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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덕후 교수님의 아이돌 계보학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이연진 교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아이돌

여느 10대처럼 저 또한 아이돌 가수를 좋아했습니다. HOT라고 들어보신 적 있을 거예요. 아이돌 계보에서 시작을 HOT로 보는데 제가 처음 산 앨범이 바로 HOT 1집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였어요. 그런데 10대 시절에 푹 빠졌던 소위 ‘우리 오빠’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은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최장수 아이돌 신화였어요. 신화창조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주말에는 SM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했었죠. 가수가 꿈인 건 아니었고, 엔터테인먼트먼트 산업과 아이돌을 좋아하는 제 마음의 표현 같은 거였어요. 지금처럼 미디어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저에게 아이돌 가수는 TV의 신선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법 중 하나였어요.

예능 PD로 덕업일치?

대학생이 됐어도 아이돌, TV, 대중문화에 관한 관심은 계속됐어요. 방송국 예능 PD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해 언론사에서 일하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다들 예능 PD와 제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용기를 북돋아 줬어요. 졸업을 앞두고 방송국에서 인턴생활을 하며 예능 PD가 하는 일들을 가까이서 보게 됐고, 이 일을 하기 위한 몇 가지 자질 같은 것들을 알게 됐어요. 당시 저는 시청자를 웃기는 유머와 센스가 예능 PD의 첫 번째 자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어요. 그래서 더 넓은 세상과 다양한 인생을 알고 싶어 졸업 후 미국에 유학을 갔어요. 공부를 끝마치면 예능 PD가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요.

▲ 21년 9월에 국민대학교 사회학과에 데뷔하신(?) 이연진 교수님. K팝처럼 신선한 강의 많관부!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 그 티키타카

미국에서 석사 과정으로 사회복지와 사회정책을 전공했어요. 2년간 에이즈 병동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가키트로 피검사를 하는 일이 제 임무였죠. 실제로 다양한 인종의 HIV 감염 고위험군 환자를 만나면서 한 개인이 에이즈라는 질병에 노출되기까지 의학의 영역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개인의 삶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고, 그다음에 정책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건강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더라고요. 박사 과정에서는 사회학을 좀 더 공부해 보라는 지도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인구학이라는 굉장히 큰 스케일의 데이터를 활용해 저출산과 고령화를 연구했어요.
예상보다 외국에서 긴 시간 공부하게 됐는데 다양한 인종의 사람을 만나고, 또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제 전공을 살려 사회 구조 속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었어요. 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시기가 이쯤이었던 것 같아요.

K팝을 들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외국에서 공부하고, 직업을 갖는 일은 제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일이었어요. 일례로 홍콩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기 전, 외국 대학 여러 곳에서 면접을 봤어요. 학과의 교수님들과 대학 총장님들을 일일이 뵙고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거나 식사를 하는 방식으로 면접을 보는데 과정도 길고 평가하는 항목도 다양했어요. 그러다 보니 면접에 소요되는 기간만 3박 4일이 걸려요. 긴 과정의 면접을 여러 번 준비하면서 제가 왜 이 나라에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확인시키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굉장한 외로움이 밀려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어요. 주말에 공공장소에서 열리는 다양한 장르의 버스킹 공연을 주로 보러 다녔죠. 그래도 긴 외국 생활에서 힘을 줬던 노래는 K팝이었어요. 신화의 <I Pray 4 U>, BTS의 <Euphoria>는 지금도 마음이 힘들 때마다 찾는답니다.

▲ 이연진 교수님, 이제 같이 들어요!

숨듣명 안하고 당당하게 듣겠습니다!

저에게 K팝은 강의 준비를 하다가 또는 연구를 하다가 급피곤이 몰려오면 몸과 마음을 리프레시하게 해주는 힐링 아이템이에요(웃음). HOT에서 신화, 동방신기, BTS, NCT까지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 계보인데요. 주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에서 직접 운영하는 자체 채널을 시청하거나 콘서트장에서 라이브 음악을 듣는 방식으로 K팝을 소비해요. 홍콩에서 교수로 생활했을 때, 싱가포르에 학회가 있을 때 MAMA 현장에 당연히 갔었고요. 최근 열린 BTS 콘서트장도 당연히 갔습니다!

우주처럼 팽창하는 K팝 확장성

K팝 덕후로서 저는 어쩌면 운이 참 좋은 사람일 수도 있어요. 한국 대중음악에 아이돌이 등장하고, 그들의 음악이 한류라는 문화현상으로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고, 더 나아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 외국 차트 정상에 오르는 격동의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1인이거든요. 우리 가요, 아이돌 음악을 부르는 ‘K팝’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정말 놀라워요. 과거에는 K팝을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특정 노래를 아이돌이 부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K팝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어요. 아이돌 공연문화, 아이돌 팬페이지 등의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아이돌 굿즈 등이 그예가 되죠. 몇 년 전, 한 엔터테인먼트의 굿즈숍 카페에서 흥미로운 상품을 봤는데요. ‘OO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OO가 좋아하는 마카롱’ 등 아이돌 취향을 알 수 있는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이러한 사소한 취향도 콘텐츠가 될 수 있구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엮어서 하나의 K팝 문화로 키우는 그 확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덕후력을 발휘할 기본값은 충분

한류를 분석하는 현상과 연구는 제 전공 분야인 저출산, 고령화, 사회보건과 거리가 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사회학자로서 꼭 하고 싶은 연구가 K팝, K컬처와 관련된 연구예요. 지금은 한국 문화를 즐기기 위해 외국인들이 한인타운을 찾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런 현상은 제가 유학했을 적만 하더라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어요. K팝이 콘텐츠화되면서 외국의 일부 자본 시장을 잠식하는 문화적 영향력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또 유튜브를 통해 K팝과 K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 MZ세대의 삶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흥미로운 대목이에요. 실제로 엔터테인먼트와 연합해 유튜버를 양성하는 대안학교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고 하는데요. 사회학자로서 이러한 변화가 올바른 현상인지, 앞으로 대학은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죠. 불평등과 직업의 하이어라키(조직이나 집단 내에서의 계층적인 구조)가 바뀌고 있다고도 봅니다. 변화하는 미래 사회에 사회학자로서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똑똑 교수실을 두들겨 주세요!

작년 9월에 신임 교원으로 임용됐습니다. 학생들이 진로 상담이나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주셨으면 해요. 저는 교수가 학생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고, 반대로 학생도 교수를 채워줄 수 있다고 봐요. 학생들이 질문하거나 준비해온 수업 콘텐츠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나거든요.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진로를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는 학생들의 동반자 같은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연진 교수가 추천하는 인생 K팝·K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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