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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인사이트 이승윤을 통해 바라본 팬덤 문화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서연주 교수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 왕이 부릴 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까
-이승윤 <무명성 지구인> 중

<싱어게인>에는 ‘슈퍼어게인’이 있다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이 화제다. 직접 그린 유기견을 위한 에코백 패키지가 5분 만에 완판되고 별다른 홍보 없이 올린 이승윤 관련 콘텐츠도 유통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대박이다. 소위 뜨면 한다는 광고도 몇 편 찍었다. 10년간 무명가수였던 그가 라이징스타가 된 것이다. 이승윤은 <싱어게인>에서 경연 매회 독특한 곡 해석과 매력적인 음색, 재치 있는 언변으로 화제가 되었고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윤은 인터뷰에서 무명가수전이란 부제가 경쟁을 피해 방구석 음악인이었던 자신에게 용기를 내게 했다고 술회했다. ‘기회가 필요한, 아직도 꿈꾸는 당신을 위한 한 번 더 오디션’이란 <싱어게인>의 리부팅 포맷은 그간의 음악 경연프로그램들과 분명 차별점이 있다.
본디 경연프로그램은 경쟁을 주요 플롯으로 두고 서사를 배치하기 마련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만연은 승자만이 인정받고, 모든 것을 경쟁 체제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모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극적인 연출을 위한 악마의 편집과 투표 조작으로 ‘공정성’을 건드려 공분을 샀다. K팝 열풍에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돌 지망생들을 상품화하려는 의도로 벌어진 무리한 결과였다.
2020년 트롯 신드롬을 일으킨 트롯 경연프로그램은 중장년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볼거리를 잘 버무린 쇼였다. 연령대와 경력이 다양한 출연자들의 개인기를 전면에 배치하여 볼거리를 풍성하게 하였고 출연자의 가족사를 적극 수용하여 스토리텔링화하였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나 가족사로 힘들어하는 출연자들의 서사는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끌어내는 데 적절했다. 경연 참가자들의 특징과 개성을 별명 부르기와 삼촌, 아저씨 같은 가족구도로 부여해 친밀감과 호감도를 높였다. 가족주의를 내재화한 스토리텔링은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시청자 이상의 정서적 이입을 자아냈고 이는 또 다른 스타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트롯 광풍으로 참신한 창작보다는 비슷비슷한 포맷의 트롯 프로그램들이 만연하고 있어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들도 높아지고 있다.

▲ 싱어게인 TOP10 콘서트에도 팬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싱어게인>에는 ‘슈퍼어게인’이 있다. 심사위원이라기보다는 같은 뮤지션의 입장에서 무명가수를 응원하는 슈퍼어게인(8명의 심사위원이 각각 탈락자 한 명을 구제할 수 있는 권한)이란 장치는 이 프로그램의 미덕이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그렇게 구제된 29호가 결국 준우승을 하였다) <싱어게인>은 이미 데뷔했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무대 진출의 기회가 적었던 무명가수의 고단한 여정을 영웅 서사화하는 연출을 자제하였다. 출연자들에 익명성을 부여하여 이름 대신 30호, 63호, 29호 등 번호로 지칭하였다. 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하여 탈락자가 되었을 때 이름과 자기 이야기를 밝힐 기회를 주었다. 선입견보다는 음악적 역량에 집중하게 한 시도였다. 경연보다는 공연에 방점을 두고 출연자에 대한 존중, 실수에 대한 아량 등을 담백하게 보여준 새로움이 있었다. <싱어게인>은 자신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혐생을 견뎌낸 것에 연민의 시선을 두지 않기에 더 큰 환기 효과가 있다. 우리 대부분은 누구나 무명의 삶을 살고 있다. 그 무명의 30호와 63호가 만나 서로의 장점을 끌어올릴 수 있는 팀워크의 힘, 혼자일 때보다 우리가 되어 시너지를 일으키는 공동체의 면모가 음악적 감동을 높였다. 이는 팬데믹으로 우리가 잠시 놓쳤던 정서에 대한 복기이자 무명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모두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

취향의 공동체, 팬덤

이제 덕질이라는 개념은 골방에 틀어박힌 폐쇄적이고 부적응적 이미지보다는 한 분야에 대해 선호가 확실한 취향을 지닌 매력으로까지 어필되고 있다.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상의 무미건조함을 깰 수 있는 좋은 동력이 될 수 있다. 덕후 활동이 몰입 수준을 증가시켜 부정적 정서를 완화하고 긍정 정서를 고양하는 기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폐쇄적인 팬데믹 시대에 덕질이 코로나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한 힌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덕질의 대상은 다양하다. 연예인, 유튜버, 정치인뿐만 아니라 게임, 캐릭터, 역사 혹은 카페, 전자기기에도 팬덤은 존재한다. 이 팬덤들은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취향의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가서는 사회적 참여를 하기도 한다.(한 예로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여 선한 영향력을 펼치기도 한다) 사적 감성이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는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덕질 대상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문화상품의 소비는 팬덤 문화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가수의 경우 공식적으로 생산되는 음반이나 음원 스트리밍 등의 서비스 외에 홍보, 굿즈에도 성원이 이어진다. 팬들은 ‘짤’을 만들고 스타 영상 중 사람들이 빠져들 만한 ‘입덕 포인트’를 발췌해(팬 아트화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에 올려 다른 이들의 ‘입덕’을 돕는다. 이런 충성스러운 소비자층의 전폭적 지지는 내 가수 신곡이 나왔을 때 숨스(차트 상위권을 위해 숨 쉬듯 스트리밍)를 하고 연말 시상식 인기투표에 조직적으로 총공세를 펼치는 것에 집결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K팝 팬덤 문화다.

▲ 팬덤이 주도한 이승윤의 신곡 홍보 랩핑버스

그중에서도 한국 팬들의 투표 능력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팬덤의 힘은 소비 주체이자 창조적 유희의 주관으로 규모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취향의 공동체로 집결된다. 단, 프로 덕질러라면 짝사랑은 금지이다. 팬심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개인신상 털기도 금지. 스타 외모나 주변에 대한 참견질도 금물. 팬은 스타가 본업에 집중하게끔 도와야 하고 올콘(모든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해야만 가능)하는 정성도 불사해야 한다. 콘서트 후기나 방송영상물을 보고 댓글을 달되 팬이 아닌 이들이 보고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선에서 세련되게 무한 사랑을 피력하는 것이 팬심의 매너이다.
<싱어게인> 출연자들 역시 팬클럽이 생겼다. 내 최애에게 투표를 했던 관심이 이제 팬덤으로 확장되었다. 내 가수의 무명시절 노래를 찾아 듣고 그 세계관에 빠져들고 신곡 홍보를 위해 기꺼이 자발적 모금에 동참한다. 모인 총알로 홍보 전광판을 걸고 랩핑버스를 운행하며 그 목격담을 나누는 것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씻는다. 빡빡한 현실 속 개인의 자유를 잃는 상황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자신의 시간을 찾아 채우고 또 그 속에서 성찰을 찾아내야겠다는 것이 어쩌면 덕질의 철학이 아닐까.

장르가 30호

우리 대부분은 경계에 서 있다. 여러 가지의 부캐로 변검하며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 “제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많은 걸 오히려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라고 한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발언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그의 무대가 단단한 고민 끝에서 비롯된 자기표현이었음을 의미한다. <싱어게인> 1라운드 후 심사위원이 장르가 뭐냐는 질문에 이승윤은 “30호입니다”라 답했다. ‘장르가 30호’는 유행어가 되었다. 그 자체를 장르라고,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라고 성큼 대답하는 이승윤의 태도는 눈길을 끌었다. 자신이 만든 틀에 매이지 않겠다는 의도로 하나의 퀘스트처럼 오디션의 단계 단계를 밟아갔던 그는 매회 무대에서 타인에게 채점 당하기보다는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소개했다.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한 선곡보다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우리에게 와닿았다.
심사위원에게 자신을 하나의 스타일이라고 언명하는 이승윤의 태도는 어쩐지 펭수와 닮았다. 특히 MZ세대에게 각광받는 펭수는 대상이 누구든 자기 할 말을 다하고 자기 할 일에 충실하다. 그 자존감 높은 유쾌함이 퍽퍽한 일상에 스미는 쾌감이 진했기에 우리는 펭수에 매료되었다.

▲ 이승윤은 신곡 들려주고 싶었던을 발표하며 “이름보다 노래가 앞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 최상현

평생 음악을 하여 삼시 세끼는 먹고 싶다며 월세 걱정을 하던 이승윤의 패기는 꿈을 버리고 라떼질을 견뎌야 하는 혐생에 대리만족을 자아낸다. 그는 무명시절 냈던 음원들이 미흡한 장비로 아쉬운 품질이었다고 변명했었다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1년에 200회, 300회씩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어떤 천대에도 꿋꿋이 노래했던 그의 열정은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끊임없이 소환되어 감동을 준다. 자신의 음악이 누구에게나 통하지 않겠지만 필요한 시기에 누군가에게 닿기를 소망하는 뮤지션 이승윤은 많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경연 무대에서 상대 팀이 탈락한 것에 마음 아파 눈물을 흘리던 그가 쓴 노래 가사들은 은유적인 시어들로 가득하다.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구겨진 하루를>), “숨고 싶을 땐 다락이 되어줄 거야 죽고 싶을 땐 나락이 되어줄 거야”(<달이 참 예쁘다고>), “이름 없는 생물의 종만 천만 개체라는 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무명성 지구인>) 사색적인 성찰로 지금 이대로의 무명씨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설파하는 그의 가사는 상당히 실존주의적이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는 <들려주고 싶었던> 음원을 내면서 과거 함께했던 친구들과 신곡 활동을 같이하고 있다. 상상만 해왔던 녹음 환경에 그와 친구들은 몇 번이나 감회에 젖어 울었다고 한다. “내 낡은 하루들과 내 낡은 바람들과 내 낡은 이야기를 너와 새롭게 쓰고 싶어”(<새롭게 쓰고 싶어>)라 노래 부른 그는 이제 들려주고 싶었던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갓 유명해진 가수가 되었다. 그가 자신의 바람처럼 멀리 가는 음악으로 살아남기를,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토닥토닥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애매한 사람들이 당당히 설 수 있는 무대가 활짝 펼쳐지기를 바라는 염원도 더불어.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서연주 교수 서연주 교수는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글쓰기, 한국문학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교양교과 Best Teacher’를 수상하였다. 최근에는 대중서사, 대중문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징후들을 탐색하는 데 흥미를 느끼고 있다. N포 세대의 감정 풍속도, TV 드라마의 성 담론 변화 연구, 결혼이주여성 스토리텔링 양상과 ‘이주어머니’ 형상화 방안 모색 등 다수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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