냥 좀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회 일꾼이었다고 회상한다. 졸업 후 그의 선택은 의외로 제일기획이었는데, ‘도대체 삼성그룹은 왜 성공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는 단서를 달고 선택한 입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딱 5년 후, 그는 자신이 약속한 대로 제일기획 퇴사를 선택했다. (실은 일 못해서 잘린 거라고 수줍게 고백했지만 꼭 지키고 싶었던 약속이었다고 한다.) 이후 대학광고 전문회사인 유웨이중앙교육 광고팀장과 ㈜플로우 대표를 거치며 경쟁 입찰 수주 확률 80% 이상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기록했다. ‘PT박’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그 즈음이다. 2010년 그 노하우는 고스란히 위메프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위메프 마케팅 실장과 홍보실장으로 대중 앞에 나서던 그는 최근 해외사업부 TF 디렉터를 맡았다. 창업 멤버의 한 명으로서 중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 개척에 몸을 사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선택이었다. 그 첫 프로젝트가 한국무역협회에서 운영하는 ‘Kmall24’이다. 위메프가 전담 운영하고 있는 ‘Kmall24’는 한류로 인해 한국 제품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해외 소비자들이 관련 상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놓은 쇼핑몰로, ‘한국의 아마존’ 같은, 중소기업을 위한 국가대표 해외직판 사이트를 표방하고 있다. 지금도 그는 끊임없는 회의와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그를 새까만 후배인 경영학부 15학번 최보은, 유도연 학생과 함께 만났다. 모든 이야기에 앞서 그는 “나의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며 참고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 훗날 창업을 꿈꾸는 최보은 학생과 공인회계사 준비를 하는 유도연 학생에게 그가 전한 진지하면서도 냉정한 조언, 이제부터 공개한다.

제일기획에서 근무할 당시의 박유진 실장

Part.1 마케팅, 홍보, 그리고 창업

Q

실장님께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제일기획AE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진짜 부끄러운 얘깁니다. 솔직히 성과랄 것은 없죠. 인턴으로 입사해 5년 다닌 게 전부인데요. 저는 대학 7년 동안 길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어요. 그때는 잘못된 것을 반대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나 하나라도 그렇게 해서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제가 그렇게 모범적이고 바른 학생은 아니었지만(웃음), 아무도 안 하니 나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죠. 그렇게 대학시절 7년을 그래도 ‘학우들로부터 지지 받고 보호받는 참된 학생회 건설‘ 같은 대의에 헌신해야 한다고 우기면서 저 역시 졸업과 취업 문제로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취업을 준비할 때 정말이지 강렬한 욕망 하나가 있었어요. 그 당시는 말 그대로 ‘월드클래스 삼성그룹 도약’ 같은 말이 나부끼던 시절이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아! 저토록 말이 많은 삼성의 진짜 내막을 낱낱이 파헤쳐 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 결심과 더불어 어느 날 마케팅 원론 수업시간 중에 저희 과 이수동 교수님께서 느닷없이 “유진아 너는 마케팅을 좀 더 공부해서 꼭 광고회사를 가라”고 하셨던 말씀이 어떤 마법처럼 제가 제일기획을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Q

제일기획 5년 동안 어떤 깨달음, 혹은 공부를 하셨나요?

제가 입사할 당시에는 공채가 끝나고 특채로 겨우 삼성전자만을 전담할 미디어 운영 담당 인턴 한 명을 뽑는 상황이었는데, 100여명이 응시를 했어요. 그런데 3차 면접 끝에 덜컥 제가 선택 되니, ‘이건 운명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죠(웃음). 그런데 돌이켜 보면 거의 드라마 ‘미생’과 같은 상황이었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입사 당시 저는 컴퓨터 자판도 못 외웠던 상태였거든요. 대학시절 내내 주로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으니 그럴 만도 했죠. 하지만 공부는 열심히 했어요. 총학생회장 1년 간 ‘올 F’ 와 등록금 투쟁으로 인한 무기정학 징계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역대 총학생회장 중 가장 높은 학점으로 졸업했을 거예요. 공부하기 싫어 데모 한다는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했거든요. 어쨌든 입사해서 당장 엑셀과 워드를 쳐야 하는데, 각오는 했지만 너무 어렵더군요. 하지만 이상하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때는 ‘회사가 집이다’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밤새는 것을 일상으로 생각하며 새벽녘에는 회의실 책상을 침대 삼아 잠들곤 했어요. 다행히 제일기획에는 훌륭한 선배 분들이 만들어 놓은 한국 최고 수준의 광고 기획서들이 쌓여 있고 또 그것을 전사 공유하며 서로 공부해야 하는 사내 문화가 있었어요. 내로라하는 광고기획서들을 뜬눈으로 밤새워가며 똑같이 써보고 이리저리 따라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기획서가 어떤 것인지를 자연스레 깨달은 거죠. 마케팅을 좋아하던 제게 보물창고가 열린 셈이었어요. 그렇게 즐겁고 신나게 일하다 보니 배우는 것이 많았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바리 청년에게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정말 고마운 기회였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Q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일기획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위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나요?

저 같은 걸 누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아무도 관심 없지요(웃음). 굳이 설명하자면, 저는 학생회, 학생운동으로 나의 학창시절이 마무리 됐다면, 향후 시작되는 사회생활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공익적 활동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94학번인 저는 90년대 태동된 시민운동 세력의 막내였거든요. 환경운동연합이나 경제정의실천연합 같은 사회단체에 간사로 가는 것이 제 길이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는데요. 32대 총학생회를 마무리 하면서 어떤 선택이 공익적 크기를 극대화 할 것인지를 기준으로 두고 장래를 고민했고, 결국은 마케팅 전문가가 되어 더 큰 공익적 기여를 하고 싶다는 선택을 했어요. 1990년대 이후 이른바 ‘애국적 사회진출’이라는 대의로 먼저 방향을 잡은 선배님들의 영향도 컸고요.

Q

제일기획은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직장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이후 유웨이중앙교육 광고팀장으로 자리를 옮기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제일기획에 입사하며 사람들에게 ‘5년 후에 나올 거야’라고 했을 때, 비웃더군요. 그럴 만 한 것이 삼성이라는 대기업 독점과 재벌 세습에 대해 앞장서 반대를 외치던 녀석이 삼성 계열사를 들어간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5년 후 약속을 지키니까 그때야 저를 다시 보더군요. 말과 행동이 일치된 사람이라고(웃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잘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주제를 찾는 게 인생의 과제일 텐데요. 제게는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그 두 주제가 정말 잘하고 싶고 깊이 공부하고 싶은 일종의 인생 목표였어요. 유웨이중앙교육 광고팀장으로 5년 있으면서 약 60개 대학의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죠. 지금까지 경쟁 PT를 한 100 회 넘게 했는데 80 회 이상 이긴 걸 보면 재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웃음). 그러면서 부끄럽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PT박’, ‘브랜드 박’ 같은 별명도 듣게 되었어요. 사실 제가 잘했다기 보다 유웨이중앙교육이 갖고 있던 조건들이 워낙 탁월했던 것이고요. 누구라도 자기와 어울리는 주제는 더 몰입해서 할 수 있듯이 다행히 저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장르가 잘 맞았던 거 같아요.

Q

오늘 함께 온 학생들 역시 발표 노하우를 궁금해 하는데요.

PT 잘하는 법은 단순해요. 충분한 의도, 있는 그대로의 전략, 나만의 이야기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우선 첫 번째, ‘충분한 의도’라는 것은 마음 속으로 간절하게, 이 PT에서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 강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준비한 사람은 한눈에 티가 나요. 예를 들어 소개팅을 하는데 상대가 마음에 든 사람의 표정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표정은 딱 보면 알잖아요. 10개 팀이 공개입찰이나 창업경진대회에서 경쟁을 한다고 했을 때 되는 팀은 ‘이거 아니면 죽겠다’하며 눈에 불을 켜고 준비한 팀이에요. 마음가짐이 됐다면 그 다음은 바로 두 번째, ‘있는 그대로의 전략’이 필요해요. 이것은 듣는 청중이 PT를 하는 팀보다 훨씬 똑똑한 경우가 많다는 전제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 이 팀이 과장하네, 거짓말 하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승패는 결정돼요. 비단을 만드는 공장에서 기계에 바늘이 하나 튀어나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순식간에 100m의 비단이 쭉~ 찢어지겠죠? 초보자가 하는 실수는 뭔가 있어 보이 듯,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거예요. 하나가 틀리는 순간 그 뒤로 한 말은 심사자들에게 점점 더 거짓말처럼 들리게 되죠. PT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전략은 조금도 과장하거나 수식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차라리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이런 것이 부족하지만 하고 싶어 미치겠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요. 충분한 의도를 갖고 있는 그대로의 전략으로 PT를 하면 내용이 굉장히 담백해져요. 진정성을 갖게 되는 거죠.

Q

나만의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발표자가 무대 위로 올라올 때 청중들은 모드가 바뀌어요. ‘너만의 이야기는 무엇이냐, 그걸 들려줘’라는 눈빛이죠. 그런데 나와서 떠드는 이야기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훈화처럼 들리면 끝이에요. ‘가을 하늘은 높고,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같은 이야기를 PT 내내 듣는다고 생각해봐요. 사람들은 내가 스티븐 잡스나 빌 게이츠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바로 ‘나만의 이야기’에요.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도 내가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이 돼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PT는, 비약해서 말하자면 무가치해요. 대학생들이 PT를 하며 저지르는 제일 큰 실수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런저런 감동 콘텐츠를 모아 마치 자기 이야기인 양 포장하는 거죠. 과연 그런 PT에 누가 동의할까요?

소통의 중요성을 배웠던 총학생회장 시절

그의 대학생활은 1998년 총학생회 공약실천국장을 맡던 당시 만개하게 된다. 기성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대학문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그의 눈에 그저 유명 가수만을 초청해 치르는 대학 축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기획한 것은 학생들 스스로 준비하는 축제였다. 당시 그의 이야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집스레 ‘과사랑경연대회’라는 이름의 축제를 추진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기획한 축제 방식은 그가 졸업하고도 꽤 오랫동안 국민대학교의 정체성을 담은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Q

대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순간을 꼽으시겠어요?

1998년 30대 자주적 총학생회 공약실천국장 시절이죠. 그때 제 미션은 ‘축제를 바꿔보자’였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전교생이 다 모인 자리에서 ‘우리 과가 짱’이라고 자랑을 하는 거였어요. 우리들의 올림픽을 만들자는 거였죠. 처음에는 모두 시큰둥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한 달 동안 각 과의 학생회장을 모두 만나 설득하며 ‘과사랑경연대회’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어떻게 할지 강제하다시피 부탁 드렸어요. 예를 들어 ‘중문과는 황비홍 쇼를 하시면 어떠실까요’, ‘건축과는 헬멧 쓰고 벽돌쇼를 하시면 어떨까요’ , ‘회계과는 백만단위 숫자 암산쇼 같은 걸 하시면 빵 터질 겁니다’ 하며 읍소하고 부탁 드리는 식이었죠.

1998년 30대 자주적 총학생회 공약실천국장 시절, 박유진 실장은 1998년 국민대학교 축제를 ‘과사랑경연대회’로 기획하고 스스로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봤다.

북악대동제 축제 당일 사회자 마이크를 잡은 것 역시 그였다.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던 순간, 중문과 황비홍 쇼가 웅장한 음악과 함께 시작됐다. 사자 춤을 추며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중문과 학생들을 보며 학생들은 박장대소하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 뒤로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과마다 경쟁 심리가 작용하며, 준비를 하지 않고 방관하던 과에서도 급조해 공연을 준비하며 대동제 폐막식 축제는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그 순간 “아, 이게 정말 살아있는 대학문화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Q

2000년 당시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여러 가지 추억이 있을 듯 한데요.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면?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후 바로 손석희 선배님을 찾아갔어요. 학우들에게 커다란 선물 하나를 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죠. 제가 느낄 때 손석희 선배님은 정말이지 국민대학교 후배가 정말 뵙고 싶다고 시간을 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응하실 분이에요. 단 공식적인 인터뷰는 사절하시겠죠. 그걸 응하는 순간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맥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손석희 선배님이 택한 방법은 그래서 ‘아예 아무도 안 만난다, 그게 제일 공정하다’였어요. 그분은 저녁 약속을 일절 잡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세요. 그때 선배님이 한 명언이 생각나요. 제가 ‘좋은 학교가 아니라고 좌절해 있는 많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게 아니란 걸 잘 설명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좋은 대학이란 없다, 좋은 대학생이 있을 뿐이다’. 정말 멋진 말이지 않아요? 학교가 마음에 안 든다고 욕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내가 손석희 선배님 같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예요. 그런 학생이 100명 있으면 학교는 저절로 좋은 학교가 되죠. 저는 진심으로 우리 북악인 모두가 가슴 깊이 새길 진실이라고 확신해요.

Q

지난 대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으실 듯 해요.

같은 맥락이에요. 좋은 대학생이 되라는 거죠. 그럼 좋은 대학생이란 뭘까요? 전 용기를 낸 학생들이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용기는 뭘까요? 앞서 이야기한 PT의 노하우와 결부시켜 말하자면, 나만의 스토리가 뭔지, 나만의 길이 뭔지, 나는 뭐가 다른지를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에요. 한 걸음 더 들어가볼까요? 그런 용기를 통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뭘까요? 저는 공익적 가치를 늘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대학생이 전국의 클럽 22개를 섭렵했다고 칠까요?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클럽 수질보고서(?) 를 썼고, 그래서 일약 전국 대학생의 유흥 문화의 중흥을 이끌었다 쳐요. 아주 멋진 성취일 겁니다. 자기 스스로 발로 뛰어 만든 살아 있는 보고서니까요(웃음).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본다면 차라리 열혈 젊은이들의 밤 문화 고취보다는 마음과 달리 몸이 불편한 장애인 청년들의 ‘밤 문화 연대 활동 기획서’ 같은 도전이 훨씬 더 멋진 일이란 걸 깨닫게 될 거예요.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를 포함해 누구라도 그런 멋진 용기와 도전을 실제로 실천하기란 정말이지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어려울 때 그래도 가장 먼저 앞장서 온 것이 우리 시대 대학생들의 역사이고 의무라고 믿어요. 일제 치하 독립운동이나 광주 민주화 운동, 6·10 항쟁의 민주화 투쟁도 언제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던 청년 정신이 깃들어 있었어요. 그 의로운 청년들을 기대하는 것만큼 가치 있고 빛나는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우리 사회 전체가 경쟁사회 체제로 급속히 편입되면서 배금주의 또한 만연해 졌어요. 그런 현실이 슬프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 세대가 해야 할 과제는 ‘가능한 모든 역량을 공익적 가치가 있는 일에 집중하고 매달리는 것’이라고 봐요. 물론 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능력도 없으면서 말을 꺼내니 부끄러울 뿐이네요.

Part.2 후배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

Q

인터뷰에 동행한 유도연 학생은 회계사가 꿈이라고 합니다. 조언을 해 주신다면?

다시 ‘나만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요.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하고 있겠죠. 하지만 대학 4년간 회계사 준비만 했다면 슬픈 이야기가 돼요. 기업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굳이 당신을 왜 뽑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죠. 대학 4년을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회계사는 얼마든지 있어요. 회계사라는 목표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단순히 회계사가 되는 것만이 목표라면 아무런 감동이 없다는 거죠. 어떤 일이든 그걸 하면서 그 과정에서 충분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라는 것이 제 조언이에요. 이를테면, ‘나 혼자 공부해서 공인회계사 되는 게 대학생으로서 그리 멋진 일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유도연이 여는 30분 회계학교’를 만들고, 빈 강의실에서 전공 불문으로 회계에 대해 알고 싶은 학우들을 모아 강연을 했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빠지지 않고 1년간 강의를 했고, 그렇게 공부한 것이 특별했다’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채용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Q

최보은 학생은 창업이 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방송국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 막연히 꿈만 꾸고 있다고 하는데요.

창업하고 싶음 창업하면 돼요. 공부하고 싶으면 하면 되죠. 그런데 왜 어려움이 생기는지 아세요? 예를 들면, 창업하고 싶다면서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붓지 않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같이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불안감이에요. 물론 그 경험 역시 의미가 있어요. 양다리 걸치면 망한다는 교훈을 아는 거죠(웃음). 저 역시 돌이켜 보면 그랬던 것 같아요. 아돌프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해 다룬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보면 현상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알게 되요. 아돌프 심리학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몸이 아파 회사를 못 갔다고 할 때, 진실은 회사를 가기 싫은 그가 자신의 몸을 아프게 만들었다는 거죠. 사람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 한다는 거에요. 내가 부족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해요. 어떤 것이든 이유를 만들어 내죠.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창업을 해도 될까 말까인데, 보은 학생의 현실은 방송국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스스로 어떤 핑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에요. ‘나는 방송국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서 아직 창업 준비를 못하는 거야’ 혹은 ‘창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방송국 일도 이 정도 하고 있으면 잘하는 거야’라고 스스로 합리화 하고 있지 않나요?

Q

국민대학교 후배들뿐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막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나아갈 길을 두고 고민하는 대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건데, 저는 우리 모두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용기만한 단어가 없어요. 다만 제가 말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의 용기에요. 취업을 꿈꾸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토익점수가 중요하죠.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는 대열에 뛰어든 셈이에요. 나도 같이 뛰면 그나마 안심이 되죠. 불안감이 조금 줄어들 거에요. 그런데 아프리카 초원에 누 떼들이 달리는 것도 이와 비슷해요. 그들이 왜 뛰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앞의 누들이 이미 풀을 다 뜯어먹었기 때문이에요. 뒤에 누들은 먹을게 없죠. 그러면 앞의 무리를 밀어 내는 수밖에 없어요. 뒤에서 밀고 앞에는 부담이 되니까 어느 순간이 되면 이유도 모르고 우르르 뛰기 시작하는 거예요. 집단이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제어하기 힘들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래요. 땅에서 바라보면 그 땅 밖에 보이지 않아요. 제가 말하는 용기는 이러한 순간에 나무 위에 올라가서 넓은 초원이 어디 있는지 보라는 겁니다. 땅에서만 보면 토익을 준비해야 할거 같고, 우리학교는 별 볼 일 없어 보이고, 다른 기회나 방향도 보이지 않죠. 사실 제가 오늘 인터뷰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응한 것도, “우리 모두 용기를 내자“ 그런 부탁 아닌 부탁을 간곡히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나라도 그렇지 않다는 걸,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언제나 마음으로 애틋하게 그리운 우리 북악 후배 여러분. 우리 모두 진짜 용기를 냅시다. 우리 모두 청년이잖아요(웃음).

학생 참여 후기
뜻 깊었던 선배와의 만남

최보은(경영학부 15)
실무를 하고 계시는 선배님께서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유도연(경영학부 15)
멘토데이트라는 좋은 기회를 통해 박유진 선배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시면서 저희 각각의 진로에 응원과 조언을 해 주신 것에 많은 힘이 되었고요. 이번 인터뷰는 경영학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학우들이 읽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선배님처럼 용기를 가지고 제 진로를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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