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K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업계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일을 꼭 진행하신다고 들었는데, 헤어 디자이너의 트렌드 분석 또는 예상하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차홍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S/S, F/W 패션쇼처럼 저희도 시즌 6개월 전에 트렌드를 예측하고 출품하는 작업을 해요. 올해는 외국의 헤어 디자이너들과 중국 베이징에 모여 미팅을 하고 출품을 마쳤는데요. 예전에는 영국의 런던, 미국의 뉴욕 등 지역별로 특성이 있었는데 세계화가 진행 되면서 전 세계의 흐름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흐름의 맥락이 공유되거든요. 경제가 어려우면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말처럼 트렌드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 때문에 패션업계, 메이크업의 동향은 물론이거니와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인 부분이 어떻게 흐를지 모두 조사한 후에 트렌드를 예측해요.

uniK 단편적인 시각과 지식만으로는 트렌드를 읽고 현장에 반영하기에 무리가 있겠네요?
차홍 요즈음 모든 학문에서 통섭 혹은 융합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무엇 하나에 국한되어서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분야의 지식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야 좋은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헤어 디자이너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직업이라고 정의하곤 하죠. 그러나 아름다운 스타일을 완성하려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물론 상대방이 추구하는 패션, 삶의 방식 등 지향하는 스타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까다롭고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1 더하기 1이 2면 재미가 없잖아요. 복잡한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은 개인적으로 즐거운 과정이라고 생각해요(웃음).



uniK 매체 화보나 CF 촬영 건으로 출장이 잦아서 스케줄이 매우 바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트렌드 분석 관련하여 국제회의까지 참석하려면 힘들진 않으세요?
차홍 저에게는 일상부터 여가생활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제 일과 삶의 영감이 되는 자극제에요. 그래서인지 한 번도 직장에 출근하기 싫은 적이 없었어요. 일이 재미있으니까 매일 놀이를 하고 즐기는 기분이죠. 일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혹은 노후를 준비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등 다른 사람들이 하는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매일 좋아하는 일을 하러 나오니까요(웃음).

uniK 막상 원하던 직장에 가도 상상하던 모습과 달라서 후회하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헌데 매일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차홍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직업은 자기 가치를 구현하는 방법이자 사명감 같아요.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지만 신이 한 인간을 태어나게 했다면 삶이 존재하는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 아닐까요. 사람들이 각자 관심 두는 일이 몇 가지씩 있잖아요. 그 일을 통해 각자 소질에 어울리게 성장하는 동시에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각자의 소질은 분명 이유와 목적이 있겠죠. 이렇게 생각하면 절대 다른 사람의 실력과 본인의 실력을 비교하거나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본인한테 집중하면서 일을 즐길 수 있죠.

uniK 목적이 뚜렷하면 의지는 생기지만 어떻게 꿈을 이뤄야 할지 방법까지 뚜렷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차홍 20대 때는 힘든 줄 모르고 달렸는데 지금 돌아보니 힘든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럼에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생각의 방식 덕분이었어요. 굳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일 벌어질 일에 대해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만약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좋은 미래가 있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죠. 꿈이 있음에도 불행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고 먼저 결과부터 소유하려는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uniK 결과를 미리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노력하는데 동기부여를 주거나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차홍 물론 저도 20대 때 당연히 꿈을 꿨고 지금도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꿈을 꿀 때 ‘매출을 얼마까지 달성해야지.’ 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헤어디자이너가 돼야지.’ 이런 결과부터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만 바라보고 달리면 늘 자신이 모자란 것처럼 느껴지니까 불행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냥 삶의 과정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고 매 순간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온전히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스텝 생활 6년 중 한번은 크리스마스, 신정까지 쉬지 않고 연습해서 헤어디자이너 시험에 도전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시험에서 후배가 저보다 먼저 합격했죠(웃음). 그러나 후배의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기 후회하지 않았어요.

uniK 주변에 비슷한 환경에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고, 자신만 바라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원래 의지가 강한 편이신가요?
차홍 10대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의지가 강하기보다는 혼자 노는 시간이 많고 소극적인 아이였어요. 그러다 보니 혼자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돌아다니며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죠.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세상을 만났어요. 예를 들어, 제가 언제 영국 최초 여성 총리인 마가렛 대처 총리를 만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훌륭한 분들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영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죠. 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와 산문 모두 좋아했어요. 힘들 때는 윤동주의 <서시>를 외운다든지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곤 했어요. 왜냐하면 책을 보면 제가 상상할 수 없는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10대 때 책을 읽으면서 힘든 상황을 견딜 힘을 모았어요. 20대 때도 힘든 일이 많았지만 꾸준히 책을 읽으며 가치관을 정립한 것 같아요.

uniK 대학 강연에서 20대 학생들도 자주 만나실 텐데, 졸업 후 직업을 고르는 기준을 무엇이라고 조언해주세요?
차홍 일은 늘 배움의 연속이기 때문에 배우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고 발전하면서 행복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제가 아직 헤어 디자인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늘 배우는 중이죠. 이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꾸미고 주변을 가꾸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하지만 헤어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삼기까지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죠. 특히 저는 좋아하는 분야는 다양한데 특별히 못 하는 것도 혹은 유난히 잘하는 것도 없어서 남들보다 시행착오가 더 많았던 거든요(웃음).



uniK 어떤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마지막으로 헤어 디자이너라는 종착점을 찾으셨나요?
차홍 재능이라고 말하기엔 모자라지만 그림 그리기, 글 쓰기, 꽃을 좋아해서 관련된 여러 가지 경험을 시도해봤어요. 그때의 경험은 지금 매체에 칼럼 기재하려고 글을 쓸 때, 꽃을 활용해서 헤어 작품을 만들 때 외에 여러 면으로 도움이 돼요. 결국 시행착오는 절대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위한 과정이고 어떤 형태이든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한 번에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가는 건 정말 힘들잖아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경험하려면 다치고 방황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uniK 말씀하신 것처럼 목표를 위해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다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일도 벌어질 수 있는데 포기하지 않고 매번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차홍 저는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예쁘지도 않고 남들보다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없고, 몸도 약한 편이에요. 그리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경제적으로 지원해줄 분이 없어서 고시원에서 한 끼 식사 값까지 아껴가며 공부했었죠. 그런 환경 속에서 열등감을 극복할 방법은 노력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직장 동료가 놀러 갈 때도 강박관념처럼 혼자 남아 연습을 했어요. 그러나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어요. 꿈을 이루는 과정 중 하나겠지만, 20대 때 워낙 일에 집중하다 보니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어요. 물론 오해도 많이 받았죠. ‘아버지가 종교인이다.’ ‘엄청 독한 사람이다.’ 등등 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말들도 많이 들었어요. 게다가 늘 혼자 연습하고 일만 하니 독특하다는 얘기까지 들었죠.(웃음)

uniK 주변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1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도전을 거듭하셨습니다. 한 길을 꾸준히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차홍 일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같아요. 다른 사람을 꾸며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중고등학교 때 저는 민무늬 티셔츠만 입고 다녔거든요. 주변에서 그런 네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컨설팅 해주겠느냐며 반문했지만 나날이 관심을 두고 공부하니까 제 모습도 달라지고 발전하더라고요. 사실 정신은 건강했지만 몸이 약해서 마음만큼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웠어요. 더군다나 집안 경제상황도 좋지 않았지만 지금 발생하는 문제에 괴로워하기 보다 답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더 굳게 세웠어요. 지금도 항상 최선의 답을 내기 위해 고민해요.



uniK 사실 늘 웃으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셔서 힘든 과정이 있었다고 짐작하기 어려운데, 열등감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노력으로 극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차홍 지금은 보통 제 나이 친구들보다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지만 유년시절에는 늘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으니까 열등감이 많았나 봐요. 그런데 그 장애물 혹은 문제들을 혼자 뛰어넘고 해결하니 남들 보다 더 긍정적이고 삶을 거시적으로 보는 눈이 생긴 것 같아요. 제가 얼마나 긍정적인지 한 가지 일화가 있어요. 21살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스승님이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천재 헤어디자이너가 될 거야.” 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분이 좋아서 괜히 건넨 말 같거든요(웃음). 그런데 저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정말 천재가 될 것 같았어요. 물론 아직도 천재가 아니라서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만, 그런 칭찬과 격려 덕분에 큰 무대에 가서 도전해야겠다고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요. 한 번의 칭찬이 인생 전환의 기회가 된 거죠. 그래서 칭찬해주신 스승님께 정말 감사해요.

uniK 후배 양성과 사원 복지에 대단히 많은 신경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결핍을 경험하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할 수 있는데 왜 거꾸로 주위 사람들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차홍 제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비교하고 고민할 때 가장 불행했던 것 같아요. 무조건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질적인 행복이 아니라 마음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우리의 가치’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죠. 가족 중에 나만 행복하면 행복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처럼 저의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행복한 것이 제 행복의 기준 같아요. 메모하는 걸 좋아해서 일기장에 무엇을 할지 꿈이 무엇인지 적곤 하는데 제 꿈은 제가 태어남으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에요. 잔디밭에 꽃 한 송이를 심는다 해도 가치 있는 일로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요.

uniK 마지막으로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인 20대 시절 꼭 해보면 좋을 경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차홍 저는 꽃처럼 아름다운 20대를 일만 하며 보내서 추억이 많지 않아요. 소개팅도 한번 못해봤거든요(웃음). 그래서 제가 20대에게 좋은 경험을 추천한다면 훌륭한 분들의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꼭 외국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아름다운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추억을 남기면 좋을 것 같아요. 감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많은 추억을 만드세요. 시간이 지나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20대의 다양한 경험은 어떤 자리에 가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연애도 해보고 차여도 보고 무전여행도 가보고 여러 가지 경험에 모두 도전해 보세요.

[헤어디자이너 차홍]
방송 <Get it beauty>, <비커밍> 외 다수 출연
저서 <차홍의 셀프 동안 헤어법>, <파워풀 헤어 성형>
2011 서울종합예술학교 뷰티예술학부 초빙교수
차홍 아르더 원장
2007 로레알 컬러트로피 패션리더상
2007 로레알 컬러트로피 최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