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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 고용노동부 시민석 대변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87학번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꾸준히 개선돼 오고 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도 많다. 고용불안,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를 비롯해 각종 노동현안들이 그렇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고, 노동자와 기업, 정부 간 협상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정책을 제시하고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 고용노동부다. 그 중에서도 대변인의 역할은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막중하다. 2015년 2월 취임한 시민석 대변인은 공정성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노동자와 기업의 줄다리기에서 오래전부터 중재자 역할을 맡아왔다. 2009년 고용노동부 인적자원개발과장, 공무원노사관계과장을 거쳐 지난 2011년 노사협력 정책과장, 공공노사정책관 다시 광주지방고용노동청장 등을 거치며 다양한 노사관계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시 대변인에게 붙여진 별명은 ‘소통의 전문가’다. 그가 공직 생활 전반을 ‘노동 문제’에 천착한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그 자신이 한때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학업과 돈벌이를 병행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고 꿈을 키웠다. 이제 고용노동부 대변인이자 대학생 딸과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청년 세대를 볼 때면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앞선다. 각박한 현실에 직면한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청년 시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극복한 인생의 선배로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 봤다.

Q 최근 다양한 노동 관련 이슈 중에서 청년실업 문제 해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지금까지 우리 노동시장, 그 중에서도 청년들의 일자리와 직접적으로 관련 된 노동시장은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말부터 노사정위원회에서 많은 논의를 했고, 그러한 논의결과 2015년 9월 15일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졌죠. 대타협의 주요 내용은 근로기준법 기간제법, 파견제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노동개혁 5대 법안에 담겼습니다. 5대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데, 이법이 2015년 안에 통과가 돼야 합니다.(인터뷰 진행 2015년 12월) 그래야 일자리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청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 외에도 취약계층, 비정규직, 파견·기간제로 일하는 분들에게 도움 될 것들이 많죠. 고용노동부는 노동시장 개혁의 마지막 출구라고 생각되는 5대법이 신속히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현장에서는 노사가 상생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스템을 만들고, 이것이 실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죠.

Q 2015년 2월 고용노동부 대변인으로 취임하시기 전에도 노동, 노사관계와 관련된 업무를 줄 곧 맡아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변인님께서 처음 노사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국민대학교에서 공부하기 전에 현장에서 근로자생활을 한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도 더 노사관계가 민감하고 불안정한 시기였죠. 그때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안정, 근로자의 권익향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언젠가는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마음에 품고 공부했어요. 국민대학교에서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이후 공직생활에서 그 바람이 이뤄진 셈이죠.

대변인의 말은 간단한 인터뷰를 할 때도 고용노동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되니까요.

Q 대변인이라는 역할은 말 한 마디도 신중을 기해야 할 듯한데요. 개인적인 고충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입가가 살짝 부르튼 것 보이시죠(웃음). 노동개혁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죠. 그런 부분에서 마음고생이 적지 않아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오늘 아침에도 모 일간지에 제 이름이 나왔지만, 대변인의 말은 간단한 인터뷰를 할 때도 고용노동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되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남모를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 사실이고요(웃음).

Q 얼마 전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87학번이신 대변인님을 요즘 학생들에게 ‘그 시절의 주인공’으로서 소개하면 더 쉽게 이해를 할 듯한데요. 대변인님께서 기억하시는 그 시절 본인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응답하라 시리즈는 저도 모두 봤습니다. 주인공으로 나왔던 정은지 씨, 고아라 씨, 혜리 씨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딸 같은 배우들이죠. 특히 ‘응답하라 1988’은 제게 친숙한 석유 곤로, 어머니들 파마머리 같은 것들이 나와서 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사실은 81학번이었어요. 고교를 졸업하고 다른 대학교 공대를 다니다가 아버님이 큰일을 겪으시면서 학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었죠.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못하고 일을 하다가 스물여섯 살 되던 해 다시 학력고사를 보고 국민대학교에 입학한 겁니다. 늦은 나이에 87학번으로 입학해 어린 동생들과 친구처럼 때론 형처럼 교감하며 지냈기에 그 시대 젊은이들이 고뇌했던 부분을 많이 공감하고 있죠. 하지만 한편으로 제게 국민대학교 시절은 고갈됐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정신적으로도 무언가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은 시기였죠. 지금도 국민대 인근을 지나칠 때면 그 시절이 생각나요. 예전에 비해 참 많이 좋아졌더군요. 학교 앞을 지날 때면 참 고마운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Q 당시 대변인님 눈에 비친 국민대의 풍경은 어땠는지, 행정학과를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주신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앞서도 말했지만 국민대에 새롭게 입학하기 전에는 주야간 2교대 제조업 공장에서 일 했어요. 자연스럽게 노사관계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고민했고 행정학과를 선택했죠. 행정고시에 도전하게 된 것은 학교를 다니던 중에 법학과 강구철 교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부터예요. 하루는 교수님께서 제게 행정고시 공부를 해보면 어떠냐고 물으시더군요. 행정학과 학생이었지만, 법학과 강의도 열심히 들어서 절 눈여겨 보셨나봐요. 제 철칙이 강의 때는 맨 앞에 앉는 것이었거든요(웃음). 결국 강 교수님의 권유로 국민대 고시실에 입실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교수님의 지원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죠. 제 아내도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1년 선배인데, 강 교수님이 저희 결혼 때 주례도 봐주셨어요. 정말 제게는 영원한 은사님이시죠.

국민대 재학시절 시민석 대변인

Q 20대 후반의 나이에 행정학과 학생으로서 조바심도 있었을 듯합니다.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대망’이라는 일본 소설이었어요. 소설의 주인공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마지막 유언처럼 남긴 문구가 오래도록 저를 다잡아 줬죠.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로 시작하는 문장인데, 힘든 시기를 버틸 때면 그 부분을 암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결국 살아가는 것, 인생이라는 것은 무언가 목표가 있어야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 이렇게 힘들까’라고 고민하기 이전에 숙명처럼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죠.

Q 자녀들에게 대변인님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종종 해주시는 편인가요? 대학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대학교 4학년인 딸과 군대 다녀와서 대학교 2학년으로 복학한 아들이 있어요(웃음). 그래서 그런지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더 예사롭지 않게 보이죠. 아이들과는 종종 제 대학시절 이야기를 해요. 그때는 생활이 급급하다보니 동아리 활동 같은 것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길 때면 학교 아래 버스종점에 있는 순댓국집에서 동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죠. 그때는 대학생들이 돈이 없어 거의 깡소주를 마실 때인데, 간혹 회사원들이 안주를 시켜주기도 했어요. 그때 우리 테이블에 안주를 시켜주시던 분들 얼굴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죠.

청년 시절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마음에 품고 꿈을 향해 달렸다.

Q 어려운 상황 탓에 동아리 활동을 못했다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관심사나,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으셨을 듯한데요.

제 고향이 칠갑산이 있는 충남 청양인데, 아직도 첩첩산중인 곳으로 유명하죠. 친구들과 다녀온 기억이 나네요. 또 저도 어려웠지만 당시 어려운 학생들과 연락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했는데, 그 중 공장에 임시직이었던 한 친구는 공부를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도 했죠. 그런 친구들에게 연락이 올 때면 뿌듯함을 느껴요.

Q 젊은 시절 영향을 받은 롤모델이 있다면?

비트컴퓨터의 조현정 회장님이 떠오르네요. 우리나라 벤처 1세대이신데, 대학생 시절 비트컴퓨터를 창업하시고 지금도 후배 양성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해 오고 계시죠. 저보다 연배는 몇 년 위라고 알고 있어요. 그분 같이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은 정말이지 제가 다시 태어나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에요. 제 첫 번째 꿈이 공학도이기도 했으니까요. 여러 가지 환경적인 문제와 제약들로 인해 다른 진로를 택했고 여기까지 왔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엔지니어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Q 행정고시 36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재학 중에 합격하신 것인데, 힘든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으셨는지요?

처음 행정고시를 준비했을 때가 대학교 2학년인 1988년 말이었어요. 저는 그때까지도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했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버스에서 책을 보는 게 일상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공부를 해 4학년 말에 1차를 합격하고 졸업 직후 최종 합격 했어요. 조금 특별한 케이스였죠. 물론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순간마다 주변의 격려가 큰 힘이 됐어요. 특히 아내는 제가 2학년 때 만났는데, 저도 공고를 나와 일을 하며 대학을 다녔고 아내 역시 상고를 나와 대학에 늦게 온 케이스였어요. 서로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죠. 또 강구철 교수님 지원이 없었다면 역시 불가능 했을 거예요. 가진 것도 없고 내공도 없는 시민석이라는 사람에게 교수님은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용기를 심어주셨죠.

가진 것도 없고 내공도 없는 시민석이라는 사람에게 교수님은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용기를 심어주셨죠.

Q 공직 생활을 시작하셨을 당시의 포부가 남달랐을 듯한데요.

앞서 말했지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고용노동부를 지원한 것은 현장에서 근로자 생활을 한 경험 때문이에요.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노사관계 개선과 근로자의 권익향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20년 후쯤이면 노동부가 없어질 거라는 생각도 했죠. 지금쯤이면 노사관계의 문제가 모두 해결 돼 정부의 역할이 없을 거라 믿었거든요(웃음). 다른 나라에도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부처가 유지되는 경우가 드물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예상과 달리 아쉽지만 지금도 노사갈등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해결해야 할 것들도 많죠. 이제는 노사 간에 갈등을 극복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요. 모두가 노력해야하는 사안이죠.

Q 우리나라 노동환경은 끊임없이 개선, 보완돼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노사관계, 노동정책에 대한 여러 업무를 담당하시면서 직면하신 문제점도 적지 않았을 듯한데요?

제 취미 중 하나가 역사책을 읽는 것이에요. 역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해 왔죠. 물론 어느 때는 퇴보하는 순간도 있지만 길게 보면 앞으로 나가고 있어요. 노동 분야에서 노사관계와 제도는 20년 전하고 지금하고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 있었어요. 물론 개선하고 정비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죠. 이런 부분은 하루빨리 해결 해야죠. 노사관계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고 노동법은 헌법보다 개정하기 힘들다고도 하지만, 이제까지처럼 해결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지금의 갈등, 힘겨움도 결국은 몇 발 더 지나 되돌아 봤을 때 ‘이런 과정을 거쳤구나’하며 웃을 수 있는 시기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Q 노사 문제를 풀어가다 보면 서로 입장이 다른 사측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중재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으셨을 듯합니다. 노동정책을 담당하는 공직자로서 어떤 원칙이 있으셨나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늘 ‘문제’와 ‘갈등’이 있습니다. 문제는 올바로 인식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힘 모아 해결방법을 찾아야죠. 갈등은 또 다른 통합의 길이 될 수도, 더 큰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문제와 갈등의 선순환 순기능’인데요. 노동문제, 노사관계는 늘 갈등이 존재하는 영역 중에도 대표적인 경우라 생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는 3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노사 양측. 그리고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 번째가 공정성인 것 같아요. 노동부는 정부의 주요한 정책을 추진하는 부서잖아요. 공정하고 균형적 시각이 없다면 국가 운영에 합리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전문성이죠. 노사보다 어떤 현안에 대해 더 잘 알아야 설득, 중재, 조정이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심리학, 사회학도 노사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공정성과 함께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을 때 노사 역시 고용노동부의 중재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마지막이 일관된 원칙이에요. 마지막까지 노력을 다했음에도 조정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때 행정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원칙을 견고히 준수하는 것이죠. 10년 전과 지금의 원칙이 다르다면 누가 그것을 수용하겠어요. 공직자라면 일관된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년들이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제 아이들과 같죠.

Q 광주지방고용노동청장 재직 시 임금체계, 근로시간 개편 지원단을 구성해 노무관리 취약 사업장 등에 대한 컨설팅과 임금체계 개편안이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향후 꼭 이뤄내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누군가 저보고 ‘가장 하고 싶은 한 가지’를 꼽으라면 저는 임금체계 개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임금체계 개편이라고 하면 근로자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한번 전체를 놓고 생각해 봤으면 해요. 1960년대는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었고 공장에서 일손이 부족했어요. 아무나 일할 수 있는 시절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세계적으로 저성장,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이에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경제성장률 3% 넘는 게 힘들죠. 이런 상황에서는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연공급이 가능하지 않아요. 기업이 계속 성장하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게 문제죠. 예컨대 과거에는 10원 받던 사람이 세월이 흐르면 30원을 받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 기업은 30원으로 10원을 받는 사람 3명을 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죠. 외국의 경우 초임자와 20~30년 된 근로자간 임금 격차가 우리나라처럼 3배 이상 차이나는 곳은 없어요. 임금 격차가 이렇게 차이가 나니, 기업은 편법, 비정규직을 쓰게 되는 거고요. 물론 임금도 적정 수준이어야 하지만, 중요한 명제는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구성해야한다는 것이에요. 이대로 간다면 과거 세대가 누렸던 것을 지금 세대는 누릴 수 없을지 몰라요. 이제는 국민들이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고민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역시 청년고용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Q 대변인님의 청년 시절과 요즘 젊은 세대들이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많을 듯합니다. 대변인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요즘 학생들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청년들이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제 아이들과 같죠. 제 젊은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학생들이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기업에 원서를 넣으면 취직이 됐죠. 그런데 지금은 많이 어려워요. 취업준비생들의 스펙이 단군 이래 최고라고 하는 상황에서 취업난이 이어지는 점에 대해 첫 번째는 미안하다는 생각을 해요. 두 번째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고민스럽고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너무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니까요. 그래서 정부에서는 노동개혁 5대 입법, 노동시장 개혁도 하는 것이고요. 이것은 단적으로 청년을 위한 법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우리 때도 어려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절대적으로 현재 청년들이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청년들에게는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노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공이 각자 다르겠지만, 틈틈이 인문학, 철학,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물론 당장 취업에 도움은 안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인생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거든요. 일본에서는 청년들을 달관세대라고 하는데, 득도해서 달관이 아니라 포기한 달관이라는 게 문제예요. 우리나라 청년들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하려고 하는, 벽을 뚫고 나가려고 하는 의지가 일본 청년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하다고 봐요. 그 부분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Q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신다면?

제가 넣어 다니는 문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예요. ‘참 힘들겠구나’ 싶은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어요. 현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파하고 헤쳐 나가려 노력하는 거죠.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정신이 아닌가 싶어요.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후배들 역시도 모두가 가슴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방을 만들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또 저를 비롯한 기성세대 역시 우리 청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 우리 기성세대의 역사적 소명이자 책무거든요. 청년, 그리고 후배님들 절대 포기하지 말고 힘내길 바랍니다.

시민석
소속
고용노동부(대변인)
학력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87학번
경력
2015.02~ 고용노동부 대변인
2013.05~2015.02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청장
2012.02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 공공노사정책관
2011.02 고용노동부 노사정책실 노사협력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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