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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드립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술!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회화전공
			김희영 교수

미술을 즐기는 방법은 점점 쉬워지고 있고 그 장벽도 낮아지고 있다. 구글 아트 앤 컬쳐로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명화를 감상할 수도 있고, 미술관에서는 명쾌한 해설로 작품이 쏙 쏙 이해되는 도슨트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새로운 취미 생활을 찾는다면 미술 감상은 어떨까. 김희영 교수가 미술 감상의 즐거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김희영 교수는 예고에서 서양화를,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대학원에서는 미술이론을, 미국 석‧박사 과정에서는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미술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는지 학부 시절, 미학을 부전공하면서 미술에 대한 갈급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하지만 철학은 형이상학적으로도 느껴져 구체적인 미술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결국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기로 결심, 대학교 4학년 때에 스무 살 이후 그린 적 없는 그림을 다시 그려가며 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1980년대 말 김희영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근거를 더 잘 알고 싶어 모더니즘을 연구했고, 모더니즘 대표 이론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미술비평에 관한 연구’라는 석사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국내에서 처음 쓴 모더니즘 비평이었다. 석사 논문을 쓰고 난 뒤에는 미국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다. 운 좋게도 그해 신설된 미술사학 분야의 국가 장학금 지원을 받아 시카고 대학에서 르네상스 미술사로 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박사학위는 아이오아 대학에서 20세기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다다이즘과 전후 미국 추상미술을 공부했다. 그린버그 모더니즘 비평이 작품에 치중했던 것과 달리, 작가와 공동체 부분에 주목하여 전후 미국 추상회화를 이해한 ‘해롤드 로젠버그의 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비평’으로 박사 논문을 썼다.

▲ 김희영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외국에 한국 추상 화가를 소개하는 Korean Abstract Painting을 집필했다 ▲ 연구실에 있던 말레비치 작품이 프린트된 컵과 접시

“고등학교 이후부터 학부, 석‧박사까지 전공을 여러 차례 바꾸면서 미술에 관해 공부했어요. 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무모한 도전 때문에 전과도 여러 번 했지만 미술사와 이론 공부만큼은 재미있었고, 미래가 불안했어도 공부하는 과정에서 결코 후회해본 적이 없어요.”
김희영 교수는 간혹 외부 강의에서 미술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질문을 받을 때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린다고 한다. 미술과 관련된 모든 지식이 늘 궁금했고, 한 시대의 미술을 알게 되면 그 근원에 대해 질문을 뻗어나가며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와 시대에 관심을 두면 여러 분야로 호기심이 확대되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요. 그 과정에서 미술 양식과 그림이 연관되면서 정보가 연결되고, 창의적인 질문들이 쏟아지게 되죠. 교과서만 보고 외우는 것보다는 이 작가가 왜 이런 방식으로 표현했는지 좀 더 인간적인 관심을 두고 생각한다면 훨씬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 국민인에게 추상미술을 추천한 김희영 교수

그리고 하나 더, ‘아름답다’라는 감상은 미술을 설명하는 표현 중 하나일 뿐 꼭 미술이 아름다움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란다.
“미술에 美를 쓰긴 하지만 아트라는 것을 한자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지 아름다움이 미술에 전부는 아니에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가게 되면 미술에 대한 견해 차이로 작가와 미술 제도가 충돌하는데요. 1970년대로 넘어가면서 개념 미술이 나오고, 작가들이 사회적인 발언도 하면서 미술의 역할이 점차 다양해지죠.”
작가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지고 ‘미술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에 매이지 않는다면 미술 감상은 훨씬 더 흥미롭단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김희영 교수의 미술 접근법을 참고해 미술 감상에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희영 교수가 추천하는 20세기 추상미술로 살짝 예행연습부터 해본다면 ‘야! 너도 미술 느낄 수 있어. RM처럼!’

추상미술의 꼬리를 이어보자!

미술 초보자들에게 추상미술은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김희영 교수가 추천하는 작가들과 작품 흐름을 따라가면 조금은 추상미술이 궁금하고 흥미로워질 수도.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색, 선 등 추상적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하기 시작한 20세기의 미술 이야기. 그 다이내믹한 변화의 흐름 속 우리가 알아야 하는 작가와 작품들을 살펴본다.

추상은 피카소로부터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은 현대미술의 기원이자 추상주의를 발전시킨 입체파 시대 근간이 되는 작품이다. 아비뇽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에서 아비뇽은 사창가로 이름난 바르셀로나의 거리다. 그림에는 벌거벗은 다섯 여인이 있고, 오른쪽 두 여인은 아프리카 마스크를 쓰고 있다.

▲ Pablo Picasso,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20세기 유럽은 아프리카에 제국주의 세력을 확장하며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피카소는 파리의 민족지학박물관에서 보거나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아프리카 마스크에 영감을 받아 그의 작품에 새로운 조형적 시도를 한다.

▲ Pablo Picasso, Portrait of Daniel-Henry Kahnweiler, 1910

그리고 3년 뒤 발표한 <<칸바일러의 초상화>>(1910)에서는 완전히 평면화시켜 입체주의 형식을 완성한 새로운 작업 방식이 등장한다. 피카소는 일점원근법에 근거하여 대상을 모사한 작품들과 달리,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분절된 면으로 하나의 화면에 융합하는 과정에서 평면화된 추상 작업을 선보이며 20세기 전반의 기하학적인 추상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추상의 선구자 칸딘스키

바실리 칸딘스키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인상주의 회화에 감명을 받아 화가의 길을 택하였다. 초기에는 인상파와 야수파의 영향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였다. 추상미술의 또 다른 선구자로 불리는 칸딘스키가 선과 색만으로 작업 방향을 바꾸게 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작업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잠시 산책을 하고 돌아왔는데 작업실에 멋진 그림 하나가 놓여 있었던 것. 알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 거꾸로 돌려놓고 나갔던 자신의 그림이었다.

▲ Wassily Kandinsky, With Three Riders, 1911

형태에 매이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게 되자 칸딘스키는 대상을 재현하려는 짐을 벗고 선과 색만으로 자유롭게 그리는 실험을 이어갔다. 말을 타고 가는 세 사람을 단순화한 <<With Three Riders>>(1911)는 추상 미술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이다.

▲ Wassily Kandinsky, Composition VII, 1913 ▲ Wassily Kandinsky, Improvisation 30(Cannons), 1913

칸딘스키는 가장 추상적인 예술인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에 음악적 효과를 표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곡>> 시리즈와 <<즉흥>>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표현적인 추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전개된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잭슨 폴록, 윌렘 데 쿠닝, 마크 로스코, 프란츠 클라인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칸딘스키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예술이론가로도 유명하다. 1910년에 집필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는 작가의 감흥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달되며, 따라서 작품은 소통을 위한 매개체라고 이야기했다. 내면의 순수한 표현을 중요시했던 칸딘스키의 입장은 이후 독일 바우하우스 교수로 재직하며 1926년에 집필한 <<점‧선‧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되었다. 사실적인 재현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원근법에서 벗어나, 내적 필연성에 반응하여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표현적인 추상의 길을 여는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하였다.

기존 예술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절대주의로 말레비치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1912년에 <<눈보라가 내린 후 마을에서의 아침>>(1912)에서 눈 내린 마을의 시린 아침 풍경을 입체주의적 형태에 역동감을 주는 강한 색을 사용한 큐보-퓨처리즘(입체주의와 미래주의가 결합된 양식)으로 구현했다.

▲ Kazimir Malevich, Morning in the Village after a Snowstorm, 1912

그러나 기존 예술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던 중, 1913년에 이전 작업을 모두 지우는 선언처럼 모든 색과 형태를 삭제한 <<검은 정사각형>>을 선보였다. 그리고 순수한 감정의 절대성을 강조하며 절대주의를 제시하였다. 그는 자신의 캔버스 안에 무한한 우주의 공간을 담았다고 말한다.

▲ Kazimir Malevich, Black Square, 1913 ▲ Kazimir Malevich, Suprematist Composition: Airplane Flying, 1915

우주를 명상하는 그의 철학적 태도는 우주로의 확장을 전망하면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던 당시 러시아의 분위기와도 상응한다. 1915년에 제작한 <<절대주의 구성: 날고 있는 비행기>>는 완전한 평행의 직선이 아닌 조금씩 빗겨나 있는 선과 직사각형들이 역동성을 보여준다.

▲ Kazimir Malevich, costume designs for the opera Victory over the Sun, 1913 ▲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 무대 의상 ⓒShakko

말레비치는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일상에서도 추상 미술을 만나고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사고를 사색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찻잔에 자신의 절대주의 작품을 프린트하거나 오페라의 무대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는 등 삶의 현장에서 예술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상에서 현대적인 미의식을 알리고자 했다.

다다이즘, 포토몽타주의 창시자 라울 하우스만과 한나 회흐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에 잔혹한 살육이 일어나는 동안 중립국 스위스는 유일한 무풍지대였다. 전쟁을 피해 망명한 젊은 예술가들과 혁명가들이 취리히로 모여들었고, 그중에는 레닌도 있었다. 독일 출신 작가 후고 발을 포함한 유럽의 진보적인 작가들이 취리히의 한 카페에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혁신적인 활동을 하고 이 장소를 ‘카바레 볼테르’라고 부르면서 1916년 초에 다다( Dada)가 시작되었다.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전쟁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영웅적인 사회 경험으로 이상화하려는 왜곡된 분위기가 팽배했으나 카바레 볼테르에 모인 예술가들은 달랐다. 전쟁은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적 열광이 만들어낸 악마적 광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특정한 의미가 없는 다다라는 명칭으로 자신들의 활동에 이름을 붙였다. 반(反)예술의 특성으로 설명되는 다다는 부르주아적 관습과 정치가 만들어낸 전쟁에 대한 혐오적 표출로 기존의 관습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태도와 함께 새로운 예술을 창출하려는 소망이 담겨 있다.

▲ Raoul Hausmann, Spirit of Our Time(Mechanical Head), 
					1919, assemblage

라울 하우스만은 전쟁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베를린 다다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1919년에 발표한 <<우리 시대의 정신(기계적인 머리)>>는 가발 공장에서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두상에 지갑, 자, 줄자, 지갑 등을 붙인 아상블라주 작품이다.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머리는 없고, 오로지 정량적인 계산, 돈, 물질에 몰두해 있는 당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우스만을 포함한 독일 다다 작가들은 잡지와 신문의 사진으로 구성한 포토몽타주를 주된 형식으로 사용했다.

▲ Raoul Hausmann, Tatlin at Home, 1920, photomontage

<<집에 있는 타틀린>>(1920)은 대표적인 러시아 구축주의 작가인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제목에 언급하면서, 예술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실용적이고 사회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구축주의를 모델로 삼고 있는 하우스만의 입장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하우스만은 세계대전이 감정에 치우친 비이성적인 결정이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Hannah Höch, Da Dandy, 1919

베를린 다다 작가 중 유일한 여성 작가인 한나 회흐도 포토몽타주를 주요 매체로 하여 당시 변화된 사회, 문화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저기 멋쟁이>>(1919)는 사진이나 잡지 같은 대중매체에서 가져온 대량복제된 사진을 이용해 작업한 포토몽타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사망한 남성들을 대신하여 경제력을 가지게 된 신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발머리, 하이힐 등의 당시 대중매체에서 배포되고 있는 신여성들의 이미지가 화면 중앙의 남성 옆모습 윤곽선 안에 중첩되어 제시되어, 전형화된 이미지로 신여성이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여성 이미지를 차용하면서도 동시에 전복하는 회흐의 작품은 이후 여성주의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벗어나 관습에서!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1928-1929)은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에는 파이프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파이프를 재현한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가 맞지만, 마그리트는 그림으로 재현된 대상이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림과 문장을 모순적으로 제시하였다. 화가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대상 자체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 René Magritte, The Treachery of Images, 1928-1929 ▲ René Magritte, Portrait, 1935

한편 <<자화상>>(1935)에서는 테이블 위에 놓인 햄 조각 위의 눈이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대상도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현대 철학에서 거론되는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 이처럼 평이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관습적인 사고에 물음을 던지는 마그리트의 담담한 작업들은 이후 팝아트 작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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