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 캐스터가 이런 말을 하죠.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양 팀입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경기 결과에 많은 스포츠팬은 환희와 고통을 느끼는데요. 10대 때부터 스포츠에 진심이었던 저도 수많은 경기에 웃고 우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야구, 축구, 농구 등 구기 종목은 국내외 경기를 모두 챙겨볼 정도였는데요. 20대 중반에는 한 15년간 경기를 계속 보다 보니 오늘 경기가 어제 본 경기 같고 조금씩 질리더군요. 당시에 권태기가 온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응원하는 팀이 게임에서 지면 얼마나 화가 나는지···. 스포츠팬 대부분이 선수의 잘한 플레이보다는 잘 못한 플레이를 더 기억한다고 하는데요. 저 또한 경기 결과가 좋든, 나쁘든 고통스러움을 더 많이 느끼는 스포츠팬이었죠. 심지어 이 감정이 ‘매우 불행하다’고 느꼈어요.
스포츠에 대한 제 사랑이 변한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마음이 고통스러우니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었는데요. 스포츠팬이라면 단순히 응원팀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팀을 운영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은 선수 구성을 통해 구단 가치를 빌드업하는 게임인데요. 사용자가 게임 속에서 단장 또는 감독이 되어 선수 기용, 전술 등을 통해 조직력을 높이는 게임입니다. 승패는 각 선수의 기록 또는 팀의 종합 점수로 겨루는데요. 선수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구단을 강하게 만드는 게임 방식이 제 연구(조직행동론, 피플애널리틱스)와 공통점이 있어 좀 더 스포츠를 흥미롭게 소비할 수 있더군요. 경기만을 관람하는 스포츠팬이었을 때는 스포츠와 제 인생이 평행선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접점이 생긴 느낌이랄까. 제가 스포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생긴 것이죠.
시즌이 시작되면 제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도 시작됩니다. 여름에는 야구를, 겨울에는 농구와 축구를 즐기는데요. 저는 주로 저평가된 선수 가운데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선수를 기용하는 것을 선호해요. 이런 선수를 전문 용어로 ‘슬립퍼스(sleepers)’라고 하는데요. 커뮤니티에는 슬립퍼스를 정리해 놓은 비기가 공유되곤 하지만 저는 100% 제 판단에 의존합니다. 선수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제 팀에 맞는 선수를 기용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은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느끼는 쾌감 그 이상이에요.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을 시작하고 좋은 점은 경기를 관람하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것이에요. 전에는 응원팀 하나를 정해놓고, 그 팀에 소속된 선수를 중심으로 응원했다면 지금은 선수의 기량, 발전 가능성, 나이, 부상 빈도와 유무 등을 다 따져보기 때문에 선수를 넓게 바라보는 장점이 있죠. 저는 축구는 주드 밸링엄(레알 마드리드), 야구는 문동주(한화이글스), 농구는 빅터 웸반야마(샌안토니오 스퍼스) 선수를 좋아하는데요. 이 세 선수는 당연히 제 팀에 늘 기용되는 선수들입니다.
지난 학기부터 국민대학교 경영학부에 임용되어 매니지먼트 전공 인사 조직 관련된 연구와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조직행동과 피플 애널리틱스가 제 전공 분야입니다. 조직행동은 개인 내부의 지표를 이용해 조직의 성과와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개인 내부의 원인(동기, 능력, 성격, 조직 만족, 직무 만족, 공정성 인식 등)을 바꿔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개인 내부의 요인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측정을 통해 예측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오류의 가능성 때문에 조직행동론 연구에서는 정성적인 부분 즉 이론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정량적인 분석은 이론을 뒷받침하는 수준으로 진행하죠. 반면에 피플 애널리틱스는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지표를 수치화해 정량적인 부분을 근거로 조직 구성원의 업무 성과나 역량을 발전시키고, 경영자나 인사 업무 실무자에게는 분석적 방법론을 제시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학문입니다.
학자로서 제 목표는 학습곡선이 꺾이지 않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역량은 30대 후반 정도가 되면 발전을 멈추는 경우가 많아요. 신체적인 노화가 오면서 체력과 열정이 깎여나가는 측면이 생기기 때문이죠. 저에게 피플애널리틱스 측면을 적용한다면 박사 초년생 때처럼 학습곡선을 빠르게 올릴 수 없겠지만 꺾이지 않는 학습곡선이 10년, 20년, 제가 은퇴하는 시기로까지 확장된다면 조직과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난 학기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20개월 된 아이를 키우느라 목표했던 지점에 닿기까지 시간이 다소 지체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제 퍼포먼스를 끌어올려야 합니다(웃음). 제 인생에서 이론과 데이터로 무언가를 하는 일, 연구나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은 잘 해냈다고 자부하는데 육아는 제가 읽은 육아 이론서대로 적용이 쉽지 않네요. 이번 학기에는 학자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꺾이지 않는 학습곡선을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잘 보내볼 생각입니다.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은 육아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분명 가상인데도 제가 기용한 선수가 제가 낳은 자식, 운명 같이 느껴지죠. 잘 되면 너무 기쁘고 잘 안 되면 슬프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아직 대중적인 게임은 아니지만 참고할 수 있는 각종 기록 사이트가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즐기는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은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 존재하는 선수를 게임상에서 역량별로 평가해 놓으면 일정 예산으로 구단을 운영하는 방식인데요. 풋볼 매니저(football manager), OOTP(Out Of The Park developments)가 이에 해당합니다. 다른 하나는 실제 경기 기록을 토대로 팀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판타지 스포츠라고 하는데요. 판타지 스포츠는 실제 플레이가 끝나고 점수를 계산하는 방식, 플레이 바이 플레이로 점수가 실시간으로 게임에 반영되는 랭킹볼 방식이 있죠. 여러분의 스포츠 지식과 전략을 가상 세계에 펼쳐보세요. 진정한 스포츠팬은 경기장 안이든 밖이든 가상 세계든 가리지 않습니다.