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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서를 잇는21세기 실크로드의 중심 카자흐스탄동 서를 잇는21세기 실크로드의 중심 카자흐스탄나는 카자흐스탄에 머물며 다른 언어와 사고를 가진 친구들을 통해 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고, 내가 세운 목표들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단언컨대 나는 이 세 가지 목표를 다 이뤘다고 확신한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해외로 나가 자신의 능력과 사고를 확장하기를 바란다.

내 전공은 러시아학이다. 러시아학은 러시아 및 CIS(1991년까지 소련 연방의 일원이었던 독립국가들)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다양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분야이다. 이러한 전공의 특수성 때문에 나는 입학할 때부터 막연하게 러시아로 교환학생을 다녀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교환학생 원서를 제출할 시기가 되자 내 스스로 왜 러시아를 가야하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언어를 배우기 위해 러시아로 가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국제교육원에서 배포한 소책자를 읽어보게 되었고 한 대학이 눈에 들어왔다. 이 대학은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며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이 다닌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미국식 교육을 도입한 카자흐스탄의 키맵(KIMEP)대학교를 그렇게 알게 되었다.

키맵대학교

Part.1 교환학생 최초로 학생회 멤버가 되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카자흐스탄에 대해 생소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배들이나 교수님들로부터 키맵대학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키맵대학교에 대한 많은 블로그가 개설되어 있었다. 직접 교환학생을 다녀온 학생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였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현지 키맵대학교의 ‘International Office’ 직원들에게 연락을 취하면 친절한 답변을 받을 수 있어서 출국 준비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리고 특히 키맵대학교 내에서 학생회 성격을 지니고 있는 KISA(Kimep International Students Association)라는 동아리에서 현지 버디(친구)를 지정해 주어서 교환학생 파견 전까지 꾸준히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KISA 주최로 열린 가면무도회(Masquerade Ball) 행사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첫 학기에는 이 KISA 동아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러시아어가 상당히 미숙했기 때문에 대학에 제출해야 될 건강검진서, 비자신청서를 작성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공적인 일 이외에도 KISA 학생들의 도움으로 알마티의 관광명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초기에 주변 식당, 마트, 편의시설 등 기본적인 곳까지 직접 데려다주는 세심한 배려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동아리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카자흐스탄에서 빨리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첫 학기 때 내가 받았던 도움을 다른 외국인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서 KISA 동아리에 들고 싶다고 문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러시아어 실력을 향상 시키겠다‘며 포기하지 않고 KISA 학생들을 설득했다. 결국에는 교환학생 최초로 KISA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두 번째 학기부터 KISA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외국인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다 보니 애로사항이 많았다. 먼저 모국어가 아닌 러시아어와 영어로 소통하고 통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 언어 능력의 한계가 느껴졌다. 이를 계기로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러시아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 유창하지는 않은 러시아어 실력이었지만, 외국인 학생들을 인솔하여 건강검진을 받게 하고 외국인 친구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알마티의 관광지에 함께 가기도 했다. 평소에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을 주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냥 막연히 힘든 일이고 많은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해서 선뜻 봉사활동에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KISA 활동을 해보니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내가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먼저 러시아어가 미숙한 학생들에게 언어로 도움을 줌으로써 나의 언어 능력을 빠르게 키울 수 있었고, 카자흐스탄 지역 외에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 같은 다른 지역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 카자흐스탄에서 세계 여러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Part.2 한국의 1990년대가 떠오르는 알마티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는 한국의 1990년대를 연상케 했다. 아직도 처음 탔던 버스에 적힌 자동문이라는 글자가 기억이 난다. 현지 친구에게 물어보니 카자흐스탄에서는 한국에서 쓰던 중고 버스를 많이 수입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알마티는 전체적으로 회색빛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하지만 이러한 첫 인상과는 달리 키맵대학교는 굉장히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학생들이 수업을 진행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학생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었다. 처음에는 교수님들과 언쟁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생활에 적응한 후에는 토론식 수업이 더 효율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러한 수업 방식의 이점 때문에 키맵대학교가 당당하게 미국식 교육 방법을 채택했다고 생각한다.

알마티 내 최대 번화가 LG 아르밧 거리(상), 알마티 내 최대 공원인 고리키 공원(하)

이곳의 색다른 점은 학기 중간에 일주일 정도 휴식기가 있다는 점이다. 이 휴식기는 주말을 합치면 9박 10일 정도 된다. 자칫하면 심신이 지칠 수 있는 학생들과 교수진들에게 학교에서 제공한 작은 배려라고 볼 수 있다. 교환학생으로서 이 기간은 아주 유용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러시아, 터키 같은 유럽 국가들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나는 이 기간을 활용해 터키, 불가리아, 그리스 3개국을 여행했다. 이동 비용이 한국보다는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훨씬 부담이 덜했다. 이 또한 내가 카자흐스탄으로 교환학생을 떠나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Part.3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

카자흐스탄에 머무르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콘텐츠의 힘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류를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국내 언론들이 애국심에 도취돼서 한국 문화를 한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폄하했었다. 그러나 막상 카자흐스탄에서 1년 정도 있어보니 내가 얼마나 삐뚤어진 시각으로 한류를 바라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류는 국내 언론에서 말했던 한류 그 이상이었다. 한국인인 나보다도 한국 드라마, 음악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특히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그 이상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인터넷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 중 몇몇 친구들은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익혀서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한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덕분에 현지 학생들은 한국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렇기 때문에 키맵대학교가 다른 CIS 국가나 러시아 대학 교환학생보다 친구를 사귀기도 훨씬 쉽고 적응하기도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카자흐스탄에서 수학하면서 이제까지 생각했었던 고정관념을 많이 깨게 되었다. 흔히 카자흐스탄을 생각하면 개발도상국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내가 수학했던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에서 인구 밀도도 가장 높고 산업경제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었다. 유라시아 대륙 중심에 위치하는 내륙 국가인 카자흐스탄은 북으로는 러시아, 동으로는 중국 그리고 남으로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국경을 같이하고 있고 서쪽 국경은 카스피 해를 끼고 있어 바다를 통해 아제르바이잔, 이란과의 교통로가 열려 있다. 이렇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는 지리적 특성과 카자흐 민족 특유의 외부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더해져 카자흐스탄은 동-서를 잇는 21세기 실크로드로 등장하고 있다.

Part.4 독립 26년차에도 소련의 잔재는 여전

현재는 많이 주춤한 상태이지만 국제 원유가가 많이 상승했던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실질 GDP 평균 성장률은 8.3%에 달했다. 그러나 내가 카자흐스탄에 머물던 시기에는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변화한 카자흐스탄에 혼란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화폐인 ‘텡게’의 평가 절하로 인해 화폐가치가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해외 자본이 카자흐스탄에서 철수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해외 자본이 GDP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카자흐스탄으로서는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이유로 치안에도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인사회에서 소매치기나 아리랑치기 같은 범죄들이 한인 대상으로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6년 동안 장기 집권하고 있는 나자르바예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대단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카자흐스탄의 경쟁력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하지만 지난 2015년 대선에서 나자르바예브의 지지율은 97%에 달했다. 내가 만난 카자흐스탄인들은 물론이고 내가 친하게 지냈던 키맵대학교 학생들은 모두 나자르바예브 대통령을 존경했다. 특히 알마티 곳곳에서는 그의 동상이나 벽화를 쉽게 찾아볼 수도 있다.

주차장인지 도로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잡한 카자흐스탄의 도로 상황.

사실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모든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경우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같은 대학에 다녔던 Elmira라는 친구는 “나자르바예브 대통령이 건강을 잘 유지해서 앞으로 20년 더 나라를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대통령 선거에서 키맵대학교 학생들의 투표율은 매우 저조했다. 학생들에게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를 물어보니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카즈흐스탄 대학생들은 정치 상황에 대해 무관심했고 변화를 향한 열망 또한 크지 않아 보였다.

멋진 경관으로 유명한 대통령 공원.

더욱 아쉬웠던 점은 독립한지 올해로 26년차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관료주의에 젖어있다는 것이었다. 학교 안에서 작은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경찰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실제로 같이 수학했던 터키학생 중 한 명이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해 많은 벌금을 문 사례도 있었다. 더 황당했었던 것은 음주에 대한 규정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음주한 후 2일 동안 운전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음주 측정을 기계가 아닌 경찰의 후각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경찰이 벌금을 달라고 하면 그대로 주어야 한다. 이처럼 아직도 뼛속 깊이 남아있는 소련의 잔재가 카자흐스탄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Part.5 카자흐스탄에서 세 가지 목표를 이루다

내가 카자흐스탄으로 떠나기 전에 스스로 생각했었던 목표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러시아어와 영어를 많이 사용해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두 번째는 러시아학을 공부하는 지역학 학도로서 CIS 국가들에 대한 이해도를 확장하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그동안 한국에 갇혀있었던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카자흐스탄에 머물며 다른 언어와 사고를 가진 친구들을 통해 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고, 내가 세운 목표들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단언컨대 나는 이 세 가지 목표를 다 이뤘다고 확신한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해외로 나가 자신의 능력과 사고를 확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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