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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인사이트 사회적,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클래시 페이크 국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광고홍보학전공 이세진 교수

오늘날 소비자들의 구매행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가치소비다. 가치소비 성향은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제품에는 과감히 지출하고, 지향하는 가치의 수준이 낮은 제품에는 가격 등 제품의 속성을 면밀히 따지면서 지출하는 경향이다. 경제적 가치에 근거한 합리적 소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소비자들이 자신이 지닌 자원 안에서 최대한의 만족을 얻으면서 자기의 개성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가치지향적이며, 제한된 합리성에 근거한 소비 성향이다.
가치소비는 X세대 소비자(1970년대 생)의 성향으로 처음 등장했다. X세대의 가치소비는 개인의 취향을 중요시하는 소비 경향으로, 자신이 중요시하는 품목에는 지출을 아끼지 않지만, 그렇지않은 부분에서는 소비를 축소하는 품목 간 불균형 소비를 의미했다. 즉, X세대의 가치 소비가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소비였다면, 최근에는 ‘가치’의 범위가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되고 있다. 현재 소비시장을 주도하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단순히 개인을 위한 소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가치소비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MZ세대는 과거의 소비자보다 친환경과 동물복지 등을 중요시하며, 이러한 가치들은 소비활동에도 드러난다.

▲ 대체육은 환경오염 문제와 동물 윤리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클래시 페이크(Classy Fake)란 ‘고급의, 세련된’이라는 뜻의 classy와 ‘가짜의’라는 뜻의 fake의 합성어로 진짜를 압도할 만큼 멋진 가짜 상품이나, 진짜보다 의미 있는 가짜 상품을 소비하는 추세를 말한다. 클래시 페이크는 가짜를 소비하지만, 더 윤리적이고 사회적 가치를 포함한다는 측면에서 ‘가짜’보다 멋지고 가치 있는 ‘착한소비’다. 예를 들어, 페이크 퍼나 인조가죽으로 만든 옷,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고기나 계란 등 대체재를 소비함으로써 동물보호에 대한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가능해졌다. 클래시 페이크는 가짜지만 진짜보다 멋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회적, 윤리적 가치만을 내세운다면 가짜 상품은 여전히 진짜보다는 질이 낮은 모조품에 그치겠지만, 생산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대체재는 진짜보다 더 나은, 더 멋진 상품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미래의 식량 부족에 대한 대비와 축산업이 발생시키는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대체 음식의 개발은 이제 ‘푸드테크’라는 하나의 산업 분야로 성장하고 있다.
제품의 브랜드적 가치에서 보면, 가짜와 진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제품과 관련된 사회적, 윤리적 가치의 차원에서 보면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무의미하며, 오히려 가치의 ‘진정성’이 중요 기준이 된다. 진짜보다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이며, 지속가능성이 있고, 진정성을 지닌 제품이라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소비자들은 선호할 것이다.

▲ 구찌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페이크 퍼를 두른 모델 명품 브랜드 구찌는 2018년 여름 컬렉션부터 동물 털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패션업계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며 착취한 털이나 가죽 대신 합성 섬유나 3D 프린터로 만든 페이크 퍼나 인조가죽을 이용해 옷을 만들고 있다. 아르마니, 구찌, 지미추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모피 생산 중단을 선언하며 동물보호 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며, 구찌는 2017년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퍼 프리(Fur Free) 선언 이후 2018년 초부터 동물 털 사용을 완전히 중단했다. 페이크 퍼와 인조가죽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친환경 소비를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책임 있는 기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는 버려진 플라스틱병으로 양털을 모사해 플리스 원단으로 사용하고, 친환경 원단을 활용해 재활용 합성 보온재를 만들며, 원단에 폐그물을 재활용하는 등 친환경을 내세운 업사이클링 의류로 친환경 브랜드로서의 지속가능성을 표방한다. 클래시 페이크로서의 비건 식품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채식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환경보호와 동물보호에 대한 신념을 담고 있다. 대체 육류는 도축으로 인한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동물에게서 단백질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물과 토지를 아끼며, 축산업에서 방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등 환경과 동물보호에 대한 가치를 내세우며, 동시에 건강과 미각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식자재로 평가되고 있다. 대체 육류뿐 아니라 식물성 달걀인 인공 달걀은 비위생적인 공장식 양계장에서 생산되는 달걀에 대한 대체재로 발명되었다.
이처럼 진짜 대신 가짜를 선택하는 소비자를 페이크슈머라고 한다. 페이크슈머는 ‘fake’와 ‘consumer’를 합친 단어다. 페이크슈머의 소비는 대체재와 가상현실로 나눌 수 있다. 페이크슈머는 고가 제품과 비슷한 가짜 상품을 소비하거나, 진짜가 아닌 가상의 경험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페이크슈머는 현실적으로 ‘진짜’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유사한 가짜를 소비함으로써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누리고자 한다.
클래시 페이크는 가짜를 소비한다는 차원에서는 페이크슈머와 같지만, 페이크슈머가 가격 대비 성능, 즉 가성비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클래시 페이크는 가짜의 사회적, 윤리적 가치에 초점을 둔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페이크슈머의 특성이 고가의 제품에 투영된 것이 클래시 페이크이기도 하다.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20대가 페이크슈머인 경우가 많은데, 보다 연령대가 높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비자는 가성비를 찾는 페이크슈머와는 구별되는 클래시 페이크를 지향한다.

클래시 페이크가 등장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소비의 주축인 MZ세대는 환경과 동물보호 등 사회적, 윤리적 가치를 중요시하며,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많다. 소비를 피할 수는 없다면, 미래를 생각하는 소비를 하고자 하며, 나아가 이러한 책임을 기업에게도 요구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비가 사회적 가치의 소비로 확대되는 과정은 SNS를 통해 그 파급력이 더욱 커지고 빨라지고 있다.
또한, 가짜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가짜 속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키치문화의 영향도 있다. 명품 브랜드의 모조품, 소위 말하는 짝퉁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이전에도 많았다. 이전의 소비자들은 고가품에 대한 소유 욕망의 대리만족을 위해 짝퉁을 찾았다면, 최근 소비자들은 가짜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는다. 진짜를 당당하게 따라 하는 데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짜릿함을 느끼기도 한다. 진짜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비틀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일명 B급 문화의 ‘키치’다. 가짜 제품임을 알면서도 재미나 편리함을 이유로 구매를 하고, 판매 업체들도 오히려 가짜임을 드러내 구매를 유도한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디젤(DIESEL)이 DEISEL이라는 이름의 모조품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짝퉁 팝업 스토어를 한정 기간 오픈한 사례는 가짜에 대한 인식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생산기술의 발달로 브랜드 간 품질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는 인식은 대체재에 대한 선호를 증가시키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의 감소는 가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감소시켰다.

▲ 클래시 페이크는 진짜를 뛰어넘는 가짜, 착한 소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클래시 페이크는 정말 착한 소비일까? 소비는 자기표현 또는 가치의 표명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클래시 페이크는 가치소비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또 다른 구매 포인트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품에 사회적, 윤리적, 미래지향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소비를 촉진시킨다. 혹자는 클래시 페이크를 환경오염, 동물학대 등 오리지널리티가 감추고 있는 제품의 불편한 진실들을 겉으로 드러낸 착한 소비라고 하지만, 클래시 페이크는 제품 마케팅이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감추고 있는 제품 생산과 판매의 전략이기도 하다.
과거 기업들의 친환경 경영을 앞세운 그린마케팅은 그린워싱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그린워싱은 기업이 상품의 친환경적 속성만을 과장하거나 친환경 이미지만으로 경제적 이익을 보는 경우로, 근본적 개선 없이 이미지만 근사하게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행위다. 예를 들어, 캡슐 커피를 생산하는 기업이 알루미늄을 철저히 회수하여 재생 시 에너지를 절약할 것이라 했지만, 한편으론 친환경적이지 않은 캡슐 커피 시장을 이끌며, 빈 알루미늄 캡슐 쓰레기만 매년 최소 8천 톤을 배출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일부의 친환경적인 특징에만 초점을 맞추어, 환경을 파괴하는 다른 부분은 숨기거나,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광고 등의 마케팅 활동으로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기업들은 결국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그린워싱처럼 클래시 페이크도 강조되는 주요 가치에 가려진 또 다른 비윤리적인 측면을 포함할 위험성이 있다.

▲ 캡슐 커피의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으나 캡슐 용기를 무료로 수거해 재활용하는 회사는 적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시 페이크는 여전히 사회적, 윤리적 가치를 내포한 소비의 선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클래시 페이크는 소비활동을 통해서 소비자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감하고, 참여하게끔 만든다. 또 사회적 가치와 윤리가 반영된 소비행동은 기업을 압박하여 사회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게 한다. 소비는 가장 일상적인 삶의 일부이기에 소비자들은 일상을 살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의미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활동들이 갖는 일상생활에서의 파급력 또한 크다.
클래시 페이크는 환경보호와 동물복지의 가치를 표방하며, 인간의 탐욕으로 발생한 지구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비자 운동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이왕 소비해야 한다면, 가치 있는 착한 소비활동을 하려는 소비자들에게 진짜를 능가하는 가짜의 소비는 오히려 사회적 가치와 윤리적 신념을 지닌 소비로 인식된다. 단순히 진짜를 모방하는 가짜는 소비자에게 외면받겠지만, 사회적, 윤리적 소비에 대한 진정성을 지닌 제품은 진짜보다 더욱 가치 있는 제품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국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광고홍보학전공 이세진 교수 이세진 교수는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소비자행동>, <광고조사방법론>, <광고데이터분석>, <광고이론>, <광고전략>, <광고캠페인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소에서 일했으며, 현재 주요 연구 분야는 다양한 매체환경에서의 광고효과와 소비자행동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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