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이 핀 9월, 길상사를 걸었다. 정선태 교수(국어국문학전공)가 길상사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K*reator 박지호(자동차IT융합학과 17학번), 서민정(스포츠산업레저학과 18학번) 학생에게 들려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무릇처럼 K*reator의 마음도 흔들린다. 정선태 교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니 길상사가 달리 보인다.
국민대학교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길상사는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이름난 성북동에 자리해있다. 1997년 12월 창건해 30년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사찰이지만 불교 신도뿐만 아니라 성북구 주민 등 서울 곳곳에서 길상사를 찾는 이들이 있다.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이었죠. 대원각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고급 요정이었습니다. 길상사의 아기자기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시죠.”
길상사 초입 일주문에서 정선태 교수의 안내로 박지호·서민정 학생이 얕은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들 눈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중앙에 자리한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이다. 그런데 일반 사찰의 법당 건물 형식과 달리 ㅡ자가 아닌 ㄷ자 양식이다.
“길상사는 대원각 주인인 김영한이라는 여인이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시주해 세운 절입니다. 1997년부터 10년간 김영한과 법정스님 간 권유와 거절이 오갔다고 하죠. 극락전이 ㄷ자 구조인 이유는 대원각의 중심 건물이었기 때문이죠. 극락전에서 보이는 종탑 자리에는 원래 기생들이 썼던 탈의실이 있었다고 하죠. 길상사가 대원각이었던 시절, 정치·재계 인사들이 잇따라 드나들었던 어두운 이야기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죠”
이번에는 종탑 옆 불교 대학 앞으로 이동한다. 키 큰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교수님, 부처상도 다른 사찰에서 본 것과 느낌이 다른데요” 서민정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정선태 교수가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가 만든 작품”이라고 답한다. 불교의 미륵반가사유상과 천주교의 성모 마리아상을 불상에 새긴 것이란다. 둥근 산 모양의 보관을 쓴 미륵반가사유상의 얼굴에는 성모 마리아의 인자한 미소가 담겨있는 듯하다. “종교 간 화해와 화합이 담겨있는 불상이에요. 길상사 창건 법회에 고(故)김수환 추기경이 축사했죠.” 서민정 학생이 관세음보살상의 미소를 지그시 쳐다보며 웃는다. 길상사 관세음보살상 앞에 서서 부처님의 미소를 바라보니 다들 마음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길상사에는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을 기리는 작은 공간이 있다. 극락전 옆에 난 작은 산책길을 걷다 보면 작은 비석과 그 뒤에 사당 한 채가 있는데 시주 길상화 공덕비와 사당은 삶의 마지막 무소유를 실천한 김영한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길상화는 법정스님이 지은 김영한의 법명이다. 시주 길상화 공덕비에는 시인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새겨져 있다. 젊은 시절, 김영한은 백석의 연인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나오는 나타샤가 김영한이다.
“김영한은 한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다 1999년 11월 세상을 떠났어요.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기죠.‘내가 평생 모은 1,000억 원은 그의 시 한 줄만 못하다’연인으로서 사랑과 시인으로서의 존경심이 느껴지죠.”
정선태 교수와 K*reator가 시주 길상화 공덕비의 작은 정원을 따라 진영각으로 향한다. 진영각은 길상사의 제일 높은 곳에 있다. 안에 들어서면 법정스님의 영정과 친필 원고, 유언장 등이 전시되어 있고, 마당에는 법정스님이 줄곧 앉은 나무 의자 하나가 있다. 무소유를 실천한 청빈한 수도승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천천히 걸어 30분, 아기자기한 길상사를 정선태 교수의 안내로 K*reator가 산책하듯 꼼꼼하게 돌아봤다. 정선태 교수가 박지호· 서민정 학생에게 책 한 권을 건넨다. 김영한이 쓴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이다.
“김영한은 재주가 탁월한 여인이었다고 해요. 집안이 어려워 기생 교육기관이자 조합인 권번에 들어 수업받고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화류계에 입문해 시인 백석을 만났죠. 김영한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어요. 백석이 지어준 자야라는 아호인데요. 일제 강점기 백석이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했지만 김영한은 이를 거절하죠. 이후 둘은 만나질 못했어요. 해방 이후, 백석은 북에 남았고, 한국 전쟁으로 남과 북이 나뉘었기 때문이죠. 남녀 간 사랑 이야기는 사랑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김영한이 쓴 <내 사랑 백석>을 읽으면 둘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어요. 다만 연구자라면 조심스럽게 판독할 필요가 있죠. 길상사를 둘러보고 난 뒤 읽으면 좋을 듯해서 준비해봤습니다.”
정선태 교수가 또 한 권의 책을 꺼낸다. <정본백석 시집>이다. 박지호·서민정 학생 손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쓰인 페이지가 들려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박지호·서민정 학생이 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길상사를 둘러보고 김영한과 백석, 김영한과 법정스님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이 공간이 달리 보인다. 공간에 이야기가 담기는 순간, 장소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준 정선태 교수에게 K*reator의 시 낭송으로 오늘 길상사 산책을 마무리한다.
어두운 과거를 품은 대원각에서 맑고 향기로운 길상사로. 길상사라는 작은 사찰에 숨겨진 또 다른 문화적 내러티브를 길어 오르는 경험이 참으로 특별하다. 국민대학교 학생이라면 이 가을 한 번쯤은 길상사에 들러 공간이 특별한 장소가 되는 마법을 경험하길 바란다.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잠로5길 68 길상사(조계종)
문의 02-3672-5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