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하다 문득 ‘혼자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먼 대륙이 어딘지 찾아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매력적인 남미 국가들을 알게 되었다. 곧장 여행비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6개월 후 남미로 향하는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글+사진 | 황태식(경제학과 10)
누군가 나에게 “취업 준비가 두려워 현실 도피를 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그 때마다 “단지 25살 청춘이라는 나이에만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싶었고 그게 바로 해외여행이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4개월간 소매점에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 여행 경비를 모았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알찬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2015년 12월 3일부터 2달 간 페루에서 브라질까지 이어졌던 남미 여행은 지금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한복을 입고 한 달간 여행했다. 설날이나 추석을 제외하고 매일 장롱에만 있던 한복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마다 상당히 뿌듯했고 자긍심도 생겼다. 특히 현지인들이 한복을 보고 사진 찍어달라고 할 때마다 ‘korean traditional cloth!’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기억도 난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한복을 활동하기에 ‘불편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개량 한복은 기능성이라 운동복처럼 편하다. 게다가 통풍도 잘 되어서 여행 중에는 매일 한복만 입고 다녔다. 남미 여행지에서 입었던 한복은 지금 나에게 없다. 칠레 아타카마의 극심한 더위로 한복을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됐는데, 그곳의 숙박업소 주인이 한복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나는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한복을 선물했다.
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카톨릭을 국교로 하고 있는 나라가 대다수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도시 곳곳에서 축제가 펼쳐진다. 우리나라와 계절이 정반대이다 보니 ‘한여름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산타클로스 인형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남미 여행 중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볼리비아의 유럽’으로 불리는 도시인 수크레에 머물고 있었다. 우연히 같은 숙소에서 묵은 미국인, 중국인, 폴란드인, 터키인 등 다양한 민족을 만나 밤새 각 나라별 게임을 즐기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서쪽에 위치한 남미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고지가 높다. 특히 페루나 볼리비아의 평균 고도는 2,000m를 웃돈다. 대한민국 최정상인 한라산보다 높은 곳에 일반인들의 생활 터전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여행 초기에는 다른 여행객과 달리, 고산병에 시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 사건이 터졌다. 평소 노래를 좋아하던 나는 볼리비아의 높은 지대에 속하는 ‘태양의 섬(4000m)’ 전경을 배경으로 셀프 뮤직 비디오를 기획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고지대에 이르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도 없었다. 그로부터 30분 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더니 구토까지 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숨 쉬는 것조차 무척 힘들었다. 다행히 남미에서 만난 ‘여행 친구’가 준 약으로 다음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고지에 오를 때 충분히 수면을 취하거나 걷는 속도를 줄여나가면서 고산병을 해결했다. 고산병을 경험하고 나서 여행의 기본을 조금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그 나라에 다가가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가기 전에는 한 지역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기간이 6일 정도였다. 여행 도중 많은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해당 도시의 사람들과 아침마다 인사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 민박에서 2주간 장기 투숙을 하게 됐다.
2주간 한인 민박에서 지내면서 많은 여행객들을 만나 파티를 즐겼다. 아르헨티나는 소고기와 와인이 정말 저렴해서 매일 같이 소고기를 구워먹으며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탱고의 고장인 만큼 탱고 수업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또 화려하고 매혹적인 탱고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냈던 2주일 간의 시간은 나에게 정말 특별했다. 남미 여행 도중 알게 된 친구들 중 유독 부에노스에서 만난 친구들만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많은 사람들을 얻었고, 마음의 여유까지 찾을 수 있었다. 만약 다음에도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도시를 정해 2주보다 더 오랜 기간 머물러 보고 싶다.
산악자전거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코스다. 이 자전거 코스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에서 가장 높은 4000m 이상의 고지에서 시작해, 약 6시간 동안 2400m까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타고 내려온다. 각종 보호 장비를 완비해도 매년 2~3명이 이 코스를 내려오다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코스를 ‘데스로드(Death Road)’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릴 적부터 자전거를 정말 좋아해서 남미 여행 코스 중 ‘데스로드’를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데스로드는 위협적이었다. 그날따라 비까지 내려서 지면도 미끄러웠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나는 비포장도로에서 크게 넘어져 부상을 입었다. 반대편에는 절벽이 있었는데, 그 쪽에서 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부상에 라파즈에서 이틀을 더 묵어야 했다. 그 때 우연히 일본인 친구 카즈와 유키를 만나 며칠 간 동행을 했다. 내 생애 첫 일본인 친구들과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다. 부상으로 인해 몸이 불편했지만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어 한 편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럽은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다. 반면 남미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거나 보통의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은 독특한 사람들이 많이 찾곤 한다. 남미를 다녀온 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그 때 만난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당장 나에게 닥친 취업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이러한 인연들과, 경험이 나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선택과 포기가 반복된다. 내가 여행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모든 책임도 나에게 있다. 남미 곳곳에서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여행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인생을 개척하는 것은 자신이며, 어떤 길이든 의지만 있다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이과수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위치하며 3대 폭포인 만큼 규모가 대단하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마치 다른 폭포를 보는 듯 각각 다른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이번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인 리우. 치안이 좋지 않다는 뉴스를 접했지만, 일주일 간 이곳에 머무르면서 위험한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행복한 남미 여정을 마치고 평화롭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여행지였다.
볼리비아의 부촌으로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다. 이곳에서 만난 유럽인들은 수크레에 대해 “ 유럽을 똑같이 본 따 만든 것 같다”면서 “수크레를 왔으면 유럽을 갔다 온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로
유럽풍 건물 등 유럽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쿠스코는 고대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볼거리가 정말 많다. 페루의 ‘마추픽추’가 바로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