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 지능형반도체융합전자전공 박희천 교수
대여섯 살,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주셨어요. 처음 했던 컴퓨터 게임은 고인돌이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했던 유일한 취미생활이 게임인데요. 초등학교 때는 스타크래프트, 중학교 때는 디아블로2, 고등학교 때는 위닝 일레븐을 했었죠. 당대에 사람들이 주로 많이 하는 게임을 했었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게임을 조금 적게 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가면서는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지면서 제가 진짜 좋아하는 무언가를 다시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그게 게임이었어요.
게임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지닌 플레이어를 ‘그랜드마스터’라고 불러요. 그랜드마스터를 선정하는 기준이 게임마다 각각 다른데요. 스타크래프트는 각 지역의 상위 200명을 그랜드마스터로 정해 실시간으로 순위를 보여줘요. 저는 한국 서버와 북미 서버로 그랜드마스터에 오른 적이 있어요. 대학원 시절에는 대학 대항전으로 e스포츠 리그에 나가기도 했는데요. 8강까지 올라갔죠. 8강에서 만난 상대는 저희 팀보다 계급이 훨씬 낮았어요. 보통 게임에서 계급이 낮은 상대에게 지는 일은 거의 없는데 상대방이 저희 팀에 대한 분석을 잘하고 나와 경기에서 지고 말았죠. 무슨 일을 하든지 준비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가끔 부모님은 제가 게임을 하지 않았다면 인생에 더 좋은 일들이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그럴 때마다 게임이 있었기 때문에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 해소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려요(웃음).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다가 스트레스가 최고로 쌓이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잠시 외출(?)해서 한두 시간 게임을 하고 다시 학교로 와서 공부했었는데 그 시간이 저한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육아 스트레스도 게임으로 해소했는데 게임은 짧은 시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건전하고 경제적인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게임덕후로 유명하죠. 젠슨 황이 “게임을 할 때 실수했다고 날 자책하지 않는다. 원래 지고, 지고, 또 지다가 이기는 것이다. 무언가 시도해서 안 되면 다시 돌아가 시도하면 된다는 걸 그때 배웠다.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요. IT 기업의 CEO로서 직원들에게 좀 더 대담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라는 의미에서 한 말인 것 같은데요. 기업이 안전한 선택만을 하게 된다면 큰 발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한 말이 아닐까 싶어요. 현실에서는 리스크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하므로 주로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실제 그 리스크가 생각한 것보다 크지 않을 수 있고, 과감한 선택이 더 좋은 결과를 줄 수도 있어요. 게임으로 인생에 다양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젠슨 황이 한 말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네요.
올해 9월에 국민대학교에 임용됐는데요. 제 연구 분야는 게임은 아니고 시스템 반도체 설계 자동화 연구예요. ‘시스템 반도체’라는 말은 외국에서는 쓰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만 이 말을 쓰는데 메모리 반도체로 전 세계 시장에서 30년 동안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있는 것이지요. 반도체에는 기억장치와 활용장치가 있어요. 기억장치가 메모리 반도체에 해당되고, 기업장치와 활용장치를 포함하는 하나의 큰 반도체 덩어리를 시스템 반도체라고 하죠. 시스템 반도체의 생산 과정은 설계와 공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저는 설계 관련 연구를 하고 있어요. 건축으로 비유하자면 목적에 적합한 설계 도면이 나오는 과정까지가 설계에 해당되고, 설계 도면이 건물로 나오는 과정까지가 공정이에요. 설계 도면은 워낙 복잡해서 사람이 수동으로 작업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동화되어 있는데 더 좋은 품질의 반도체 칩이 나올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만들고 개선하는 연구를 하고 있죠.
학생들을 가르친 지 3개월이 되어가는데요. 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는 요즘이에요. 연구자로서 학계에 영향력 있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학부생, 대학원생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쩌면 제 업무 중 가장 크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뭐, 생각이 자주 바뀌기는 하겠지만요(웃음). 현재 목표는 학생들과 잘 소통하며 제가 의도한 바를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요. 게임 레벨업 하듯이 티칭과 소통 능력도 레벨업 한다면 그랜드마스터 교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스타크래프트 Ⅱ>
스타크래프트 Ⅱ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플레이되고 있는 RTS((Real-Time Strategy: 실시간 전략) 게임이다. 모바일 게임이 전체 게임 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캐주얼하고 쉬운 게임이 많아지고 있고, 과거 유행했던 RTS 장르의 게임은 ‘어렵다’, ‘진입장벽이 높다’ 등의 이유로 주류에서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RTS 게임은 자원 채집부터 생산, 병력, 운용, 전략, 전술까지 모든 부분을 직접 제어해야 하므로 다소 어렵기는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배워가는 재미도 있다. 특히 전략을 통해 경기에 승리했을 때는 일반 캐주얼 게임과는 다른 차원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오버워치 2>
오버워치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만든 블리자드사에서 제작한 FPS((First-Person Shooter: 1인칭 슈팅) 게임이다. FPS 장르 외적인 요소가 게임에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더 쉽게 즐길 수 있다.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 다중사용자 온라인 전투 아레나) 장르에 비해 캐주얼적인 측면이 많아서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지난 10월 5일에 오버워치 2가 출시되면서 6:6에서 5:5로 게임이 개편되어 더 다이내믹해졌다.
<LoL 월드 챔피언십, LCK>
MOBA 장르의 게임인 LoL(League of Legends)은 특히 국내에서 제일 많은 사람이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보다 훨씬 많이 알려져 있다. 과거에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고 했던 것처럼 현재는 LoL이 그 역할을 하고 있고, 관련된 밈이나 부가 콘텐츠가 다양하게 생산되면서 문화산업에서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전 세계 e스포츠 시장에서 LoL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중 국내 리그인 LCK(League of Legends Champion Korea)는 세계적으로도 수준이 높은 프로게이머들이 참가한다. 게임 외적인 콘텐츠들의 퀄리티도 매우 높아서, 게임 자체를 잘 모르더라도 보는 재미가 있고, 마치 다른 스포츠 리그를 즐기듯 LCK를 즐길 수 있다.
해마다 지역별 리그(한국의 경우 LCK)에서 상위 1~4팀을 선발하여 10~11월에는 LoL 월드 챔피언십이 열린다. 국가 대항전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어 흔히 ‘롤드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올해 열린 LoL 월드 챔피언십에는 우리나라 팀이자 언더독으로 평가받던 DRX가 우승했다. DRX의 맏형 데프트(Deft)는 데뷔 9년 만에 결승에 진출해 우승컵을 들어 올려 최고령 우승자가 되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매년 LOL 월드 챔피언십이 종료되면 다양한 통계를 통해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데, 현재 그 규모가 미국의 4대 스포츠(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에 가까워지고 있어 e스포츠 리그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